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인사에 대한 나의 소신은 이렇다. 전혀 모르는 사람, 경영 마인드가 전혀 없는 사람이 국영기업 최고경영자(CEO)에 들어가는 게 낙하산 인사지, 전문가가 들어가는 게 왜 낙하산 인사냐. 감사는 아주 유니크(unique)한 분야다. 중요한 기관에 대차대조표도 못 읽는 사람이 들어가는게 낙하산 인사지,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를 제대로 읽고 들어가는 것이 왜 낙하산 인사인가."
전윤철 감사원장이 7일 국정감사장에서 의원들이 감사원직원들의 무더기 낙하산 인사를 질타하자 한 말이다. 한마디로 말해 감사원 직원은 '유능'한만큼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피감기관에 '낙하산 인사'로 내려가도 문제될 게 없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주장은 전 감사원장뿐 아니라, 모든 공무원들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항변'이다.
하지만 IMF사태에 이어, 제2차 IMF사태라 불리는 작금의 극심한 경제난 발발과정에 공무원들이 주도적 역할을 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과연 그들이 얼마나 '유능'한지는 극히 의문이다.
***있으나마나한 '공직자윤리법', 한국은 '낙하산 공화국'**
이번 국정감사는 정쟁에 휘말리는 구태를 반복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성과가 있었다. 다수국민은 불황으로 극한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무원과 공기업은 더없는 '태평성세'를 구가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이 퇴임후에도 '노른자위'로 줄줄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는 행태는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기승을 부리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퇴임후 세번까지는 자리를 챙겨준다"는 공무원사회의 '쓰리 턴' 법칙이 엄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특히 큰 문제점은 공직자윤리법이 허울뿐이라는 점이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5급 이상 공무원이 퇴직하기 3년 전부터 일하던 부서의 업무와 관련있는 자본금 50억원이상의 기업체에는 퇴직후 2년간 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결정적 예외조항이 있다. 해당기관장 또는 공직자윤리위 승인을 거치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낙하산 인사가 '압력'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실상 공직자윤리법은 있으나마나 한 셈이다.
실제로 공직자윤리위원회가 9일 한나라당 박재완 의원에게 제출한 `2003년 5급이상 공무원 퇴직자 중 취업제한 대상업체 취업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해 퇴직한 5급이상 고위공무원 74명 중 73명이 퇴직 전 업무와 관련있는 업체에 곧바로 재취업했다. 공직자윤리법이 완전 종이호랑이임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청와대의 4명은 강원랜드, 한국서부발전, 삼성경제연구소, 동원FNB로 재취업했고, 국무조정실의 1명은 하나로통신, 총리비서실 1명은 한전산업개발, 공정거래위의 2명은 삼성전자와 롯데건설로 자리를 옮겼다. 금융감독원의 10명은 국민은행-삼성증권-하나증권 등으로, 재정경제부 4명도 삼성생명-삼성증권-대한생명 등으로, 건설교통부 6명은 동부엔지니어링-건설공제조합 등 건설업계로, 국세청 3명은 삼화왕관 등 주류업계로, 산업자원부 2명은 한국자동차공업협회-조선공업협회로, 정보통신부 3명은 핸디소프트 등으로, 해양수산부 2명은 나란히 한국항만하역협회로, 철도청의 5명은 롯데역사-한화역사 등으로 재취업했다.
이밖에 국방부 19명은 현대중공업-에스원-LG이노텍 등으로, 검찰청 2명은 삼성전자-LG로, 경찰청 2명은 에스원 등으로 갔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5급이상 고위공직자의 행태일뿐, 하위직 공무원까지 합하면 낙하산 인사 실태는 더욱 극심하다. 한국은 말 그대로 '낙하산 공화국'인 셈이다.
다음은 국감기간에 드러난 각부처 및 공기업의 낙하산 및 제식구 챙기기 실태다.
***감사원**
공무원사회의 규율을 잡아야 할 감사원이 6일 국회 법제사법위 김재경 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취업제한 고시업체 취업 퇴직자 현황'에 따르면, 올해 감사원에서 퇴직한 20명의 서기관이상 공직자 가운데 60%인 12명이 정부부처나 정부투자기관, 유관기업 등에 재취업했다.
지난 5월31일 퇴직한 최모 전 사무차장은 취업제한 고시업체인 삼성생명 감사로 취업했고, 지난 6월11일 퇴직한 황모 전 심의관 역시 퇴직 다음날 취업제한 대상인 산은캐피탈의 감사로 선임됐다. 지난해 퇴직한 공직자 가운데서도 차관급인 박모 전 감사위원이 올해 1월 포스데이터 고문으로 선임되는 등 4명이 취업제한 고시업체에 취업했다.
***금감원**
금융기관들을 감독하고 있는 금융감독원이 1일 국회 정무위 소속 권영세 한나라당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2년부터 현재까지 금감원을 퇴직한 89명 가운데 47.2%에 달하는 42명이 금감원의 피감기관인 은행과 증권회사 등 금융기관의 임원으로 취업했다. 특히 올해 퇴직자 25명 중에서는 절반이 넘는 14명이 퇴직후 한달안에 금융기관 임원이 됐다.
이들이 간 피감기관은 국민은행, 삼성증권-하나증권-신영증권, 쌍용캐피탈, LG화재보험, 알라안츠생명보험, 푸른상호저축은행, 솔로몬신용정보 등 다종다양했다.
금감원은 그러나 권 의원에게 제출한 `금감원 임직원의 금융회사 감사 취업에 대한 의견서'에서 "금융회사에서 금융실무 등에 대한 전문지식과 경험을 축적한금감원 출신을 감사로 선호한다"며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했다.
