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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수호 위해선 무장봉기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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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수호 위해선 무장봉기도 필요"

[화제의 신간] 한상범 前의문사규명위원장의 헌법 이야기

지난 2004년은 헌법이 정치의 중심으로 떠오른 해였다. 대통령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의 심판 대상이 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는가 하면,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이 위헌심판을 받는 등 헌법의 위력을 실감케 하는 사건들이 잇따랐다.

<살아있는 우리 헌법 이야기>(삼인 간)은 헌법학자이자 지난해말까지 제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장을 역임한 한상범 동국대 명예교수가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기본법'이라는 관점에서 지난 한 해 국민들의 곁으로 다가온 헌법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우는 책이다.

***"헌법수호에는 무장봉기까지 불사하는 결연한 의지 요구돼"**

저자는 우선 1960년대 헌법을 강의하면서 개인적인 상담 형식으로 받았던 질문을 소개하면서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길들여진 '헌법파괴적 논리'를 허무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저자가 소개한 질문은 "형법을 위반해도 사형에 처해지는데, 헌법을 위반해 쿠데타를 한 사람은 권력을 잡고 계속해서 헌법을 유린하고 있으니 헌법도 법인가"였다. 저자는 이같은 아이러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한다.

"1996년 검찰은 군사정권 주역에 대한 불기소 처분 이유로 '성공한 쿠데타'는 내란이 아니라고 하는 기발한 법리(?)를 내세웠다. 처벌하자고 하는데 성공한 쿠데타로 이미 대통령이 되어 버렸으니 기정사실로 수긍해야 한다는 것은 힘의 논리에 굴복한 결과다. 이것은 법적 허무주의이고, 나치의 집권 논리인 '힘은 법이다', 그리고 '힘을 가진 자가 만든 악법은 법이 된다', 다시 말해서 '악법도 법이다'라는 논리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궤변적 논리는 근대적 자연법이 가르친 정의의 법질서와 악법에 대한 저항이라는 이념을 포기하는 법철학의 자살행위이다. 군사정권 30여 년은 법률가에게 힘의 논리에 굴복해서 법철학 자체를 포기하는 법적 허무주의를 심어 놓았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이처럼 개탄스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헌법이 정치권력자의 권력 행사를 규제하려고 만든 법이지만 정작 권력 행사자를 처벌하는 장치가 없어, 결국 헌법 자체의 효력은 국민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때문에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민주정치란 "생쥐들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공론"이라고 야유하기도 했다. 저자는 "바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정치문화를 만들어야만 한다"면서 "국민이 여론을 비롯한 각종 압력 수단을 동원해서 당파 집단을 통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프랑스, 반역자에 대한 공소시효 없애버려**

저자는 박정희 정권 등 군정하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얻은 합법성 취득 논리도 통렬히 비판한다. 저자는 1996년 '헌정질서 파괴조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은 이러한 논리를 뒤집는 법적 가치의 확인이자, 무법 상태에 대한 종식의 상징이며, 정의 회복의 첫발이라고 의미를 높게 평가했다.

그는 "이 법의 제정을 두고서 보복이니 전직 대통령에 대한 과잉 조치니 하는 말이 있었고 제정 배경의 정치성을 문제삼았지만 이 법률의 법리는 옳은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프랑스는 나치의 폭정과 반역을 경험한 이후로 반역자에 대한 공소시효를 형법에서 아예 없어버렸다"면서 "법적 정의가 법적 안전성에 앞설 수밖에 없는 상황은 민주 반역과 민족 배반에 대한 응징의 필요에서 제기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나아가 "최종적으로 저항권이라는 장치가 있는 것은 결국 국민 스스로가 헌법을 지키는 주체임을 의미하는 것"이라면서 헌정이 유린당하는 사태가 일어날 경우 적극적인 국민의 저항권을 주장했다.

그는 "서구의 시민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은 각개 민중이 무기를 다룰 수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만약 1980년 광주에서 시민들이 무장하지 않은 채 야만적 공수부대가 휘두르는 곤봉과 총에 그대로 쓰러져 아무 저항 없이 지내기만 했다면 그렇지 않아도 유린당하고 있던 한국의 민주주의는 아예 그 뿌리를 잃었을지 모른다"고 무장봉기까지 불사하는 결연한 헌법수호 의지를 역설했다.

***"우리 법문화의 근본과제는 민권투쟁"**

이같은 헌법 수호 의지를 견지하려면 뚜렷한 헌법 인식과 시민법 문화가 정착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저자에 따르면 해방 이래로 시비에 대한 심판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족 반역을 그대로 용납하면 범죄자 스스로 자신의 죄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다. 결국 무엇이 범죄이며 무엇이 정의인지를 구분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다가 역대 독재 권력은 국민을 겁주고 탄압하기 위해 까다로운 법규를 대량으로 남발했다. 이러한 법률의 홍수 속에서 국민이 그 법규를 모두 지키면서 살아가기는 무척 어렵게 된다. 결국 너나 할 것 없이 법규를 어기는 범법자가 되고 만다.

바로 이 점이 권력자가 노리고, 악용하는 지점이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알게 모르게 법을 어기고 사는 힘없는 국민들에게 권력자는 법의 심판이라는 무기를 들이댄다.

