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에 의해 김선종 연구원의 〈PD수첩〉 인터뷰 녹취록이 공개된 지 꼭 하루만인 11일 저녁 황우석 교수팀은 그간 제기된 모든 의혹을 '황우석 죽이기'로 규정하면서 비교적 상세한 반박용 보도자료를 냈다.
이에 앞서 정치인의 대책회의 마냥 측근들을 병실에 모아 놓고 릴레이 회의를 하는가 하면, 12일 새벽에는 그간 위중한 상태라던 황 박사가 '극적으로' 연구실에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국민 과학자'의 모습과 얼마나 어울리는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 과정에서 더욱 실망스러웠던 것은 그 대책회의의 결과물이었다.
***황우석팀의 '상황 인식'이 고작 이 정도인가?**
그간 제기된 의혹들은 과연 '황우석 죽이기'였던가? 〈브릭(BRIC)〉 등을 통해 이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후배 생명과학자들은 이런 지적에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들이 침묵하지 않았던 것은 황 교수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리기' 위해서였다. 더 나아가 황 교수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과학계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다. 만약 국내 과학계가 침묵하고 있을 때 국외에서 이런 의혹이 제기됐더라면 그 파장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과학계가 가진 이같은 자기조절 능력과 우리 사회의 합리적 문제의식을 고작 '황우석 죽이기'로밖에 규정할 수 없는 황 교수팀의 상황 인식은 그간 황 교수팀이 받았던 전 국민적 애정과 지원을 염두에 두면 더욱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이번에 문제제기한 생명과학자들은 황 교수팀이 수백억 원의 지원을 받을 때 고작 월 수십만 원의 보상을 받으며 실험실에서 '제2의 황우석'을 꿈꿨던 이들이다. 황 교수팀의 '스타 과학자'들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9쌍의 중복사진'에 대해서는 왜 해명하지 않는가?**
'황우석 죽이기 1탄' 식의 선정적인 문구를 붙여 '4대 의혹'에 대한 반박이라고 내놓은 자료는 정말 목불인견이었다. 이 '4대 의혹'이라는 것들은 모두 지난주 〈프레시안〉의 지면을 통해 최초로 제기된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의 논리적 맥락과 사실 관계 속에서 되짚어 살펴볼 필요를 느낀다. 하나하나 뜯어보기로 하자.
황 교수팀은 우선 '사진 중복' 의혹(이른바 '제1탄')에 대해 단순히 편집상의 오류라는 기존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현재 〈사이언스〉, 피츠버그 대학의 제럴드 섀튼 교수와 함께 원인을 규명하고 교정 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것. 황 교수팀은 세계 최초의 복제 동물 돌리의 경우에도 〈네이처〉에 논문을 실을 때 사진 중복의 문제가 발견돼 오류를 수정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먼저 사실 관계부터 짚자. 1997년 2월 게재된 〈네이처〉의 돌리 논문과 이번 '사진 중복' 의혹에는 큰 차이가 있다. 〈네이처〉의 논문에는 아예 똑같은 사진이 '실수로' 중복해서 들어갔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이 '실수'는 곧 발견됐고 논문이 나온 2주 후 바로 사진이 바뀌는 것으로 정정됐다.
하지만 황 교수 논문의 경우, 얼른 보기에는 다른 줄기세포를 찍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세포를 찍었다고 할 수밖에 없는 사진이 8쌍이나 된다. 이게 10일까지의 상황이었다. 축소(확대) 또는 변형하거나 바로 옆 세포를 찍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촬영된 사진들이 산발적으로 발견돼 무엇인가 '의도'가 개입됐다는 의혹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황 교수팀은 아직 명확한 해명을 하지 않았다.
그런 마당에 11일에는 '어두운 사진을 밝게 하면 다른 줄기세포의 밝은 사진과 똑같다'는 새로운 의혹이 〈브릭〉에서 추가로 제기됐다(사진 1). 이게 사실이라면 총 9쌍의 '중복 사진'이 발생하는 셈이다.
