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과 관련해 '기한 설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 일본의 진출 계획에 커다란 타격을 입혔던 미국이 21일(현지시간) "9월까지의 합의 달성에 반대하지 않는다"며 기존입장을 번복했다. 일본정부는 이를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 찬성으로 해석하며 대환영, 귀추가 주목된다.
***美, "안보리 개편 9월까지" 입장 번복. 日 '대환영'**
22일 일본 <교도(共同)통신>에 따르면, 킴 홈스 미국 국무부 국제기구담당 차관보는 이날 유엔 안보리 확대와 관련해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권고한 9월까지의 합의 달성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미국 정부 입장을 밝혔다.
오시마 겐조 일본 유엔 대사는 이와 관련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이는 기한 설정을 요구한 사무총장 권고에 반대했던 유엔 총회에서의 미 대표 발언을 미국 정부가 수정한 것"이라며 대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 외교 당국자도 "차관보의 수정 발언으로 미국의 적극적인 자세가 확인됐다"면서,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노력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 10여일만에 입장 바꿔**
미국정부의 이같은 입장 표명은 사실상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가능해, 미국의 입장 변화 배경이 주목된다.
시린 타히르 켈르 미 국무장관 선임보좌관(유엔개혁담당)은 지난 7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아난 사무총장이 '유엔 개혁의 최종시한'을 오는 9월 유엔총회로 정하자고 제안한 데 대해 "인위적인 기한 설정에 반대하며 안보리 확대는 총회에서의 투표 결과가 아니라 '콘센서스(합의)'에 기초해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 오는 9월 상임이사국 가입을 위해 총력전을 펴던 일본에게 큰 타격을 안겨주었다.
존 볼턴 미국 유엔대사 지명자도 지난 11일 상원 외교위원회 인준 청문회에서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적극 지지한다"면서도"상황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고 부정적 전망을 내놓아, 최근 중국의 거센 반발로 '작전상 후퇴'를 해야 하는 미국의 속내를 드러낸 바 있다.
당시 미국의 입장 표명으로 사실상 일본의 연내 상임이사국 진출은 좌절된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나, 킴 홈스 국무부 차관보의 이날 발언으로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이 다시 본격화할 전망이다.
***신명난 고이즈미, 아시아-아프리카에 대대적 지원 약속**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는 실제로 2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회의(반둥회의)에서 연설을 통해 "아시아-아프리카 재난방지 및 재건을 위해 앞으로 5년간 25억달러(무상지원 15억달러이상)를 지원하고, 향후 3년간 아프리카를 향한 ODA(정부개발원조.2003년 5억3천만달러)를 배로 늘리며, 아시아-아프리카 젊은이들의 교류를 지원하기 위한 '아시아 청소년 해외협력대'를 창설하겠다는 등 '돈의 힘'을 앞세워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한 대대적 표몰이에 나섰다.
그는 이같은 지원책을 발표하며 "오늘날의 현실을 반영한 유엔 조직의 개혁이 필요하다"며 "9월에 안보리 개혁이 결정나도록 협력하겠다"고 말해, 이같은 지원이 연내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한 것임을 숨기지 않았다.
고이즈미는 또 이날 연설에서 "우리나라는 과거 식민지지배와 침략에 의해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각국 사람들에게 많은 피해와 고통을 주었다"며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과의 기운을 항상 마음에 새기겠다"고, 1995년 무라야마 총리 수준의 과거사 반성 발언을 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는 2차세계대전후 일관되게 경제대국이면서도 군사대국이지 않았으며, 어떤 문제도 무력에 의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입장을 견지해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 시도에 반대하고 있는 한국-중국 등의 반대를 무력화하기 위한 대외적 제스처였다.
***미, 북핵 빌미로 입장 바꿨나**
외교가에서는 미국의 입장선회가 향후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커다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동안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를 비롯한 다수 서방언론은 노골적으로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하며, 한국과 중국 등의 반발을 폄훼해왔다. 미국의 입장 선회에는 일본에 친화적인 이같은 언론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으로는 미-일 동맹 강화를 통한 중국 견제 등 아시아 패권 유지전략이 작동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조지 W. 부시 미대통령의 일본 상임이사국 진출 지지 발언에 이어, 지난달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방일때 지지 발언에 이르기까지 미국 매파는 일관되게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해왔다.
단 최근 중국의 거센 반일시위 등에 놀라 일보후퇴했던 미국이 최근 북한의 영변원자로 가동 중단에 따른 북핵위기 고조라는 신국면을 맞아 재차 종전의 미-일동맹 전략으로 회귀, 아시아의 패권을 영구화하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 지배적 관측이다. 과연 미국의 이같은 변신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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