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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스런 세계권력' 바티칸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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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스런 세계권력' 바티칸의 어제와 오늘

[화제의 신간] '글로벌 플레이어'인가 '바티칸 크렘린'인가

지난 2일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종한 후 19일 콘클라베(비밀회의)에서 독일의 라칭거 추기경이 새 교황으로 선출됨으로써 '베네딕토 16세' 시대가 본격 개막했다.

***"교황의 영향력은 비폭력 글로벌 플레이어로서의 권위"**

<세계의 절대권력 바티칸 제국>(열대림 간)은 '비밀스런 세계권력' 바티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바티칸이 미래에 실현하고자 하는 정치적 목표와 비전까지 엿볼 수 있게 하는 시의적절한 책이다.

저자 루트비히 링 아이펠은 1960년 옛 로마제국 도시인 트리어에서 태어나 신학.철학.고전문헌학.비교종교학을 공부했으며, 독일의 최고권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차이퉁> 편집자를 거쳐 지난 90년부터 <가톨릭뉴스통신> 로마특파원으로 활동하면서 '최고의 바티칸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신생통일 이탈리아가 로마를 이탈리아 수도로 접수한 1870년 9월20일은 8세기 이후 고대 로마제국과 동일시돼온 가톨릭교황의 교회국가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소멸한 역사적인 날이다. 로마의 성문 '포르타 피아'를 뚫은 이탈리아 군대는 교황의 국가를 마지막까지 수호했던 프랑스 군대를 가볍게 물리치고 당시 교황 비오 9세를 바티칸에 가뒀다.

'영원의 도시'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4백76년 로마제국의 몰락에 비견된다. 당시 2억명의 전세계 가톨릭 신자들은 충격과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제 교황이 자신의 왕국 없이 오로지 종교적이거나 도덕적인 권위에만 의존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많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서면서 현대화한 성좌(聖座.가톨릭에서 로마의 주교좌.교황과 교황을 보좌하는 교황청의 행정기관까지 통틀어 이르는 말)의 정책은 성공적으로 수행되어 그 영향력이 다시금 확대돼 간다. 여기에는 정치적으로 뛰어난 수완을 발휘한 요한 바오로 2세의 역할이 매우 컸다.

오늘날 교황은 전세계 10억명 이상의 신자를 거느리며 전대륙에 퍼져있는 4천5백명의 주교와 40만명의 주교구 신부와 수도회 신부, 그리고 75만명의 수녀로 구성된 '정신적 군대'의 수장이다.

교황은 지구상 대부분의 국가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으며 각종 국제회합에 참여한다. 2003년에는 비록 이라크 전쟁 발발을 막지는 못했지만, 현대와 와서 수많은 정치지도자들이 교황을 최후의 구원자이며 모든 진영을 포괄하는 도덕적 기관으로 여겨 잇달아 방문한 초유의 상황이 연출됐다.

마지막까지 전쟁을 반대한 교황의 노력에 과격한 이슬람 강론자조차도 이라크 전쟁을 이슬람에 대한 범기독교인의 전쟁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반면 조지 W.부시 미국 대통령은 유엔의 지지도 받지 못하고 교황이 애원도 물리치면서 사방에서 '고립된' 입장에 처했다.

종교적 광신자들이 점화한 갈등이 점점 더 심해질수록 로마 교회 수장의 목소리는 전세계젹인 보편가치의 척도로서 더욱 중요해졌다. 모든 진영에서 나온 정치적 논평에는 경탄과 함께 이러한 질문이 뒤따랐다.

"기독교가 단지 수많은 종교 중 하나에 불과한 이 세상에서 대체 누가 교황에게 이런 국제적인 권위를 부여해 주는가?"

이에 대해 저자는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권력으로서 교황은 정치 메커니즘을 무효화할 수는 없지만 규탄하고 호소하며 화해에 기여하고 적개심을 누그러뜨리고 있다"며 교황의 위상을 '비폭력 글로벌플레이어'로 규정하고 있다.

***무솔리니와의 타협, 0.44㎢의 초미니국가 탄생**

하지만 오늘날의 위상을 갖기까지 교황제도는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했다.

1929년 2월21일 전통적인 교황의 주교 소재지였던 라테란 궁에서 무솔리니와 교황 비오 11세는 '라테란조약'을 맺었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는 성좌에 0.44㎢의 바티칸 통치령을 승인했다. 티베르 강 저편 바티칸 언덕 위에 있는 초미니 국가 '바티칸시국'이 탄생한 것이다.

