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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 없는 임진년을 향해…"

[복지국가SOCIETY] "보편적 복지, 기업에도 이익"

우리 사회의 자화상은?

<교수신문>에서는 매년 한 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를 꼽고 있다. 2008년에는 문제가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는다는 뜻의 호질기의(護疾忌醫), 2009년에는 바른 길을 좇아 정당하게 일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하는 일을 비유하는 방기곡경(旁岐曲經), 2010년에는 진실을 숨기려 하지만 거짓이 드러나 보인다는 의미의 장두노미(藏頭露尾), 2011년 올해에는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뜻의 엄이도종(掩耳盜鐘)이 각각 선정되었다. 이 모두가 이명박 정부와 관련되어 있다.

지난 4년 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은 '꼼수'와 '독단'이라는 두 단어로 압축할 수 있겠다. 그래서 그런지 올 한 해 <나는 꼼수다>라는 팝 캐스트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서민들의 불만에 찬 목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고, 온통 권력을 가진 자, 자본을 가진 자들의 목소리만 흘러나오는 등 언로(言路)가 막힌 탓이 가장 크다. 우리 사회의 언로를 좌지우지하는 보수언론은 국민들이 알고 싶은 것,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말하고 싶은 것만 들려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성장 이데올로기의 한계

우리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중심에는 '성장'이 자리 잡고 있다. 경제성장, 신성장 동력 앞에서는 모든 정책들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무엇을 위한 성장인가?'라는 물음이 빠져 있다. 이제 성장 이데올로기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해야 한다. 계량적 수치로 드러나는 결과론적 경제성장(그것도 단기간 성장)이 국정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단기간에 성장률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가장 높은 대기업이 선호하는 정책을 중심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대기업 중심으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면 그 부가 사회 전체로 골고루 배분된다는 논리는 허구가 되어버린 지 오래이다. 더군다나, 현 정부의 핵심적 대선 공약이었던 747 공약(7% 경제성장, 일인당 국민소득 4만 불, 7대 경제대국)은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공약(空約)이었음이 이미 밝혀진 지 오래이다. 예상치 못한 세계적 경제위기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없지 않으나, 많은 전문가들은 이 공약이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는 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무역 규모 1조 달러 시대, G20 회의의 개최 등을 치적이라 내세우지만, 그것에 기뻐하는 국민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제 성장 중심의 이데올로기로 인한 폐해가 참을 수 없을 수준에 도달했다. 수출 대기업을 위한 고환율 정책 등으로 서민들의 장바구니 물가는 유례없을 정도로 치솟고 있다. 수익률 극대화를 위한 저임금 고용 비중은 OECD 주요 국가들 중에서 가장 높아 고용 인구의 1/4이 여기에 해당한다. 연말을 맞아 대기업은 대규모 승진과 성과급으로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고 있으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불황으로 신음하고 있다.

인간 행위 중 가장 극단적 형태인 자살은 OECD 국가들 중에서 최고이며, 특히 노인 자살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의학적으로는 자살을 우울증과 연동하여 설명하기도 하지만, 이는 현상적 설명일 뿐이다. 그 근저에는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 연대의 해체가 자리 잡고 있다. 이미 '20대 80'의 사회에서 '1대 99'의 사회를 향해 양극화가 악화일로에 있지 않은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 자살 역시 극단적 양극화로부터 그 뿌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복지와 경제성장이 유기적으로 통합된 조화로운 사회

언제부터인가 '개천에서 용 난다'라든지 '자수성가'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그 의미를 상실한 것 같다.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각종 사회적 안전장치가 약화됨에 따라 올라가야 할 계단은 계속 높아만 가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자신이 발 딛은 곳에서 벗어날 기회는 점차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제 자수성가는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이 아니라, 초인적 능력을 지닌 일부 사람에게 국한되어 버렸다. 누구는 자수성가의 모범이라고 할지언정, 그것이 나에게 적용될 것으로 기대하는 젊은 층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이를 나태함과 허약함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국민들은 어떠한 삶을 살고 싶어 할까? <한겨레>가 조사한 정치 변화에 따른 삶의 질 기대치 조사에서 좋은 인물을 뽑으면 우리 사회가 나아질 것으로 보는 이유에 대해 27.3%가 '복지와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질 것 같아서', 19.8%가 '일자리가 생기거나 안정될 것 같아서'라고 응답하였다. 이는 국민들의 약 절반가량이 '복지'와 '안정'을 원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소득이 늘어날 것 같아서'는 6.2%에 불과하였다. 즉, 많은 국민들은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안정된 삶을 추구하고자 한다. 지난 몇 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 우리 국민들은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뼈저리게 느꼈고, 정치가 자신의 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를 자각하였다. 민심은 무서울 만큼 정치화되고 있다. 이를 일시적 현상으로 바라보고, 이에 부합하는 정책을 포퓰리즘으로 평가절하 해 버리는 정치세력은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발붙일 곳이 없어질 것이다.

