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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옵는 '미스터 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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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옵는 '미스터 조'에게

[독립영화인에게 듣는다] <4>

미스터 조,

안녕하세요. 저는 영화를 만드는 아무개라고 합니다. 영화학교를 오래 다녔구요. 아직도 학생입니다. 적절한 호칭을 잠시 궁리하다가 심플하게 미스터 조라고 소리 내어 부르고 나니 이거 참 적절하다 싶습니다. 상쾌해요. 영미문화권에서 공부 오래하신 분이니 이 기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아, 미스터 조. 저는 미스터 조께서 현재 독립적으로 관장하고 계신 영화진흥위원회의 재작년 "독립영화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되어 그 기금을 받아 영화를 찍었습니다. 정산도 깔끔하게 잘 마쳤습니다. 영수증 차곡차곡 모아서 곱게 정리해서 냈습니다. 미스터 조의 사재출연을 받은 게 아니니 미스터 조에게 감사할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사방팔방으로 부터 쏟아지는 사퇴요구를 '독립기관의 장'으로서의 단심으로 버텨내고 계시는 호연지기를 일전부터 남몰래 흠모하고 있던 바,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늦게나마 전합니다. '독립영화'도 그렇고 '독립기관'도 그렇고 '독립'으로 어떻게 살아보겠다는 사람들을 좀 괴롭히는 세상입니까. 그렇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겐 '독립정신'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지 않습니까. 세파를 잘 해쳐나가 보도록 합시다. '독립'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니 마음 한 쪽에서 따뜻한 동지의식이 움트네요. 역시 연대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의결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여러 잡음들이 또 들려오는 모양입니다. 미스터 조께서도 익히 알고계시겠지요. 부임하신 이례로 이러 저러한 세설에 끊임없이 시달려 오셨으니 이제 이력이 나셨을 법도 합니다. 그러나 번번이 그 곡절 곡절마다 정면으로 돌파하시던 기개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국회 문광위 업무보고에서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자 선정에서의 편파/조작 심사 의혹으로 야당 의원들(심지어 각박한 일부 여당의원들)의 혹독한 십자포화를 받으시면서도 끝끝내 강촉 같은 논리를 굽히지 않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해요.

그런데 말입니다. 내년도 예산안에서 "예술영화제작지원사업", "기획개발지원사업"과 함께 전면 폐지된 "독립영화제작지원사업"의 수혜를 받았던 한 사람으로서 이번의 결정에 대해서는 고언을 한마디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주무부처인 문화부의 '직접지원 대신 간접지원' 지침에 차마 항명하지 못하고 내리신 고육지책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예산집행에 대한 아무 가이드라인 없이 그저 예산 항목의 "독립영화제작지원", "예술영화제작지원"을 전액 삭감하고 "제작지원(인건비 지원)" 항목을 신설하여 기 책정예산 플러스알파를 몰아넣은 것은 눈치 보기에 급급한 미봉책으로 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꼼꼼히 살펴보니 [지출 세부 계획]에는 직접지원에 해당하는 <영화유통 및 제작지원>항에 배정된 "제작지원(인건비 지원)" 항목이 [운용 계획(안) 분류]에서는 간접지원에 해당하는 <인프라 사업>에 배정되어 있더군요.

글쎄요.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하루에 상급 부대로 올라가는 기안을 많게는 열부까지 작성해 보았던 군행정병 출신으로서 한 말씀 올리자면, 이같은 오기(誤記)는 상급 부대의 지침을 받고도 어떻게 그것을 수행해야 할지에 대해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경우 행정보급관님의 노하우에 기대어 '아사모사 물타기' 기안을 작성하는 경우에 왕왕 발생하곤 합니다. 영진위의 실무진 입장에서 헤아려보자면, 전임 위원장부터 현 위원장이신 미스터 조까지 연달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유명인사를 모시고 있다는 자긍심에 앞서 '제발 일 다운 일 좀 하게 해달라'는 갈급함이 팽만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듭니다.

꼼꼼히 살펴본 김에 다른 항목도 마저 보았습니다.

"독립영화 관람료 지원"이라는 신설항목이 눈에 띄더군요. 이 항목은 그러니까, 편파/조작 심사를 통해 선정되었다는 의혹을 받고 올 초 독립영화 감독들의 무기한 상영 보이콧 선언 등으로 시끄러웠던 독립영화전용관 <시네마루>에 영진위가 관람료를 대신 지급해주겠다 취지의 것이지요? 좀 더 쉽게 풀이해보자면 출혈을 감수하시면서 까지 밀어주신 <시네마루>가 장사를 속된 말로 더럽게 못하고 있고, 이대로 두면 부채덩어리가 될 것 같으니까 기존에 있는 "독립영화전용관사업"과 따로 분리시켜서 까지 쌈짓돈을 더 얹어주시겠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10년 동안 국제적으로도 전례가 없는 대시민 미디어 교육/제작 인프라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던 '미디액트'를 몰아내고, <시네마루>와 마찬가지로 편파/조작 심사를 통해 선정되었다는 의혹을 받았던 광화문 <영상미디어센터>도 장사 잘 안되시지요? 부하의 부족함을 인내와 덕으로 감싸 안고 그 재능을 찾고 닦아주는 것이 덕장의 품성이라고는 하지만 수족들이 하나같이 이렇게 궁티가 나서야 어디 제대로 된 전투나 한번 치러보겠습니까? 차라리 그 '기부조'의 "독립영화 관람료 지원" 항목을 영진위에서 배척당한 후 자생적으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는 여러 민간단체에 실제로 '기부'하시는 게 어떠실는지요?

어수룩한 고언은 아니 올리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에 어조가 사뭇 거칠어 졌습니다. 죄송합니다. 허나 이 고언은 미스터 조에 대한 무한한 애정에서 비롯한 것이니 부디 귀담아 들어주시길 간청합니다. 제가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후 미스터 조 만큼 흠모해본 영진위원장이 없습니다. 사실 창작자로서, 미스터 조의 피큐어를 제작해 <월레스와 그로밋> 같은 히트 클레이메이션을 만들어 볼 계획도 조심스럽게 품어보고 있습니다. 캐릭터로만 승부하자면 월레스나 그로밋에 처질 것이 없습니다. 이왕에 일을 벌일 양이면 사상 초유의 3D 클레이메이션으로 제작해볼 의향도 있습니다. 내년도 예산안에 "스타성 있는 캐릭터에 기반한 3D 클레이메이션 제작지원 사업" 항목을 신설해 주시면 반드시 지원하겠습니다.

날이 덥습니다. 삼계탕, 보신탕, 사철탕, 오리탕, 연포탕, 허랑방탕, 여하간에 몸에 좋다는 탕은 다 드시고 보신하길 바랍니다.

2010년 7월 27일 아무개 올림.

추신. 참, 혹시나 제작지원 정산해 놓은 영수증 뒤지시지나 않을까 싶어 미리 고백합니다. 미스터 조의 아량을 의심해서가 아닙니다. 세월이 하 수상하니 이런 걱정도 다 하게됩니다. 마지막 촬영 끝나고 한겨울 밤에 스탭들 그냥 보내기가 너무 미안해서 서울 서부역 근방에 있는 24시간 감자탕 집에서 감자탕에 소주 한잔 한 영수증이 하나 끼어있습니다. 식대는 처리 안 해준대서 '업무추진'으로 기입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문제가 되면 5만 2천원은 뱉어내도록 하겠습니다.

신이수 : <라라에게>(2010 미장센영화제 김수용 특별상 수상), <나를 떠나지 말아요> <구보씨일보> 등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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