교회.관청.건물.박물관.광장과 정원으로 구성된 바티칸시국은 바티칸(교황청)과 자주 혼동되지만 자체 국경을 가진 엄연한 독립국가의 개념이다. 바티칸시국은 바티칸 궁전과 함께 고유한 행정기구.경찰.우체국과 철도구간을 확보했다. 물과 전기는 이탈리아가 공급을 보증했다. 거의 4만5천㎢에 달했던 거대한 옛 교회국가와 엄청난 재산을 포기하는 대신 교황은 17억5천만리라(당시로서는 놀라운 액수로 오늘날까지 바티칸 재정의 토대가 되었다)를 보상받았다.

이처럼 성좌는 국가 영토와 국민을 거의 완전히 포기함으로써 오히려 가장 현대적인 국가기관이 됨으로써 전세계 교회의 효율적 지도기구로 거듭났다. 다만 1929년 벌써 그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명백히 보여주었던 협상 상대자(무솔리니)와 조약을 체결하면서 바티칸시국은 탄생하자마자 어느 정도 순수성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비오 11세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심하게 대립하던 소련과도 협상했다. 그는 "단 하나의 영혼이라도 구원하고 영혼의 더 큰 해악을 막는 일이 중요하다면, 우리는 악마와도 개인적으로 협상할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했다

교황은 바티칸시국의 군주이자 국가원수이며 가톨릭 교회의 수장으로 성좌를 관할한다. 현재 교황은 1백10명의 스위스 위병으로 구성된 친위대를 제외하고는 군사력을 확보하고 있지 않지만 교황과 성좌.가톨릭 교회는 결코 힘없는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1980년대 교황의 지지를 받으며 수백만명이 폴란드 노동자들이 맨손으로 무장한 공산주의자들과의 투쟁하며 민주화를 성취한 것처럼 분명하게 교황의 정치적 영향력이 드러난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현대 교황제도의 정치적 영향력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뿐더러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교황의 힘'을 간파한 카스트로**

교황의 영향력은 정치권력이라는 근대의 이념보다는 '권위'라는 오래된 개념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쿠바의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의 교황 초청은 '교황의 힘'을 간파해 활용한 전형적인 사례다. 교황 방문이 가져올 국내 정치의 불안보다는 전세계적인 체면의 획득이 더 크다고 판단한 카스트로가 국가의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교황 방문을 추진했다는 것은 이미 공개된 비밀이다. 1998년 1월21일 요한 바오로 2세가 쿠바의 하나바 국제공항에 도착해 수천명의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인사말을 했을 때 TV 시청자들은 이 방문객이 유럽의 이색적인 소국의 원수나 수많은 종교들 중 한 종교의 지도자 이상의 인물임을 어렴풋이 감지했다.

"이 땅의 모두에게 자유와 상호 신뢰, 정의와 지속적인 평화의 기운이 넘치기를 기도하고 소망합니다. 쿠바는 자신의 놀라운 능력을 세계에 개방하고 세계는 쿠바에게 마음을 열어, 다른 모든 국가와 민족이 진리를 추구하는 것처럼 이 민족 역시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자유.신뢰.개방.진리 같은 마술적 단어들은 다른 어떤 방문객으로부터도 검열 없이 들을 수 없는 말들이었다. 교황의 인사말과 5일 동안 국빈 옆에서 카스트로가 붙어다닌 모습을 본 쿠바 국민들은 점점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했다.

교황 방문의 정치적 효과는 그때까지 겁먹은 자세였던 반정부운동에 기폭제가 되었으며 1,2년 후에 가시적으로 나타났다. 쿠바의 사례가 특히 흥미로운 것은 요한 바오로 2세가 처음부터 종교 수장이라는 지위는 뒷전으로 두고 정치적 조짐을 보여주었다는 점 때문이다.

아돌프 히틀러 역시 교황의 광휘가 자신에게 얼마나 유용한지를 잘 알고 있었던 독재자였다. 그는 무솔리니가 성좌와 라테란조약을 맺고 얼마나 큰 국제적 명성을 얻었으며 국내 정치권에서 얼마나 많은 동조세력을 얻었는지를 목격했다.

그러나 그는 가톨릭을 존중한다는 정약을 맺었으나 권력이 정점에 달하면서 얼마 안가 교황을 완전히 무시했다. 비오 11세는 2차 세계대전이 일촉즉발의 상황에 있었던 1939년 2월10일 사망했다. 이제 전쟁이 시작되면서 '라테란조약' 은 휴지조각이 될 위기에 처했다.

