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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장 노조, '왕자병' 걸릴만큼 한가하지 않다"

현대차 노조간부 반론, "대공장 투쟁 멈추면 하향평준화"

박승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수석연구원의 글을 계기로 촉발돼 진행되고 있는 '노동운동 논쟁'에 대해 대기업 노조 내부에서 반론이 제기됐다. 하부영 현대자동차 노조 전 부위원장은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펴내는 <노동사회> 2004년 10월호(통권92호)에 기고한 '대기업 노조의 자기 성찰과 모색'이란 글을 통해 최근 논쟁에 대한 대기업 노조 내부의 시각을 밝혔다.

하부영 전 부위원장은 기고문에서 "1987년 이후 노동운동 17년은 앞만 보고 달려온 시기였다"며 "그 과정에서 '대공장 노조'가 앞장서 온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본은 대공장 조직 노동자들에게 일정 부분 양보를 한 대신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했다"며 "노동자간 양극화의 일차적 원인이 '대공장 노조'에게 있다는 최근 분위기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만약 '대공장 노조'가 무력화된다면 그것은 고스란히 '하향 평준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며 "지식인들의 '대공장 노조' 비판은 방향이 잘못돼 있다"고 지적했다.

하 전 부위원장은 그러나 "'더욱 잘하라'는 채찍질로 되새길 부분도 분명히 있다"며 "'대공장 노조'가 중소영세기업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들을 챙겨서 함께 가지 못한 것은 사실이고, '대공장 노조'가 앞장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문에도 동의한다"고 일부 비판에는 공감을 표시했다.

하 전 부위원장은 "노동운동은 더 늦기 전에 이런 비판을 되새겨,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연대임금 전략 ▲비정규직을 포함하는 산별노조 건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대통합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노동운동 등을 추구해야 한다"며 "'대공장 노조'가 국민들에게 박수 받는 노동운동이 되기 위해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하부영 전 부위원장의 기고문이 실린 <노동사회>는 9월말 발간될 예정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하 전 부위원장의 기고문 전문을 게재한다.

***대기업 노조의 자기 성찰과 모색 : '왕자병' 걸릴 만큼 한가하지 않다**

'노동귀족', '배부른 투쟁', '대공장 이기주의'라는 말을 벌써 몇 년째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다. 처음에는 우리가 무슨 큰 잘못이나 저지른 양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뜨끔하기도 했다. 감정적이고 단발마적 거부감도 표시했지만 이젠 이성을 회복하고 냉정하고 차분하게 뒤를 돌아 보아야할 시기이다. "왕자병 걸린 노동운동"이라고 일컬어지며 내부적 비판의 도마에까지 오른 지금, '대공장 정규직 노조중심'에 대한 자기항변과 반성, '무엇이고 문제이고 어떻게 해야 하나'를 짚어 봐야 하는 것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노동운동 17년**

우리가 달려 온 17년은 뒤돌아 볼 겨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시기였다. 1987년 7, 8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17년 동안 해마다 새로운 이슈에 매달려 투쟁해 왔다. 초기에는 민주노조사수 투쟁에 매달렸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과 노동조합을 지키는데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구속과 수배를 당하고, 해고와 손해배상청구에 시달려야 했다.

이렇게 간신히 지켜낸 노동조합의 힘을 바탕으로 죽거나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투쟁해야 했다. 산업현장에서 하루에 8명 꼴로 한해에 3천여명이 사망하고, 하루 평균 2백60여명, 한해 10만여명이 다치고 질병에 걸린다는 통계가 노동운동이 해야 할 역사적 임무를 말해준다. 한편으로, 1990년대 초반까지는 단체협약을 체결하고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사용자에 대항하여 '단체협약 사수투쟁'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1996년 말부터 1997년 초까지는 정리해고제 도입과 근로자파견법 등 소위 '노동의 유연성 확보'에 대항하여 노동법 개악저지를 위해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투쟁을 전개하여야 했다. 그리고 지금은 1998년 이후 IMF 사태와 함께 노동현장에 불어닥친 정리해고와 희망퇴직 위주의 '구조조정 저지투쟁'과 2000년대에 들어서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투쟁' 등을 전개하고 있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지난 17년 투쟁의 역사가 한편의 영화처럼 떠오른다. 그렇지만 파업이 취미활동도 아닌 이상 해마다 '투쟁'을 해야하는 우리도 힘들고 버겁다.