***다른 줄기세포 9개의 사진은 누가, 언제 찍었는가?**
'중복 사진'과 관련해서는 김선종 연구원의 인터뷰 녹취록을 통해 또 다른 의혹(이른바 '황우석 죽이기 제4탄')도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황 교수팀의 보도자료는 김 연구원이 녹취록에서 했던 증언도 반박했다. 논문을 만들려면 사진이 많이 필요하고, 그래서 많은 사진을 찍으라고 한 것뿐이라는 해명이다.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김선종 연구원의 참담한 심정이 곳곳에 드러나는 녹취록에 대한 황 교수팀의 '자의적인 해석'은 일단 논외로 하자. 이런 황 교수팀의 해명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MBC가 녹취한 실황을 방송에서 내보내면 좀더 명확하게 판명될 것이다. 김선종 연구원의 육성을 들은 뒤에도 그것이 과연 '통상적인 지시'라거나 '강압에 의한 진술'이라고 우길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이 대목은 일단 MBC의 몫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지금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한번만 더 생각해보면 아주 사리가 분명한 일이다.
도대체 2번과 3번 줄기세포 외의 다른 9개 세포의 사진을 김 연구원이 아닌 누가, 언제 찍었는가? 김 연구원은 2번, 3번 외의 다른 줄기세포를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면 다른 누군가가 나머지 줄기세포 9개(4~12번)의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도 존재할 것이다. 황우석 교수팀은 지금 당장이라도 그 9개의 사진을 누가, 언제, 어떻게 찍었는지를 공개하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보관하고 있는 그 사진들도 공개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어느 언론도 이같은 질문을 제기하지도 않았거니와 황 교수팀 역시 다른 촬영자의 존재를 언급한 적이 없다. 만약 다른 촬영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김 연구원이 사실은 11개 모두의 줄기세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개만 받았다고 거짓 진술을 한 것인가? 그러나 김 연구원이 2번과 3번 등 2개의 줄기세포만을 받았다는 진술은 MBC 〈PD수첩〉의 녹취록은 물론 황 교수팀과 동행한 가운데 촬영된 것으로 알려진 YTN 인터뷰에서도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은가?
마냥 '편집상의 실수'라고 주장하기에 앞서 이같은 분명한 사리에 대해 답변하지 않는 해명은 '해명력'을 가질 수 없다.
***DNA 지문 분석 조작 의혹, 문제제기의 맥락을 제대로 파악해야**
황 교수팀은 'DNA 지문분석 조작' 의혹(이른바 '황우석 죽이기 제2탄')에 대해서도 '뜬 구름 잡는' 해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해명을 하려면 최소한 의혹이 제기된 맥락 정도는 제대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생명과학자들이 제기한 의혹의 핵심은 황 교수팀의 체세포 및 줄기세포 DNA 지문분석 결과가 복사한 것처럼 '똑같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 결과로 나온 피크들의 높이, 모양 심지어 노이즈까지 놀랍도록 흡사하다는 것이었다. 이미 8일자 〈프레시안〉 기사를 통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듯이, DNA 지문 분석 결과는 매번 사람이 직접 손으로 해야 하는 작업이 많고 기계에 넣는 시료의 양도 미세하게나마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같은 시료에서 DNA를 채취했다고 하더라도 피크의 높이, 모양, 노이즈는 다를 수밖에 없다. 연구자가 '신의 손'이 아닌 이상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황 교수팀의 2004년 〈사이언스〉 논문의 피크를 보아도 이를 쉽게 알 수 있다(그림 1).
그런데 황 교수팀은 '확대를 해보니 피크의 모양이 달랐다'는 식으로 이를 피해가고 있다. 생명과학자들의 문제제기는 DNA 지문 분석 결과를 복사해서 두 벌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피크 모양이 놀랄 만큼 흡사한데, 시료가 다르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얘기였다. 당장 황 교수팀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공개한 이른바 DNA 지문분석 원자료 4장을 검토한 대다수 생명과학자들은 '놀랄 만큼 흡사하다'는 당초의 입장을 꺾지 않고 있다. 이런 차이는 서로 다른 '시력'의 문제인가?