***바티칸의 재건을 주도한 요한 바오로 2세**

지금까지 유태인 학살에 대한 침묵 등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비오 12세의 '신중한' 행보 속에 전쟁이 휩쓸고난 뒤 성좌의 영향력은 갑자기 제로(0)에 가까워졌으나, 60년대 이후 냉전체제 속에 '비폭력 글로벌 플레이어'로서 바티칸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회복됐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케네디와 흐루시초프 교황 요한 23세가 평화의 메시지를 발표하고, 미.소 양국은 슬며시 한 걸음씩 양보함으로써 핵전쟁의 위기를 넘긴 사례와 함께 요한 바오로 2세가'인권'을 앞세우며 조국 폴란드를 시작으로 공산권력의 붕괴를 촉발시킨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요한 바오로 2세 치하(1978~2005년)의 사반세기를 거치면서 성좌는 1백70개 국가와 외교관계를 맺었다. 이는 1978년 바오로 6세의 임기 말에 비해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숫자다. 교황제도 사상 처음으로 -동아시아와 아랍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실로 전세계를 포괄하는 외교망이 구축되었다.

***"시류와 정신적 대립 추구하지 않으면 '가톨릭 크렘린'으로 전락"**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요한 바오로 2세 임기에 바티칸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 지역은 중동.유럽연합.라틴아메리카였다. 중동은 성지 예루살렘이 있는 곳이고, 유럽은 교황제도의 역사가 숨쉬는 장소라면 라틴아메리카는 21세기초 10억 가톨릭 신자 중 거의 절반이 라틴아메리카 주민 또는 미국의 라틴계 이주민이라는 점에서 신생 '가톨릭 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80년대 후반에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의 와중에 89년 아직 소련에 속했던 리투아니아와 백러시아공화국에 가톨릭 주교들을 임명하는 등 로마 가톨릭 교회의 동방 확장을 위한 전략을 구사하기도 했다.

저자는 "바티칸에게 모스크바의 정치.종교 세력과의 관계보다 더 어려운 것이 중국과의 관계"라고 지적한다. 현재 바티칸은 대만과의 수교를 단절하고 지난 51년 사제추방으로 단교했던 중국과 다시 수교를 맺을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가 직면한 최대 고민은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이다. 저자는 "유럽에서 공산주의가 무너진 이후 상대주의.이기주의.소비사회라는 '바이러스'는 교회에 대한 가장 큰 도전행위지만 이에 맞서 방벽에 세우는 것은 적절한 면역전략이 아니라 가톨릭 교회에게는 종말의 시작이 될 것"이라면서 "바티칸이 교회 밖의 정신적 시류와 맞닥뜨려 서로 교류하지 않는다면, 경직된 조직의 꼭대기에 있는 일종의 '가톨릭 크렘린'이 될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저자는 "가톨릭 교회가 이 세계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면 더 이상 순응만 할 것이 아니라 정신적 대립을 추구해야 한다"면서 "교회는 시대정신의 유혹하는 목소리나 근본주의, 스스로 택하는 고립에 빠지지 않을 때 모든 권력, 모든 이데올로기와의 갈등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밖에 저자는 교황청이 해결해야 할 숙제로서 '세계와의 의사소통' 문제를 꼽았다. 저자에 따르면 교황청에 근무하는 사람은 2천여명이지만 '국가 관계'를 담당하는 핵심부서인 국무원에는 타자수, 수위 등을 포함하여 2백50명도 안되는 직원이 근무한다. 이처럼 인원이 적다보니 가장 중요한 교황의 문헌조차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세 가지 서방 언어로만 제공된다. 그는 "전세계적인 활동반경을 갖춘 교회의 이같은 상황은 결코 칭찬할 만한 일이 아니다"면서 "특히 세계적인 커뮤니케이션 시대에 큰 결함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한다. 또 인터넷 도입으로 바티칸의 공식사이트(www.vatican.va)가 생겼지만 주요 텍스트는 이탈리아어나 영어로만 제공된다. 이또한 바티칸이 표명한 목표-인터넷을 통해 중국이나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 등 지금까지 접근이 불가능했던 곳과 교류하는 것-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개선해야 할 점이다.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어 등극한 강경보수주의자 베네딕토 16세가 과연 이같은 시대적 요구에 얼마나 부응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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