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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부산 신항과 인천 공항이 가라앉는다?"

법원 판결로 '부실 배수재' 논란 불 붙을듯

부산 신항만과 인천 국제공항이 가라앉는다? 있어서는 안 될 이런 일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바다나 갯벌을 매립한 땅 위에 대형 공사를 진행할 때 필수적으로 해야 할, 땅 속의 물을 빼내 땅을 다지는 공사가 엉터리로 이뤄져 왔다는 것이다.

지난 2004년부터 〈프레시안〉을 비롯한 일부 언론은 부산 신항만과 인천 국제공항 등 국내 대형공사 과정에서 땅 속의 물을 뺄 때 쓰이는 배수재(PBD)가 제 역할을 못하는 '불량 배수재'라는 의혹을 제기했었다. 이런 의혹 제기에 결국 건설교통부, 해양수산부는 자체 감사를 포함한 조사까지 벌였으나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그런데 법원이 뒤늦게 이런 '의혹 제기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는 해석을 내렸다. 이런 법원의 해석에 따르면 부산 신항만, 인천 국제공항 등은 심각한 안전사고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이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부산 신항만 땅 다지기 때 쓰인 배수재 '불량' 의혹**

지난 1월 19일 서울동부지법(임수식 판사)이 한 배수재 업자를 상대로 제기된 신용훼손 소송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사실이 <신동아> 2006년 4월호를 통해서 뒤늦게 알려졌다. 1년간의 소송 끝에 결국 무죄 판결을 받은 김 모(57) 씨는 '부산 신항만 공사 과정에서 불량 배수재가 쓰이고 있다'는 의혹을 2003년 말 최초로 제기했던 당사자다.

이런 김 씨의 주장에 대해 불량 배수재를 공급해 왔다는 의혹을 산 D업체는 신용훼손 혐의로 김 씨를 검찰에 고발하는 것으로 맞불을 놓았다. 결국 검찰이 김 씨를 기소하면서 1년간에 걸쳐 양 측 사이에서 배수재의 기능을 놓고 진행된 공방에서 법원이 결국 김 씨의 의혹제기가 설득력이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법원은 "김 씨가 '불량 배수재가 쓰이고 있다'는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그 의혹이 객관적으로 '허위'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이 사건의 중요한 쟁점"이라며 "모든 정황과 증거들을 살펴봤을 때 그의혹 제기가 허위라고 인정할 만한 뚜렷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배수 기능 떨어지는 불량 배수재가 광범위하게 사용돼**

당초 김 씨가 제기했던 의혹은 부산 신항만 공사 때 쓰인 배수재가 제 역할을 못하는 부적합한 모델이라는 것. 땅 속 50m까지 박아서 물을 빼내는 배수재의 기능은 물을 잘 빨아들이도록 만들어진 필터(부직포)가 좌우한다. 땅 속의 물은 필터 표면의 미세한 구멍을 통해 흡수돼 지상으로 배출된다.

이 과정에서 구멍의 크기는 필터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토질에 비해 필터의 구멍이 크면 필터의 겉면이 흙 입자에 의해 막혀 물을 제대로 흡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 씨의 의혹 제기는 바로 이 부분에서 시작됐다. 부산 신항만 배수 공사에 쓰인 D필터(D-○○○)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배수 공사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오랫동안 싱가포르에서 일했던 김 씨는 해당 필터가 이미 수년 전에 문제가 돼 싱가포르 현지에서 사용이 중지된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D필터는 표면에 칼렌더링(Calendering), 이른바 엠보싱 처리가 돼 있는 제품이다. 그렇다면 엠보싱 처리를 하면 무엇이 문제일까? 엠보싱 처리를 하면 시방서에 명시된 시험(ASTM D4751)을 통과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시험은 미세한 유리구슬을 필터 위에 올려놓고 정해진 시간만큼 필터를 상하좌우로 흔들어 통과한 유리구슬의 무게를 측정한다. D필터의 경우에는 엠보싱 처리한 부분으로는 유리구슬이 통과하지 않기 때문에 필터를 통과한 유리구슬의 무게는 구멍이 더 작은 필터와 똑같은 결과가 나오게 된다(그림 1).

