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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정부 "즉각철군", 납치세력 "즉각석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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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정부 "즉각철군", 납치세력 "즉각석방"

미국의 '노골적 반대' 무릅쓰고 결단한 아로요, "국민의 대통령"

필리핀 트럭운전사를 납치했던 이라크 무장저항세력이 필리핀 정부가 '필리핀군 조기철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필리핀인을 석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필리핀정부 '조기 철수' 약속에 납치세력 "인질 곧 석방"**

미국의 CNN은 13일 바그다드 주재 필리핀 대사관 소식통을 인용, "납치저항세력이 필리핀 인질을 석방하겠다는 뜻을 통보했다"고 긴급뉴스로 보도했다. 필리핀 정부가 이같은 의사를 어떻게 전달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같은 통보는 이날 필리핀 정부가 이라크 주둔 자국군의 신속한 철군을 밝힌 이후 나온 것이어서, 신빙성이 높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3일 라파엘 세기스 필리핀 외무차관은 아랍위성방송 알자지라에 출연해 "필리핀은 이라크 주둔중인 자국병력을 신속하게, 가능한 한 빨리 철군시키겠다"고 밝혔다.

세기스 외무차관은 납치세력에 피랍된 자국민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면서 "납치저항세력인 '할레드 이븐 알-왈리드 여단'의 요구에 따라 필리핀 정부는 이라크에 파견된 인도적 지원군을 신속하게 철수시킬 것"이라며 "이들의 귀국을 위해 필요한 준비를 할 것"이라고 조기철수를 약속했다. 그는 그러나 "필리핀 정부의 의지에 따라 철군이 이뤄질 것"이라며 정확한 철수시한을 밝히지는 않았다.

필리핀은 현재 이라크 다국적군에 51명의 병력과 경찰, 의료 인력 등을 파견한 상태이며, 이밖에 4천1백명의 민간인들이 현재 이라크 주둔미군기지에서 요리사와 청소부, 기술자 등의 일을 하고 있다.

***납치된 필리핀인 ,"필리핀군 철군 안하면 나는 살해된다" 호소**

납치저항세력은 지난 8일 이라크 미군기지에서 일하던 필리핀 노동자 드 라 크루즈를 납치한 사실을 알자지라를 통해서 공개하면서 "필리핀 정부가 72시간내에 필리핀군을 이라크에서 철군하지 않으면 납치된 필리핀인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했었다.

납치 사실이 첫 보도된 이후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은 즉각 관계장관에게 "이라크에의 근로자 파견작업을 완전히 중단하라"고 명령했었다. 현재 이라크 주군 미군기지에는 영어에 능통하다는 이유로 4천1백여명의 필리핀인이 요리사, 기술자 등으로 일하고 있고, 납치된 크루즈도 그 중 한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장저항세력이 계속해 필리핀군 철군을 요구하자, 지난 10일에는 필리핀 정부는 "이라크에 평화유지군 명목으로 파병돼 있는 51명의 필리핀군을 주둔기간이 종료되는 8월20일 철수할 예정"이라고 발표했었다. 필리핀 정부는 직후 국방장관을 통해 "인질이 곧 석방될 것"이라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무장세력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했다는 판단에서였다.

살해 경고시한이 만료된 10일 무장세력은 그러나 다시 알자지라 방송에 보낸 비디오테이프에서 인질은 석방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7월20일까지 철군하지 않으면 인질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필리핀 정부가 약속한 철수시한과 불과 한달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나, 무장세력이 이처럼 필리핀 정부를 압박한 것은 '미국'이나 '자국민'이냐를 양자택일하라는 압박이었다.

이때 크루즈 가족은 물론, 필리핀 여론의 선택은 '자국민 보호우선'이었다. 이들은 필리핀 정부에 대해 "아로요 대통령은 그를 살려야 한다"며 "아로요 대통령은 미국의 이라크전을 지원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인지를 고려해서는 안된다"며 아로요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납치 저항세력은 12일 다시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납치된) 필리핀인이 아직 살아있다"며 "그러나 필리핀 정부가 자국군 철수를 결정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살해될 장소로 옮겨졌다"고 말했다. 저항세력은 이어 또다시 필리핀군의 조기 철수를 요구하며 "필리핀 정부에 기회를 더 주기 위해 살해 시한을 12일 밤까지 24시간 연장한다"고 밝혔다.

이날 방영된 비디오테이프에서 고 김선일씨 피살 직전과 마찬가지로 오렌지색 수의를 입은 크루즈는 아로요 대통령에게 "8월 20일 이전에 필리핀군을 철수할 것"을 호소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자신은 살해될 것이라고 절규했다. 고 김선일씨의 피살 직전 모습 그대로였다.

***아로요 대통령, '미국' 대신 '자국민 구출'선택**

아로요 필리핀 정부는 그동안 자국민 구출이라는 국민적 압력과 미국으로부터의 압박에 직면해 왔었으나, 이번 철군 발표는 '자국민 구출'이라는 국민적 요구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에 당선된 지 1달밖에 되지 않은 아로요 대통령은 인질 석방협상 과정에 무장세력의 요구를 따르지 말라는 미국의 노골적 압력에 시달려왔다.

한 예로 마닐라 주재 미국대사는 아로요 대통령의 조기철군 결정 직전인 12일 필리핀 지역 방송과 행한 인터뷰에서 "아로요 대통령은 인질에 대한 매우 깊이 염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서도 "필리핀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한 고려도 보여주었다"고 강조, 무장세력의 압력에 굴복하지 말 것을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도 12일 브리핑을 통해 "미 정부는 필리핀 정부의 조기 철군 거부 결정을 환영한다"며 "테러리스트들에게 굴복하지 않은 아로요 대통령에 찬사를 보낸다. 아로요 대통령과 필리핀 국민은 오랫동안 강력한 미국의 동맹이었다"고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로요 대통령은 결국 '자국민 안전'을 선택했다. 아마도 필리핀은 미국으로부터 그 대가를 치룰 것이다. 당장 이라크 주둔미군기지에서 일하고 있는 4천1백명의 필리핀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 압력도 작용할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 필리핀인들은 아로요 대통령의 결단을 높게 평가하고, 존경하고 있다. 아로요 대통령은 비로소 '국민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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