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면 파란 가을 하늘이지만, 시선이 가는 대로 저 앞을 보면 희뿌연 스모그 하늘이다. 자동차 매연에 잠겨 매일 허덕이는 '스모그 도시' 서울의 문제는 가을이라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비가 오고 바람이 세게 불어야 잠깐 개선되는 것이다. 자동차 운행을 줄여야 비로소 맑은 가을 하늘을 볼 수 있다. 결국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요즘의 정국을 봐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명박 후보는 숱한 의혹에 이어 자녀의 '유령 취업'이라는 황당한 문제마저 드러났다. 이제 곧 김경준 씨의 소환에 따른 본격적 의혹 공방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미 드러난 많은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후보가 누리는 엄청난 인기는 '이명박 신드롬'이라는 말을 저절로 떠올리게 한다.
이 와중에 한나라당의 원로인 이회창씨가 한나라당을 박차고 나와서는 '냉전 전사'의 모습으로 다시금 대선에 도전하고 나섰다. 한나라당은 이회창 후보의 '배신'에 부들부들 떨며 온갖 욕설을 퍼붓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회창 후보는 나오자마자 인기도 2위를 기록하며 기염을 떨쳤다.
대선 정국은 머리 위를 보나, 시선이 가는 대로 보나, 발 아래를 보나, 한결 같이 희뿌옇다. 보수 세력은 물론이고 수구 세력의 힘마저도 엄청나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될 뿐이다. 그리고 제도 정치 개혁 세력의 무능과 배신의 대가가 이렇게 크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될 뿐이다.
수구ㆍ보수 세력은 강력한 양극화 세력이다. 따라서 이 상태대로 진행된다면 지금 청년인 '88만 원 세대'는 대부분 '쪽박 세대'로 장년이 되고 노년이 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은 현재의 심각한 정치 상태에 무관심하다. 그러므로 이미 이 나라를 크게 잠식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양극화는 더욱 격렬하게 진행될 것이다. 우리는 양극화 악순환의 덫에 갇히기 직전이다.
양극화 덫 주범은 '재벌'
양극화 덫을 만든 주범으로 단연 재벌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재벌의 총수들은 온갖 불법과 편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상속하고 있으면서 국민에게는 무조건 천재가 되어 반인간적 무한경쟁에서 이길 것을 강요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은 재벌에 이중적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에서는 문제가 많기는 해도 거대 기업으로서 재벌의 역할을 긍정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총수에 대해 커다란 반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재벌과 그 하수인은 '반기업 정서'를 운운하며 국민들을 모욕하고 나섰다. '방귀 뀐 놈이 성 낸다'고 큰 문제를 일으킨 자들이 오히려 화를 내며 문제를 지적하는 게 잘못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재벌 중에서도 단연 큰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꼽히는 것은 삼성재벌이다. 오죽하면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이 만들어졌겠는가? 이 말은 우리나라가 헌법상으로는 '민주 공화국'으로서 국민이 주권자로서 통치라는 나라이지만, 사실은 삼성재벌이 온갖 국가 기구와 민간 기관을 매수해서 통치하고 있다는 무서운 인식이 담겨 있다.
삼성재벌은 자신의 문제가 드러나지 않도록 '관리'를 철저히 했다. 삼성재벌의 임원이 되면 그야말로 이 사회의 최상층이 된다. 수억 원대에서 수십억 원대에 이르는 연봉은 기본이다. 이밖에 고급 승용차, 컴퓨터, 휴대전화, 골프 회원권 사용권, 한남동 삼성서울병원 분원의 의료 혜택 등을 받는다. 퇴사 후에도 1~2년 동안 각종 지원을 받으며, 퇴직 임원의 모임인 성우회에서 철저히 '사후 관리'를 받는다.
의혹 자초한 검찰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다. 숱한 죄를 지으며 쌓은 돈의 성이 언제까지나 아무렇지 않게 유지될 수는 없다. 2005년에 안기부가 1997년 9월에 녹취한 '삼성 X파일'이 공개되어 삼성재벌의 무서운 실상을 만천하에 보여주더니, 2007년 10월에는 삼성재벌의 임원이었던 사람이 삼성재벌의 불법 승계, 비자금 조성, 뇌물 공여 등을 '자백'하고 나섰다.
11월 12일의 세 번째 기자회견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임채진 검찰청장 내정자, 이귀남 대검 중수부장,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이 모두 삼성재벌의 뇌물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실로 무시무시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이 주장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정녕 검찰은 '삼성의 시녀'인가?
삼성재벌과 검찰의 검은 공생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검찰청에서 직접 특수수사팀을 꾸려서 즉각 적극적으로 수사를 펼쳐야 한다. 검찰은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에서는 하급 직원의 제보만으로 사무실을 긴급 수색해서 수백억 원대의 비자금을 찾아내고 결국 정몽구 회장을 구속했다.
그런데 삼성재벌의 경우는 최고위급 임원이었던 사람의 증언과 증거에도 불구하고 2주가 넘게 손을 놓고 있으면서 삼성재벌이 증거를 인멸하고 증인을 조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 의혹이야말로 국민들로 하여금 '삼성 공화국'의 무서운 실체를 실감하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검찰은 직시해야 한다.
이런 검은 의혹을 해소하고 신뢰를 찾기 위해서는 검찰은 이건희 회장의 구속 수사와 '떡검'에 대한 수사는 물론이고 금융감독원, 금융정보분석원, 황영기 전 우리금융 회장에 대한 수사를 서둘러야 한다. 바야흐로 검찰의 잘못에 대한 의혹이 그 존재 이유 자체에 대한 의혹으로까지 커지고 있다.
이 자체가 삼성재벌의 엄청난 힘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검찰의 의혹은 결국 검찰이 자초한 것이기도 하다. 삼성재벌로부터 뇌물을 받지 않았다는 주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받지 않았으면서도 삼성재벌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부실한 해명은 또 다른 검은 의혹을 낳을 뿐이다.
포청천은 어디 있는가?
10여 년 전에 대만의 드라마 '포청천'이 수입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그 까닭은 무엇보다 포청천이 이른바 '권력형 비리'를 사회의 암으로 파악하고 엄단하는 데에 있었다. 국민들은 '포청천'이라는 드라마에 우리의 더러운 현실을 투사했던 것이다.
민주화와 함께 포청천은 그저 추억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정경유착, 관경유착은 '공화국' 수준으로 확대되었고, 이제 특검의 제도화는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밀려났던 부패세력이 지진해일처럼 몰려오고 있다. 온통 희뿌연 세상이다. 안타깝고,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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