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본에서“부시 정부는 1기 4년 동안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클린턴 정부때 진전시켰던 상당한 성과를 제거시켰다”고 하는 동시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침략 정당화”라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DJ, “부시, 클린턴 때 진전시킨 성과 제거, 사태 악화”**
김대중 전 대통령은 23일 퇴임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해 도쿄대학 야스다 강당에서 <한반도 공존과 동북아시아 지역협력>을 주제로 강연을 가졌다. 이날 기념 강연은 도쿄대 동북아시아연구회와 동양문화연구소, 도쿄대 대학원 정보학환 등이 공동 주최한 <한반도 공존과 동북아시아지역협력>이란 심포지엄의 일환으로 열린 것이다.
김 전대통령은 이날 강연에서 우선 부시 미정부에 대해“부시 정부는 1기 4년동안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클린턴 정부 때 진전시킨 상당한 성과를 제거시켰다”면서 “그 결과 북한은 NPT를 탈퇴했고 IAEA 사찰요원을 추방했으며 핵무기 개발 완료를 주장하는 등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고 부시의 대북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또“최근 미국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북한 제재론은 지금은 취할 단계가 아니다”며, 미국내 대북 강경론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그는 “북한에 대해 공정한 대가를 줬는데 북한이 약속을 어겼을 때, 그때 6자회담 참여국들은 함께 강력한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6자회담 참여국들간의 의견일치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지금 미국에 대해 극도의 증오심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반면 한편으로는 대미 관계개선을 열망하고 있고 대일 관계개선도 바라고 있다”면서 “핵이 굶주리고 있는 북한 사람들을 구할 수는 없기 때문에 북한은 지금 '제2의 중국'의 길을 지향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이며 핵이 아닌 안전과 경제발전을 바란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핵문제는 주고받는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고 북한은 6자회담에 조속히 복귀하고 핵 포기 의사를 분명히 해야 하며 미국은 상응한 대가를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 국민에 대해서도“일본 국민도 이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도록 아낌없이 성원해 달라”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은 일본의 평화와 안전에도 직결되므로 한국과 일본은 힘을 합쳐 이런 한반도 안정을 위한 노력에 협력할 것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최근 일본내 강경론을 촉발한 일본인 납치문제와 관련해서도“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에 분노하는 일본 국민의 심정을 이해하며 조속히 해결돼야 한다”면서 “일본인 납치문제가 해결되고 일북 국교정상화가 실현된다면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스쿠니 참배, 침략 정당화” 고이즈미에 직격탄**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작금의 한-일 갈등에 대해서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외국이 간섭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일본 일부의 주장이 있으나 그것은 침략의 정당화라고 볼 수 있다”며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그는 “우리는 일반 전몰자에 대해 참배하는 것을 시비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범죄적 침략전쟁을 일으켜 무고한 이웃나라와 그 국민에게 형언할 수 없는 희생을 강요한 A급 전범을 참배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또 98년 오부치 게이조 당시 수상과의 회담 내용을 소개하며 “역사정리가 명확히 이뤄졌음에도 최근 일본 정부와 여당의 지도자를 포함한 상당수 사람들이 과거 침략행위를 정당화하고 심지어 시혜적인 업적으로 주장하고 있다”며 “과거사에 대해 일본 국가를 대표한 총리가 통절한 반성을 했으면 적어도 지도자들은 이에 역행하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 일본은 독일의 태도에서 배워야 할 점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과거사 문제와 관련, “일본 일반 국민들은 마찬가지로 고통과 희생을 겪었으며 이들도 피해자”라고 강조한 뒤 “과거사 문제에 대해 올바른 교훈을 터득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 양식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은 구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 국민들은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납득할 수가 없으며 일본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DJ, “공항 ‘한류’열기, 환영인파로 착각” 조크도**
