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현행법상 불법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대기업집단이 지배소유구조로 채택하고 있는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를 규제하기 위해 기존의 대기업집단 순환출자 구조 해소에 우선 3∼5년의 유예기간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1일 공정위는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를 폐지하는 대신 그 대안 중 하나로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 방안'을 도입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환상형 순환출자는 현행법상 금지돼 있는 '상호출자의 탈법적 유형'에 해당하는 만큼 대기업집단이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공정위가 제시한 이 방안은 대기업집단이 새로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를 형성하는 것을 금지하되 이미 형성돼 있는 순환출자 구조는 3∼5년 안에 해소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령, 한 대기업집단이 'A→B→C→A'로 보유지분이 흘러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 이 그룹으로 하여금 'A→B', 'B→C', 'C→A' 중 어느 한 단계의 고리를 이 유예기간 안에 끊도록 하는 것이다.
또 이 방안은 대기업집단이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주식을 양도하는 과정에서 얻을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서도 세금을 감면해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정위는 이미 이같은 세제감면을 허용해 달라고 재정경제부에 요청해 둔 상태다.
현재 6조 원 이상의 자산총액을 보유한 28개의 대기업집단 중 11개 그룹이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공정위는 각 그룹과 접촉해 파악한 결과 삼성과 현대차를 제외한 대부분의 그룹은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지난달 초 출범한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이 현행 지배소유구조인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려면 각각 6000억 원과 2조3000억 원의 비용이 들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공정위는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 외에 사다리형 순환출자 구조, 다단계형 순환출자 구조 등을 불법적인 지배소유구조를 가진 기업도 이 구조를 해소하고 지주회사로 전환하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 고려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 경우에도 기업들이 쉽게 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도록 '자산총액 1000억 원 이상'인 지주회사 규모 요건이나 '상장사 지분 30%, 비상장사 지분 50%'인 지주회사의 자회사 보유지분 하한선 등 지주회사 성립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재계 '유예기간, 세제감면으론 부족…출총제 무조건 폐지해야'
한편 출총제의 대안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구성된 '공정위 민관합동 대규모 기업집단 태스크포스(TF)'는 지난 3개월 동안 8차례의 회의를 열었으나 정부, 재계, 학계, 시민단체 등의 첨예한 의견 차로 아직까지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한 상태다.
대기업집단 TF의 다음 회의는 이달 9일로 예정돼 있다. 이 회의에서도 출총제의 대안에 대한 합의가 나오지 않을 경우 대기업집단 정책은 자연스럽게 출총제에서 순환출자 규제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공정위가 제시한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 방안'이 그대로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먼저 공정위가 제시한 3~5년이라는 유예기간이 너무 짧다는 여당과 재계의 불만이 크다. 지난달 21일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를 가진 대기업집단에 대해 2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의결권만 제한하자'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제출한 채수찬 열린우리당 의원은 "순환출자 구조의 해소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많은 시간을 갖고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짧은 시간에 해소하려는 것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편 재경부는 순환출자 해소 과정에서 생길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 세금을 감면해주자는 공정위의 요청은 과세형평상 수용하기 힘들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재계는 출총제를 폐지하는 데 조건을 다는 것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은 오는 9일 대기업집단 TF 회의에서 '대안(조건) 없는 출총제 폐지'를 요구하는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이날 공정위 관계자는 "아직 출총제에 대한 공정위의 대안이 확정되지 않았다"면서 "기업집단별 부담능력을 충분히 고려해 적절하게 정책을 혼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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