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대학 교육을 산업이라고 규정하고,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강도 높은 대학 구조 개혁 의지를 연일 밝히고 있는 가운데 전국의 사회학과 교수들이 올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의 학문 분야 평가를 정면 거부키로 해, 대교협 평가 사업 자체가 불투명해질 전망이다. 특히 이런 교수들의 반발에는 대교협 평가 사업 자체에 대한 광범위한 회의가 반영된 것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사회학회, "올해 대교협 평가 거부하겠다“**
전국 9백여명의 사회학자를 회원으로 둔 한국사회학회가 이달 초 대교협에 보낸 공문을 통해 대교협 평가 거부 의사를 밝힌 사실이 확인됐다.
사회학회 관계자는 7일 <프레시안>과의 전화 통화에서 "2월23일 열린 이사회에서 대교협 평가를 거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전국 40여개 사회학과장들도 대교협 학문 분야 평가를 거부하는 데 동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회학회는 대교협에 보낸 공문에서 "대교협 평가는 행정 편의적, 관료적 발상에 기댄 몇 가지 잣대에 의존한 획일적, 양적 평가에 그치고 있어서 평가의 타당도와 신뢰도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며 "이런 평가는 ▲결국 다양한 대학들의 특성을 무시한 채 대학의 서열화를 조장하고, ▲학문적, 교육적 경쟁이 아닌 불필요한 비학문적 경쟁을 유발시켜서 기초학문인 사회학의 붕괴를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거부 이유를 밝혔다.
이 단체는 또 "대교협이 2005학년도에 사회학과를 평가한다는 결정 자체가 너무 급박하게 이루어져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 분야의 대교협 평가를 보면 전체 교수, 학생, 교직원들이 평가에 대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여하는 것이 비해 평가 후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사회학회가 1월 하순에서 2월 중순까지 전국 40개 사회학과장들에게 참가 여부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그 중 19곳이 대교협 평가에 반대(조건부 반대 5곳)했으며, 찬성한 학과는 9곳(조건부 찬성 1곳)에 불과했다.
***"교수들 1년 내내 행정 부담, 연구-교육은 뒷전"**
전국 4년제 대학을 회원으로 하는 대교협은 지난 1992년부터 매년 두세 개의 학문 분야를 선정해 평가 사업을 진행해왔다. 2004년에는 기계공학, 생물ㆍ생명공학, 신문방송ㆍ광고홍보학을 평가했으며 올해는 국문학, 동양문학, 사회학, 심리학, 농학, 약학, 체육 등을 평가할 예정이다.
평가를 시작한 지 10여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대교협 평가는 매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2003년에도 경제학과와 물리학과 등이 평가를 거부하기로 했다 진통 끝에 평가 기간 등이 단축돼 실시된 바 있다.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대교협 학문 분야 평가가 공언한 대로 학분 발전에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이 교수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점이다. 1년 내내 교수, 학생, 교직원이 대교협 평가에 목매면서 정작 연구와 교육은 뒷전으로 밀려난다는 것이다.
2004년에 대교협으로부터 평가를 받은 서울 소재 대학의 한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짧은 기간에 모두가 납득할 만한 평가를 하려다보니 각종 양적 지표를 비교하는 것으로 평가가 진행될 수밖에 없다"며 "이를 위해서 1년 내내 각종 행정 부담에 학과 전체가 비상이 걸렸었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이번에 사회학 교수들이 대교협 평가 거부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도 이런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수도권 소재 대학의 한 교수(사회학과)는 "대학이나 학과 입장에서는 대교협 평가에서 높은 순위를 얻기 위해서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며 "특히 사회학과의 경우에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4~5명 되는 교수들이 온갖 행정 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정작 연구와 교육은 뒷전에 밀려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개별 대학-과 특수성 고려 없는 획일적 평가 문제 많아"**
이번에 사회학회에서 공식적으로 밝혔듯이 대교협 평가가 국립대, 사립대, 지방대와 같은 전혀 상이한 조건에 처해 있는 대학의 학과를 획일적인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도 문제점이다.
한 사회학회 관계자는 "예를 들어 지방의 신생 사회학과 같은 경우에는 뚜렷한 양적 지표로 보여줄 만한 성과를 낼 여건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며 "이런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인 기준으로 일률적인 평가를 하는 게 오히려 대학과 학문 간의 균형 발전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대학과 학문 서열화를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사립대와 국립대 사이의 형평성도 문제다. 일부 사립대의 경우에는 대교협 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교육 여건 개선을 위한 투자를 평가 기간에 걸쳐 집중적으로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서울 소재 몇몇 사립대의 경우에는 대교협 평가에 참여할 경우 교육 여건 개선을 위한 투자를 학교측으로부터 약속을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2004년도에도 투자를 위해서 정부 허락을 받아야 하는 국립대들은 사립대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볼 멘 소리를 내기도 했다.
***"경영 능력 점검이 학문 평가? 학문 주체성, 공공성 논의는 실종"**
학문 평가 기준도 매년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교협은 해당 학문의 학회와 대학으로부터 평가위원을 추천 받아서 결정하기 때문에 평가 자체는 매우 엄격한 기준에 의해 공정하게 이뤄진다고 공언해 왔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나 대교협이 지금 대학과 학문 평가를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시도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이 부재한 상태에서 평가가 진행되다 보니 평가 자체가 우리 학문을 발전시키는 것과는 동 떨어진 효율성을 잣대로 개별 학과의 경영 능력을 점검하는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 학문의 과제로 제시되는 학문의 주체성, 공공성 등은 아예 의제 자체에서 배제되었다.
사회학회 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국민대 김환석 교수는 "지금 강조되고 있는 대학과 개별 학문 평가의 목적이 무엇이고 평가 기준은 어떤 가치와 원칙에 기반을 두고 마련돼야 하는지 심각하게 반성하고 합의를 하는 과정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며 "이런 과정이 부재한 채 진행되는 대교협 평가는 앞으로도 매번 비슷한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런 지적에 대해서 대교협 관계자는 "지난 주 사회학회에서 보낸 공문을 접수했지만 그 쪽과 구체적인 협의를 해보지 않아 공식적인 입장을 말하기 곤란하다"며 "2003년에 경제학과와 물리학과도 협의를 해서 평가를 진행했기 때문에 사회학과가 평가를 거부한 것으로 보는 것은 성급한 감이 있다"고 답했다. 그는 "대체로 지적에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지만 대교협 평가가 여러 차례 진행되면서 그 순기능도 많이 부각이 된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사회학회의 움직임이 올해 평가를 받는 다른 영역에도 영향을 줄까봐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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