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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발표 '총기 참사', 미스테리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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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발표 '총기 참사', 미스테리 너무 많다

부상자들, 군과 다른 증언해. 한국-브라질 축구로 군기 해이 의혹

한국-브라질 청소년축구가 한국팀의 패배로 끝난 직후인 19일 새벽 2시40분, 연천 모부대에서는 김모 일병이 7명의 상병과 1명의 중위를 수류탄과 총기 난사로 살해하는 희대의 참극이 발생했다.

군 합동조사단은 19일 김 일병의 '우발적 충동'에 따른 사건으로 발표했다가 여론의 비난이 쏟아지자, 20일에는 사회 부적응자의 '계획적 범죄'로 바꿔 사건 전모를 다시 발표했다. 그러나 20일 군 발표도 앞뒤가 안맞는 '미스테리'의 연속으로, 군이 여전히 사건 진상을 은폐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은 계속되고 있어, 군이 아닌 외부기관의 전면적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군과 전혀 다른 부상자들의 증언**

우선 가장 큰 의혹은, 사건 발발직전인 18일 밤, 19일 새벽 사이의 정황에 대한 군의 발표와 전혀 다른 주장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20일 <문화일보> 보도에 따르면, 국방부 발표와는 달리 김 일병은 먼저 소대장과 취사장에 있던 고참병을 사살한 뒤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졌다는 부상병들의 증언이 나왔다. 이 신문에 따르면, 일부 부상병들은 병원으로 찾아온 가족들에게 “김 일병이 김종명 중위와 이건욱 상병에게 먼저 총을 쏜 뒤 내무반에 와서 다시 총을 난사하고 뛰쳐 나오려는 장병들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고 말했다.

이는 가장 먼저 김 일병이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진 뒤 휴게실로 쓰이던 옆의 체력단련실로 가 김 중위를 사살한 데 이어, 취사장에 있던 이 상병을 사살했다는 군 발표와 정면배치된다.

이같은 부상병들의 증언은 공교롭게도 사망한 8명이 모두 김 일병의 상급자인 소대장과 상병들이었다는 미스테리를 푸는 데도 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김 일병이 25명이 잠자고 있던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졌다면 공교롭게도 김 일병 상사들만 죽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기 때문이다.

합동수사반은 이와 관련 해당 GP 계급별 인적 구성을 설명하며 "상병은 14명, 일병은 8명, 병장과 이병은 각각 2명씩"이라고 '우연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인적 구성을 보더라도 내무반에 수류탄이 투척됐다면 왜 상병들만 죽었는가라는 미스테리는 여전히 남는다. 일각에서는 이에 김 일병이 수류탄이 아니라 총기로, 평소 원한을 품고 있었던 상병들만 골라 사살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브라질전 관람하다가 사고 터졌나**

또한 합동수사반은 18일 밤 상황과 관련, "부대원들이 TV를 봤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으나, 내무반에 남아있던 부대원들이 18일 밤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한국-브라질 청소년축구 예선전을 봤다는 전혀 다른 주장도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문화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일병 등 초소 근무자 8명을 제외한 나머지 25명의 소대원들은 19일 새벽 1시쯤 끝난 한국과 브라질의 축구경기를 시청하고 새벽 1시30분쯤 취침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 소대원 회식은 없었다고 알려지고 있으나, 최소한 간부급들은 축구가 끝난 뒤 회식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이는 김 중위가 휴게실로 쓰이던 체력단련실에서, 이 상병은 취사장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는 발표에서 기인하는 의혹이다. 회식을 하지 않았다면, 새벽 2시반에 상병이 음식을 만드는 '취사장'에 있을 이유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부대가 한국-브라질 축구때문에 근무기강이 극도로 이완된 와중에 김 일병 사건이 발생한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낳고 있다.

***미심쩍은 김 일병 체포 과정**

김 일병이 8명을 사살한 뒤 태연하게 근무초소로 되돌아갔다가 나중에 전투복을 입은 5명을 포병관측장교실로 집결시켜 추궁해 자백을 받고 체포했다는 군 발표도 설득력이 없다.

군 발표에 따르면, 김 일병은 소대장인 김 중위를 사살한 뒤 총성을 듣고 상황실에서 나오려던 후임 소대장 이모 중위에게까지 사격을 가했으나 이 중위가 문을 닫아 실패했다. 이때 이 중위는 김 일병 얼굴을 봤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내무반에서 잠자던 25명 가운데 수류탄과 총기 난사를 맞고 사망한 사람은 6명에 불과하다. 군에 따르면, 부상자는 2명에 불과할뿐 나머지 17명은 멀쩡한 상태로, 사건 발발 과정에 김 일병을 목격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상황에서 김 일병이 참사를 저지른 뒤 태연하게 근무초소로 되돌아가 범행은폐를 기도하려다가, 사건발발 10여분후 "전투복을 입은 사람을 봤다"는 후임 소대장 이 중위의 '기억'으로 전투복을 입은 병사 5명을 집합시켜 무장해제후 포병관측장교실로 집결시켜 김 일병을 추궁해 자백을 받고 체포했다는 군 발표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또한 일각에서는 일반적으로 총기 사고의 경우 사건발발후 범행자가 자살하나 이번의 경우 김 일병이 자살을 하지 않은 것은 이번 사건의 진상을 사회에 알리고자 하는 의도에 따른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군 당국은 이와 관련 "김 일병은 자살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이고 근무초소로 돌아가서는 태연하게 행동하려 했다"고 밝혀, 김 일병에게 자살의지가 없었음을 확인해줬다.

아울러 김 일병이 다시 왜 근무초소로 돌아갔는지도 군 당국이 밝혀야 할 부분이다. 이런 범행을 저지르고 나서 들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같은 제반 의혹을 깨끗이 풀기 위해선 이미 수사의 객관성을 상실한 군의 자체 수사로는 안되며, 민간기관의 엄정하면서도 중립적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여서,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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