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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16세가 역설하는 '미래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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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16세가 역설하는 '미래의 가치'

[화제의 신간]"인간. 생명 최우선되는 평화의 시대 지향해야"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미래의 도전들>(이동준 옮김.물푸레 간)은 지난 4월 교황으로 선출된 베네딕토 16세가 올해 1월까지 추기경 시절 독일어로 발표한 글들을 모아 취임 후 발간한 첫 책으로 세계 최초로 번역돼 국내에 소개됐다.

무엇보다 이 책은 대변혁 시대에 그가 어떠한 입장에서 교황직을 수행해 나갈 것인지를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도 "이 책은 미래의 가치에 대한 베네딕토 16세의 깊고 분명한 얘기"라고 추천사를 썼다.

***교황, "인권과 생명이 최우선 존중되는 평화의 시대 지향해야"**

단적으로 그가 추구하는 미래의 가치는 '인권과 생명이 최우선 존중되는 평화의 시대'다. 그가 다른 모든 논의에 앞서 독일인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인 조국에 대한 반성부터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교황은 선악의 가치 판단기준이 다수결의 원리와 집단이기주의에 의해 무자비하게 남용된 대표적 사례로 히틀러 집권과 제2차 세계대전을 꼽으면서 "민주주의의 원칙은 심각한 허점을 지니고 있으며, 그 때문에 정치적 이념이나 시대를 초월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인권이나 도덕과 같은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교황은 국가의 횡포로 파괴될 수 없는 인권을 강조하기 위해 위대한 과학자 사하로프의 투쟁을 인용한다.

1955년 11월 핵실험 과정에서 젊은 병사 한 명과 두살배기 소녀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고 직후 어느 만찬석상에서 사하로프 박사는 술잔을 치켜들고 "러시아의 핵무기들이 도시 위에서 폭발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자 핵무기 개발을 담당하고 있었던 한 고위장교가 이에 대한 화답으로 "학자들이 맡은 역할은 이 무기들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무기들이 어떻게 사용되는냐는 문제는 학자들의 소관사항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고위장교는 "학자들이 지닌 사고력은 그런 문제를 담당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사하로프 박사는 "어느 누구도 인류의 생존에 관계된 문제에 있어서는 그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는 나의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답했다.

교황은 "인간을 살해하거나 살해할 권리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인간을 인간으로서 대우하는 인류 공동의 도덕적 통찰력을 부정하면 새로운 계급체계가 만들어지게 되고 이러한 체계 하에서는 인간이 온전하게 인간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존중될 수 없기 때문에 억압적인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교황은 "사하로프 박사는 전체를 위해 누구나 이러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강도높게 지적해 왔으며 이러한 책임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찾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존경을 표했다.

그러나 교황은 "사하로프 박사의 메시지가 시사성을 띠고 있었던 정치적 환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가 고통을 대가로 치르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인간의 품위와 인권을 지향했던 정신, 양심에 복종하도록 호소했던 그 메시지가 유효하게 남아 있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라면서 "맑시스트 정당들이 지배를 하면서부터 구체적인 권력의 형태로 나타나 인간성이 파괴되고 침해되었던 역사는 그 형태는 달라졌지만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종교와 국가는 분리돼야"**

교황은 나아가 왜 종교와 국가는 분리되어야 하는지 소신을 밝혔다. 국가를 그 자체로 진리와 도덕의 원천이 아닌 조직으로 규정한 교황은 "국가는 국가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척도, 선에 관한 인식과 진리에 관한 척도를 국가 자신의 외부에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가의 '외부'란 가장 이상적인 경우 이성의 순수한 분별력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분별력은 독립된 철학이 관장하고 보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실제로 그처럼 순수하고 역사로부터 독립적인 이성적 분별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국가와 종교를 동일시하고 국가를 종교적으로 절대화하면서 동시에 종교를 훼손하려는 시도들은 역사의 전과정을 통해 존재해 왔다. 따라서 교황은 "교회는 스스로 국가의 위치로 격상되거나 권력기관이 되어 국가 내에서 혹은 국가 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면서 신정일치 체제를 배척했다.

교황은 "만일 그렇게 될 경우 교회는 스스로 국가가 되어 교회가 배제해야 할 대상인 절대적인 국가를 스스로 자처하게 된다"면서 "교회가 국가와 하나로 융합되면 국가의 본질은 물론 교회의 본질 역시 파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교황은 국가가 종교를 대체하는 신화로 절대화되는 위험성도 지적했다.
교황은 "우리는 지난 한 세기 동안 두 개의 신화들이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 과정을 목도해 왔다"면서 "그 중 하나가 국가사회주의 편에서 거짓된 구원의 약속을 했던 인종차별주의였고, 다른 하나가 변증법적인 역사진화론을 배경으로 혁명을 신성시한 경우"라고 밝혔다.

