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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지옥인 '당신들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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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지옥인 '당신들의 천국'

[한미FTA 뜯어보기 149 : 왜 한미FTA에 반대하냐고?(5)] 필요한 건 궤도수정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사태 이후 지난 십 년 간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일, 그것은 한 마디로 '추방'이다. 국가와 자본에 의한 대중의 추방! 대중은 권력과 부의 영역에서 계속해서 추방돼 왔다. 농민들은 농촌에서 쫓겨났고,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쫓겨났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쫓겨났고, 빈곤층은 복지로부터 쫓겨났다.

800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300만 명의 농민들을 보라. 그들은 삶 자체로부터 완전히 '떠' 있다. 지난 십 년 간 정부와 재계가 그토록 외쳐 온 '유연화'의 결과, 그들은 자신의 삶으로부터 뿌리가 뽑힌 채 생산현장 주변을 떠돌고 있다.

고용과 실업의 경계, 아르바이트와 정규직업의 경계가 불분명해졌다. 하는 일이 그렇고, 받는 돈이 그렇다. 생산과 소비라는 게 마치 '월마트에서 일하고 월마트에서 사먹는 꼴'이다. 노동력도 싸고, 물건도 싸고, 노동의 질도 낮고, 물건의 질도 낮다.

월마트에서 옮겨봐야 이마트! 거울을 보고 얼굴을 돌리지 말자. 체제의 주변에서 맴돌며 평생을 살아야 하고, 그런 삶이 자식에게 유전될 사회적 확률이 생물학적 확률보다 훨씬 높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 바로 '우리 자신'의 삶이다.

가난한 사람이 더욱 가난해지는 속도가 세계 1위인 우리나라

좋은 직업, 좋은 교육, 좋은 정보, 좋은 의료, 좋은 공공서비스…. 이젠 이런 것들을 꿈꾸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지난 십 년 동안 두 개의 '순환'이 생겨났다. 중심에서는 '고급 직업-고급 정보-고급 의료-고급 서비스-고급 교육-고급 직업'이 세대를 넘어 순환한다. 반면, 주변에서는 '저급 직업-저급 정보-저급 의료-저급 서비스-저급 교육-저급 직업'이 세대를 넘어 순환한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가. 나라가 가난해져서? 천만의 말씀이다. IMF 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빠른 속도로 회복됐다. 문제는 그렇게 회복된 경제가 누구의 경제냐 하는 것이다. 부자들의 몫은 갈수록 커지는데 빈곤층은 몫은 갈수록 감소한다. 성장해야 나눠 먹을 게 있다는 말, 아랫목이 따뜻하면 결국 윗목도 따뜻해진다는 말, 지난 십 년 간의 통계는 이런 말들이 거짓임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빈곤율이 13%에 육박하고, 우리 국민 6~7명 중 한 명이 절대빈곤층으로 떨어질 위험에 처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유례 없는 부자들의 시대가 구가되고 있다. 미국의 한 증권사는 올해 '아시아·태평양 부자보고서'에서 100만 달러 이상의 재산을 가진 한국의 부자가 8만6000여 명이며, 작년 대비 부자의 증가율에서 한국이 세계 1위라고 밝혔다.

가난한 사람이 더욱 가난해지는 속도와 부유한 사람이 더 부유해지는 속도가 세계 최고수준인 나라, 그것이 지금의 우리나라다.

'80'이 '20'의 적선으로 살아가는 사회

지난 십 년 간 국가와 자본이 저지른 가장 잔인한 짓은 대중으로부터 '이유'와 '근거'를 박탈한 것이다. 그들은 대중이 자신의 몫을 요구할 이유와 근거를 앗아가 버렸다. 직장을 잃은 노동자, 농토를 잃은 농민이 누구에게 무엇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생산의 지위가 부차화된 빈곤층이 어떻게 생산의 몫을 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유가 없고 근거가 없을 때, 대중의 '살게 해 달라'는 요구는 구걸밖에 안 된다.

농민 문제를 노인복지 문제로 이해하는 정부관료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피가 거꾸로 솟는다. 파괴된 삶을 대신해 제공된 복지. 그것은 처음엔 '위로금'이겠지만, 나중엔 '아까운 비용'이 될 것이다. 거지에 대한 모든 적선이 그렇지 않은가. '20 대 80의 사회'. 나는 그것을 '80이 20의 적선으로 살아가는 사회'라고 부른다.

나는 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가. 한미 FTA로 인해 입게 될 손해를 산업별로 세세하게 지적할 수도 있고, 한미 FTA로 정부가 꿈꾸는 '미래 선진한국'이 되는 게 불가능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한미 FTA를 반대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나는 정부의 실패가 아니라 정부의 성공에 반대한다. 나는 한미 FTA의 '손해'와 '불가능성'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그것의 '성취'와 '가능성'에 반대한다.

나는 "복지도 엉망이고 양극화도 심한 미국이 저렇게 잘 버티는 이유는 고급 서비스업이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감탄하는 저 기괴한 사고법에 반대한다.

우리들의 지옥으로 당신들의 천국을 완성하려는가

한미 FTA.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아가는 것'이나 '도약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로 나아가고, 어디로 도약할 것인가.

한미 FTA가 가져올 미래를 모르겠다면 과거를 보라. 그것이 미래다! 지난 십 년 간의 성장은 십 년 간의 추방이었다!

한미 FTA가 가져올 미래를 모르겠다면 현재를 보라. 그것이 미래다! 정부가 대중의 의견을 듣겠다며 한미 FTA 공청회를 연 날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벌써 미국 의회에 도착해 협상 선언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부의 결정은 이미 내려졌고 단지 요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미래를 설계할 때부터 추방된 대중이 그 미래를 영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 그 미래가 대중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정부는 한미 FTA를 체결하지 못하면 우리 모두에게 지옥이 닥칠 것처럼 떠들어대지만, 우리들의 지옥으로 '당신들의 천국'이 완성된다는 게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천국의 청사진이 아니라, 지난 십 년 간 우리에게 지옥을 강요해 온 정부정책의 기본궤도를 수정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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