김 씨는 "그런 실험 결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이 D필터의 구멍이 기본적으로 크기 때문에 물과 함께 흙 알갱이가 그대로 통과돼 결국 배수로가 막히고 배수 기능을 제대로 못 하게 된다"며 "더구나 엠보싱 처리한 표면의 30%는 아예 물을 흡수할 수 없기 때문에 기능 면에서는 오히려 떨어지는 제품"이라고 주장해 왔다.

법원도 판결문에서 "(검사를 똑같이 통과했다고 하더라도) 엠보싱 처리를 한 경우가 그런 처리를 하지 않은 경우에 비해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공극(구멍)의 크기는 상대적으로 큰 상태일 터이고 따라서 물과 함께 공극을 통해 들어오는 진흙 입자 등의 이물질을 거르는 기능에 있어서는 엠보싱 처리를 하지 않은 것보다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다"며 "그 결과 그 약화된 만큼 흙 입자들이 배수로 구멍을 막을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김 씨의 주장과 대동소이한 설명을 하고 있다.

나아가 법원은 "검찰 측에서 내세운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나 D필터를 공급하는 업체마저도 엠보싱 처리를 한 경우에 시험에서 필터를 통과하는 유리구슬의 양을 줄이는 부수적인 효과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미 7년 전 국내에서도 사용 금지한 제품**

더 흥미로운 것은 이미 싱가포르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도 7년 전에 이 D필터의 문제점이 지적돼 사용이 중단됐다는 것이다. 이번 법원 판결에도 증거로 채택된, 한국토지공사 토지연구소가 1997년 9월에 내놓은 '연약지반의 처리공법과 침하측정에 관한 연구'라는 보고서를 보면 그런 상황을 뚜렷이 알 수 있다.

이 보고서는 "기업들이 제조원가를 낮추기 위해 중량이 작은 필터재를 사용한 후 시방서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필터재 표면을 1~2㎜ 녹여 칼렌더링(Calendering, '곰보 처리')하고 있으나, 이렇게 '곰보 처리'한 부분은 물이 통과할 수 없어 '투수 면적'을 감소시킴으로써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한국토지공사의 지적은 네덜란드의 배수재 생산업체 콜본드의 블래어 로스 박사의 논문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로스 박사는 "칼렌더링 공정은 적은 비용으로 배수재를 제작하는 방법 중 하나로 유효구멍 크기 시험 검사를 하면 충분히 통과하지만, 투수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이와 관련한 해프닝도 있었다. 정작 재판이 시작되자 한국토지공사의 보고서를 작성한 해당 연구원이 'D필터는 내가 보고서에서 언급한 해당 칼렌더링 제품이 아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낸 것이다. 하지만 이 의견서는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다. 이 연구원이 한 방송사 인터뷰에서 D필터를 직접 가리키며 "이 제품이 (내가) 보고서에 쓴 바로 그 칼렌더링 제품이 맞다"고 말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법원 역시 판결문에서 "우리나라의 경우도 한때 엠보싱 처리된 제품이 문제가 부각돼 일부 공사 현장의 시방서에서 그 사용이 금지된 적이 있었다"며 "김 씨도 과거 싱가포르 현장에서 일할 때 인근의 땅 다지기 공사 현장에서 (D필터와 같은) 엠보싱 처리된 제품을 사용하려고 하였으나 그것이 시험 검사 결과에 영향을 주고 흙 입자들을 거르지 못하는 문제 때문에 공사 감리자에게 거부된 경험이 있었다"고 적시했다.

