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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의 제1소양은 '말 바꾸기'?"

[기자의 눈] <목민심서>를 읽으며 산자부를 떠올리다

"여전히 공무원이 우리나라의 가장 정체된 집단 중 하나입니다."

며칠 전 최열 환경재단 대표를 인터뷰할 때 나온 말이다. 최근 몇 주간 산업자원부의 바이오디젤 정책을 취재하면서 적어도 산자부의 일부 공무원들에 한해서는 이 말을 들려줘도 마땅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 에너지 산업의 경쟁력을 좌지우지할 중요한 정책에 대해 비판이라도 받을라 치면 끊임없이 임기응변식으로 말을 바꾸며 대응하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언론중재위원회를 들먹이며 '제소' 운운하니 애처롭기까지 하다.

과연 산자부 국장과 과장은 '원안'대로 말하고 있는가?

<프레시안>은 지난 5일 산자부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바이오디젤유 사용 확대를 약속해 놓고서 정작 정책은 이를 축소하는 쪽으로 변경한 사실을 보도했다("산자부가 대통령을 '바보'로 만든 것 아닌가?"). 그러나 산자부는 아직까지 이런 기본적인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산자부는 보도가 나가자마자 이학로 석유산업팀장이 기자에게 전화를 걸고 해당 기사에 '댓글'을 달아 몇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그 중의 하나가 대통령 보고 문건 중에서 "유채유 등을 활용한 바이오디젤은 자발적 협약 기간이 종료되는 2008년 6월 이후 의무화 사용 검토"라는 대목이었다. 그의 설명을 간추리면, 그 대목은 2008년 6월이 지난 직후 다시말해 그해 7월부터 바이오연료의 사용을 의무화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의무화 문제를 그 시점에 검토하겠다는 얘기라는 것.

난감한 반론이었다. 앞뒤 맥락으로 보아 '전형적인 공무원들의 면피성 발언'으로 보기에 충분했지만, 문건 자체가 요령부득의 공문서 투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견 그렇게 볼 수도 있었다. 이 팀장과의 논란을, 정말 중학생 수준의 문법 논란 같아 안타깝긴 하지만, 요약하자면 '2008년 6월 이후의 의무화 사용'을 검토하는 것인지, '의무화 사용'을 2008년 6월 이후에 검토하는 것인지에 대한 해석 차이다. 물론 이 팀장의 입장은 후자였다. 2008년 6월 이후 검토 작업을 거쳐 다시 그 이후의 어떤 시점엔가 의무화하기만 하면 대통령에 대한 보고 내용은 만족시킨다는 것.

산자부가 바이오디젤유 사용의 의무화 시점과 관련해 왜 이같은 항변을 하는지는 다소 복잡한 배경이 있지만 그것은 <프레시안>의 5일자 기사로 대개 설명이 되니 여기서는 접어두자. 또 국어의 모호함을 이용한 이런 '말장난'을 대통령 앞에서 했다면 정세균 장관이 당장 면박을 당했을 테지만 그것도 접어두자.

그 대신, 산자부에서 바이오디젤 보급 업무의 총책임자인 안철식 에너지산업본부장이 지난 4일 산자부 홈페이지와 <국정브리핑>에 올린 글을 살펴보자("석유 대체? 해답은 바이오디젤"). 이 글에서 안 본부장은 "2008년 하반기부터 BD5(바이오디젤유 5%+경유 95%) 사용 의무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2008년 하반기는 BD5의 사용이 의무화되는 시점인가, 아니면 그 의무화가 검토되는 시점인가? 여전히 애매하다. 공무원들의 말투는 대개 이 모양이다.

그러면 한 가지 문건을 더 살펴보자. 산자부는 지난 3월 2일 정유사들과 2년간의 자발적 협약을 맺으면서 보도자료를 냈다. 이 산자부의 보도자료는 "협약 기간이 종료되는 2년 후부터 바이오디젤 사용량을 대폭 늘릴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협약 기간이 종료되는 2년 후'는 바로 '2008년 하반기'를 의미한다. 여기선 어떤가? 2008년 하반기가 의무화 시점인가? 아니면 그 의무화의 검토 시점인가? 자명하지 않은가?

이것이 원안인 것이다. 당초 4년의 BD20 시범보급 기간과 다시 2년의 BD5 자발적 협약기간 등 모두 6년의 시험시기를 거쳐 2008년 하반기부터는 바이오디젤유 의무화를 통한 사용 확대를 대통령 앞에서 공언해 놓고 그 뒤 슬글슬금 후퇴하는 가운데 2년 후의 목표 실현을 뒷받침할 정책을 마련하지도 않고서 비판이 나오자 슬그머니 딴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정세균 장관으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은 뒤 "기분이 좋다"고까지 한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참담한 심경이 될까?

