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경제사회 전반에 대한 금융의 영향력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부쩍 강화된 금융의 힘은 이제 국가정책과 기업활동은 물론 일반 국민들의 일상생활도 좌지우지할 정도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금융시장에서 실제로 전개되는 현상과 흐름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해졌다.
이런 관점에서 <프레시안>은 금융뉴스에 강한 로이터통신사의 한국지사와 제휴해, 금융시장에 관한 <로이터>의 분석기사와 보도기사를 제공받아 싣기로 했다. 보도기사는 앞으로 준비가 되는대로 매일 몇 건씩 <프레시안>에 게재될 예정이며, 분석기사는 금융시장 또는 금융정책에 대한 전망과 해설 위주로 매주 월요일 오전에 게재된다.
특히 이 분석기사는 <한겨레> 기자를 거쳐 현재 <로이터> 한국지사에서 일하고 있는 이봉현 선임기자가 <프레시안> 독자들을 위해 전담해 집필할 것을 자청했다. 다음은 그 첫 기사다. <편집자>
차기 미국 연준(FRB) 의장으로 지명된 벤 버냉키가 지난 주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면, 11월 금융통화위원회(10일ㆍ이하 금통위)가 열리는 이번 주에는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박승 한은 총재의 어법, 버냉키와 닮은꼴**
버냉키가 현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의 모호한 어법과 달리 좀 더 직설적인 편이라고 해서 화제가 됐는데, 박승 총재도 버냉키 쪽에 가깝다. 박 총재는 지난 9월 금통위가 열린 날 금융시장에 곧 금리인상이 있을 것이란 암시를 주면서 "지난달(8월)에 강한 (방향 전환의) 시그널을 보냈는데 시장이 잘 모르는 것 같더라"고 말했을 정도로 필요하면 직설적인 언급을 하는 편이다.
그런 박 총재가 콜 금리를 3년5개월 만에 0.25%포인트 올린 10월에는 향후 정책방향에 대해 모호한 언급에 그쳤다. "모든 것을 열어놓고 있다. 유가나 기상변화, 경기 등 상황 변화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라고 원론적인 말을 했을 뿐이다.
사실 10월 한은의 콜 금리 인상은 오랜 저금리 정책이 크게 방향을 틀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조처였다. 중앙은행 사람들이 '아기 걸음마(Baby step)'라고 부르는 0.25%포인트의 인상이었지만 먼 길을 출발하는 첫 걸음이었다. 박 총재는 모호하게 말했지만, 금리 인상이 한 차례로 그칠 것이라고 예상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지난 한 달간의 경제지표 변화를 들여다보면**
금통위는 그 후 한 달 사이에 업데이트된 경제지표를 받아놓고 있다. 그간 경기회복세는 조금 더 확대됐고 물가는 여전히 안정세를 유지했다. 견조한 흐름을 보이는 수출에 소비회복이 가세하면서 3분기 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4.4%(전분기 대비로는 1.8%)인 것으로 집계됐다. 4분기에는 잠재성장률(약 5%)에 근접한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주식시장은 11월에 외국인이 돌아오면서 자산효과(wealth effect)가 기대될 만큼 분위기가 좋은 편이다.
그렇지만 투자는 여전히 부진하고 체감경기는 회복이 완만하다. 소비회복이 지속되리라고 확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박병원 재경부 차관이 지난 주 금요일 브리핑에서 "향후 경기흐름에 대해 낙관하기는 힘들다"고 말한 것도 며칠 앞으로 다가온 금통위에서 콜 금리를 연속으로 올릴 것을 염려한 엄살 만은 아닌 것이다.
물가는 10월에 전년 동월 대비 2.5% 상승(전월 대비로는 0.2% 하락)한 데 이어 11월에도 농산물과 석유류 가격 안정으로 전월 대비로 소폭 하락하고 전년 동월 대비로는 3% 내외로 상승하는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물가압력이 당장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지만 한은은 내년 하반기 이후의 물가가 문제라고 말한다.
***시장은 이미 추가 금리인상 예상해 움직여**
시장금리는 이미 한두 차례 콜 금리가 추가로 인상될 것이라는 예상을 반영해 움직이고 있다. 지표채권(유통물량이 많고 신용도가 높아 시장금리의 흐름을 잘 반영하는 채권)인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주 말 5.07%에 이르러 2년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까지 상승했다.
지난주 미 연준이 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미국 정책금리와 국내 콜 금리의 격차가 0.5%포인트로 벌어졌는데, 이 때문에 한은이 금리인상 압박을 받으리란 예상이 시장금리를 밀어올린 것이다. 은행 대출금리는 9월에 이미 전달보다 0.12%포인트 상승해 5.50%까지 올랐고 예금상품은 이제 5%를 주는 것을 찾기가 어렵지 않게 됐다. 상호저축은행 같은 곳은 이미 연 6%의 이자를 주는 곳도 나왔다.
금통위는 보통 경기, 물가, 금융시장, 국제경제 등 4가지 변수를 고려해서 콜 금리를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시장의 한 분석가는 이 4가지를 각각 점수화해 콜 금리가 조정될 가능성이 얼마인지를 알아맞추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시장심리 안정 위해 금리동결 가능성도**
하지만 금통위는 총재를 포함해 7명의 금통위원들이 각자 나름대로 개성을 가지고 1표씩을 행사하는 기관이다. 같은 지표를 갖고도 다른 해석을 하고 전망도 달리 내린다. 그 단적인 예가 1년 전인 지난해 11월 금통위원 4명이 찬성표를 던져 금리를 0.25%포인트 끌어내린 경우다. 금융시장은 박 총재가 주도했던 지난해 8월의 콜 금리 인하와 대비해 이 11월의 금리 인하를 '금통위원들의 반란'이라고 불렀다.
금통위원들 가운데 김태동 위원은 8월과 9월, 두 달 연속 콜 금리 인상을 강하게 요구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소수의견을 남기는 '매파'의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처럼 물가불안이나 자금흐름의 왜곡, 부동산 버블의 가능성을 우려하며 한두 차례 더 금리를 올리자고 할 '매파'도 있고, 겨우 살아나는 경기의 불씨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된다는 '비둘기파'도 있다. 이번주에 열릴 금통위에서도 만만치 않은 관점의 차이가 노출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미국이 5.0%에 이를 때까지 정책금리를 올릴 전망이고 유럽 중앙은행도 금리인상을 검토하는 등 주변여건은 금통위가 한 차례 금리를 올렸다고 해서 손 놓고 쉬어도 될 만큼 여유롭지 않다. 금통위가 이번 주에 두 달째 연속으로 콜 금리를 올리기 위해 필요한 이유를 찾지 못할 것도 없는 상황이다.
다만, 지난 달 콜 금리를 올린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던 지금흐름의 왜곡이 이제는 해소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장단기 시장금리가 이미 가파르고 오르고 있다. 이런 점에서 금통위가 이번 주에 또다시 콜 금리를 올려 시장의 흐름을 추인하기보다는 시장심리를 안정시키는 방안을 고민하는 측면이 더 강해 보이기도 한다. 이번 달에는 콜 금리가 동결될 것이라는 쪽에 무게를 두는 시장 전문가들이 좀더 많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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