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행위에 대한 책임은 일선 병사들이 아니라 조지 W. 부시 정부가 져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가운데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미군의 포로 신문기법은 국제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주장하고 나서 비난여론을 증폭시키고 있다.
한편 12일(현지시간) 미 상원에서 3시간동안 비공개로 진행된 미공개 포로학대 자료에는 여성 포로에게 가슴 등 신체를 노출시키도록 명령하고 포로들에게 강제로 성행위를 시키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어 추가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럼즈펠드, “이라크 포로신문기법, 국제규정 위반 아니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12일(현지시간) 상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해 "미 국방부 법무관들은 잠안재우기, 음식교체, 힘든자세 취하기 등의 방법을 승인했다”며 “이라크에서 이용되고 있는 포로 신문기법은 국제규정을 위반하지 않았고 이러한 기법이 이라크내 붙잡혀 있는 미국인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럼즈펠드는 이어 “제네바 협약은 이라크내 모든 포로들에 적용되고 있다”며 “하지만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해 관타나모기지에 수감돼 있는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이유로“제네바 협약은 국가간 전쟁에서 잡힌 포로들에 적용되는 것이지,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고 있는 알-카에다 등의 테러단체요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럼즈펠드의 이러한 발언은 그러나 즉각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켜, 리처드 더빈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은 “법무관들이 승인한 일부 방법은 포로에 대한 대우를 규정한 제네바 협약을 훨씬 넘어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현재 미군 한 명도 이라크에서 실종된 상태”라며 “이런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가 민간인 포로나 군 포로 모두에게 제네바 협약을 준수해야만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라며 꼬집었다.
하지만 럼즈펠드 등 부시정권 수뇌부는 전날 알카에다의 미국인 민간인 참수를 계기로, 이라크포로에 대한 성고문과 학대를 '정당화'하려는 노골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럼즈펠드 발언도 이같은 연장선위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되고 있어 앞으로 논란은 더욱 증폭될 전망이다.
***미상원 미공개 자료 1천8백장 열람, “여성포로 성행위 강요받아”**
특히 12일 상원에서 상원의원들에게만 제한적으로 공개된 미공개 사진은 럼즈펠드의 이같은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가를 재차 입증해주고 있다.
AP 통신은 3시간에 걸쳐 미공개 자료를 본 상원의원들의 말을 인용해 “이번에 공개된 미군에 의한 이라크 포로 학대행위에는 강요된 성행위, 움츠리고 있는 포로들에 대한 사나운 군용견들의 위협 등 기존에 공개된 사진의 충격과 야만성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상원 요구에 따라 국방부가 제출한 것으로 1천8백여장의 사진들과 일부 비디오 자료가 포함돼 있으며, 최고의 보안이 지켜지고 있는 의회내 공간에서 의원들에게만 공개됐다.
전언에 따르면, 공개된 사진에서 남성 포로들은 자위행위를 하도록 강요받았으며 벽에 부딪치도록 명령을 받았다. 또 사진 가운데에는 시체 사진도 있었으며 움추리고 있는 포로들을 향해 사납게 짖고 있는 군용견의 모습도 담겨 있었다. 아울러 여성 포로들에게도 유방을 노출하도록 명령했으며, 이들에게 동성간 성행위를 포함해 성행위를 강요하는 자료들도 포함돼 있었다.
또 일부 사진에는 미군 사이의 성행위로 보여지는 장면들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져 아부-그라이브 교도소내의 무너진 군기와 도덕성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했다.
사진과 비디오 자료를 보고 나온 의원들의 반응은 충격과 분노 그 자체였다. 의원들은 “잔인하고 가학적인 고문을 보았다”며 “이러한 잔학한 자료들이 추가 공개된다면 국제적인 분노와 이라크내 미군에게 상당히 위협요소가 될 것”이라며 우려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의원들은 전날 알카에다의 미국인 참수 사건을 의식한 듯, 미공개 자료가 당분간 공개돼선 안될 것이라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해 미의회 역시 쇼비니즘의 틀속에 갇혀있음을 새삼 드러냈다.
***기소된 잉글랜드 일병, “상부 명령 따라 한 것”주장**
미국의 정부여당은 비공개 자료 공개시 쇼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성고문 사태를 극소수 병사들의 '일탈행위'로 몰아가려는 움직임을 한층 본격화하고 있다.
공화당 출신 벤 나이트호스 켐벨 상원의원은 자신이 이날 본 자료들은 “자료의 일부”라면서도 “어떻게 이같은 망나니들이 우리 군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며 문제를 일부 군인탓으로 돌리려 했다. 럼즈펠드 등 부시 정권과 맥을 같이 하는 반응이다.
하지만 이같은 정부여당 움직임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다.
우선 공개된 포로학대 사진 속에서 포로의 성기를 가리키며 웃고 있던 모습을 보였던 린디 잉글랜드 일병은 덴버지역 방송사인 KCNC-TV와 11일 가진 인터뷰에서 “상관들이 사진촬영을 위해 특정포즈를 취하라는 지시를 받은데 따른 것”이라고 밝혀 이는 일부 병사의 문제가 아니라 군 명령에 따른 것임을 강조했다.
잉글랜드 일병은 누가 지시를 내렸는지에 대해서는 “지휘계통에 있는 사람”이라고만 밝혔으나 이들은 “선채로 엄지 손가락을 올리고 카메라를 응시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그 충격적인 사진을 설명하고 “촬영이 끝나고는 상사들이 사진이 잘 나왔다며 칭찬했다”고 폭로했다.
잉글랜드 일병을 위해 무료 변론을 맡은 조리지오 라샤드 변호사도 이날 잉글랜드 일병과 접견한 뒤 “그녀는 명령에 따라 미소를 지은 것으로 보인다”며 “정보기관요원들이 당시 수용소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해 포로학대 사건에 정보기관이 깊숙이 연관됐음을 시사했다.
라샤드 변호사는 “이들 병사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저항세력을 색출하기 위한 정보를 캐내 미국인의 생명을 구하게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정보기관들은 잉글랜드 일병 등을 포함한 병사들을 이용해 포로들에게 굴욕감을 주고 협박하기 위한 무기로 삼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등 미국내 주요 언론들도 사설을 통해 근본적인 책임은 부시 행정부 자체에 있다고 주장하고 나서 문제가 더욱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과연 포로 고문 사태가 부시 뜻대로 조기봉합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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