올해도 당장 11월24일 비정규직 개악입법 저지를 위한 민주노총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는 '정규직 조직노동자'를 위한 파업투쟁이 아니라 1천4백만 노동자 중 임금의 절반을 받으며 일하는 57%의 비정규 미조직노동자들을 보호하고,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이다. 이를 우리 12% 대공장 정규직 조직노조들은 또 '대공장 이기주의'라는 보수언론의 공세에 시달리면서도 88%의 미조직 노동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앞장서서 투쟁을 할 것이다.

***노동자간 양극화 '대공장노조 책임론'은 착시 현상**

불과 17년 전,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대공장과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 사이 차이가 거의 없었다. 당시는 모두 동일한 '공돌이', '공순이'에 불과했으며 사회적으로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었다. 주면 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는 무권리 상태의 노예로 살아갔다. 대공장 노동자나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나 모두 부엌 딸린 방 한 칸 '쪽방'에 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1987년 이후 노동조합이 폭발적으로 생겨나면서 노동자들의 생활은 180도 달라졌다. 많은 이들이, 비록 대출은 안고 있지만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고 승용차로 출퇴근 할 정도로 풍족해졌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노동조합이 아니면 어떠한 세력도 불과 17년 만에 이만큼이나마 세상을 바꾸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대공장 노조의 '선도투쟁'의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하지만 반격에 나선 자본측에서 대공장 정규직 조직 노동자들에게 일정부분을 양보하는 대신 사회적 약자인 중소기업의 납품단가를 강제 인하하여 기존 이윤을 유지했고, 비정규직 고용을 확대하여 초과이윤 구조를 만들었다. 이른바 '대공장 정규직 조직노동자'들보다 절반의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중소영세기업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 계층을 만들어 사회적 양극화를 조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양극화는 정규직 대공장 조직 노동자들의 상대적 고임금이 하층의 중소영세기업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착취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착시현상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우리는 이런 착시현상의 결과인 '대공장 책임론'이나 '대공장 이기주의'를 인정할 수 없다. 상대적 고임금 층이라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도 유럽, 미국, 일본에 비한다면 절반 수준이다. 후생복리비까지 전부 합치면 실제 삼분의 일 수준 밖에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또 대공장 노조가 양보한다고 해서 그것이 중소영세기업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효과로 나타난다는 보장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대공장 노동자들의 임금 양보는 자본의 배만 더 불릴 것이고 상대적 비교치가 낮아진 중소영세기업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들의 임금은 더욱 정체되거나 삭감 될 뿐이다.

***대공장이 투쟁 멈춘다면, 상향평준화? 하향평준화!**

노동자의 사회적 양극화를 초래한 정권과 자본의 책임이 그들에 의해서 외면되고 부정되는 한 하향평준화를 노리는 '대공장 양보론'은 이데올로기 공세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대공장 노동자들의 선도투쟁을 더욱 강화하여 상향평준화를 노리는 전략과 전술은 아직도 유효하다.

대공장 조직노동자들이 양보하고 투쟁을 접는 순간 이 땅의 1천4백만 노동자들에게 가해질 노동탄압을 상상해 보라.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지 않는데 중소영세기업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들의 자생적이고 자발적인 투쟁과 저항이 일어날 수는 없다. 우리의 현실은 유럽처럼 합리성을 갖추고 대등한 노사관계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지금도 틈만 보이면 노조를 탄압하고 와해를 노리는 자본가들에 맞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대공장 노조가 투쟁이라는 무기를 놓는 순간 한국의 노동운동은 일제히 멈춰서고 노동자들은 암흑기에 접어 들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의 사회적 왜곡과 양극화 현상에 대해 대공장 정규직 조직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몇몇 지식인들의 탁상공론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정권과 자본에 의한 노동의 수량적 유연성 추구와 급속하게 확산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서 원인과 해법을 찾지 않고, 대공장 노조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의 진단도 인정할 수 없다. 대공장 노조는 비정규직을 확산하고 차별을 강화 할 위치에 서지도 못했으며,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근로자파견법 폐지와 차별철폐를 요구하며 투쟁해 왔다.

하지만 '더욱 잘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우리도 반성하고 고쳐야 할 점은 분명히 있다. 대공장 정규직 노조의 선도투쟁 뒤에서 따라오지 못하는 중소영세기업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들을 챙겨서 함께 가지 못했다. 12%가 88%를 전부 책임질 수는 없겠지만, 지난 17년 투쟁의 결과로서 투쟁하는 조직노동자와 투쟁하지 못하는 미조직노동자 간의 격차가 확대된 것은 사실이다. 이 격차는 차별로 고착화되며 전체 노동자의 삶의 질을 하락시키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기에 대공장 노조가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는 주문에 동의한다.