교황은 "두 경우 모두 선악에 대한 인간의 도덕적이고 근본적인 통찰력이 힘을 잃은 경우였다"면서 "그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인간의 분별력을 기준으로 보면 악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특정한 인종이 세상을 지배하고 미래의 세계로 인도해나가는 데 기여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곧 선이라고 주장했다"고 질타했다.

***신화화된 위험한 가치, '진보.과학,자유'**

교황은 '일반적으로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가치들 가운데 오늘날 편파적인 신화화의 과정을 거쳐 도덕적 이성을 훼손할 수 있는 가치들'로 진보, 과학, 그리고 자유 등 세 가지를 들었다.

교황에 따르면 '진보'라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신화적인 단어다. 진보는 정치적.보편적인 인간 행동의 규범으로 강요돼 왔고, 도덕적 성격을 가장 많이 지닌 것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진보는 인간이 물질세계와 관계하는 방식을 확대시켜준 것이지 마르크시즘이나 자유주의 이념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처럼 새로운 인간, 새로운 사회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더 발전된 기계를 작동시킬 수 있다고 해서 더 위대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두번째, '과학'은 합리성이 통제와 조정을 거치고 경험을 통해 입증되어 온 형식이라는 점 때문에 대단히 소중한 자산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과학 안에도 인간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병폐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과학적 능력이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되는 현상 역시 존재한다.

대량 인명 살상용 무기나 생체실험, 인간의 몸을 장기 저장소로 취급하는 현상들을 생각해보면 과학이 비인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따라서 과학 역시 도덕적 척도들의 하위에 놓여야 하며, 과학이나 권력이 인간을 존중하는 데 기여하지 않고 상업화되거나 혹은 자체적으로 고유한 척도로서 과학의 성공 자체만을 지향할 때 과학의 진정한 본질은 사라지고 만다는 점 역시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세번째, '자유'라는 개념 역시 근대에 들어서면서 수 차례에 걸쳐 신화적인 모습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자유가 무정부 상태를 의미하고 단순히 제도에 반대하는 것으로 이해되며 가짜 신의 역할을 맡았던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

교황은 "인간의 자유는 오직 상호 간에 정당한 자유, 정의 안에서의 자유를 의미하며 그렇지 않는 경우는 거짓과 노예화로 귀결된다"고 경고한다. 나아가 교황은 민주주의의 소중한 원칙이라고 하는 '다수결 원칙'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낸다.

***"다수결 원칙으로 결정돼선 안될 가치들"**

교황은 "다수결의 원칙은 많은 경우, 아니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공통의 해법을 찾기 위한 '가장 이성적인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다수결 원칙이 최종 원칙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다수의 견해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도외시 할 수 없는 올바른 가치들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황은 "무고한 사람을 살상하는 행위는 결코 옳다고 할 수 없으며 그 어떠한 권력도 이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역설한다.

교황은 "인간은 누구나 살 권리가 있으며 인간의 생명은 그 어떠한 생태에서도 인간이 손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면서 "그런데 자유과 과학이라는 미명 하에 점점 더 이러한 인간의 생존권에 엄청난 균열이 생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편에서는 인간의 자유로울 권리가 다른 사람의 생존권을 담보로 행사되고 있다. 과학의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체를 이용한 생체 실험이 이뤄지고 있는 곳에서 인간의 품위가 무방비 상태로 부정되고 짓밟히고 있는 것이다. 교황은 "모든 정의와 인간 존중, 인간의 품위에 대한 존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자유와 과학이라는 개념을 탈신화화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간 배아를 이용한 줄기세포 연구가 혁명적 발전을 보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끝으로 교황은 다수결 원칙으로 결정되어서는 안되는 가치들의 존재를 부인하지 못한다면 그런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들은 과연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교황은 "철학자 아르케스와 학술적 토론을 벌이는 과정에서 토론의 진행을 맡았던 가드 러너가 '모세의 십계명을 척도로 삼으면 어떤가'라는 질문을 제기한 바 있다"면서 '십계명'에서 인류가 합의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 기준을 찾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교황은 "실제로 십계명은 기독교인이나 유대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십계명은 도덕적 이성을 표현하고 있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기독교권뿐만 아니라 다른 거대 문명권들에서 말하는 지혜에 해당한다"면서 "십계명을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어쩌면 근본적인 이성의 구제에 도움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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