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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중단하고 FTA 전략 다시 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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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중단하고 FTA 전략 다시 짜야

[FTA 대안은 있다(10,끝)] 산업정책 대안 수립이 먼저다

이번 글에서는 지금까지 9회에 걸쳐 서술한 내용을 요약하고 한미 FTA 협상에서 우리나라가 취해야 할 입장, 미래의 대안적 성장모델과 이를 위한 21세기 신산업 정책의 대강을 제시하고자 한다. 하지만 특히 대안과 관련해서는 그 구체성과 실현 가능성을 위해 앞으로도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제시되는 내용은 향후 연구의 방향과 문제의식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 뿐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몇몇 서비스 산업, 특히 미래 성장동력이 될 지식기반 서비스 부문에서는 국제적 수준의 경쟁력이 만들어지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특별한 외부적 자극이 없을 경우 내부에서의 혁신을 통해 국제경쟁력이 갖춰지고 국민들에게 더 낮은 가격에 더 높은 질의 서비스가 제공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곧 전면개방을 통한 시장경쟁의 도입은 아니다. 그것은 국내 서비스 산업을 살리기보다는 오히려 죽이게 될 것이다.

산업정책 없는 개방은 위험하다

지식서비스 산업의 수요 측, 공급 측 조건을 고려한 적극적인 산업육성 정책이 먼저 진행된 뒤에야 비로소 개방의 긍정적 효과가 기대될 수 있다. 이러한 전제조건 없이 추진되는 개방은 미국 독점자본에 국내시장을 통째로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제투자자 보호라는 미명 하에 시행된 개방으로 인해 국내 산업정책의 주권이 상실될 위험이다. 정부와 청와대는 동반성장, 양극화 해소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으나 한미 FTA가 체결된다면 양극화 해소를 통한 동반성장은 영영 불가능해진다. 구호를 내걸었으되 그것을 추진할 정책수단도, 정책역량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한미 FTA는 아시아 지역의 지경학적 조건으로 인해 노태우 정부 이후 15년 이상 추진돼온 아시아 지역 경제공동체 구축의 흐름을 가로막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를 발판으로 한 미국의 대아시아 경제적 헤게모니 구축에 대해 아시아 국가들이 경계의 눈길을 던지게 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가 미국 자본의 대 아시아 생산 및 금융 기지로 역할하게 될 경우 아시아 여러 국가들로부터 고립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물론 상품교역과 관련된 관세의 인하 혹은 철폐가 이루어질 경우 자동차, 선박, 전자통신 부문에서 약간이나마 수출경쟁력이 향상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농업과 축산, 정밀기계 및 전자통신 생산장비 부문 등에서 대미 수입이 증가하게 될 것도 분명하다. 일부 분야에서 예상되는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결과 중 어느 쪽이 더 클지는 논자에 따라 판단이 다르겠지만,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있다. 즉 우리나라의 경제구조가 대미 교역구조에 유리한 방향, 즉 이미 성숙산업이 된 산업부문이 중심이 되는 방향으로 점점 더 고착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경향은 아시아 금융허브가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그 결과 국내에 유입되는 자본이 많아질수록 더욱 강화될 것이다. 자본유입으로 인한 원화가치 상승은 수출경쟁력을 낮추게 될 것이고, 국제적 수준에서 형성된 기대수익률의 상승은 신생 산업에 투자되어야 할 자본의 비용을 높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교육, 의료, 과학기술 부문에서 진행될 전면적인 시장경쟁 논리의 도입은 사회적 양극화, 소득과 고용의 악화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특히 정부와 협상단이 한미 FTA 협정 체결의 전제조건이자 성공의 필수조건이라고 주장하는 국내 제도개혁(규제철폐), 노동유연화, 노사관계의 재정립 등은 고용악화, 소득분배의 불평등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특히 의료 및 교육 시장 개방을 통한 시장경쟁의 전면화는 그나마 갖추어지기 시작한 각종 사회안전망을 해체시키게 될 것이다. 청와대와 정부가 그토록 주장하던 동반성장, 양극화 해소가 아닌 공보험 체제의 해체, 연금시장의 상업화, 교육시장을 통한 부의 세습이 나타나게 될것이다.

정부의 협상안대로라면 즉각 중단돼야

바로 이러한 근거에서 새사연(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은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밝힌다.

