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 큰데 수단은 자잘
시민들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정부 예산을 더 확대하자는 방향은 옳다. 게다가 당면한 기후위기를 고려한다면, 에너지·산업·건물·수송 모든 부문에서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재생에너지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국가 재정 확대는 더욱 시급하다. 그런 점에서 확장 재정을 통해 '미세먼지 저감 투자'를 늘리겠다는 신호는 일단 반갑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감축이 실질적 효과를 내려면 한정된 예산과 자원의 효율적 분배와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 미세먼지와 기후변화 주무 부처인 환경부의 2020년 예산안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핵심을 제대로 겨냥하고 있지 않다.
산업 시설은 미세먼지 최대 배출원이지만, 예산의 손길은 적게 닿는 부문이다. 환경부가 내놓은 부문별 대기오염물질 배출 비중을 보면, 산업 부문은 미세먼지(PM2.5)의 42.1퍼센트, 황산화물의 56.1퍼센트를 배출하는 최대 오염원이다(2016년 기준). 그런데 환경부가 편성한 2020년 미세먼지 관련 예산 2조2000억 원 가운데 사업장 오염 저감 예산은 고작 3000억 원에 그쳤다. 미세먼지 저감 예산 중 14퍼센트에 불과하다.
미세먼지를 많이 배출하니 예산도 많이 투자돼야 한다는 접근이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올해 발생한 일련의 사건·사고를 돌이켜보면 사업장 미세먼지 관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여수 산업단지 대기오염물질 배출조작 사태나 영풍제련소의 환경오염 문제, 포스코·현대제철 제철소 오염물질 무단 배출 사건 등 사업장 미세먼지 관리 체계의 총체적인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대기오염물질 방지시설 비정상 가동, 허용기준 초과, 무허가 운영 등 위반 사업장의 적발 건수는 2018년 4925건으로 2015년보다 60퍼센트 증가했다.
사업장 오염 저감 예산 중 소규모사업장 방지시설 설치 시범사업에 2200억 원이 편성돼 가장 컸다. 재정적으로 열악해 방지시설 개선이 어려운 중소 사업장에 오염방지시설의 설치나 교체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예산안에 책정된 지원 대상 사업장 수는 4000개인데, 전국 소규모 사업장 수(연간 오염물질 배출량이 10톤 미만인 4·5종 사업장)가 5만2000개에 달한다는 현실을 고려하면 10퍼센트도 채 되지 않아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산업 배출 저감 수단과 감시 수단 더블 약세
더 중요한 대목도 있다. 산업 시설에서 불법과 조작의 오염물질 관리 행태가 만연하게 된 핵심 요인은 현장을 감독할 인력과 역량의 부족이다. 사업장 오염관리 권한은 지자체에 있지만, 수많은 사업장을 관리하고 감독할 전담 인력과 예산은 태부족이다. 전국에서 사업장이 가장 많이 위치한 경기도의 경우, 제대로 관리감독이 이뤄지려면, 관리 인력을 현재보다 2배로 늘려야 한다는 분석 결과가 최근 제기됐을 정도다. 산업시설 관리 제도를 개선하고 미세먼지 측정·분석 장비 구입에도 예산이 필요하지만, 현장을 감독할 사람과 조직에 대한 충분한 투자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늘어나는 미세먼지 예산이 산업시설 관리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대체 어디에 주로 들어갈까. 2020년 환경부 미세먼지 예산의 대부분인 1조7천억 원은 ‘도로오염원 저감’으로, 다시 말해 자동차에 집중됐다. 특히, 전기차와 수소차 보급 사업에만 1조900억 원이 편성됐다.
문제는 전기자동차와 수소자동차 모두 구매보조 예산의 80퍼센트 이상이 승용차 보급 지원금으로 쓰인다는 것이다. 수도권과 대도시에서 미세먼지의 주요 배출원은 경유차로, 특히 배출가스 5등급, 대형 노후 경유차가 차지한다. 대형 경유 상용차의 등록 비중은 5퍼센트지만, 미세먼지 배출 비중은 48.8퍼센트에 달한다. 승용차는 운행 시간과 거리가 짧아 상대적으로 오염 배출 비중도 낮다.