계속되는 산자부의 '말 바꾸기'…대통령 앞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산자부의 말 바꾸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산자부 이학로 석유산업팀장은 더 나아가 "(2008년 6월 이후 의무화하겠다는) BD5는 경유에 바이오디젤유를 5% 섞은 것이 아니라 5% '이하'로 섞은 것을 의미했다"며 "BD5의 정의를 <프레시안>이 왜곡해서 전달했다"고 우기고 있다. 그러나 산자부의 이런 해명은 사실과 다르다. <프레시안>은 왜곡해서 전달한 게 아니라 산자부가 정의해준 대로 전달했을 뿐이다.

산자부 석유산업팀은 앞에서 언급한 3월 2일자 보도 자료에 '석유 대체 연료 개요'라는 참고 자료를 첨부했다. 이 참고 자료는 "BD5 : 경유 95% + BD 원액 5% 혼합"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안철식 본부장도 역시 앞에 언급한 산자부 홈페이지의 글에서 "바이오디젤(BD5, 바이오디젤 5%+경유 95%)이 이번 달부터 상용화됐다"고 밝히면서 산자부의 BD5 정의를 다시 한번 명확히 하고 있다.

정세균 장관도 노 대통령에게 보고했던 지난 5월 19일 열린 제4차 국가에너지자문위원회 자료에서 "바이오연료(바이오디젤, 바이오에탄올) '5%' 의무화 사용 때 신재생에너지 보급률은 2004년 2.08%에서 2.62%로 증가"라고 '5%'를 정확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게 명확한데도 산자부는 또 한번 말 바꾸기를 시도한 것이다.

또 한 가지. 산자부는 "대통령 앞에서 2008년 6월 이후 의무화할 것을 밝힌 것은 바이오디젤과 바이오에탄올을 합한 바이오연료였다"며 "그렇기 때문에 산자부가 바이오디젤만을 5% 의무화하기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프레시안>의 기사는 잘못됐다"고 이젠 애꿎은 바이오에탄올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진실은 이렇다. 문제의 대통령 보고자료 같은 쪽에서 산자부는 "바이오에탄올은 유통 시스템에 대한 실증을 2006~7년에 거쳐 국내 도입 타당성을 확보한 후 사용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미 보급 사업을 벌인 바이오디젤유와 달리 바이오에탄올은 2008년까지 도입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검토 단계의 연료라는 것이다.

수 년간의 검토와 4년간의 시범 사업을 벌인 바이오디젤유도 2005년 현재 전체 경유 판매량의 0.07%에 불과한데 무슨 수로 도입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바이오에탄올을 불과 2년 만에 의미 있는 양으로 공급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더구나 안철식 본부장마저도 앞에서 언급한 산자부 홈페이지의 글 제목을 "석유 대체? 해답은 '바이오디젤'"이라고 적시해 석유를 대체할 수송 연료로 산자부가 강조하는 것이 바이오디젤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으면서 말이다.

세계는 지금 바이오디젤 시장 선점 위해 전쟁중인데…

산자부 공무원들이 이렇게 국민의 세금을 축내면서 '말장난'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때 외국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최근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고유가 사태에 맞서 바이오디젤 개발과 생산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최고 수준의 바이오디젤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우리나라와 비교되는 모습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2007년까지 민관 합동으로 바이오디젤 등에 대한 투자를 서둘러 2010년까지 전체 연료 소비량의 10%를 바이오디젤로 대체할 방침이다. 세계 최대의 팜유 생산국인 말레이시아도 지난 4월 10여 개 기업에 바이오디젤유 생산시설의 건설 허가를 내주는 등 바이오디젤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향후 원활한 바이오디젤유 수급을 꾀하려는 세계 각국 역시 동남아시아의 움직임에 불을 붙이고 있다. 각각 중국, 미국, 독일 자본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에서 20만~30만㎘의 바이오디젤유 생산 설비를 짓기 위해 나서고 있다. 매년 10% 이상 성장하고 있는 바이오디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주'가 세계적인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오디젤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언론 보도에 '말 바꾸기'로 일관하는 산자부 공무원들의 처신은 심히 유감스럽다. 더구나 공무원들이 문서를 작성하는 첫 번째 원칙이 '애매모호함'이라는 비아냥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는듯한 군색한 변명은 더욱 유감스럽다.

마지막으로 산자부 관리들에게 한 가지 묻고 싶다. '바이오디젤유 전쟁'이 격화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것이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발등의 불'로 떨어지기 전까지는 계속 검토에 검토만 거듭하고 있을 참인가? 이제 하루라도 빨리 동남아에 바이오디젤유 생산기지를 마련하고 그 보급확대 방안을 서둘러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가? 누가 지시하기 전까지는 여전히 '나의 일'이 아닌가?

다산 정약용은 200여 년 전에 <목민심서>에서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에만 급급하고 백성을 부양할 바는 알지 못한다"며 "자신이 쓰는 돈이 백성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것이란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썼다. 혹시 이 나라의 공무원들은 200년 동안 하나도 변한 게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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