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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IMF라는 예고편을 이미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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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IMF라는 예고편을 이미 봤다

[한미FTA 뜯어보기 154 : 왜 한미FTA에 반대하냐고?(7)] 다수에게 불편한 미래

백화점에서 명품이나 고가품이 잘 팔리고, 아이들 장난감이 백만 원을 호가해도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고, 외제 고급 승용차의 수입량이 늘었지만 없어서 못 팔고, 인천 국제공항에는 골프채를 맨 여행객들로 만원이고…. 경기가 어려운 때일수록 이런 소식을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심심치 않게 보고 듣게 된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느냐'고 물어오는 것 같다. 저들의 활발한 소비활동이 돌고 돌아 내 지갑에도 미칠 효과를 잠깐 따져보다 그만둔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관심 없다.

서울 강남의 집값이 아무리 뛴다 해도, 대치동의 아파트 값이 얼마니 해도 나와는 무관하다. 거기서 안 살면 그만이다. 거기다 집을 살 돈도, 아이들을 경쟁 속에서 키우고 싶은 마음도 없다. 아직까지는 서울 안에서도 잘 찾아보면 집값이 비교적 싼 동네가 남아 있고, 그게 안 되면 전세나 월세라는 대안도 남아 있다. 오히려 집값 폭등이 영원히 강남 안에서만 일어나 준다면 감사할 뿐. 강남의 집값을 잡겠다고 매번 뒤늦게 나서는 정부도 나와는 상관없게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정부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겠다고 했다. 이번에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면 좋으련만, 그러면 또 관심 끄고 평온하게 살아갈 텐데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다. 한미 FTA가 이미 충분히 힘든 농촌을 죽이는 계약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한미 FTA는 평범한 대다수 시민들에게도 참을 수 없는 '불편한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일상생활 조건의 악화

하루의 생활은 도시 단위 혹은 광역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에 대중교통수단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으면 두 다리가 묶인다. 우리는 식사에서부터 배설까지 상하수도에 의존하고 있다. 전기로 낮을 밤까지 연장하고, 우리의 눈과 입과 귀를 먼 곳으로, 과거와 미래로 연장하고 있다.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공동생활이다. 모두의 효율을 위해, 서로의 안전을 위해 삶의 수단들을 통일하고, 이들 수단을 공동으로 구매해서 소비하고 있다. 공동재는 사치품이 아니라 생필품이다. 본디 인간에게 땅과 물과 공기가 무상이었듯, 도시인에게는 이들 공공재가 땅과 물과 공기의 연장으로서 무상까진 아니라 해도 세금으로 공동구매할 수는 있어야 한다.

그것을 도시에서 자유로이 지불 가능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없게 될 때 도시인들은 눈이 멀고 손발을 움직일 수 없는 불구가 된다. 한미 FTA는 우리의 자연인 도시환경을 값비싼 상품으로 바꿔 놓음으로써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 것이다.

일하다 죽거나 굶어 죽거나
▲ 지난 9월 '한미 FTA 저지 범국민 운동본부'의 주최로 열린 'No FTA 행동하는 미디어 공모전'에 당선된 작품들 가운데 하나. ⓒ 한미 FTA 저지 범국민 운동본부

정부는 말한다. 직접 보지도 않고 '영화'가 재미 없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한미 FTA'란 영화는 표를 사서 직접 보지 않아도 어떤 영화인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라는 예고편을 이미 봤기 때문이다.

우리의 산업구조를 선진국형으로 바꾸는 구조조정이란 결국 많은 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를 의미했으며, 일자리를 지킨 노동자들에게는 '노동강도의 증가'를 의미했다. 한미 FTA는 이미 진행 중인 노동조건의 악화를 더욱 가속화시켜 되돌릴 수 없도록 확정시킬 것이다.

내가 먹은 밥이 네 배를 부르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정부는 경쟁력을 키우자고 한다. 경쟁력 있는 힘센 몇몇을 밀어 주자고 한다. 경쟁력 있는 분야와 그 분야의 사람들이 나머지를 부양하면 된다고 한다.

정말 그들이 힘 없는 사람들을 부양할까도 의문이지만, 이는 간단히 보상으로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문 서비스업 종사자의 발전이 농민과 노동자의 몰락을 상쇄할 수는 없다.

너의 불행으로 나의 행복을 살 수 없고, 너의 행복이 나의 행복을 대신할 수 없다. 타인이나 특정 계층의 희생으로 나의 안일을 도모할 수는 없다.

자본증식의 참신한 기술?

하긴 새로운 경제질서에서는 어차피 큰 재산은 월급을 모아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파트를 사고파는 과정에서 챙기는 시세차익으로 큰돈이 벌린다. 기업 역시 물건을 만들고 팔아서 자본을 증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회사 자체를 사고파는 과정을 통해 덩치를 키운다.

