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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경색' 특종에 SK 김광현 야구 인생은…

[야구라의 그린라이트] 언론의 유명인 사생활 보도 태도

한국과학기자협회에서는 매년 연말이면 '올해의 GSK과학기자상'을 시상한다. "우리 사회의 과학언론 문화 창달에 기여한 과학기자 및 과학자, 과학홍보 유공자를 해마다 선정, 시상"한다는 게 이 상의 취지다. 올해도 어김없이 두 명의 기자가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지난달 25일 수상의 영광을 안은 이는 지윤태 MBC 기자와 심재억 <서울신문> 의학전문기자 두 명이다.

이 중 심재억 기자는 야구팬들에게는 낯익은 이다. 특히 SK 와이번스 팬들에게 낯이 많이 익을 것이다. 맞다. 지난 7월 19일, SK 김광현의 뇌경색을 '단독보도'한 장본인이다. 기사 제목은 "SK 김광현 부진은 '뇌경색' 때문". 김광현이 2010년 한국시리즈 직후 뇌경색 증상으로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올 시즌 김광현의 부진 원인이 뇌경색 때문이라고 단정 지은 뒤, 뇌경색에 "반신불수나 언어 장애 등 심각한 후유증"이 따를 수도 있다는 친절한 설명이 달린 기사였다.
▲김광현(SK 와이번스)은 뇌경색 보도로 인해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뉴시스

특종 보도가 몰고 온 파장은 컸다. 언론들은 앞다퉈 김광현의 부진과 뇌경색 증상을 연관 짓는 기사를 쏟아냈다. 한국을 대표하는 에이스 투수가 순식간에 선수 생명이 위태로운 중환자로 둔갑했다. 당시 일본에서 성공적으로 재활 훈련을 수행하던 김광현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김광현은 한 인터뷰에서 "너무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며 "안 좋은 얘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정말 올 한 해는 사건이 하나 터지면 또 하나 터지고. 나아질 것 같으면 다시 힘들고 그런 시간이었다"는 말로 당시의 상처를 드러냈다.

결국, 그 때의 충격으로 김광현은 올 시즌 내내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소속팀 SK는 에이스의 부재 속에 한국시리즈에서 완패를 당했다. 그 팀 팬들의 멘탈은 '붕괴'했다. 추후 김광현이 FA 계약을 하거나 해외 진출을 시도할 때 협상 구단에서 병력을 문제 삼지 않는다고 보장하기 어렵다. 한 어린 선수의 현재와 미래가, 프로 구단의 성적이, 팬들의 정신건강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특종 보도 하나로 인해서.

의료법 제19조는 "의료인은 다른 법령에 특별히 규정된 경우 외에는 의료 조산 또는 간호를 하면서 알게 된 다른 사람의 비밀을 누설하거나 발표하지 못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전문의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공인이라 해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며 "당사자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제3자인 누구에게도 의료상의 비밀을 알려서는 안 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고 장진영 씨 투병 당시에도 기자들 사이에 장진영의 진료 내역이 나돌아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법적으로 금지된 행위인데도 공공연히 행해지는 게 현실인 것 같다." 전문의의 설명이다.

김광현이 뇌경색으로 치료받은 사실은 의료상의 비밀이다. 그리고 그의 병력은 흔히 말하는 '공익'이나 '국민의 알 권리'와는 전혀 무관하다. 만약 김정일의 건강 상태에 대한 비밀이라면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일 수 있지만, 김광현 같은 개인의 정보는 당연히 보호받아야 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의료법을 위반하고 기자에게 비밀을 누설했고, 이는 기사를 통해 만천하에 알려졌다. 그것도 (무슨 이유에선지) 9개월이 훌쩍 지난 시점이었다. 김광현이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재활에 전념하고 있던 시기였다. 설령 의료정보를 보도하는 게 허용되는 행위라고 해도, 결코 보도해서는 안 되는 타이밍이었다.

의학대학의 한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김광현 건의 경우 의료진은 의료법 위반으로 엄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기자는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굳이 경중을 따지자면 의료진의 죄가 훨씬 크지만, 기자 역시 의료기록을 당사자 동의 없이 공개한 것은 명백한 직업윤리 위반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와 관련해서 처벌이나 제재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벌 대신에 상이 주어졌다. 특종을 터뜨린 기자는 "다양한 기획기사와 심층 보도로 국민건강 증진과 건전한 의료문화 창달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올해의 과학기자상을 수상했다. 의료법과 개인정보보호 법률을 무시하고 터뜨린 특종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어린 선수의 야구인생에 타격을 가한 일은 수상 자격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은 듯하다. 다른 기사를 통한 업적이 워낙 출중해서 김광현 건 정도는 사소한 흠에 불과하다고 판단한 것일까. 아니면 과학기사가 아닌 '야구기사'라서 상관없다고 본 것일까. 야구팬들이 집단 뇌경색을 일으킬까 걱정이다.

부연) 프로야구 인기가 하늘을 찌르면서 스포츠 담당이 아닌 매체에서 야구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일단 '프로야구'와 연관 지으면 높은 조회수가 보장되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그러다보니 야구 관련 전문성이 떨어지는 내용이 그대로 실리거나, 선정적인 보도로 흐르게 된다는 점이다. 가령 고 송지선 아나운서 건의 경우 스포츠가 아닌 연예 매체들이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사태가 산더미처럼 커졌고, 비극으로 이어졌다. 야구인 트위터를 그대로 긁어 기사화하는 일은 예사다.

김광현 뇌경색 기사도 자세히 살펴보면, 굳이 김광현의 실명을 밝히지 않아도 전체적인 전개에는 전혀 무리가 없는 내용이었다. 단순히 뇌경색의 증상과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정보성' 기사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김광현이 '떡밥'으로 동원됐고,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만일 김광현의 이름을 '운동선수 A'로 처리했다면 어땠을까. 조회수는 올리지 못하더라도, 마땅히 그렇게 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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