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의 복약지도 없는 일반의약품, 어디에서 사나 똑같다
국민이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를 요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심야나 주말에도 약국에서 불편 없이 쉽게 일반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게 안 되니까 편의점, 슈퍼마켓, 마트 등에서 판매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이 일상적으로 사서 복용하는 일부 일반의약품(드링크제, 비타민제, 소화제, 해열제, 진통제 등)에 대해서는 약사들조차도 안전성이 검정되어 복약지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하지 않고 있다. 환자 입장에서 약사의 복약지도가 없는 일반의약품을 약국의 약사에게서 구입하나 슈퍼의 점원에게서 구입하나 다를 게 하나도 없다.
▲ 대한약사회를 중심으로 전국의 약사들이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 저지 투쟁에 나섰다. ⓒ연합 |
그렇다면 약국이 심야나 주말에 일반의약품 구입 불편을 해소해 주지 않는 한, 복약지도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안전성이 검증되고 국민에게 보편화되어 있는 일부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에 대해서는 보건복지부가 환자의 일반의약품 구입 불편 해소 및 의약품 접근권 확대 차원에서 허용하는 적극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의 사실상 불허 발표, 그리고 대통령의 또 한마디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허용하는 방향으로 흐르자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심야, 공휴일 시간대에 24시간 의약품 판매가 가능한 곳을 특수 장소로 지정해 판매하는 방안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약사회의 강경한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보건복지부는 약사회가 제안한, 평일 24시까지 운영되고 휴일에도 운영되는 당번약국을 활성화해서 환자 불편을 해결하겠다며 6월 3일 사실상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를 불허하는 발표를 했다.
당연히 사회적 비난 여론이 거세졌다. 이런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에도 '의약품 구입은 국민 편익이 고려돼야 한다'고 한마디 했다. 대통령의 이 한마디에 보건복지부는 부랴부랴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를 위한 제도적, 법률적 작업에 들어가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 싸움에 끼어든 대한의사협회
여기에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 싸움에 대한의사협회가 최근 노골적으로 끼어들고 있다. 의사협회는 최근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 대한 지금까지의 모호한 태도를 버리고 찬성하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고 그 수위를 점점 더 높여가고 있다.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 논쟁은 환자들의 의약품 구입 불편 해소에서 출발했다. 그렇다면 환자 입장에서는 일반의약품을 심야나 주말에 약국에서 사기 어려운 불편함과 동일선상에서 전문의약품을 병‧의원을 거쳐 약국에서 구입하는 불편함도 있다.
▲ 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 7일 일반약 약국 외 판매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연합 |
박카스, 까스명수, 마데카솔 연고 등 안전성이 검증되고 남용의 위험이 거의 없는 일부 일반의약품은 의약외품으로 분류해 현행법상으로도 언제든지 슈퍼 판매가 가능하다. 문제는 해열제, 감기약 등과 같이 안전성 논란이 있는 일반의약품의 경우 약사법을 개정해 전문의약품-일반의약품 외에 '자유판매약(약국 외 판매 의약품)'을 도입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환자의 의약품 구입 불편 해소 차원에서 일반의약품의 자유판매약 전환뿐만 아니라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지 않은 상당수 전문의약품의 일반의약품 전환이 필연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결국, 의사들의 밥그릇만 작아질 뿐 의사에게 이익이 될 게 없는데도 의사협회가 왜 시민사회단체와 약사회간의 이 싸움에 끼어들었을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가 허용되면 병‧의원에서도 일반의약품 판매가 가능해져 수익 확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행법상 병‧의원에서는 일반의약품 판매가 허용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일부 일반의약품이 의약외품이나 약사법 개정을 통해 자유판매약으로 분류되면 병‧의원도 소매점 신고를 받아 언제든지 판매할 수 있게 된다. 전문의약품을 일부 내어주더라도 병‧의원에서의 일반의약품 판매 허용이 의사 입장에서는 훨씬 더 이익이라고 판단한 의사협회의 고단위 전략이라는 것이다.
언론사가 개입하는 진짜 이유?
일각에서는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 논쟁에 청와대와 몇몇 언론사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것은 종합편성채널의 광고시장 확대를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의혹이 있다. 약사법 개정을 통해 의약품 분류체계가 현행 2단계(전문의약품-일반의약품)에서 3단계(전문의약품-일반의약품-자유판매약)로 변경되면 광고가 금지된 전문의약품의 상당수가 일반의약품으로 전환돼 광고할 수 있어지기 때문이다. 아울러 현재 약국에서만 판매 가능한 일반의약품의 상당수도 슈퍼마켓, 편의점 등에서 판매할 수 있어지면 의약품 광고는 광고시장의 블루칩으로 성장할 것이 분명하다.
최근 축구선수 차두리의 대웅제약 '우루사' CF광고 '간 때문이야'가 공전의 히트를 하고 있다. 대웅제약은 이 CF광고가 대박을 치면서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 이제 국민은 조금 피곤하면 약국 가서 스스럼없이 '우루사'를 달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약국에 들어가자마자 '간 때문이~야'하면 약사가 알아서 '우루사'를 준다고까지 한다. 일반의약품 매출에 광고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 최근 축구선수 차두리의 대우제약 '우루사' CF 광고 '간 때문이야'가 공전의 히트를 하고 있다. ⓒ대웅제약 |
이번에 의약외품으로 분류돼 슈퍼마켓, 편의점 판매가 가능하게 된 동아제약의 '박카스'는 피로회복제로 지난 50년간 국민의 사랑을 받아왔었다. 10년 전 광동제약의 '비타500'이 엄청난 광고물량을 쏟아내면서 한때 고전하기도 했지만 '박카스'도 몇 년 전부터 감동과 재미를 겸한 CF 광고(사우나편, 붐마이크편 등)로 전성기를 회복하고 있다.
의약품시장서 광고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의약품시장에서 광고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다. 공중파 광고시장이 불황인데다 최근 종합편성채널이 개국을 앞두고 광고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언론방송의 절대적 지지가 필요한 청와대 입장에서는 의약품 광고시장을 어떻게든 확대해 종합편성채널을 준비 중인 언론사에 힘을 실어주고 싶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환자의 의약품 구입 불편 해소에서 시작된 의약품 슈퍼 판매 논쟁이 의약품 광고시장 확대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객관적인 의약품광고심의위원회 구성과 민주적 운영이 핵심
의약품 광고는 잠재적 환자인 국민과 환자들에게 의약품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허위과장 정보 제공 등과 같은 부정적인 측면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제약협회 산하에 의약품광고심의위원회를 두고 '의약품광고사전심의규정'에 따라 의약품 광고에 대한 엄격한 심의과정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결국,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 논쟁이 환자의 의약품 구입 불편을 해소라는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의약품 광고시장의 확대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의약품광고심의위원회의 구성과 민주적인 운영이 필수적이다. 앞으로 '의약품광고심의위원회'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될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