하지만 전기차 구매 보조 예산 중 13퍼센트가 전기화물차 지원에, 5퍼센트가 전기버스 지원 예산으로 편성됐다. 수소차도 마찬가지로, 구매 보조 예산 중 단 11퍼센트만이 수소 버스 지원금으로 편성됐다. 미세먼지 배출 비중은 대형 노후차에 집중된 반면, 보조금 지원은 승용차에 편중되어 있어 미세먼지 저감 효과를 충분히 내기에 한계가 있다. 수소차 예산이 급증하는 추세지만, 수소연료를 생산하는 과정이 전기차보다 비효율적이고 덜 환경적인 문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따라서 승용차 지원에만 편중된 친환경차 지원 예산을 화물차나 버스에 확대 분배하도록 조정할 필요성이 있다. 지자체에서 운행하는 경유 시내버스·마을버스나 화물차를 전기차로 전환할 수 있도록 우선 지원해야 한다.
교통수단 혁신 부를 중요 정책 수단 외면
궁극적으로, 친환경차 구매 보조 사업만으로는 내연기관차 퇴출과 전기차 전환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에 보조금 지원을 넘어 친환경차 의무판매제와 같은 정책 도입을 병행하는 것이 관건이다. 자동차 판매사에게 구속력 있는 친환경차 판매 비율을 설정해 시장에서 내연기관차량의 퇴출을 유도하는 제도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지난 11월 '미세먼지 관리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승용차 구매 보조금은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전기버스와 전기화물차와 같은 저공해차 보급 전략을 추진하는 한편 '저공해차 보급목표제'를 2020년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저공해차 보급목표제는 2022년까지 가스, 휘발유차까지 포함해 느슨하게 '저공해차' 범위를 설정했고, 목표도 불확실한데다 기업이 이행하지 않을 경우 강제할 수단도 약하다는 한계가 있다. 정부가 진정한 내연기관차의 퇴출 로드맵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기후변화 대응으로 분류할 만한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기후변화 대응으로 분류할 만한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법률사무소 이이'의 분석에 따르면, 환경부의 2019년도 예산 중 기후변화 대응에 편성된 규모는 총 792억 원 수준이다. 이 액수 전체가 실제 사업비도 아니다. 각종 경비와 법률로 의무지출이 규정된 경직성 예산을 제외한 구체적 사업비를 보면, 온실가스감축 및 기후변화 핵심기술개발에 85억 원, 지자체 온실가스 감축사업 지원에 48억 원, 비산업부문 온실가스 진단컨설팅에 22억 원, 배출권거래제 참여 중소기업 감축설비 지원사업에 13억 원이 전부다. 실질적인 기후변화 대응 사업비용은 고작 168억 원 수준이라는 것이다.
환경부가 이러니 다른 부처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국토교통부의 경우, 건축물 온실가스 및 에너지절감사업 활성화에 25억 원을, 제로에너지건축신산업육성에 10억 원을 편성했고, 건축물 기후변화대응 프로그램의 온실가스감축사업(배출권거래제)에는 9억5000만 원을 편성했다. 또 기존 건축물의 에너지효율을 높이고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그린리모델링 활성화에는 이자 지원금 형식의 83억 원이 전부다.
기후변화에 가장 크게 타격을 입을 수 있는 농어업 부문 관련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업온실가스감축 및 기후변화대응사업에 60억 원을 편성했고, 농업온실가스감축 및 기후기후변화 실태조사에 8억3천만 원을, 농업기후변화대응 체계구축사업에 174억 원을 잡았다. '스마트농업 육성'에만 669억 원이 편성된 것과 비교하면, 기후변화 대응 예산은 매우 인색한 편이다. 해양수산부의 경우, 친환경 고효율 선박 확보 지원 사업 85억 원과 같은 예산이 있지만, 이조차 연안화물선 유류비 보조금에 252억 원이 배정한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기후변화 관점에서 정책과 예산 개편 시급
결국, 미세먼지 저감과 기후변화 대응 예산의 확대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유발하는' 예산의 삭감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2019년 예산을 기준으로, 미세먼지 대응 예산에 3.4조 원을 지출했지만, 화석연료에 그보다 2배 가까운 보조금을 지급했다. 화물차 유가 보조금 2조 원, 농어민 면세유 1조 1000억 원, 석탄 비축 구입관리비에 68억 원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지난해 말부터 10개월간 유류세를 인하하면서 걷지 못한 세금이 2조6천억 원에 달한다. 화석연료 보조금을 축소하고 세제를 기후변화 대응에 맞는 요금과 세제 개편이 시급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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