김 전 대통령은 강연에 이어 가진 청중과의 질의 응답에도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구체적인 질문들에 특유의 위트와 함께 설득력있는 설명을 곁들여 청중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학생들에 국한된 질문자 가운데 첫 번째로 나선 일본 세이가쿠 대학 학생의 ‘북한 김정일 체제 유지 및 민주화 가능성과 북한 민주화와 햇볕정책의 연관성’을 묻는 질문에 “가뜩이나 질문에 겁을 먹고 왔는데 많은 질문을 하니 당황스럽다”며 장중의 웃음을 이끌어낸 뒤 “북한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나라가 되길 바라지만 압력이나 폭력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찬성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런 방법은 남-북간 엄청난 무력대결을 가져와 민족이 공멸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역사적으로 바깥에서 압력을 가하면 가할수록 공산주의 체제는 강해지지만 개혁개방을 유도하면 공산체제는 소프트랜딩을 통해 민주화되거나 아니면 체제는 유지하되 과거에는 상상도 못하는 긍정적 변화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소련과 동유럽, 중국, 베트남 등을 쿠바와 대조한 뒤 “북한이 급격히 무너지면 남한 경제력은 감당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김 전 대통령은 이어 ‘한국의 일본문화 개방정책과 동북아 전체로의 문화개방 확대 가능성’을 묻는 도쿄대 대학원 학생의 질문에는 “당시 상당수는 개방에 반대하는 태도를 취했으나 외국 문화를 배척하지 않으면 존립하지 못하는 문화라면 없어져야 한다고 설득했다”면서 “21세기 동북아 시대에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데 문화교류협력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청중들은 “어제 공항에서 젊은 사람 천여명이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나오니 일제히 환호성에 박수였다”면서 “하지만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한 탤런트를 기다리다 친 것”이라는 김 전 대통령의 조크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어 통일 전망을 묻는 도쿄대학 재학중의 한 재일동포 3세 질문에는 “빨리 통일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치역학의 현실 관계는 간단치 않다”고 답했다. 그는 “통일에 유연성을 발휘해야 하는 문제는 미국만이 아니라 중-러-일도 마찬가지”라며 “조선 말엽 일본은 청-러와의 전쟁에서 이긴 뒤 미국은 카쓰라-태프트 조약으로 이를 인정하는 신호를 보낸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들 네 나라는 우리 운명을 부정적으로 이끄는 데 관여했고, 따라서 한 나라만 의존해서는 통일을 바라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DJ 퇴장시 기립박수 받아**
마지막 질문자로 나선 도쿄대 인문사회계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한 중국인 학생은 “중국에서의 한류 붐과 일본에서의 한류 붐이 차이가 있다”면서 “일본에서는 ‘겨울연가’가 최고의 인기를 끌었으나 중국에서는 ‘명성황후’가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등 역사갈등은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있다”고 의미심장한 지적을 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에 “한류에 대해서는 각 나라의 역사와 경험이 달라 받아들이는 것도 다르다”면서 “명성황후는 일본이 역사적으로 잘못한 것을 폭로한 드라마라 일본은 열광할 수 없으나, 중국은 일본에게 당한 역사를 생각해 동병상련으로 더 큰 관심을 가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한편 “솔직히 말해 일본이 한류를 열광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고 당황했다”면서 “일본 사람들이 한류를 적극 받아들이면서 문화적으로 우리를 받아들이는 태도와 2002년 월드컵에서 16강에서 떨어진 일본의 젊은이들이 4강에 오른 우리를 열렬히 응원하는 모습을 보고 일본이 크게 성장하고 아량이 커졌다고 생각했다”며 최근 일본 국민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그러나 “한중일 역사문제는 풀고 넘어가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때만 되면 계속해서 되풀이해 불행한 방향으로 발전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강연에는 도쿄대 교수 및 학생, 주일 외교사절, 일반인 등 1천여명이 참석해 야스다 강당을 가득 메웠으며 연설이 시작되기 2시간 전부터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등 일본내 뜨거운 관심을 반영했다. 아울러 연설 시작 1시간 전부터는 김 전 대통령 관련 다큐멘터리를 상영했고 연설이 끝난 뒤에는 참석자들이 기립박수를 보내기도 했으며 일본내 주요 언론사들이 취재에 나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일본내 각별한 관심을 짐작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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