IMF 외환위기는 기업이 재화를 생산해서 자본을 증식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생히 가르쳐 주었다. 특히 초국적 자본은 제품을 생산하고 파는 것보다는 회사 자체를 사고파는 과정에서 더 큰 부를 축적했다. 한편 고용구조를 조정함으로써 아끼게 된 인건비만큼 이윤이 늘었다.

기업이 상품을 생산하고 파는 것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버는 데 더 의존한다면, 돈을 빌릴 수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돈을 '신용카드로 구매'하게끔 했던 바로 그 은행에서 어떤 사람들은 돈을 빌려 집을 살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집값이 점점 오르기만 한다면, 그런데도 계속해서 풍요를 누릴 수 있다면? 그건 다른 사람들에게서 돈을 빼앗아 왔거나 빚을 지고 상환은 계속 미루는 중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물리학의 '질량 보존의 법칙'에 해당하는 무언가가 세계경제에도 있을 것이므로.

신종 계급사회의 도래

정부는 한미 FTA를 체결하면 경제성장률이 7.75%가 더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수치가 허수인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몇 %의 성장이냐가 아니다. 걱정해야 할 건 저성장이 아니라 그동안 오랜 성장기를 거쳐 왔음에도 그 성장으로 모두의 삶이 꼭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나마 과거에는 성공신화가 있었고 그것이 실화로 드러나는 일도 종종 있었다. 계층 간에 이동할 수 있는 사다리가 있었지만, 거기에서 교육이 한 몫을 해냈었다. 한미 FTA는 자산과 소득의 계층 분화를 가속화시키고 영구화시켜 신종 계급사회를 가져올 것이다.

이 새로운 계급사회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돈이 피부색도 체격도 얼굴 생김새도, 그리고 수명도 다르게 만들 것이다. 또한 이 사회에서는 계급에 따라 구사하는 언어도 달라질 것이다. 돈이 새로운 계급과 인종을 낳을 것이다. 나는 이런 계급사회를 후대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돈과 사람을 선택적으로 걸러내는 필터
▲ 국경을 넘는 멕시코인들(위). '또르티아 장벽'이라 불리는 멕시코 국경에 늘어선 관들은 국경을 넘다 사망한 이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아래). ⓒ 한국방송(KBS)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국경에는 실제로 높은 장벽이 서 있고 그 벽에는 관들이 걸려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관의 행렬은 보여준다. 가난한 사람들은 죽어서도 넘을 수 없는 국경이지만 자본은 그것을 어려움 없이 넘나든다는 현실을. 그럼에도 최소한의 통행절차도 자유로운 경제활동에 방해가 된다며 자본이 지나는 길을 매끄럽게 닦으려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마지막 한푼까지 짜내기 위해. 나는 그런 국책사업에 찬성할 수 없다.

나는 여기서 소박하지만 정직하게 일한 만큼 벌어서 생활해 나가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을 바보이고 시대착오적인 인종으로 만드는 음모를 고발한다. IMF 외환위기, 그리고 한미 FTA와 같은 헤비급 충격들은 부의 분배 기준을 바꾸고 경제질서를 크게 바꾼다.

경제질서가 크게 뒤척일 때마다 무서운 파랑이 일어 작은 배들은 파괴되거나 침몰한다. 저들은 말한다. 작은 배를 고집하지 말고 큰 배로 옮겨 타라고. 아니면 큰 배 옆에 작은 배를 꼭 붙들어 매라고.

하지만 모두에게는 원하는 각자의 항로가 있다. 그리고 나는 저들과 함께 침몰하고 싶지 않다. 저들과 함께라면 죽음도, 심지어 영광조차도 창피하다.

우리가 찬성할 FTA를 위해 지금은 반대!

우리에겐 더 나은 선택지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미래에 올 자유무역협정을 위해 이번 한미 FTA는 반대하자. 그것은 노동자들을 긴장과 과로로 몰아가는 이 이상한 경쟁으로부터 벗어나 노동자들이 아닌 국가들과 기업들을 경쟁시키는 방향으로의 전환이다.

노동자, 시민, 국민들은 더 나은 서비스를 하는 기업과 국가를 선택하면 된다. 돈과 상품뿐 아니라 인구의 이동도 자유로운 협정을 환영하자. 옛날에 풍요로운 땅을 찾아 이동했던 것처럼 살기 좋은 곳, 살고 싶은 곳, 가능성의 땅을 찾아 이주할 수 있는 자유협정에 찬성하자.

그런 자유협정을 위해서라도 지금의 한미 FTA는 중단되어야 한다. 아무 것도 자랄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되기 전에.

우리는 전쟁 중이다. 가치를 놓고 벌이는 전쟁이고 미래를 건 싸움이다.

나는 내 행복과 자유를 위해 한미 FTA를 반대한다. 아직은 반대할 수 있으니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한미 FTA 저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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