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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통계 80%가 통계청 검증 없이 쏟아져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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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통계 80%가 통계청 검증 없이 쏟아져 나와요"

[인터뷰]김민경 통계청 차장 "국가통계위원회 기대"

주요 국가정책의 근거가 되는 부동산 통계, 노동부의 비정규직 통계 등이 부실한 것으로 최근 드러나면서 통계 품질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도 국가통계 체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발전방안을 마련해 추진 중이다. 7일에는 대한통계협회 주최로 '국가통계 발전방향'에 관한 심포지엄도 열렸다.

이에〈프레시안〉은 김민경(58) 통계청 차장을 만나 통계청의 현주소와 격변기를 맞은 국가통계 체계의 전망에 대해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7일 〈프레시안〉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김민경 차장은 통계청이 지난 8월 차관급 기관으로 승격된 후 첫 차장으로 승진해 화제가 됐고, 최근에는 재경부가 고용이나 산업활동 등에 관한 통계를 통계청에서 공식 발표하기 직전에 추정치로 흘리는 데 대해 직설적인 비판을 가해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그는 통계청의 전신인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의 7급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뒤 36년 동안 통계전문 공무원의 길을 걸어 오면서 업무능력과 추진력을 인정받아 현재 3명뿐인 1급 여성관료 중 한 사람이 된 인물이다.

***"인구 대비 통계청 핵심인력 비율, 미국의 5분의 1 수준"**

'국가정책의 신뢰성은 통계로부터 나온다'는 경구가 있다. 국가통계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말이다. 그런데 김민경 통계청 차장은 이 경구 앞에서 부끄러워한다. 그는 "우리나라의 국가통계 기법이 그동안 선진국 수준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고 자부하면서도 빈약한 통계조직의 현실을 걱정한다.

김 차장은 "통계청의 핵심인력이라고 할 수 있는 기획요원이 2004년 현재 인구 100만 명당 한국은 10명에 불과하다"면서 "비슷한 통계체계를 가진 미국은 100만 명 당 51명, 캐다다는 139명, 네덜란드는 159명"이라고 말한다.

통계청 직원이 2100여 명(2004년 기준)이라고 하지만 본청에 있는 기획요원은 318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현장조사에 투입되는 인원이다.

김 차장은 "통계는 '수치로 나타나는 팩트 파인딩(fact finding)'이기 때문에 충실한 통계조사 과정을 거쳐야 신뢰할 만한 수치가 나오게 돼 있다"면서 "국가통계 중에서도 가장 기초가 되는 국가기본통계를 생산하는 통계청의 실정이 이러하니 다른 정부부처의 통계인력 현황은 말할 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국가통계 체계는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는 '분산형 통계제도'에 속한다. 국가통계 생산부서가 통계청을 비롯해 각 부처로 흩어져 있는 것이다.

통계청이 생산하는 국가기본통계는 국가통계 중에서도 범용성이 커 각 부처가 공유할 필요가 있는 통계들을 말하며 현재 53종이 있다. 이밖에 각 부처가 생산하는 국가통계가 450종이 있어,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통계는 모두 503종이다.

반면 캐나다 같은 곳의 국가통계 체계는 모든 통계를 한 기관에서 생산하는 집중형이다. 캐나다에서는 법원이나 경찰 관련 통계도 해당 부처들이 통계청에 자료를 제공하면 통계청이 각종 통계를 생산하고 발표한다.

영국은 재무부 산하 조직으로 국가통계국(ONS)을 두고 있으나, 통계보고를 재무부에 하도록 돼 있어 정치적으로 독립된 조직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비판이 거세지자 지난달 말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은 국가통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재무부에서 ONS를 완전히 독립시켜 영국은행처럼 만들겠다"고 발표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김 차장은 "통계청의 독립성에서는 우리가 영국보다 낫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국가통계의 품질 개선이 더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김 차장은 "분산형 통계체계는 각 부처의 통계조직이 일정수준 이상이라는 전제조건을 갖춰야 신뢰성을 가질 수 있다"면서 "완전 분산형인 미국의 경우 각 부처 통계조직이 통계청에 버금가는 규모이며, 일본도 운수성에서 볼 수 있듯이 국 단위의 통계전담 부서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실정은 어떤가. 노동부와 농림부, 보건복지부 등 주요 국가통계를 자체 생산하는 몇 개 부처에는 통계담담 직원이 10여 명씩 있는 수준이고, 대부분의 다른 부처에는 통계전담 인원이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차장은 "국가통계는 정부의 승인을 받은 것이지만 137개 기관이 쏟아내는 대부분의 국가통계가 인력부족으로 산하기관이나 민간에게 맡겨져 생산되고 있다"고 꼬집는다.

