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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부끄러운 세상, 아이에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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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부끄러운 세상, 아이에게 배운다"

[화제의 신간] 어린이 20명이 쓴 <개구리랑 같이 학교로 갔다>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려는데
자전거 페달 위에
개구리가 있다.
손잡이 왼쪽에도 있다.
개구리가 딱 붙어서
움직이지도 않는다.
할 수 없이
개구리랑 같이
학교로 갔다."(장재원, '자전거가 좋은 개구리', 2003년 7월12일)

"어린이의 글에는 어린이의 삶과 이 시대의 모든 문제가 들어 있다."

고 이오덕 선생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해온 경남 밀양의 이승희 선생이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두 해 동안 같이 공부한 상동 초등학교 스무 명의 어린이들이 쓴 1백21편의 시와 31점의 그림을 엮어서 <개구리랑 같이 학교로 갔다>(보리 펴냄)를 펴냈다.

***"시 쓰기는 삶을 가꾸는 공부"**

"밭에 서서
논을 보니
어린 모들이
논에 떡 하니
버티고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모를 보니
참 평화롭다."(정찬규, '모', 2004년 6월22일)

자연과 격리된 채 살아가는 도시 아이들과 달리 자연을 벗 삼아 살아온 농촌 아이들이 쓴 시들은 읽을 때마다 미소를 짓게 하고,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런 감동의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때 묻지 않은 동심을 이유로 들기에는 뭔가 아쉽다.

오히려 아이들의 시가 감동으로 다가오는 진짜 이유는 이 책에 실린 시들이 "좋은 시를 얻기 위해서" 쓰인 시가 아니라 "삶을 가꾸는 공부"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승희 선생과 아이들은 동무들이 쓴 시를 함께 읽으며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시를 평가해 왔다고 한다.

"세상을 보는 마음 바탕이 반듯한가? 아주 조그마한 것에도 마음을 보낼 줄 아는가? 누구 눈에나 다 보여서 오히려 스쳐 지나가 버리기 쉬운 것에 잠시 눈길이 멈춘 적이 있는가? 일을 하면서 자연의 질서를 깨닫고 있는가? 자연의 작은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그것에 감동할 줄 아는가?"

아이들은 이런 잣대로 시를 쓰면서 "순진한 마음, 욕심 없는 마음, 따뜻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 목숨 가진 것들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벌레 하나라도 사람처럼 대접하는 마음"을 가지는 삶을 가꿔왔다.

***"어른을 부끄럽게 하는 아이들의 '진실의 눈'**

"길 넓히는 공사를 시작했다.
밭과 논은 완전 파헤쳐져
흙산이 있고
시냇물은 꾸정물이 되었다.
길 위에도 흙뿐이다.
길이 넓혀졌으면 좋겠다
사람이 많이 살면 좋겠다
이렇게 많은 걸 바랬는데
막상 그렇게 되려고 하니
후회가 된다.
길이 안 넓혀져도 된다
사람이 많이 안 살아도 된다
다시 평화로운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다."(임하정, '그리운 우리 마을', 2003년 11월26일)

"내 삶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 없는 시와 소설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이 아이들의 시는 남다르다. 아이들의 시에는 밀양 농촌 마을 공동체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이들은 누구보다도 날카롭게 "길을 넓힌다면서 밭과 논을 파헤치는" 상황을, "집보다 길이 더 넓고 큰" 현실을 꼬집는다.

이런 아이들의 눈길은 세상살이까지 미친다. 아이들은 김선일씨가 이라크 무장 단체에 의해 피살된 사실에 대해서 "이라크에 군인 보낸다며 괜히 끼어들어서 죄 없는 사람 죽여 놓았다"고 평가한다. 이 아이의 눈길 앞에 온갖 말로 거짓을 진실로 포장하는 어른들의 위선은 설 자리가 없다.

"태권도 차에서
뉴스를 들었다.
김선일 아저씨가
피살되는 동영상이
퍼지고 있다고 한다.
그것을 보고
복수를 해야 된다는 말도
나온다고 한다.
이라크에 군인 보낸다며
괜히 끼어들어서
죄 없는 사람
죽여 놓았다."(박정환, '죄도 없는데', 2004년 6월27일)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시 읽기"**

시를 쓰면서 삶을 가꿔온 이 아이들이 꿈꾸는 세상은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모두가 다 '사람다운 마음'을 가지고 함께 어울리며 사는 세상을 이 아이들에게 선물할 수는 없을까? 주말 저녁 TV를 끄고 아이들과 함께 친구들이 쓴 이 시들을 소리 내서 읽어보자.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만큼 세상이 더 살 만해질 것이다.

"앞질 할매가 꼬부라진 허리로
사다리에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
감을 따고 있다.
내보고 도와 돌라는 소리도 한 하고
혼자 딴다.
"할머니, 제가 딸게요."
"니가 해 줄래?"
나는 사다리 타고 올라가 얼른 다 따 줬다.
감 그거 몇 개나 된다고
홍시를 두 개나 주신다.
내 원래 홍시 싫어하는데
그 할머니 보니까
왠지 먹어야 할 거 같아서
두 개 다 먹었다."(이민혁, '앞집 할매', 2004년 10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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