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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지배구조 개선 약속 벌써 잊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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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두산, 지배구조 개선 약속 벌써 잊었나

[기자의 눈] 대우건설 인수를 포기한 것인가

얼마 전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던 두산그룹의 발걸음이 지배구조 개선에 역행하고 있다.

두산은 지난 1월 그룹 회장직 폐지, 계열사별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 사외이사 보강 등을 뼈대로 한 '지배구조 개선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형제의 난'과 '총수 일가의 횡령'으로 얼룩진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달여 만에 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 참여, 판검사 출신의 사외이사 내정, 집중투표제 폐지 등의 행보를 보임으로써, 지배구조 개선은커녕 오히려 과거 재벌들의 '악습'을 되풀이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오너 일가, 다시 경영 일선으로**

두산의 순환출자 구조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두산산업개발은 지난달 28일 이사회를 열고 박용현 전 서울대병원장을 새로 사외이사로 내정하고 이달 17일 주주총회에서 승인을 받기로 했다. 박 씨는 두산그룹 창업주인 고 박두병 회장의 4남이다.

박용현 씨의 장남인 태원 씨도 두산 계열사인 네오플럭스에서 두산산업개발 상무로 전보됐다.

고 박두병 회장의 장남인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은 이미 경영에서 손을 뗐다. 2남, 3남, 5남인 박용오, 용성, 용만 형제는 두산산업개발의 소유권에 대한 형제 간의 분쟁과 뒤이어 터진 수백억대 횡령 사건으로 이미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거나 곧 물러날 예정이다.

따라서 이번 인사는 두산 일가 중에서 그나마 '흠 없는' 사람들을 그룹의 핵심 회사에 배치해 오너 일가의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계산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두산은 이런 의혹을 불식시키고자 지배구조의 개선에 찬성해온 정지택 (주)두산 테크팩 BG 사장을 두산산업개발 사장으로 내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 씨가 기업인수합병(M&A)의 경험이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지배구조 개선보다는 대우건설 인수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인사에 가깝다.

한편 그동안 "외국인 전문경영인을 임용할 것"이라고 공언해 온 (주)두산은 27일 이사회를 열었으나 외국인 CEO 임용에 대한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두산은 제프리 존스 전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을 (주)두산의 CEO로 영입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실질적인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두산의 외국인 CEO 영입 계획은 그저 시늉 정도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두산 5개 계열사 사외이사 40%가 법조계 인사**

박용오, 용성, 용만 씨 등 두산 오너 일가의 횡령 사건이 2심 재판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두산그룹이 판검사 출신 인사들을 대거 사외이사로 영입하기로 한 것도 눈에 띄는 움직임이다.

두산산업개발은 오는 17일 주주총회에서 김유휴 전 서울고검 검사장과 김회선 전 서울서부지검 검사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할 계획이다. 김유휴 전 검사장은 지난달 9일 두산 형제들의 횡령에 대한 1심 판결이 집행유예에 그친 것에 대해 '유전불벌(有錢不罰)'이라고 비판했던 이용훈 대법원장의 사법고시 동기다.

두산중공업도 다음달 주주총회에서 김상희 전 법무부 차관을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주)두산도 김경한 전 서울고검 검사장을 사외인사로 영입하기로 했다.

이로써 두산의 5개 핵심 계열사들의 사외이사 30명 가운데 무려 40%인 12명이 전현직 법조인들로 구성될 예정이다. (주)두산은 7명 중 3명, 두산산업개발은 6명 중 2명, 두산중공업은 7명 중 2명, 두산인프라코어는 7명 중 3명, 오리콤은 3명 중 2명의 사외이사가 판검사 출신이 될 전망이다. 이렇게 전직 검찰 고위직 인사들이 대거 포진하다 보니 두산을 '재계의 검찰청'이라 부른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두산의 형제들이 거액의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은 현재 항소심에서 부패 사건을 전담하는 서울고법 형사1부(이인재 부장판사)에 배당된 상태다.

***경영권 방어 명분으로 '집중투표제'마저 폐지**

두산이 '집중투표제'를 폐지하기로 한 것도 두산의 지배구조 개선 의지를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두산인프라코어(옛 대우종합기계)는 지난달 17일 이사회에서 올해 주주총회부터 집중투표제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대표적인 장치로, 기업이 주주총회에서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주들이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거나 반대표를 집중시킬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최근 KT&G에 대한 미국계 헤지펀드 아이칸의 경영권 공격이 논란이 되면서 집중투표제 등의 장치가 경영권 방어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 재계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도 적대적 인수합병(M&A)의 위협으로부터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집중투표제를 실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두산중공업이 두산인프라코어 지분의 32.88%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적대적 인수합병(M&A)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집중투표제 대신 서면투표제를 도입해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주주총회의 참석이 어려운 주주들이 서면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서면투표제는 지배구조 개선의 기능을 지닌 집중투표제와 성격이 다르다.

***대우건설 인수를 포기할 셈인가**

올해 창업 110주년을 맞이한 두산그룹은 대우건설 인수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국중공업과 대우종합기계를 성공적으로 인수한 두산이 대우건설 인수에도 성공하면 그동안 그룹이 지향해 온 '종합 중공업그룹'의 모양새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두산의 중공업 계열사들은 분리된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두산산업개발은 주택건설 사업에, 두산중공업은 담수 플랜트와 발전설비 사업에 각각 집중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건설장비 및 기계 부문에 특화돼 있다. 두산은 대우건설을 인수한 뒤 이렇게 분리된 계열사들을 한데 묶어 일괄수주 등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겠다고 계산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등이 '형제의 난', '오너 일가의 비리' 등으로 도덕성에 흠결이 있는 두산에 대우건설을 넘길 수 없다고 반대해 왔다. 이런 도덕성 논란을 피하고 무사히 대우건설을 인수하기 위해 최근 두산이 발표한 것이 바로 지배구조 개선 로드맵이다.

그런데 두산의 지배구조 개선 로드맵은 그야말로 '말'로만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두산의 움직임을 보면 지배구조의 건강성이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두산은 지배구조 및 도덕성 등에서 대우건설을 인수할 자격이 없다는 비판을 극복할 것도 염두에 두고 추진해 온 지배구조 개선 노력을 벌써 포기해버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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