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까지만 해도 "본격적인 경기회복 시기가 지난해말 전망보다 1분기 이상 빠른 2.4분기부터 가시화될 것"이라고 호언했던 정부가 한걸음 물러서는 모양새를 보였다. 박승 한국은행총재의 "하반기부터나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후퇴와 맥을 같이하는 발언이다.
***재경부,"실물지표 개선은 시간 걸릴 것"**
재정경제부는 11일 `그린북'을 통해 "심리적인 지표경기가 개선되더라도 실물지표 개선으로 이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재경부는 지난 3월부터 발간하기 시작한 <최근 경제동향>(<경기동향 종합보고서> 일명 `그린북') 4월호를 통해 "체감경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으며 언제 뚜렷하게 회복될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린북 3월호에서 "인플레 압력이 낮은 가운데 수출과 내수, 금융, 심리 등 여러 부문에서 긍정적인 신호가 관찰되면서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던 재경부도 한은에 이어 한 달만에 말을 바꾼 셈이다.
박병원 재경부 차관보도 이날 브리핑에서 "경기가 회복은 되고 있으나 그 강도나 속도가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면서 "체감경기 회복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이며 회복시기는 가늠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린북에 따르면 지난 2년간 부진을 면치 못했던 민간소비가 증가세로 돌아서고 있으나 그 속도는 완만하고, 투자는 건설투자가 부진한 반면 설비투자는 다소 개선되고 있다.
소비재판매는 지난해 12월 1.1% 증가한 데 이어 1~2월중 1.5% 증가하면서 다소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3월에도 신용카드 사용액은 전년동월에 비해 17.3% 늘어나고, 백화점 매출은 5%, 할인점 매출은 2% 각각 증가한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국산자동차 판매는 지난 2년 연속 마이너스에서 올 1월 5.0% 증가로 돌아섰으나 2월 19.9% 감소한 데 이어 3월에도 1.1% 줄었다. 서비업지수도 지난 1∼2월 평균 0.1% 증가에 그쳐 지난해 연간 성장률인 0.6%에도 못미쳤다. 특히 도.소매업은 2.6%, 숙박.음식점업은 3.7%의 감소율을 각각 나타냈다.
설비투자는 2월중 전년동월에 비해 3.6% 감소했으나 1~2월 평균은 5.3%의 증가세를 보였다. 건설투자의 경우 1~2월중 건설기성(경상금액)은 전년같은기간에 비해 1.4% 증가했으나 건설수주는 2.6% 감소했다.
물가는 근원인플레이션율이 3%내외에서 움직이는 등 안정세를 지속하고 있으나 고용은 기술적 반락, 경기후행적 성격 등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 1~2월중 여행.유학 관련 해외지출은 해외출국자 증가 등의 영향으로 전년동기(17억8천만달러)에 비해 25.9% 증가한 22억4천만달러를 기록했다.
***재경부, 고용지표 부진에 당혹**
이와 관련 박병원 차관보는 "해외 지출을 볼 때 돈이 없어서 소비를 안하는 것은 아니다"며 "과거에 비해 씀씀이가 줄어든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며, 따라서 고용창출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재경부의 가장 큰 고민은 실물지표 개선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지표인 '고용지표'가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는데 있다. 그린북에 따르면 수출은 올해에도 두 자리의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지만 물량기준으로는 증가세가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또 물가는 안정세를 지속하고 있지만 고용은 기술적 반락과 경기후행적 성격 등으로 부진한 모습이다.
특히 지난 1월 취업자는 작년 같은 달에 비해 14만명이 늘어나는데 그쳤고 2월에는 증가폭이 8만명으로 위축됐다. 이는 작년 1월 37만명에 이어 2월 51만명의 취업자 증가실적과 크게 대조된다.
내수회복과 고용의 바로미터인 건설투자 역시 이같은 내수.고용 부진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지난 1∼2월의 건설수주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가 감소해 지난해 4.4분기 28.8%의 증가율에 비해 급감했다.
다만 내수와 고용 부진에도 수출은 지난 3월 14.2%가 늘어난 2백41억9천만달러로 사상 최초로 2백40억 달러를 넘어서고 일평균 수출액 증가율도 10.1%로 2개월 연속 10%대를 넘어서는 등 지난해 30%대의 증가에 이어 올해도 두 자릿수의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어 한국 경제의 버팀목 구실을 하고 있다.
박 차관보는 "수출은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면서 "환율 등의 불안요인이 있으나 4월에도 이런 증가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달러 환율이 미국 무역.경상수지 적자 확대 등으로 지난 3월10일 달러당 9백89원까지 추락했으나 지난 7일 현재 종가 기준으로 1천12.5원까지 상승해 수출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박 차관보, "정확한 판단은 4월말 이후. 재정 조기집행 등 확장적 정책 유지"**
이에 따라 박 차관보는 "3월 경기관련 속보지표는 1~2월보다는 조금 나아질 가능성이 있으며, 2분기에도 경기회복 조짐은 이어갈 것으로 기대되지만 향후 경기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4월말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면서 "고유가와 환율 등 대외불안 요인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현재의 경기회복 조짐이 지속될 수 있도록 재정 조기집행 등 확장적 거시정책 기조를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박 차관보는 최근 "세계경기가 하강하고 있다"는 세계은행(IBRD) 보고서 등 일각의 비관적 전망에 대해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고 있는 것은 경기가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고 보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박 차관보는 최근의 주가조정에 대해서도 "현 단계에서는 주가가 계속 오르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최근의 주가하락은 투자자들이 각각의 이유로 사고 파는데 따른 단기적 수급의 영향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같은 박 차관보의 낙관이 맞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일각에서는 1.4분기의 경기회복 기류가 정부재정을 집중투입하고 경기회복론을 적극 전파한 데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1.4분기에만 반짝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다가 그후 침체국면으로 빠져들었던 상황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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