첫째, 상품교역과 관련된 관세철폐 분야에서는 농산물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을 개방하되 투자, 서비스 부문의 경우에는 제한적 포지티브 방식의 개방이 필요하다. 특히 상품교역 관련 관세철폐는 미국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아시아 및 유럽에 대해서도 한미 FTA와 완전히 동일한 수준의 시장개방을 추진해 국제적인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개방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국제적 경쟁이 촉진될 경우 국내에 유입되는 상품의 가격이 낮아지는 한편, 국내의 취약한 경쟁력을 가진 기업이 미국의 독점자본과 직접 경쟁하게 될 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투자 및 서비스 부문의 경우는 개방이 경제주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엄격하게 제한된 영역과 범위에서 선택적으로 개방(사실상 현재의 수준에서 동결)해야 한다. 포지티브 방식의 설정은 지식의 생산 및 이전과 관련된 사항들을 고려함으로서 내생적 성장, 고용 확대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기준에 따라야 한다. 특히 이 부문의 경우 상품교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현재 수준의 조건들을 유럽과 동등하게 체결함으로서 유럽형 자본주의와 미국형 자본주의가 경쟁하게 만들면서 우리나라 정부가 조정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모든 시장에 대한 개방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장기의 유예기간을 둘 것을 요구해야 한다. 가령 태국의 경우 미국와의 FTA 협상에서 투자 및 금융 서비스 분야에 대한 10년 간의 장기유예를 협상의 핵심조건으로 제시했으며, 이 협상은 태국의 의견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종결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역시 최소한 국내에서 해당 산업의 자생적 경쟁력이 창출될 때까지 개방유예를 요구할 수 있고, 또 요구해야만 한다.

넷째, 2차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공식적으로, 혹은 비공식적으로 알려진 협상내용을 보면, 우리가 앞에서 제시한 세 가지 원칙들이 관철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미국 측의 요구 대부분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우리 정부의 협상안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2차 협상에서 1차 때의 합의사항이 번복될 가능성은 거의 없고, 우리 정부는 아예 그렇게 할 의지조차 갖고 있지 않으므로 지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은 즉각적인 협상 중단과 전면적인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달리 있다

그렇다면 이제 한미 FTA를 넘어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전망에 관해 말해보자.

첫째, 국제관계는 신뢰와 역량에 의해서 평가되는 것이지 화려한 언변으로 어찌해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특히 이런 일들은 대통령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구상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국민들의 합의를 도출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될 때에만 그 정책이 정치적 수사를 넘어 실질적인 변화의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는 이와 관련해 개방화, 국제화 시대의 대안적 미래로 아시아 경제공동체 건설을 제시했다. 특히 호혜적인 지역 경제공동체 건설을 위해 노동력 이동이 선행돼야 하고 공동의 지식기반이 형성돼야 하며, 이 양자에 기초한 구조조정이 가장 중요한 추진전략의 하나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것이야말로 참여국 모두에게 호혜와 평등을 가져다줄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다. 또한 청와대가 그토록 주장하는 양극화 해소를 통한 동반성장이 구현되기 위해 필요한 국제화, 개방화 전략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남북통일 문제는 지역경제권 형성과 관련해서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남북통일에서 남과 북의 주도권을 실질적으로 확보하고, 통일에 따른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통일의 과정 자체가 아시아 지역경제권 형성과 동시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 특히 남북한 경제통합과 관련해 남한과 북한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대안적 기업 모델 및 경제운용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경제특구에서 실험한 뒤 남북한 전역에 확산하는 방식을 추진할 때에만 우리는 오래된 체제 간 갈등을 넘어설 수 있다.

둘째, 21세기 산업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화, 개방화가 진행될수록 산업정책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최적 배분, 최적 효율성을 통해 안정적 균형을 달성할 수 있다는 시장 자유경쟁의 신화는 교과서에서나 존재할 수 있다. 세대 간 자원배분, 부문 간 균형발전, 구산업의 퇴출과 신산업의 창출, 혁신에 따른 불확실성 낮추기, 과학기술 지식기반 형성 등은 신성장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필수적이며, 이에는 여전히 시장보다 국가의 정책적 선도가 중요하고도 사활적이다.

