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단체들은 이런 상황을 '사업재개를 위한 수순 밟기'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활동처장이 <프레시안>에 글을 보내 왔다. 염 처장은 이 글에서 "장항갯벌을 둘러싼 문제는 정부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을 경우 얼마나 큰 피해가 초래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며 그동안 이 사업을 둘러싸고 청와대, 국무총리실, 해양수산부가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고발하고 있다. <편집자>
그동안 정부는 무분별한 갯벌 매립을 중단하고 갯벌 정책을 보전 쪽으로 전환하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했다. 이는 시화호 오염 사태나 새만금 간척 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웠던 탓이기도 하지만, 갯벌의 급격한 파괴가 불러 온 수산업의 몰락과 생태계의 이상징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인공위성으로 갯벌 면적 측정이 처음으로 이뤄진 1987년에는 갯벌이 3203.5㎢에 달했으나 2005년엔 2550㎢로 20.4%가 줄었다. 그리고 현재 매립공사 중인 267건(1044㎢)과 계획 중인 사업(92㎢)까지 완료되면, 5년 후엔 겨우 44%(1414㎢)만 남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연 해안선은 기존의 1만1914km에서 그 33.7%로 줄게 돼 서남해의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은 사라지고 풍부한 수산자원이 줄어들어 생산활동도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이런 사정 탓인지 1990년 이후 16년 간 서해연안 어획고는 52만t에서 27.6만t으로 47% 감소하고, 경기인천 지역의 어획고는 70% 급감해 최근에는 연간 3만t에 머무르고 있다. 대신 최근 5년 새 수산물 수입량은 69.3% 늘어나 127만t에 달하고 있다. 또 해안의 침식과 해수욕장의 상실에 따른 피해와 항만과 수로를 준설하기 위한 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연간 수천억 원의 예산이 추가로 지출되고 있다.
결국 정부는 '세계 5대 갯벌'로 꼽히며 연간 10조 원의 가치를 생산하는 한반도 갯벌(남한 2550.2㎢, 북한 2670㎢)의 보전 필요성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2005년 6월 대통령이 주재한 제62회 국정과제회의에서 국가 차원의 연안해양 관리를 의결하고, 자연해안과 서식지의 순손실 방지를 정책목표로 제시했다. 당시 해수부 차관, 환경부 장관, 국무총리, 대통령까지 나서서 갯벌 보전 정책의 필요성을 밝혔다.
사업 포기 앞두었던 장항산업단지의 '화려한 부활'
그 과정에서 새만금 갯벌로부터 10km도 안 된 곳에 위치한 충남 서천에서 추진되던 '장항산업단지' 사업의 중단은 정부의 갯벌 보전 의지를 확인하는 계기로 인식됐다. 이 사업은 사업타당성 부족과 환경파괴 우려로 17년 간 방치돼 온 것이기도 했다. 이 사업은 장항갯벌을 매립해 374만 평의 산업단지를 조성하더라도 분양이 어려울 것이라는 산자부의 부정적 전망과, 정략적으로 결정된 사업을 억지로 떠맡은 토지공사의 소극적 태도로 이미 실현 가능성이 적은 터였다.
이런 전망은 이미 장항산업단지 인근에 텅텅 빈 산업단지들이 즐비했기에 더욱 당연해 보였다. 인근 당진군 석문면에는 장항산업단지와 규모가 비슷한 석문산업단지(365만 평)가 1991년에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된 후 방조제만 막은 상태에서 방치되고 있다. 토지공사가 군산에 갯벌을 매립해 조성한 481만 평의 산업단지 역시 분양률이 29%, 입주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해수부 등의 의견을 모아 '사업 불가' 또는 '보완' 의견을 통보하고 토지공사가 사업을 포기하면 모든 게 제대로 돌아가게 될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미 지난 7월에 결정을 내렸어야 할 정부가 판단을 유보하고 미적거리면서 사태는 갈수록 복잡하게 꼬이고 있다. 지역의 정치꾼과 건설업자들은 우선 지역주민의 감정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서천군 인구가 15만 명에서 6만5000명으로 줄어드는 과정을 지켜본 서천군민들은 전북 주민들이 새만금 간척 사업을 놓고 그랬던 것처럼, 17년 간 표류해 온 장항산업단지에 모든 것을 거는 모양새다. 서천군민은 7월부터 여러 차례 대규모 집회, 기도회 등을 개최했다. 이 과정에서 혈서 작성, '100인 결사대' 조직, 상경 투쟁 등이 진행됐다. 나소열 서천군수, 이완구 충남지사는 덩달아 이 문제를 정치이슈로 몰고 갔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주춤주춤 물러서기 시작하더니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강조하던 '책임 있는 대응'보다는 '편법'을 찾느라 골몰하기 시작했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할 것 없이 사업 표류의 책임을 환경단체 탓으로 돌리기 시작하더니, 곧바로 지역 건설업체와 연계된 지역 언론들이 사업 지체에 따른 손실이 얼마네 하며 공격에 합세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위정자들의 백태는 참으로 가관이다.