***신용훼손 고발한 D업체 "법원 판결 납득할 수 없어"**

이런 여러 가지 증거를 염두에 둔 법원은 결국 김 씨의 손을 들어줬다. 물론 신용훼손으로 고발한 D업체와 김 씨를 기소한 검찰은 발끈하고 나섰다. 검찰은 현재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D필터를 전량 수입해 공급하는 D업체 관계자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한국토지공사나 로스 박사가 언급한 칼렌더링 제품은 1990년대 초중반까지 쓰인 중량이 아주 작은 접착식 부직포로 D필터와는 전혀 다른 제품"이라며 "D필터는 설사 칼렌더링 과정을 거친다 해도 중량이 무겁기 때문에 필터 기능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또 "판사가 '필터 표면 중 엠보싱을 한 부분의 구멍이 막혀 있다'는 김 씨의 진술을 과학적, 객관적 확인 없이 인정한 상태에서 즉 잘못된 전제를 가지고 판결을 내렸다"고 반박했다. 그는 '필터는 수세미를 연상케 하는 3차원 망상 구조로 돼 있기 때문에 엠보싱 처리를 하더라도 (물의 흡수를 가로막는) 막이 형성된 것은 아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엉터리 시료로 검사한 뒤 '문제 없다' 결론 내린 건교부-해수부**

정작 발등의 불은 자체 감사까지 해서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건교부와 해수부에 떨어졌다. 건교부와 해수부는 일단 "1심 판결인 만큼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간 건교부와 해수부의 처신에는 석연치 않은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부산 신항만에 대한 관리·감독권을 가진 해수부는 2005년 1월 20일 한국지반공학회가 발표한 보고서를 근거로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한국지반공학회의 보고서는 신항만 시공사인 재벌 건설업체 S사가 자비 수억 원을 들여 의뢰한 용역의 결과물이었다. 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이 한국지반공학회에서 시료로 쓴 배수재가 문제가 된 공사 현장에서 쓰인 D필터가 아니라는 것. S사는 현장에서 쓰이지 않는 다른 배수재 필터를 구해 한국지반공학회에 전달했던 것이다.

두 달 후인 2005년 3월 말 건교부의 감사 결과는 더욱더 가관이었다. 건교부는 이미 감사 결과 발표 전 신항만 공사에 쓰인 배수재 필터에 대한 시험 검사를 건설기술연구원에 의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정작 건교부가 3월에 공개한 시험 결과는 해수부가 S사의 돈을 들여 한국지반공학회에 맡겨서 나온 결과와 동일한 내용이었다. 알고 보니 건설기술연구원 소속의 한 연구원이 건교부의 지시와 예산으로 시험 검사를 한 뒤 자신이 회원으로 소속되어 있는 한국지반공학회에 검사 결과를 넘겨주어 결국 양측이 똑같은 결과를 내놓게 된 것이었다.

***김해국제공항-녹산국가공단 전철 밟나**

배수재의 필터의 기능을 둘러싼 논란은 검찰이 항소를 하면서 결국 지루한 법정 공방을 계속하게 됐다. 하지만 일단 1심에서 법원이 최초로 의혹을 제기한 김 씨의 손을 들어준 것은 아주 의미심장하다.

이 D필터는 부산 신항만뿐만 아니라 인천 국제공항 2단계 공사를 비롯해 많은 국책 공사에 이미 투입됐거나 투입될 예정이기 때문에 시시비비를 정확히 가리는 것은 불가피하다. 땅을 다지는 공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결국 심각한 안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결과적으로 수십억, 수백억 원의 추가 예산을 들여 보강 공사를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법원 판결이 나기 불과 며칠 전인 2006년 1월 12일 김해국제공항 신활주로가 균열과 지반 침하 문제로 준공 6년 만에 전면 폐쇄된 것이 단적인 예다. 땅을 다지는 공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생긴 문제였다. 지난 2003년 여름에는 부산 녹산국가공단이 태풍 '매미'에 의한 해일로 입주 업체의 절반 가량이 물에 잠기는 피해가 발생했다(피해액 572억 원). 원인을 조사해보니 땅 다지기 공사가 부실하게 이뤄져 해일을 막는 공단 방파제의 높이가 착공 때보다 무려 40㎝나 가라앉은 탓이었다.

현재까지는 부산 신항만과 인천 국제공항도 이런 전철을 밟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호언장담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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