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헌법 119조는 이렇게 돼있다. "①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②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바로 이 헌법 119조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삼성이 "재벌 소속 금융사의 계열사 주식 의결권을 줄이도록 한 공정거래법이 헌법이 보장한 재산권을 침해하는 등 위헌소지가 있다"며 지난 6월 헌법소원을 냈기 때문이다. 삼성이 문제 삼은 공정거래법 11조는 바로 헌법 119조에 근거한 것이다.
'헌법 다시보기'라는 연속 토론회를 개최해온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18일 헌법 119조를 비롯한 경제헌법의 의미를 짚어보고 바람직한 개정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는 삼성의 헌법소원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졌고, 미래지향적인 경제헌법의 방향이 제시됐다.
***"헌법 119조는 시장과 정부의 보완적 관계를 전제로 한 것"**
최배근 건국대 교수(경제학)는 '경제헌법 개정, 화두는 다원화'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헌법 119조에 대한 최근의 논의를 개괄하고 "헌법 119조의 해석에 대한 최근의 논란은 기본적으로 경제이론의 무지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자유경제'를 규정한 119조의 ①항과 '규제와 조정'을 규정한 ②항이 양립불가능하다고 보거나 ②항에서 국가개입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하여 이를 '사회주의적 조항'이라고 말하는 것은 119조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이라며 "119조는 시장경제 질서를 전제로 시장이 부재하거나 시장경쟁이 불충분한 '시장실패'의 영역들에 대한 정부역할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헌법 119조는 시장과 정부가 서로에 대한 대안, 즉 상호배타적인 대체재가 아니라 정부정책의 역할이 시장에 의한 조정을 용이하게 한다는 보완적 관계로 간주하고 있다"며 "한국경제와 삼성을 비롯한 재벌의 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했던 과거의 '수출지향적 공업정책'이야말로 119조가 현실에 적용된 단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부에서는 '119조 2항이 각종 관치경제의 근거로 활용돼 경제성장 정체의 원인이 됐다'고 억지주장을 펴고 있다"며 "하지만 1987년 이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987~89년에 연평균 9.5%, 1990~1996년에는 연평균 7.9%였던 만큼 정체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네트워크 경제' 전면 등장…'배타적 소유권' 보장 재검토해야**
최배근 교수는 "경제헌법에서 재산권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하는 견해는 변화하는 경제현실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유화냐 국유화냐'와 같은 낡은 패러다임에 갇힌 것"이라고 주장했다. 변화하는 경제현실에 맞는 헌법의 변화가 필요하지만 그 방향은 기존의 '배타적 재산권'에 대한 강조를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 교수는 "지금의 경제헌법은 제조업에 기반을 둔 산업사회에 기초하고 있다"며 "최근 정보통신 등의 발달에 따라 정보와 서비스 등 무형재의 부가가치 창출력이 획기적으로 증가한 것을 염두에 두면 산업사회에 기반을 둔 경제헌법은 현실적합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런 경제환경의 변화는 기존의 재산권 체계에도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고 주장했다. 배타적 재산권만 강조하다가는 경제의 진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단적으로 미래 원천기술 확보가 절체절명의 시대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위험(high risk)-고수익(high return)'의 특성을 갖는 첨단기술을 확보하는 데는 각 구성원들이 네트워크를 구성해 리스크와 보상을 공유하는 게 효과적"이라며 "새로운 경제환경, 즉 '네트워크 경제'의 부상은 재산권 원칙의 재평가와 법적 체계의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일시대' 대비하는 경제헌법 모색할 때**
최배근 교수는 더 나아가 "지금의 경제헌법은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독일식 흡수통일이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현재의 통일은 남북한 각자가 내부변화를 통한 점진적 통합의 방식일 가능성이 높다"며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이런 시각을 전제할 경우 북한체제의 변화가 꼭 남한체제를 따르는 것일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많은 이들이 북한체제의 변화와 관련해 중국식 시장경제를 대안으로 여기지만 지난 25년간 진행된 중국식 시장경제는 남한의 시장경제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며 "가장 핵심적인 것은 다양한 소유제가 공존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예를 들어 중국은 부동산에 대해 원칙적으로 건물소유와 토지임대만 가능하지만 시장경제를 운용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독일에서는 통일과정에서 동독 땅의 50%에 대한 서독인의 옛 소유권을 인정했는데 그것이 동독지역의 투자에 걸림돌로 작용한 예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이런 점을 고려하면 통일시대에 맞는 다양한 소유권에 기초한 기업조직이 등장할 가능성을 보장하는 경제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배타적 소유권만을 강조하는 식의 접근은 이런 흐름과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삼성의 독주' 우리 경제헌법에 맞는지 점검해야**
최배근 교수에 이어서 '삼성공화국, 경제헌법 원칙에 대해 말할 자격 있나'에 대해 발표를 한 송호창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부소장(변호사)은 공정거래법에 대한 삼성의 위헌 헌법소원을 강력히 비판했다.
송호창 부소장은 "삼성이 문제 삼은 공정거래법 11조는 금융·보험 계열사의 주식 취득·보유·처분은 허용하면서 일정한 조건에서 공공복리를 위해 의결권의 일부만 제한하는 것이므로 재산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 있다"고 지적했다.
송 부소장은 또 "특히 이 조항은 재벌이 금융 계열사를 이용해 지배력을 유지ㆍ확장하는 것을 억제하고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지배하는 데 따른 폐해를 예방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입법목적이 '사회적 시장경제' 질서를 표방하고 있는 우리 헌법과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송 부소장은 "공정거래법 11조는 총수 일가가 극히 적은 지분으로 금융·보험 계열사를 순환고리로 해서 그룹 전체를 지배함으로써 국민경제에 갖가지 폐해가 생긴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이번 삼성의 헌법소원을 계기로 이른바 '삼성의 독주'가 우리의 경제헌법 원칙에 부합하는지 점검할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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