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제도를 시작한 지 20년, 지금까지 민선 4기를 거치는 동안 지자체 선출직 공직자의 30%가 검찰에 기소되거나 구속되었다는 통계가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초래된 각종 재·보궐 선거로 국민의 혈세가 무수하게 낭비되었다. 선거법 위반이나 각종 비리로 구속된 국회의원들이 하도 여러 명이다 보니 당선되는 것보다 당선된 이후에 의원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그래서 각종 비리 등으로 인한 재·보궐 선거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게 하는 자들에게 선거 비용 이외의 추가적인 벌금을 매기거나 선거와 관련된 비용을 환수할 수 있도록 공익 소송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선거 관련 비용뿐만 아니라, 정당 정치를 지원하기 위한 비용도 적지 않게 들어간다. 의석수에 따른 정책 개발비를 포함해서 정당에 지급되는 국고보조금도 적은 액수가 아니다. 이렇게 정당에 대한 법적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정책을 수립하고 선거를 통해 선택된 정책을 국회와 지방의회를 통해 법률과 예산으로 집행하는 것이 공공성과 공익성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는 돈이 드는 법이다. 이해관계의 대립이나 지역과 계급 간 갈등의 조절뿐만 아니라, 정당 정치와 선거라는 형식을 통해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수렴하고 조절하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더 비용-효과적이기 때문에 여기에 국가 재정을 투입하는 것이다.
제3의 후보 태풍과 정당 정치의 실종
최근 안철수 원장과 박원순 후보의 극적인 부상과 높은 지지율이 인구에 널리 회자되고 있다. 한겨레신문사와 <복지국가와 민주주의를 위한 싱크탱크 네트워크>가 '안철수 현상과 한국사회'라는 심포지엄(9월 29일)을 개최하여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학술적으로 분석하기도 하였고, 외국에서 온 모 대사는 대한민국이 너무나 역동적이어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morning calm)"가 아니라, "놀랍도록 역동적인 나라(The land of morning surprise)"라고 표현을 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러한 현상의 근본 원인은 기존 정당 정치의 무능력과 비효율성 때문이다.
집권당인 한나라당이나 제1야당인 민주당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그리고 국민참여당 등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제도권 내의 정당들이 막대한 국고보조금을 받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주지 못하니, 국민들은 기존 정당이 아닌 제3의 인물에게 기대를 걸어보려는 것이다. 특히 젊은이들의 경우, 선거와 정당 정치에 대한 회의론이 매우 보편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최근 젊은 세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서베이 몽키, 9/15)에 따르면, 응답자의 49.8%가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어느 정당이나 정치인도 자신들의 문제를 대변해준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정당 정치에 무관심해지고, 선거 자체에 대한 회의론에 빠져 투표도 포기하고 선거일을 하루 노는 날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확대된 것이다. 젊은 층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투표 결과에 따라 구성된 국회와 정부는 더욱 이들을 정치에서 소외시키는 악순환의 과정을 되풀이 하게 된다. 그리고 일부 정당에서는 이를 악용하여 젊은이들의 관심이 선거에 쏠리지 않도록 하는 여러 가지 대책들을 통해 집권 연장 등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현재의 정당 구조와 선거제도에 대해서도 비용-효과를 한번 따져 보아야 한다. 개정된 국가재정법에는 500억 원 이상이 소요되는 국비 사업은 반드시 사전 타당성 검토를 받아, 투입비용 대비 효과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해당 사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의 정당들에게 지급되는 예산과 선거에 지출되는 정부재정에 대해 비용-효과 분석 등의 타당성 검토를 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작은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자신에게 돌아올 효용의 크기를 생각하여 고민해서 선택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우리가 납부하는 세금으로 조성되는 국가재정에서 막대한 비용이 지출되는 정당에 대한 지원이나 선거에는 이러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다. 가계부채와 국가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에서 국민의 세금을 한 푼이라도 낭비적으로 쓸 수는 없는 일이다. 현재의 법률에서는 정당 정치나 선거에 투입되는 예산이 이러한 비용-효과 분석의 대상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당들에게 지급된 국고보조금이나 선거에 투입된 막대한 예산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생산적이었는지를 이제 국민의 입장에서 한번 따져보도록 하자.
선거를 통한 '비용-효과'의 경험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의 이한구 의원은 이명박 정부 출범 전인 2007년 2,401조4,000억 원이었던 정부와 기업, 가계 등 경제 3주체의 금융부채는 2011년 6월말 3,283조 원으로 36.0%나 급증했다고 주장하였다. 정부·공기업 등 공공부문의 경우 이 기간 동안 금융부채가 65.9%나 늘어났고, 민간 기업은 28.1%, 가계대출과 비영리민간단체 등을 포함하는 개인부채는 254조8,000억 원으로 32.0%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의 이용섭 의원도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의 비율은 155.4%로 OECD 평균인 134.1%보다 높고, 부채상환 능력이 취약한 가구의 비중도 2007년 7.7%에서 2010년 13.5%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우리나라 국민은 어린아이들에서부터 70세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이 1인당 평균 2,142만 원의 부채를 지고 있는 것이다. 약 1,050조 원이 넘는 가계부채는 2010년 이자 지급액만 45조 원이 이른다. 이들 가계부채는 가계의 소비여력과 저축능력을 감소시켜 경제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무거운 빚을 지고 하루하루를 빚을 갚기 위해 살아야 할 정도로 어려워졌다. 우리 경제사회의 구조적 양극화와 더불어, 거품에 기댄 과도한 금융 및 부동산 투자와 투기가 온 국민을 '하우스 푸어'와 '렌트 푸어'로 내몬 것이 중요한 원인의 하나다.