심지어 '8.31 부동산 대책' 직전에 발표된 행정자치부의 부동산 통계는 정부가 승인한 국가통계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돼 뒤늦게 국가통계로 편입됐다. 또 "실업율 사실상 30%" 등으로 흥미를 끄는 많은 통계들이 통계청을 인용해 보도되지만, 실제로는 통계청의 국가기본통계를 자의적으로 활용한 '가공통계'인 것들이 많아 통계청이 애를 먹기도 한다.

***국가통계 품질, 근본적인 한계**

더 놀라운 것은 각 부처가 국가통계로 마구 생산해 내는 통계들이 전혀 검증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민경 차장은 "통계법상 각 부처에서 만드는 국가통계는 발표 직전에 통계청과 협의를 거치게 돼있다"면서 "그러나 발표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80%가 '협의면제'되고 있다"고 밝혔다. 503종의 국가통계 중 무려 418종이 통계청의 검증 없이 발표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수조사가 아닌 표본조사인 경우 대표성 있는 표본조사가 관건인데, 산하기관이나 민간조직에 통계조사를 맡길 경우 해당 산하기관이나 민간조직에서는 조사를 어떻게 하든 용역비를 받기는 어차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표본을 임의로 대체하는 등 부실 요소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노동부가 발표한 '비정규직 규모가 통계조사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는 내용도 국가통계가 얼마나 엉망으로 만들어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문제가 된 통계에 대해 노동부 장관은 하룻만에 "재검증해보니 실제로는 비정규직이 증가했다"고 번복하며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이같은 어처구니없는 부실통계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조사를 원자료로 비정규직 규모를 산출해 그 의미까지 분석한 조사를 이 업무를 처음 맡은 1명의 조사요원이 예년에 비해 촉박한 시한 내에 해내려다 빚은 실수인 것으로 드러났다.

단순한 규모의 변화가 아니라 증감의 추세 자체가 처음으로 바뀐 결과가 나온 통계라면 당연히 자체적으로도 재검증해야 했지만, 이런 과정조차 없었기에 노동부 장관이 "통계청의 원자료에 문제가 있었다"는 떠넘기기식 해명을 해야 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김 차장은 "현실적으로 통계청이 검증할 여력도 없어 면제를 해주는 측면도 있다"면서 "따라서 현실적으로 통계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각 부처의 통계 생산과정을 개선하기 위한 인력과 예산 등을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당장 통계청의 예산만 해도 보통 1400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2005년 예산은 2700억 원이었지만 그 가운데 1300억 원이 인구센서스 비용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증액은 아니었다. 내년 예산 1700억 원도 서비스업 조사(244억 원)와 광공업 조사 등 5년 주기의 굵직한 조사들이 예정돼 있기에 좀 많아진 것일 뿐이다.

김 차장은 "한정된 예산에서 통계체계 혁신을 위해 예산을 우선 배정하려면 통폐합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여러 부처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면서 통계예산 지원 확대를 요구하기도 했다.

김 차장은 인력과 예산 문제 외에 통계조사 환경의 변화도 애로점으로 거론했다. 최근 인구센서스 과정에서 물의를 빚어졌듯이 개인의 프라이버시 의식이 높아지면서 민감한 질문들에 대해 거부하는 응답자가 많아진 것이 한 예다.

김 차장은 "교육수준, 혼인과 이혼 여부 등이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이어서 조사할 수 없게 된다면 국가기본통계를 생산하는 의미가 흔들릴 것"이라면서 "다만 소득 등 국세청 자료 등 다른 기관들이 이미 갖고 있는 자료 등을 공유할 수 있다면 조사에 따른 노력과 비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국가기관들이 기본적인 자료들은 공유하는 체제가 정착돼 있다"고 덧붙였다.

***"통계법 전면개정 추진 중"**

이같은 제도변화를 차관급 기관인 통계청이 주도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는 경제부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통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통계체계 전반을 획기적으로 뜯어고치기 위해 '통계법 전부개정 법률안'을 마련해 입법예고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국가통계위원회는 사회발전 단계에 필요한 국가통계의 양적 확충, 국가통계의 신뢰성 확보 등을 주도하는 통계통제 센터다. 기존의 통계위원회는 통계청의 자문기구 성격이었으나 이 국가통계위원회는 통계청을 사무국으로 삼고 통계청의 통계개발팀은 통계청 산하 '국가통계개발원'으로 별도조직화하는 등 유기적인 통계제도의 정점에 서게 된다.

김 차장은 "국가통계위원회가 설치되면 노령층 취업현황, 저출산 관련 통계 등 시대변화를 반영하는 새로운 통계지표의 개발이 활발해지고, 각 부처별로 흩어져 있는 통계가 공유되고, 통계청 주관으로 부처별 통계의 품질을 진단하는 시스템이 도입돼 통계의 신뢰도가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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