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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을 벗어난 김기춘 직권남용죄 대법원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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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을 벗어난 김기춘 직권남용죄 대법원 판결

[기고] 인위적으로 쪼갠 직권남용죄

조선 제16대 임금 인조(仁祖)의 둘째 아들로서 왕위에 올랐던 효종(孝宗)이 죽자, 부왕인 인조(仁祖)의 계비(繼妃)인 장렬왕후가 얼마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하는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즉 아들의 죽음을 맞은 어머니가 입어야 할 상복에 관한 논쟁이었다.

최초 예론(禮論)에 정통하기로 이름난 윤휴는 '의례(儀禮)'의 다음의 규정, 즉 “차자(次子)라도 왕위를 이었으면 적통을 이은 것으로 보아 3년복을 입어야 한다”는 규정을 들어 3년복을 주장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송시열은 위 규정의 단서 조항을 들어 장렬왕후가 1년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의례(儀禮)'의 위 규정에는 단서조항에 “4종지설(四種之說)”이라는 항목으로 비록 왕위를 이었어도 3년복을 입을 수 없는 4가지 경우가 규정되어 있는데, 효종의 경우 이 중 “체이부정(體而不正)”, 즉 “서자(庶子)로서 왕위를 이은 경우”에 해당하므로 1년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즉 송시열은 '의례(儀禮)'의 4종지설에서 말하는 ”서자(庶子)”란 “장자(長子) 이외의 아들”을 의미한다고 해석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허목은 “4종지설에서 말하는 ‘서자(庶子)’는 ‘첩의 아들’을 의미하므로 4종지설을 효종에게는 적용할 수 없고, 따라서 원칙으로 돌아가 장렬왕후는 3년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식적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서자(庶子)”는 “첩의 아들”을 의미하므로, 허목의 주장이 타당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제 막 즉위한 19세의 임금 현종(顯宗)은 송시열의 주장을 채택하여 버렸다. 이미 임금을 능가하는 권위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송시열의 주장을 차마 배척하지 못했던 것이다.
현종(顯宗)의 위와 같은 처분은 송시열의 힘과 권위를 더욱 높여준 셈이 되었고, 이후 조선의 정치가 송시열이 이끄는 노론(老論) 일당독재로 흐르게 된 것이 조선의 크나큰 불행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1월 30일 대법원은 김기춘 등이 좌파 예술인들에 대한 지원배제를 지시한 것이 직권남용죄에 해당하는지에 대하여 기존에 없던 ‘새로운 법리’를 제시하며 일부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즉 직권남용죄는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때” 성립하는데(형법 제123조), “직권을 남용했는지 여부”와 “의무없는 일을 하게 했는지 여부”를 분리하여 각각 검토하여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관계 공무원으로 하여금 각종 명단을 송부하도록 한 행위나 수시로 심의진행상황을 알리도록 한 행위가 “직권남용”에는 해당하지만,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무죄라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위 대법원 판결의 논리구조는 무척이나 괴이쩍다. 형법 제123조는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때”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직권남용”의 전형적인 행위유형인 것이다. 대법원의 논리대로라면, “공무원이 다른 사람에게 의무없는 일을 하도록 하였다는 점”이 인정되더라도, 그것이 “직권을 남용한 것”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면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 그러나 공무원이 자신이 가진 권한과 권력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것 자체가 직권을 남용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직권을 남용한다”는 표현은 극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이다. 이것만으로는 공무원의 어떠한 행위가 직권남용죄에 해당하는지를 도저히 판단할 수 없다. 그리하여 형법은 “직권남용”의 행위유형으로 두 가지 구성요건을 명시한 것이다. 즉 공무원이 (권력을 앞세워) ① 다른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것, 그리고 ② 다른 사람에게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는 것 이렇게 두 가지를 직권남용의 행위유형으로 규정해 놓은 것이다. ①과 ②에 해당하지만 “직권남용”에는 해당하지 않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을까. 대법원은 이에 관하여는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대법원은 형법 제123조가 규정하고 있는 직권남용죄의 성립요건을 아무런 합리적 설명 없이 인위적으로 두 개로 쪼개어 버렸다. 즉 직권남용죄의 성립여부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두 단계의 판단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함으로써 직권남용죄가 인정되는 범위를 현저히 줄여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법원의 작위적 논리구성은 법률 문언 자체의 의미에 반한다. 그리고 송시열이 “’서자(庶子)’는 ‘첩의 아들’이 아니라 ‘장자(長子) 이외의 모든 아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한 것만큼이나 건전한 상식을 희롱한다. 거짓 논리와 궤변은 산림에 파묻혀서 글만 읽어 현실감각이 없는 자들이 범하는 가장 흔한 오류이다. 문제는 송시열이 그러했든, 대법관들 역시 막강한 권위와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송시열의 나라가 비극으로 끝났듯이, 책상물림들의 나라 역시 명맥을 보존하기 어렵다. 사실 신명나게 칼춤 추고 있는 검찰보다 더 시급한 개혁대상은, 글자들을 이리저리 주워모아 허황된 논리를 만들어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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