이러한 민생의 불안과 위기는 새로운 변화에 대한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의 무상급식 이슈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실제로 무상급식 시행 이후에 개별 가계의 급식비 지출이 줄어 전체적으로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0.3% 낮아졌다는 보고도 있었다. 국민들이 선거와 투표를 통해 자신의 가계에 혜택이 돌아오는 경험을 미약하게나마 하게 된 것이다. 이어진 서울시의 8.24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는 우선 198억 원의 아까운 서울시민들의 세금이 낭비되었다. 하지만, 서울시민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면서 향후 서울시민들에게 700억 원이 무상급식이라는 이름의 현물로 되돌아오게 하는 승리를 쟁취하였다. 선거를 비용-효과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새로 구성된 서울시 의회가 각계의 전문가들과 함께 연간 23조 원에 이르는 서울시의 예산을 분석해 본 결과, 엄청난 문제점과 동시에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약 5,141억 원이 투입된 한강르네상스 사업, 가든 파이브와 마곡지구 개발 등 30조 원의 부채를 양산한 SH공사의 토목건설 사업들, 그리고 지금도 하수도 가동율이 60%로 남아 돔에도 불구하고 2013년 까지 9,877억 원이 투입되어 추가 증설하도록 예정되어 있는 물 재생센터의 고도처리 및 현대화 사업, 2,082억 원이 투입된 디자인 서울 사업 등을 줄이고 정상화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일, 새로 선출될 서울시장과 서울시 의회가 합의한다면, 이러한 사업에 투입되던 예산들을 점진적으로 서울시민들의 보편적 복지로 전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분석에 따르면, 매년 1.5조 원 이상의 서울시 부채를 상환하여 서울시 재정의 건전화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2012년부터 최소 2조 원의 서울시 예산을 보편적 복지에 투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선거에서 '보편적 복지'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비용-효과적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선거에서 복지국가와 보편적 복지를 내세우는 '의지와 능력을 갖춘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후보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지는 않는다. 또, 당선된 시장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서울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메니페스토 만들기에서부터 서울시 정책 방향의 변화에 대한 각종 수다 모임에 이르기까지, 지역사회의 곳곳에서 각종 모임과 토론이 조직되어야 한다. '복지국가 만들기 국민운동'이 중요한 이유이다. 결국, 보편적 복지국가 정책이 서울시민들의 투표 기준이 될 때, 비로소 '복지국가의 수도 서울'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초·중학교뿐만 아니라 고등학교까지 무상의무교육을 실시하자는 주장과 그보다는 무상보육과 만4세까지 아동수당 지급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서로 논쟁을 벌여야 한다. 민간임대주택과 공공임대주택 확대를 위한 다양한 방법, 그리고 주거수당 등을 통해 서울시민의 주거비 부담을 낮추는 주거복지사업을 먼저 시행할 것인지, 아니면 노인 일자리사업을 먼저 시행할 것인지를 두고 공개토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당선된 시장은 시민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는 정책을 펴게 될 것인 바, 토건업자들의 압력과 로비에도 흔들리지 않고 보편적 복지 정책의 추진에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걸게 될 것이다. 이러한 선거는 국가재정을 투입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한편,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550만 노인의 실질적 소득보장을 위한 기초노령연금의 현실화, 전국민 고용보험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실시, 최저임금의 획기적 인상,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과 노동권 신장을 위한 정책은 국회와 중앙 정부의 소관이다.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함으로써 가구당 매달 24만 원에 이르는 민간의료보험료를 내지 않도록 만들어 주는 것도 중앙정부의 일이다. 시민들의 요구 중 서울시가 할 수 있는 업무는 시장 후보들이 담당하고, 중앙 정부와 국회가 할 일에 대해서는 국회의원 후보를 공천하는 여야 정당들이 답하도록 해야 한다.
서울시 한 곳의 변화를 통해, 서울시민의 일상적인 삶의 질을 조금이라도 좋아지게 할 수 있다면, 중앙정부에서 해야 할 일의 방향을 결정하는 내년 4월의 국회의원 선거와 12월의 대통령 선거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이들 선거가 또 다시 인물 중심이나 지역주의 중심, 또는 별다른 차이가 없는 정당들 간의 상호비방 경쟁으로 점철된다면 그렇지 않아도 심화된 우리사회의 양극화와 민생불안으로 각박해진 국민들의 삶은 전혀 나아질 가망이 없게 된다.
온갖 종류의 수다를 통해 전 국민적 복지국가 논의가 대중화 될 때, 또 신문 지면이 어떤 복지국가 정책을 먼저 시행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로 채워지고, 기초노령연금의 증액을 주장하는 노인 단체 대표와 아동수당 등 육아지원정책의 우선적 확대를 요구하는 젊은 세대 대표들이 TV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서 논쟁을 벌일 때, 또 여야 정당들이 자신의 복지국가 노선과 정책이 내수산업의 진작과 좋은 일자리 창출 효과가 더 크다고 서로 정책 경쟁을 할 때, 우리나라가 선진복지국가로 진입할 가능성은 그만큼 더 커지게 된다. 정당 정치와 선거가 우리 국민의 참여민주주의 속에서 활짝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즐거운 상상인가!
정당 정치와 선거가 젊은이들에게 포기와 환멸의 대상이 아니라 희망을 실현하는 수단이 될 때, 그리하여 정당과 선거가 국가 예산을 투입해서라도 충분히 지원해야 될 생산적인 기능을 수행하게 될 때, 우리나라는 선진복지국가를 향해 힘차게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경제사회의 양극화와 심화되고 있는 국민 5대 불안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각 정당의 정책들이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국민적 판단 기준이 되어 서로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결국, 정당 정치와 선거에 투입되는 비용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은 바로 복지국가를 중심으로 정당 정치가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다. "복지국가 만들기"가 우리의 시대정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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