물론 이렇게 흡사한 피크를 얻어낼 수 있는 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체세포로부터 DNA를 채취해 '효소 증폭 과정(PCR)'을 거친 후 두 번에 걸쳐 DNA 지문분석 결과를 얻는다면(loading) 이렇게 아주 흡사한 피크를 가진 1쌍의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같은 체세포로부터 얻은 결과를 하나는 제공자의 체세포의 검사 결과로, 다른 하나는 줄기세포의 검사 결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11개의 줄기세포 실체를 봤다는 사람은 없다**
마지막으로 황 교수팀은 '줄기세포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주장(이른바 '황우석 죽이기 제3탄')에도 궁색한 해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줄기세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국내외 전문가들이 지켜봤으며 그 과정에 대한 기록과 사진이 있다는 것이다.
먼저 얘기할 것이 있다. 〈프레시안〉은 〈사이언스〉 논문에 등장하는 11개의 줄기세포가 사실은 하나도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단정하거나 그럴지 모른다는 시사를 한 바가 없다. 소장 생명과학자들의 지적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던 것이다.
"이런 DNA 지문분석 결과의 유사성은 최소한 6개, 많게는 10개의 줄기세포에 대한 DNA 검증 결과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어서 파문이 확산될 전망이다. 즉 체세포 DNA 지문분석 결과를 체세포와 줄기세포 두 장으로 부풀려 논문의 증빙 자료로 제시하지 않았느냐는 것이 이 비교자료를 본 전공자들이 갖는 의혹이다."
이는 '줄기세포가 있다(또는 없다)'는 식의 애매한 표현으로 상황을 정리한 황 교수팀에 비해 오히려 과학적 자료에 의해 검증가능한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또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의 제2저자로 올라 있는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이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논문이 나온 과정을 전혀 모른다"고 고백한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황 교수로부터 줄기세포 2개를 제공받아 연구하고 있는 미국 뉴욕 슬로언-케터링 연구소의 로렌츠 스투더 박사도 10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황 교수가 제공한 줄기세포가 (진짜 환자로부터 유래한 것인지) 검사해본 적이 없으며, 이것이 환자 세포를 복제해 나왔는지, 불임클리닉에서 얻은 배아에서 나왔는지 알 방도가 없다"고 밝혔다.
현재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네트워크'에 속해 있는 국내외 전문가들 가운데 누구도 11개의 줄기세포가 정말 환자로부터 유래한 것이라고 명확히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 역시 명쾌한 해결책이 있다. 지금 당장 11명 환자의 체세포와 그 환자로부터 추출했다는 줄기세포에 대한 DNA 지문분석을 다시 실시하면 된다. 더구나 〈PD수첩〉은 황 교수팀이 제공한 2번 줄기세포를 DNA 지문분석한 결과, 해당 환자의 체세포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갖고 있다(〈프레시안〉 6일자 보도 참고). 황 교수 입장에서는 DNA 지문분석을 피해갈 도리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황 교수팀은 지금 당장 보유하고 있는 줄기세포와 서울대, 고려대, 미국 뉴욕의 슬로언-케터링 연구소에 분양한 줄기세포들을 환자의 체세포와 비교하는 DNA 지문분석에 응해야 한다. 불과 2~3일이면 줄기세포 '진위 논란'을 둘러싼 모든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는 이런 쉬운 방법을 왜 피해가는 것인가? 앞에서 황 교수팀이 선례로 들었던 돌리 역시 이런 방법을 통해 의혹을 해소했다.
***황우석 교수팀 '해명'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언론들**
글을 마무리하면서, 꼭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앞에서 살펴본 황우석 교수의 4가지 해명을 그대로 앵무새처럼 반복한 수많은 언론들은 한번쯤 자기 성찰을 해볼 일이다. 최근 한 언론은 〈프레시안〉이 인터넷의 여러 가지 의혹 제기를 '여과 없이' 보도한다고 지청구를 놓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황우석 교수팀의 '함량 미달' 해명을 '여과 없이' 보도하는 대부분 언론들의 행태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프레시안〉이 지난주 집중적으로 보도한 의혹들은 최소한 황 교수가 궁색한 해명이나마 내놓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사실'에 기반을 둔 '힘'을 갖고 있다.
이제 언론들은 '〈프레시안〉이 녹취록을 어떻게 구했을까'와 같은, 사안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들의 취재력의 한계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내용에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과연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의 '총체적 진실'은 무엇인지, 또 그 동안 제기된 의혹과 그에 대한 황 교수팀의 해명 사이에는 어떤 간극들이 존재하는지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만약 '진실'이 드러났을 때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도 고민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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