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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가 부정선거를'…러시아 선관위 관료, 충격 실태 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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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가 부정선거를'…러시아 선관위 관료, 충격 실태 폭로

"투표율 사전 논의"…야당도 '검은 거래' 연루

지난 4일 러시아 하원 선거에서 불거진 부정 선거 논란이 '반(反)푸틴' 시위로 계속 번지고 있다. 반정부 언론과 선거감시 기구 웹사이트 해킹에 이어 이번에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조직적으로 부정 선거를 진두지휘했다는 폭로가 이어지면서 러시아에서 정치 변화를 바라는 이들의 목소리가 더욱 힘을 얻을 전망이다.

6일 <AP> 통신이 보도한 러시아 선거관리위원회 산하 한 지역위원장의 선거 조작 사례는 충격적이다. 당국의 보복이 두려워 이름을 밝히기 거부한 이 위원장은 선거 당시 선거감시단체들이 제기한 투표 조작 의혹은 사실이며, 집권당인 통합러시아당 뿐 아니라 주요 야당도 합의한 선거 부정이었다고 폭로했다.

모스크바 지역의 투표소를 담당했던 이 위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선거 전 통합러시아당과 공산당 등 4대 정당 대표자들이 모여 통합러시아당이 얻을 득표수를 미리 '합의'했다. 통합러시아당 측 대표는 애초 68~70%의 표를 가져가겠다고 주장했지만 '너무 높다'는 지적을 수용하고 목표치를 65%로 낮췄다. 이 수치에 반발하던 제1야당 공산당 대표도 공산당에 표를 좀 더 몰아줄 테니 넘어가자는 제안을 수용했다.

이렇게 '합의'된 득표율을 맞추기 위해 선거 운동원들이 동원됐다. 이들은 사전에 규격봉투나 재킷 주머니에 많게는 50장에 이르는 위조 투표용지를 숨기는 방법과 투표함에 소리를 내지 않고 집어넣는 방법을 연습했다.

선거 운동원들이 이런 식으로 조작할 수 있는 투표는 수 백장에 불과했기 때문에 투표권이 없는 이민자들까지 동원됐다고 이 위원장은 고백했다. 이민자들을 유권자로 둔갑시키기 위해 가짜 선거명부를 만들어 진짜와 바꿔치기를 했다.

이 위원장은 관할 투표소를 돌아다니며 선거감시 요원이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를 골라 부정 투표를 지시했으며, 12시간 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던 한 감시요원을 결국 투표 종료 10분 전 경찰을 동원해 끌어내 간신히 선거 조작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는 이날 투표소에서 선거감시 요원의 입장이 거부당하거나 일하던 도중 쫓겨났다는 선거감시 단체의 주장과도 맞닿는 부분이다.

이러한 노골적인 선거 조작에도 불구하고 통합러시아당의 득표율은 2007년 64%에 한참 못미치는 약 50%에 불과했다. 이 위원장이 이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자, 선관위 고위 관료들의 서명이 필요한 공식 문서를 통해 '득표율을 65%로 끌어올리라'는 지시가 하달되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이런 식의 조작이 없었다면 통합러시아당의 실제 득표율은 50%의 절반인 25%에 그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의 독립 선거감시 기구 골로스의 릴리야 시바노바는 이번 총선에서 이런 방식의 '지역 차원 선거 조작'이 횡행했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이 밝힌 조작 행위의 일부는 이미 일반 시민들의 휴대전화를 통해 촬영돼 인터넷 동영상으로 올라간 상태다.

▲ 6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트리움팔 광장에서 4일 치러진 하원 선거의 투표 조작에 항의하던 시민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AP=연합뉴스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시위는 6일에도 이어졌다. 이날 <로이터>에 따르면 모스크바의 트리움팔 광장에서는 수백 명의 시민들이 "푸틴은 사기꾼이자 도둑"이라고 외치며 항의했고 선관위 건물을 향해 행진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250명이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보리스 넴초프 전 러시아 부총리, 야권 단체 '다른 러시아'의 에두아르드리모노프 대표 등 주요 야권 인사들도 함께 시위를 벌이다 체포됐다.

전날에도 250여 명의 시위대를 체포한 러시아 당국은 2000명의 특수부대원과 5만 명의 경찰을 거리에 배치했다. 이날 모스크바의 다른 곳에서는 러시아 청년운동단체 '스탈' 등 친정부 세력들의 푸틴 지지 집회도 함께 열렸다.

러시아의 부정 선거 의혹에 대해 국제사회도 우려를 보내고 있다. 공식 반응을 보인 영국 외교부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산하 민주제도인권사무소(ODIHR)의 조사 결과를 들어 러시아 당국과 집권당의 유착 등에 대한 조사를 촉구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부 장관도 5일 열린 OSCE 장관급 회담에서 러시아 하원 선거는 조작 선거라고 비난의 날을 세웠다.

존 매케인 미 상원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푸틴에게, '아랍의 봄이 당신 근처로 오고 있다"고 쓰기도 했다. 선거 부정을 지적하고 있는 이들 중 SNS로 무장한 젊은 세대가 다수인 상황을 빗댄 것이다. 하지만 <로이터>는 시위에 참가한 이들은 리비아와 같은 유혈 혁명보다는 공정한 선거를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민들의 저항과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내년 러시아 대선에서 푸틴이 승리할 것이라는데 이견은 별로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AP>는 푸틴이 6일 "무엇이 사람들을 우려하게 만드는지 생각하고 해결책을 찾아봐야 한다"라고 말해 자신과 통합러시아당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늘어나는 것을 인식하는 것 같지만 마땅한 대응 방식을 찾지는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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