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출범 이후 최초로 실시된 기술영향평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2005년도 기술영향평가 예산이 오히려 줄어들 전망이어서 정부가 기술영향평가를 요식 행위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참여정부 첫 기술영향평가, 잡음 가득**
열린우리당 유승희 의원실과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실이 공동으로 마련한 '2003년도 기술영향평가사업 평가 및 개선방향 토론회'가 2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를 마련한 유승희 의원은 "기술영향평가는 빠르게 발전하는 현대 과학기술의 사회적 영향을 미리 평가해 문제점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인데, 처음 실시된 것인 만큼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며 "이번 토론회는 이런 문제점들을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2003년에 실시해 지난 7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그 결과가 보고되면서 완료된 기술영향평가 사업은 처음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지난 국정감사 기간에는 "평가 결과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긍정적 내용은 강화되고 부정적 내용은 축소·순환되는 등 정부 입맛에 맞게 평가 결과가 수정됐고, 이 과정에서 보고서 공개도 연기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됐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런 의혹과 관련해 과학기술부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기술영향평가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 다각적인 문제제기가 이뤄졌다.
***"실질적 산하기관이 부처 평가하는 구조, 평가 제대로 될 수 없다"**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김동광 소장은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기술영향평가 첫 사업은 '피기도 전에 시든 꽃'이 돼 버렸다"며 "한 마디로 실패한 사업"이라고 강하게 문제를 지적했다. 김동광 소장은 기술영향평가 첫 사업의 사회문화분과 전문위원으로 직접 참가한 경험을 들어 진행과정의 문제점을 소상하게 밝혔다.
김 소장은 "가장 큰 문제는 과기부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는 KISTEP이 기술영향평가를 맡은 것"이라며 "이 때문에 보고서 작성과정에서 과학기술부의 영향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기술영향평가는 행정부가 주도하는 연구개발 사업에 대해 사회적·환경적·경제적 영향을 평가하기 위한 제도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의회 산하에 기술영향평가 기구를 두고 행정부를 견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소장은 또 "기술영향평가의 주제 역시 과기부,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보건복지부 등이 모두 용인할 수 있는 모호한 기술로 선정됐고, 평가 과정에서 사회적 관심을 유도하려는 노력도 미흡했다"며 "이렇게 엉터리로 진행되다보니 평가 결과가 실질적으로 관련 부처와 연구자들에게 전달돼 연구계획이나 정책수립 과정에 반영될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김 소장은 "기술영향평가 기구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좀더 현실적인 주제를 선정해 사회적 관심을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될 때 기술영향평가 본래 취지에 맞는 자리매김이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제도 도입될 때 지적했던 문제 그대로 반복되고 있어"**
국회사무처 예산분석관으로 기술영향평가 제도를 만드는 데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던 권기창 한양사이버대 교수도 김동광 소장의 지적에 공감을 표시했다.
권기창 교수는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제기된 문제가 그대로 지금 이 자리에서도 논의되고 있다"며 "과학기술을 진흥·육성하는 과기부와 KISTEP이 기술영향평가를 맡고 있는 구조가 여러 가지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설사 겉으로 보기에 과기부와 KISTEP이 독립적인 관계라고 해도, 더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을 보는 시각 자체가 똑같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권기창 교수는 "지금 국회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정파성, 다수당의 횡포,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 부족 등)을 극복한다는 전제 하에 행정부 견제기관인 국회에 기술영향평가 기구를 설치하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영주 과학기술노조 정책위원은 기술영향평가 기구의 '중립성' 문제에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 국회에 설치하기보다는 달라진 과학기술 행정체계에 부합하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영주 정책위원은 "권 교수가 제기한 여러 가지 국회의 문제점들이 단기간에 해결되는 게 난망하다"며 "현재 국과위의 위상이 범부처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바뀐 만큼,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참여를 통한 심의·결정 구조의 개혁을 강제하는 것을 전제로 국과위에 기술영향평가 기구를 두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재각 민주노동당 과학기술 담당 정책연구원은 "이 참에 기술영향평가법을 별도로 만드는 것을 포함한 근본적인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며 "기술영향평가법을 통해 평가 기구의 중립성 문제, 주제 선정 문제 등을 구체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2005년도 예산, 오히려 3분의 2로 깎일 판"**
하지만 정작 기술영향평가 사업 예산은 애초 1억5천만원에서 1억원으로 깎일 전망이어서 과기부가 기술영향평가를 여전히 요식행위로 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권기창 교수는 "1억5천만원 사업에서 5천만원을 깎는 것에 과기부가 기술영향평가 사업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적나라하게 반영돼 있다"며 "기술영향평가 사업을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려면 우선 예산 감축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과학기술부 신준호 서기관은 "현재 예산 감축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1억으로 깎일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과기부에서도 기존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신준호 서기관은 또 "현재 정부 과학기술 행정체계 혁신에 맞물려 이 자리에서 지적된 '중립성' 문제 등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과기부도 오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앞으로 이런 자리에서 좀더 잘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많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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