***대공장 노조의 반성과 나아 갈 길**

일본 노동운동이 망한 이유를 살펴보면 우리 대공장 노조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고쳐나가기 위한 교훈으로 받아 안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첫째, 정규직 조직노동자만을 위한 투쟁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고립된 점 둘째, 비정규직과 함께 가는 산별노조로 전환을 하지 못한 점 셋째, 상층 간부들의 관료화와 정파간 주도권 다툼에만 매몰된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일본의 경험은 현재 우리나라 노동운동을 거울에 비춰보듯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노동운동도 일본의 뒤를 이어 망하는 길로 가게 됨이 분명하다.

현재 노동운동은 '한 사람이 백 걸음 보다 백 사람이 한 걸음'이라는 노동운동의 기본원칙에서 벗어나며 고립을 자초하고 말았다. 대공장 노조 집단 이기주의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대공장 노조가 깊이 반성하고 고쳐야 할 부분은 1천4백만 노동자 전체를 대상으로 한 집단이기주의에 대한 저항을 강화해내지 못하고 방치한 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원칙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연대임금 전략

기업별 노조의 한계로 지적되는 '임단투 중심의 경제적 조합주의'에 대한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한다. 언론에서는 '전투적 조합주의'를 많이 비판하지만 사실 기업별 노조 하에서는 변질된 형태의 '전투적 실리주의'와 '담합적 실리주의'만이 존재한다. 특히 지불능력이 있는 기업에서는 더욱 더 타협과 담합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타협과 담합에 따라 대공장 노조가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들고 나가지만 결국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임금격차는 더 벌어지게 만드는 결과를 내놓는 것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제부터는 임금격차 축소를 위해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의 임금인상 폭을 높이는 방식을 과감히 채택해야 한다. 조합원 대중은 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기에 낡은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실질적으로 임금격차를 축소하고 차별을 철폐하는 연대임금 전략을 채택할 때 57%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신뢰를 보낼 것이다.

▲비정규직을 포함하는 산별노조 건설

정치세력화를 통해 사회의 주체 세력으로 성장하기 위해 노동운동은 '산별노조 전환'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그 동안의 노력에 불구하고 현재의 방식은 실패에 가깝다. 기존의 기업별 노조를 모아 조직을 재편하는 수준의 '무늬만 산별'을 추진해온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유럽의 노조가 산별노조로 가며 숙련노동자와 미숙련노동자를 통합한 것처럼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 미조직노동자를 산별노조로 통합하는 과정을 중요한 이슈로 만들어 내지 못했다. 대공장 노조들은 기득권을 일부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시급하게 비정규직을 포함하는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현재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면 과감하게 업종별 산별노조로 전략을 수정하여 비정규직을 가입시켜 획기적으로 조직률을 높여야 한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대통합

국민들로부터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서라도 기존의 기득권을 과감히 버리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간의 대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두 조직이 대립하고 갈등하면 노동대중뿐만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당한다. 또 조직내부의 고착된 정파구도 속에서 나눠먹기 식의 주도권 다툼은 노동운동에 대한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든다.

일본 노동운동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기혁신을 통한 통합적 지도력을 확보하고 '통큰 단결'을 이룰 때 노동자들이 사회의 주체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다. 양 조직은 미래지향적인 '통합추진기구'를 구성하고, 통합 가능한 업종과 연맹부터 비정규직을 포함한 산별노조 전환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노동운동

비록 1,000명 이상의 대기업에 해당되지만 외형적으로 주5일제 근무를 실시하는 등 큰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현실은 여전히 '저임금 장시간노동'의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1987년 외쳤던 "인간답게 살고싶다"는 절규를 충족시키는 것은 아직도 요원하다. 노동운동은 인간다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교육하여야 한다. 이를 통해 개개인의 각성뿐만 아니라 정치적 주체로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노동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세밀한 배려가 필요한 시기이다.

***아직도 막중한 대공장 노조의 사회적 책무**

대공장 노조의 사회적 책무와 역할은 아직도 막중하다. 앞서 제시한 ▲산별노조를 통해 비정규직을 끌어 안기, ▲노동자간 임금격차 축소와 차별철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통합,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노동운동 등의 4대 과제를 실천하는데 대공장 노조가 책임지고 이끌어야 한다.

노동운동 상층을 사회 통합적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혁신하며, 전태일 열사가 외쳤던 '근로기준법 지키기 운동'을 전사회적으로 펼친다면 다시 국민들에게 박수 받는 노동운동으로 돌아갈 것이다. 반성하며 혁신을 추구하는 대공장 노조는 '왕자병'에 걸릴 만큼 한가롭지 못하다. 외눈박이 지식인들의 잘못 겨눈 화살은 억울한 생명을 빼앗아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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