***재경부**
재정경제부가 6일 국회 재정경제위 우제창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지난 2001년 이후 재경부 4급 이상 퇴직자 41명의 63%인 26명이 유관기관에 재취업했다. 특히 이들 퇴직공무원들의 대부분은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증권전산,기술신용보증기금 등 유관기관의 행장, 이사장, 사장, 감사 등 고위직에 포진하고 있다.
지난해 4월 퇴직한 신동규 전 기획관리실장은 한국수출입은행장으로,한정기 전 국세심판원장은 한국증권전산 사장으로 각각 자리를 옮겼다. 또 올해 5월 퇴직한 진병화 전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이사는 국제금융센터 소장, 방영민 전 금융정보분석원장은 금융감독원 감사로 취직했으며,4급인 김성국 전 서기관도 한국증권금융 부사장으로 이직했다.
***건교부**
건교부가 국회 건교위 박상돈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말 현재 공사가 진행중인 1백억원 이상 현장 8백61곳의 책임감리원 7백77명 가운데 28.3%인 220명이 건교부를 비롯한 공공기관 퇴직자 출신이다. 특히 건교부와 산하 지방국토관리청 출신 감리단장 43명 중 88.4%인 38명은 자신들이 과거에 근무했던 기관의 발주공사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건교부 산하 국토관리청은 `감리전문회사 사업수행능력 평가기준'을 통해, 발주청의 공사감독 관련 업무에 대해서는 경력을 100% 인정해 주면서 민간업체의 시공 및 설계경력에 대해서는 경력을 80%만 인정하는 등 공무원 우대정책을 취하고 있다.
***청와대**
청와대 비서실과 열린우리당 출신 여권인사 16명이 지난 2003년 6월부터 올해 7월까지 산업자원부 산하기관 임원에 선임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은 지난달 21일 산자부 39개 산하기관으로부터 제출받은 `산자부 산하기관의 기관장 및 임원현황'을 분석한 결과, 청와대 비서실 출신 3명을 포함해 여권인사 16명이 작년 6월 이래 대한광업진흥공사 감사와 한국가스공사감사 등 산자부 산하기관 원장과 감사, 비상임이사 등 임원에 선임됐다고 밝혔다.
또한 산자부의 차관보와 기획실장, 무역투자실장 등을 역임한 고위관료 출신 인사 14명도 비슷한 시기에 한국가스공사 사장과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 등 산자부 산하기관 사장과 이사장, 상무, 감사 등에 선임된 것으로 드러났다.
***도로공사**
건교부 산하 한국도로공사가 7일 최인기(무소속·전남 나주 화순), 윤호중(열린우리당·경기 구리)의원 등에게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도공은 올해 8월말 현재 14조6천6백83억원을 부채로 지고 있음에도 임원 평균연봉이 1억3천3백만원으로 공기업 최고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도공은 또 외주영업소 2백3개중 1백50개를 최근까지 퇴직한 1백50명의 명퇴자에게 넘겨준 것으로 드러났다. 나머지 53개의 외주영업소 사장 또한 예외없이 도로공사 출신들이었다. 이들 명퇴자는 퇴직금과 별도로 1인당 평균 6천6백만원씩 명퇴금을 지급받고 퇴사했으며, 톨게이트 운영에 필요한 집기와 직원일부도 도공측으로부터 지원받았고 정년때까지 매년 5천여만원 안팎의 연봉을 보장받고 있다.
이와함께 도공 퇴직 임원과 직원 70여명은 도공에 인쇄물을 납품하는 기업, 휴게소를 운영하는 기업, 고속도로관리동단 등 관련 회사에 재취업했다.
나라당의 김태환 의원은 7일 열린 도공 국감에서 "도공이 운영하는 전체 203개 외주영업소(요금소) 운영회사 사장이 모두 전직 도로공사 직원"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도로공사는 또 정부가 폐지를 권고하고 있는 근속포상제도(10-25년 이상 근무자에게 기본급 대비 50-2백%를 지급)를 계속 실시하면서 매년 20억원의 급여를 추가로 직원들에게 지급하고 있다.
***토지공사**
한국토지공사가 7일 국회 김태환의원(한나라·경북 구미을)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토공이 올해 10월 현재 용인 죽전 역세권 개발사업, 용인 동백 쇼핑몰 건설, 화성동탄 복합단지개발, 대전엑스포 컨벤션복합센타 건설사업 등에서 추진중인 4개 사업(총사업비 3조1천2백74억원)의 대표이사를 모두 토공 임원 출신이 맡고 있다.
용인죽전 역세권 개발사업의 경우 ㈜그린시티가 사업자로 토공 관리본부장을 지내다 지난 2002년 1월 퇴사한 우모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토공은 이 회사에 1만5천평의 토지를 주변 평균시세인 8백70만원보다 3백10만원이나 싼 5백59만원에 매각, 4백66억원이나 저가 판매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용인동백의 쇼핑몰 건설사업자인 ㈜쥬네브도 토공 토지연구원장 출신인 박모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토공은 이 회사에도 역시 1만3천5백평을 평당 1백28만원 싸게 매각, 1백73억원의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화성시 동탄지구 사업자인 메타폴리스㈜도 올해 3월 퇴직후 한달도 안돼 입사한 박모 전 건설사업본부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토공은 이 회사에 2만9천평을 평당 2백20만원 싸게 매각, 6백37억원의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밖에 대전엑스포 컨벤션복합건설 사업지구의 스마트시티도 토공 전 홍보처장을 지냈다가 올해 6월 토공을 퇴사한 지 하루만에 입사한 신모씨가 대표로 있다.토공은 이 회사에도 토지를 저가 매각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