이제, 과거의 성장 중심 이데올로기는 폐기되어야 한다. 복지와 성장의 통합적 균형점을 찾아야만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리고 그 목표는 바로 우리네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 즉 민생의 안정과 행복이 되어야 한다. 한편, "성장이 우선이냐, 복지가 우선이냐"라는 과거의 잘못된 이분법적 논리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미래의 우리 사회는 국민 개개인이 소외받거나 차별받지 않고, 복지와 경제성장이 함께 가야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연대가 핵심 가치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리고 복지정책은 '보편성'의 원리에 기반을 두되, 선별성의 원리에 기초한 정책으로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편성은 포용의 원리가 작동하는 반면, 선별성은 배제의 원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복지정책은 그 수혜자를 엄격한 소득 기준에 따라 선별하는 '선별성'에 기반을 둔 잔여주의 정책 중심이었다. 모두의 안정된 삶을 위해서, 그리고 이러한 삶의 기반 하에서 경제성장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배제보다는 포용의 원리가 우선되어야 한다.

복지국가를 위한 재원은 증세 등 조세 개혁으로 확보해야

국민들 개개인은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복지의 확충'을 위해서는 현재보다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며, 그 돈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다 알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 상당수는 보다 많은 복지를 원하지만, 세금 더 내는 것은 거부한다. 역설적이게도 복지의 혜택을 가장 많고 있으면서 세금은 대부분 면제되는 빈곤층에서조차 세금 올리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세금 더 내는 것이 고금을 막론하고 무조건 나쁜 것이기 때문일까? 세금 부과가 공평하지 않거나, 세금을 더 내더라도 이로 인해 나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만약, 후자라면 어렵긴 하겠지만 제도적인 또는 정책적인 노력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세금 내는 것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낮추는 조치가 필요하며, 늘어난 재원이 나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어야 한다. 그럴 때에야 국민들도 믿고 세금을 부담할 수 있다.

한편, 기업의 법인세를 낮추자고 하면서도 자선 등 사회공헌은 더 많이 요구한다. 심지어 외국계 회사도 자선 등의 사회공헌을 하지 않는다고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그런데, 고용 외에 기업이 사회에 공헌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자선이 아니라 세금을 충분히 잘 내는 것이다. 자선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법인세는 우리가 본받고자 하는 선진국에 비해서도 한참 낮은 수준이다.

더군다나, 각종 비과세 감면을 고려한다면 기업에서 감당하는 세율은 훨씬 낮아진다. OECD 주요국의 법인세율을 보면, 유럽연합 제1의 경제대국인 독일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30.18%,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인 미국은 39.21%, 아시아 제1의 선진국인 일본은 39.54%이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생색내기 식의 자선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충분한 법인세를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늘어난 정부재정으로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를 통해 사회적으로 양질의 노동 인력을 양성하고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제대로 실시하면 사회양극화의 해소와 고용안정성의 제고뿐만 아니라 기업의 입장에서도 장기적으로 득이 된다.

2012년: 미래를 위한 선택

올해는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선택의 해가 될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각종 미사어구로 포장된 구시대적인 성장 이데올로기는 종말을 고하고, 모든 국민들이 행복하면서 역동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여건과 기회를 조성해 주는 새로운 사회 동력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그리고 정치적 선택에 따라 국민 개개인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지난 몇 년 간 일상에서의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자각하였다.

카이사르는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하였다. 하지만 인간이 보고 싶은 것이 영원불변할 수는 없다. 이제 우리 국민들이 보고 싶은 것은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경쟁적 삶'에서 '안정적 삶'으로의 변화이다. 이는 양극화에 대한 저항과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다는 강한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며,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거대한 물결이다. 이러한 변화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에 맞는 해답을 제시하는 정치세력이 결국 국민들로부터 선택을 받게 될 것이다. 2012년 올 한 해가 너무나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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