또한 국제화, 개방화의 진행은 이윤논리가 지배적으로 작동하는 시장경쟁의 근시안성으로 인해 불안정성과 양극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시장경쟁은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주어진 구조 내에서 미세조정을 하는 데는 효율적이겠으나, 집단적이고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국가적 차원의 기획 및 선도와 결합될 때에만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다. 따라서 최근 유로 경제공동체에서 모색되고 있는 지식기반 사회를 위한 신산업정책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정부도 혁신적 중소기업 육성,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으로의 이행을 위한 국가적, 국제적 R&D 시스템 구축, 고용 및 분배를 축으로 한 통합적 교육정책, 사회적 연대자본 형성을 통한 진입장벽 해소 등과 같은 정책대안들을 적극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와 관련해 여러 세대에 걸치는 장기의 국가전략에 관해서는 고용과 교육을 축으로 한 국가과학기술혁신체제(NIS)를 발전시키고, 부문 간 균형 및 신산업 창출, 혁신경쟁의 촉진을 위해서는 산업기술혁신체제(SIS)를 발전시켜야 한다.

혁신경쟁을 위한 정책대안의 경우 그 핵심은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된다. 지식과 인력, 사업화를 위해 필요한 자본에 대한 접근성을 대폭적으로 확대하는 것과 더불어 개별 기업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장구조 변화를 가져올 혁신적 기술개발에 수반되는 불확실성을 클러스터 형식으로 해소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동원과 자본이용의 통로를 이원화시키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다. 특히 연기금을 활용한 혁신적 연대자본 시장의 경우 기술사업화를 위한 클러스터링 기획을 해당 시장 내부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유도함으로써 위험 공유, 신가치 창출 과정이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부동산 외에 생산적 투자기회가 없다는 아우성이 높지만, 우리 사회를 둘러보면 투자를 통해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가 너무나 많다. 새로운 변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 그 자체가 이미 생산적 가치창조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우선 물류, 교통, 환경 관련 인프라의 경우 머지않아 대대적인 혁신이 요구될 것이다. 최근의 서울시장 선거에서 서울의 친환경적 공간 재구성이 주요 공약으로 부상한 것은 이러한 혁신에 대한 요구를 집약적으로 표현해 주는 것이다. 또한 남북한을 넘어 중국과 시베리아는 물론 유럽으로 이어지는 물류교통의 대혁명을 위해서는 우선 국내의 물류교통을 대대적으로 혁신해야만 한다. 또한 수소에너지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새롭게 열릴 사업기회 역시 풍부하게 잠재해 있다. 수소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경제구조는 한편으로는 높은 이행비용을 요구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투자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투자되는 비용이 고정되어 있음에 반해 신산업 창출 가능성은 사전에 결정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여기서도 문제는 수소에너지를 활용한 신산업 창출의 가능성을 얼마만큼 확대시킬 수 있는지 여부다.

큰 변화가 요구되는 국내 산업구조

뿐만 아니라 1960년대 이후 정착된 우리나라의 산업구조 역시 크게 변화해야 할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는 2004년 현재 농수산업 4.03%, 제조업 28.7%, 사회간접자본 11.7%, 서비스업 55.4%로 나타나고 있으며 대외 수출의존도는 77%다. 특히 수출주도 산업이 ICT(정보통신기술), 선박, 섬유, 자동차 분야에 집중되어 있어서 수출의존도는 낮추고 품목은 다변화해야 할 필요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조업 전체를 경공업(15.8%)과 중공업(84.2%) 부문으로 나눌 경우 중공업 편중 현상이 심각한 동시에 대부분의 중공업이 비용경쟁력에 기반하거나 공정 및 운용기술에 특화되어 있어서 장기적인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즉, 새로운 단계로의 구조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차세대 성장산업을 14개 부문 41개 품목으로 선정하고, 그 중에서도 핵심적인 5대 역점 산업부문으로 바이오 의약, 방송 및 통신, 2차 전지, 친환경 연료자동차, 문화산업을 꼽고 있다. 그러나 바이오 의약의 경우 이미 국제적 시장 진입에 필요한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기를 놓쳤음을 인정해야 한다. 오히려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가장 강력하고 시급한 화학산업 분야에서 친환경 재생가능 바이오화학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자동차 산업의 경우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가장 크고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한 수출경쟁력이 장기간 유지될 것이 분명하므로 이를 기반으로 친환경 차세대 자동차 산업 및 연관 신산업 분야의 창출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차세대 나노-바이오 기술 패러다임과 관련해서도 국가는 융합분야의 지식기반 육성에 집중하는 한편 ICT 활용 분야의 경우 기업의 주도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정책추진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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