청와대, 국무총리실, 해수부의 말 바꾸기
가장 극적인 것은 김성진 해수부 장관이다. '바다를 지키고, 어민들의 삶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담당 장관이 연구진과 실무부서의 '갯벌 매립 곤란' 의견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시민단체와 어민들의 면담 요청을 간단히 거부해 온 인사답게 해수부의 갯벌 보전 정책을 한칼에 쓰레기통에 처박은 것. 바다와 보전 분야에 경험이 전혀 없는 재경부 출신 인사에게 어민의 눈물, 바다 생태계, 해수부 정책의 일관성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음으로 김영주 국무조정실장의 활약도 놀랍다. 김 실장은 '사업성이 부족한 산업단지 대신 지역 발전을 위한 대안을 마련하자'는 공감대를 무시하고 '사업 강행을 기정사실화하는 특별위원회 구성'을 추진했다. 또 대안 논의를 장기간 공전시키는 데도 앞장섰다. 그는 서천군수, 충남지사와 한 몸으로 움직이며 환경영향평가 제도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민원 해결뿐이다.
청와대가 빠질 리가 없다. 장항산업단지에 대한 조정자의 역할을 자처했던 청와대 정재호 비서관의 절묘한 말 옮기기도 기가 막히다. 필자는 "정부가 18년째 목적 없이 방치된 시화호, 석문호 같은 간척지를 다시 갯벌로 되돌리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장항갯벌 매립이 필요하다면 사회적 양해를 구해야 할 것"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정 비서관은 이 말을 "환경단체도 장항갯벌 매립에 찬성했다"고 옮기는 '능력'을 발휘했다.
장항산업단지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역할 역시 만만치 않다. 노 대통령은 지난 11월 29일 서천군에 직접 내려가 장항갯벌을 방문하고 "정부가 결정한 정책을 변경할 경우에는 구체적인 사유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서천군민들은 이 발언을 '충청권 유일의 열린우리당 지방자치단체장이자 노 대통령의 보좌역 출신인 나소열 군수를 위한 선물'로 이해했다. 환경 분야에 대한 공약을 단 하나도 지킨 적이 없는 노 대통령의 처신은 여기서도 돋보였다.
호환과 마마보다 더 무서운 '정부의 기능 부재'
사실 환경단체들이 장항갯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불과 몇 달 전부터다. 이미 정부가 사업 중단 의사를 밝힌 터라, 서천군과 지역주민들을 자극할까봐 직접적인 대응을 삼가 왔고, 갯벌 매립의 환경적 영향이 심각하다는 해수부와 환경부의 의견에 동조하며 상황을 지켜봤을 뿐이다. 강제모금과 동원을 통한 관제데모를 비판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모든 게 환경단체 탓으로 돌려지고 있다.
애초 사업 추진 의사가 없었던 토지공사와 건교부는 이제는 환경단체 뒤에 숨고 있다. 지역의 민원에 쫓긴 정부는 합리적인 정책판단을 외면한 채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마녀사냥'을 통해 지역 환경단체를 몰아세우고, 계속 갯벌 매립에 반대해 온 어민들을 따돌리고 있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장항산업단지 사업 추진 이후다. 석연찮은 이유로 장항산업단지 매립을 결정하게 되면 현재 대기 중인 40여 개의 갯벌 매립 계획, 나아가 정부의 갯벌 정책의 혼선은 불가피하다. 새만금 간척 사업 이후 절대로 대규모 추가 매립은 없다고 주장하던 정부가 민원성 생떼에 밀려 온갖 변칙과 편법을 동원해서까지 장항산업단지를 추진할 경우 그 후과가 더 문제다. 이는 국가의 자산인 갯벌을 간척해서 부를 쌓고자 하는 기업들의 욕망을 자극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뻔한 상황인데도 정부가 장항 갯벌 매립의 추진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정부기능이 마비되고 법치 체계가 붕괴됐음을 의미한다. 이 정부는 특정 지역의 민원을 합리적으로 조정하지 못해 세금을 쏟아붓고, 미래세대의 목소리는 고려조차 할 수 없는 정부임을 확인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권의 안위를 위해, 눈앞의 민원을 위해 목소리 큰 기득권 세력과 결탁해 어민과 환경단체를 때려잡는 몽둥이가 된 정부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하나?
호환(虎患, 호랑이 피해)이나 마마(媽媽, 천연두) 때문에 나라가 기울었다는 말은 들은 바 없다. 위정자의 무능과 난삽한 정책이 국가를 병들게 한다. 이번 장항산업단지를 둘러싼 사건은 노무현 정부가 이미 국가의 현재와 미래를 위협할 만큼 타락하고 변질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더 이상 '하야' 운운하며 국민을 피곤하게 할 게 아니라, 정부의 기능이 마비된 비상사태를 마무리하기 위해 용단을 내려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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