이 무기 앞에 저항할 수 있는 국민은 거의 없다. 그러한 법률의 거미줄에 얽힌 힘없는 시민 모두가 관료 앞에서는 누구든지 죄인이다. 게다가 까다로운 법규와 알 수 없는 애매한 법규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어 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주기보다 얽어매는 쇠사슬이 된다.

국민은 더더욱 법을 불신하고 기피하여 국민 생활에서 법은 외면당하고 법은 지배자의 독점 전유물이자 권력의 무기가 된다.

저자는 "이러한 법률제도는 법치와 거리가 먼 것"이라면서 "그런데도 지배층은 법치를 떠들어대니 법에 대한 신뢰가 생겨날 수 없고, 인치(人治)가 법치(法治)를 압도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시민 법률문화는 법이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주는 정의 구현의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된다"면서 "그것은 법의 일반성과 법집행의 공정성이 담보되며 그럼으로써 법생활에서 예측가능성.계산가능성이 보장될 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현재 우리의 법문화 수준에서 근본과제는 시민법 문화를 쟁취하는 것"이라면서 "시민법 문화의 쟁취는 시민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악법을 거부하고 정의를 구현하려는 민권 투쟁을 통해 이뤄진다"고 강조한다.

그는 시민적 법치에서 재판의 제1원칙이 당사자주의로 되어있어 헌법과 법률이 정하고 있는 자유와 권리의 구제 절차는 그 구제의 가능 조건일 뿐이라고지적한다. 이때문에 저자는 "가능조건은 권리를 주장하는 당사자가 나서서 권리를 구체화시킬 때 비로소 충족된다는 법리를 분명하게 알아야만 청구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고 법치가 시민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민주화와 통일은 둘이면서 하나인 21세기 최대 과제"**

저자는 끝으로 21세기가 헌법이 지배하는 정치가 되기 위한 국민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저자는 우선 21세기 헌법 정치에서는 권위주의, 관료주의, 군국주의, 정적 제거용 사이비 반공주의, 지역패권주의와 각종 파벌주의, 법률만능주의 등 법치를 무시하는 관치와 인치의 악습들을 과감히 청산할 것으로 주문했다.

나아가 저자는 21세기에 우선적으로 지켜야할 국민의 권리들을 열거했다.

첫째, 지구화된 정보사회와 환경문제의 시대를 사는 기본권으로서 정보와 지식을 통제.조작당해온 우민시대를 끝내기 위해서는 정보 접근의 권리와 진실된 알 권리를 확보하고, 코앞의 자기 이윤과 이익 때문에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과 개인의 범죄로부터 생존과 건강의 권리를 지켜내야 한다. 이 지구는 어느 부자의 것도 아니고 어느 세도가의 사유물이 될 수 없다. 또 21세기의 세상은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고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대중매체를 상업적 이윤 추구와 우민 조작에 내맡기는 무책임 또한 하루 빨리 종식되어야 한다.

두번째, 형평성과 공정성이 관철되는 시장경제를 위해 한국 헌정에서는 군사정권 반세기에 걸쳐 심어진 잘못된 부패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

소련과 동구체제의 붕괴와 해체가 자본주의 경제의 비윤리성과 부도덕성에 대한 면죄부인 양 오해하고 독점기업의 독식과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방치가 사회 법칙인 양 착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경제.사회적 정의의 회복이고 제3세계 국가의 입장에서 약자의 생존권 회복이 진지하게 모색되고 구상되며 실천하는 것이다.노사관계의 개선은 가장 중대한 과제이고 노동기본권은 생존권의 기본임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셋째, 평화와 민족의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생존권을 확보해야 한다. 평화는 구호가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적절한 대책 없이 군비를 계속해서 부담하는 것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를 깨닫고 그러한 자기 소모전에서 인류가 벗어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 남북 문제도 어떤 획기적인 모책보다 교류와 협력을 통한 이해를 거쳐 민족의 동질성을 자연스럽게 회복하고 확인할 수 있는 데까지 가야 한다.

우리는 평화적인 민족 자주권의 고수가 21세기의 근본과제임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아직까지도 국제정치에서는 강대국의 패권주의와 각국의 이기주의가 관철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라 사이의 이해관계의 대립과 갈등에선 영원한 적도 벗도 없다. 필요에 따라 자기 이득과 생존을 모색할 뿐이다.

이 점을 망각한 맹목에 가까운 감상적 우방 의존론이나 특정 국가에 대한 사대주의적 추종 내지 맹종을 시대착오적이다. 현재 우리는 국제관계에서 겨레의 평화적 생존권을 지켜야 할 절박한 시기를 다른 어느 시기보다 심각하게 겪고 있다. 우리 스스로 자주적으로 해내지 않으면 냉혹한 국제 정치 세력에 휩쓸려 또다시 피해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민족이 당면한 21세기의 최대 숙원 과제는 민주화와 민족통일의 과업이다. 우선 남과 북이 민주화되어야 통일의 여건이 마련된다. 또한 통일을 위한 남북교류가 이루어져야 경직된 대결, 긴장의 소모전이 줄어들고 민주화의 여건이 개선된다. 민주화와 통일은 서로 뗄 수 없는 둘이면서 하나이기도 한 우리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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