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게 힘들어졌다는 분석이 미국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또 내년 초부터 노무현 정부의 레임덕이 본격화하면 한미 FTA 체결을 향한 한국정부의 의지가 꺾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바로 이같은 한미 양국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라도 가능한 빨리 한미 FTA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슈워브 美 무역대표 "내년 초에 한미 FTA 협상 끝냈으면"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28일 미국 워싱턴에서 미 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린 기업인 회동에 참석해 "한미 양측 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서명할 준비는 안 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슈워브 대표는 "양측 간 합의가 잘 이뤄지는 부분이 있다면 이를 포착해 협상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일 필요가 있다"면서 "한미 FTA 협상을 내년 초까지 끝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미 재계에서도 한미 양국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한미 FTA 협상을 타결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관측과 함께 이 때문에라도 한미 FTA를 조기에 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애미 잭슨 전 USTR 부차관보는 28일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경제연구소(KEI)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내년 초 한국에서는 대선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므로 한미 FTA 협상이 조기에 타결되지 않으면 민감한 정치문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잭슨 전 부차관보는 "한미 양측 모두 정치적으로 상대방이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협상 막바지에 양국 정치지도자들이 개입해 결단을 내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하지만 그들이 그만한 정치적 의지와 영향력이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마이런 브릴리언트 '미한 재계회의' 사무국장도 이날 "결승선에 이르는 게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면서 다음달 4일 미국 몬태나 주에서 열리는 한미 FTA 5차 협상이 한미 FTA의 체결 여부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백악관 "무역정책에선 민주당과 공조할 것"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을 장악함으로써 부시 정부가 기존의 자유무역 정책을 추진하기 힘들어졌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부시 정부는 민주당과 적극적으로 공조해서라도 기존의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미 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이날 기업인 회동에서 "이번 중간선거를 통해 의회에 새로 진입한 의원들 가운데 90%가 자유무역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이것은 향후 백악관의 대외무역 협상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슈워브 대표는 "허심탄회하게 (민주당과) 견해차를 좁혀 이를 바탕으로 공동의 (무역협상) 원칙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면서 민주당과 적극적으로 공조해 기존의 무역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슈워브 대표는 "불행히도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 모두에 보호주의와 경제고립주의를 지향하는 극단적인 견해가 일부 있다"면서 "의원들이 (자유)무역에 반대하는 선동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길 바란다"고 경고했다.
<블룸버그>는 슈워브의 이같은 발언이 하원 세출위원회 위원장 내정자인 찰스 랑겔 민주당 의원과 상원 재무위원회 위원장 내정자인 맥스 보커스 민주당 의원을 의식해서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두 위원회는 미국의 통상정책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의회 기구다.
보커스 의원과 랑겔 의원은 원칙적으로는 공화당의 자유무역 정책에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미 FTA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한미 FTA를 통해 미국 업계의 이익을 최대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중간선거가 끝난 후에는 '현실적인 측면에서는 백악관과 협조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해 왔다.
이와 별도로 <로이터>는 슈워브가 민주당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내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자유무역의 부정적인 효과를 우려하고 있는 미국 노동단체 및 환경단체들과도 공감대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역촉진권한(TPA), 결국엔 연장될 것"
한편 이번 중간선거 결과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게 됨에 따라 무역촉진권한이 연장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결국은 무역촉진권한(TPA)을 연장하는 데 동의해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TPA는 미국 의회에 주어진 대외무역협상 권한을 한시적으로 미국 행정부에 이양한 것으로, 내년 7월 초에 만료된다. 우리 정부는 TPA가 연장되기 어렵기 때문에 내년 초까지는 한미 FTA를 반드시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카를 둘리 전미식품생산업협회 회장은 28일 <로이터>에 "내년 7월에 종료되는 TPA가 바로 연장되기는 힘들 것이지만 결국은 그렇게 될 것으로 본다"면서 "TPA가 잠정적으로 만료된다는 사실이 백악관의 대외무역 협상력에 큰 타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도 28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영국산업협회(CBI) 회동에 참석해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한 것이 세계무역기구(WTO) 도하라운드 협상을 회생시키려는 백악관의 방침에 변화를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폴슨 장관은 이날 회동에서 "보호주의자들이 우리의 성장을 질식시키고, 우리의 기회를 제한하며, 우리와 세계의 관계를 규정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며 "보호주의 정서에 굴복하는 것은 끔찍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 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폴슨은 고든 브라운 영국 재무장관과 공동으로 27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한 글에서 "도하라운드 협상이 회생되도록 양국이 주도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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