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포로들이 미군-영국군으로부터 성고문을 포함해 치욕적인 학대를 받은 사실이 미 언론에 의해 폭로된 이후, 이라크 전역의 교도소에서 가혹한 폭력과 야만적인 고문을 받았다는 이라크인들의 증언이 미국언론을 통해 잇따라 보도되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정부는 이같은 언론의 '반전보도'를 규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이미 봇물이 터진 양상이다.
***WP, “장기간 심문, 잠안재우기, 격리, 공포 및 치욕유발 다반사로 발생”**
워싱턴포스트(WP)는 3일(현지시간) 구금된 적이 있는 이라크인들의 증언을 보도하며 “장기간의 심문 ,잠 안재우기, 철저한 격리, 공포 및 치욕 유발, 육체적인 협박 등이 일상적으로 행해졌으며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는 아직도 2천5백명에서 7천명이 구금돼 있다”고 폭로했다.
WP에 따르면, 무와파크 사미 압바스라는 이라크 변호사는 지난 3월 한밤중에 잠을 자다 갑자기 집안으로 들어온 미군들에 의해 교도소로 붙잡혀 갔다.
압바스는 민간복장과 군복을 입은 미국 관리들에 의해 조사를 받는 기간동안 가리개를 머리에 쓰고 있었으며, 지쳐 쓰러질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어야만 했다. 또 스피커를 통해서는 반복해서 렙음악이 쏟아져 나와 휴식은 거의 불가능했다.
후세인 체제시절 군 장성출신인 압바스의 아버지는 57세의 고령과, 전후 미군당국에 협조적 행동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인 압바스와 함께 구금돼 똑같은 고문을 당했다.
이들 부자는 미군 당국의 ‘악명높은’ 교도소에서 당한 일들에 분노하고 있지만, 자신들이 연행된지 몇 달 뒤에는 “세 형제도 이 교도소에 구금돼 있다”고 밝혔다. 압바스는 “미국인들이 저지르고 있는 야만적인 만행은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분노를 터뜨리며 “이러한 행위들로 인해 연합군에 대한 적대세력이 점차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WP도 “미군 병사들의 이라크인 포로 학대 사진은 미군 점령군이 이라크인들에 가혹행위를 의도적으로 저지르고 있다는 기존 시각을 증명해주고 있다”며 "예전에 이미 퍼져 있던 불만의 목소리들이 이제 신빙성을 얻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기고문 당한 이라크인, “이는 사람이 아니다”며 분노에 떨어. 개집에도 구금 **
6개월전 미군에 의해 구금된 19살의 이라크 청년, 압둘라 모하메드 압둘라자크가 WP에 한 증언은 더욱 충격적이다.
압둘라자크는 자신이 당한 고문을 폭로한 뒤“우리가 그런 처우를 받은 뒤에 어떻게 미국인들을 증오하지 않겠는가”라며 “이는 사람이 아니다”고 이를 갈았다.
지난해 9월 어느날 새벽 2시30분께 미군 군용차량 4대를 타고온 미군들은 무조건 집문을 박차고 들어와서는 그를 깨워 체포했다. 압둘라자크에 따르면 미군이 그를 체포한 사유는 단 한가지, 로켓 추진 수류탄발사기를 가지고 있는 10대의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그는 수갑이 채워지고 가리개가 씌어진 후 미군 구금시설로 옮겨져 미군들과 쿠웨이트군 복장을 한 사람이 조사를 시작했으며 3일 동안 그 쿠웨이트인은 전기 고문을 자행하기도 했다.
그는 벌거벗겨진 채 의자에 앉아 있었으며 육체적 스트레스와 물과 음식을 먹지 못해 쓰러져 결국 들것에 실려 바그다드 국제공항으로 실려갔다. 이후 그는 다시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로 이감돼 40명의 다른 이라크인들과 함께 한 텐트에서 생활했으며 “한 주동안 단 1리터의 물과 하루 한끼로만 생활했다”고 증언했다.
그에 따르면 말을 잘 듣지 않는 포로들은 교도소 군용견들의 개집으로 이용되던 컨테이너에 수감되기도 했다. 이들은 며칠동안이나 그 악취가 진동하는 곳에서 구금돼 있어야만 했다. 그는 또 조사를 받는 동안에는 “손과 발이 묶여 바닥에 내동댕이쳐졌으며 그 자세로 수시간동안 조사를 받기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택시기사 쌍둥이 형제, 사막에서 목만 내밀고 파묻히기도 **
WP는 이어 세이프 마흐무드 세이크라는 26살의 택시 운전기사의 증언도 소개했다. 세이크는 지난해 7월 저항세력에 가담했고 미국인들을 위해 일했던 통역사의 살해 위협에 동조했다는 사유로 자신의 집에서 붙잡혔다.
하지만 그가 붙잡힌 진짜 이유는 그에게 60달러를 빌려간 사람이 그 돈을 갚지 않기 위해 저항세력 체포에 혈안이 된 미군 당국에 허위신고를 함으로써 붙잡힌 것이다.
세이크는 그의 쌍둥이 형제와 함께 수개월 동안 이 감옥에서 저 감옥으로 옮겨지며 구금생활을 하게 됐다. 그가 처음 도착한 곳은 아드하미야에 있는 미군 기지였는데 그 곳에서 그는 “조사관들에게 구타를 당했으며 신장이 구타로 상처를 입어 피오줌을 싸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이들 두 형제는 또 사막으로 붙들려 가서는 목만 내놓고 모래에 파묻힌 상태로 고문을 당했다. 세이크는 “나는 형을 볼 수 없었으며 총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뒤로 갔고 내게 ‘형이 죽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조사관들은 형을 죽이지는 않았으나 공포감을 유발하기 위해서 이런 고문을 자행했으며, 또 겁주기 위한 방편으로 머리 근처에서 총격을 가하기도 했다.
***한 포로 "차라리 후세인시절 고문이 낫더라"**
미국의 AP통신도 3일(현지시간) 사담 후세인 정권시절과 미 군정하에서 모두 투옥됐던 경험이 있는 한 시아파 교도는 미군에 의한 성적인 모욕보다는 차라리 후세인시절 고문이 낫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과격 시아파 성직자 무크타다 알-사드르의 알-마흐디군 민병대원 드히아 알-슈웨이리(30)는 후세인 정권시절 2차례 투옥돼 전기고문과 구타, 천장에 매달리기 등의 고문을 받았다며 이같이 분노를 표시했다.
알-슈웨이리는 TV에서 이라크 재소자들이 알몸 피라미드를 만들거나 머리에 두건을 쓴 알몸의 이라크 재소자들 옆에서 미군병사들이 웃고 있는 사진을 봤으나 놀라지 않았다면서 자신도 지난해 10월 미군에 의해 체포된 뒤 한차례 약 15분간 발가벗겨진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그들(미군)이 붉은색 죄수복을 입히기 위한 것인줄 알고 겉옷을 벗었는데 그들은 속옷까지 벗을 것을 요구, 항의했지만 결국 속옷까지 벗을 수 밖에 없었다"며 "그들은 창피해서 설명하기 힘든 방법으로 우리 등 7명을 있도록 한 뒤 우리를 바라봤다. 그들은 이같은 짓이 우리에게 굴욕감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알-슈웨이리는 지난해 10월 바그다드 인근 사드리시티에서 집에 자동소총과 아랍어 구호가 적힌 머리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알-마흐디 민병대원이라면서 자신의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체포됐다.
그는 후세인 정권시절인 12년전 19개월간 투옥됐었으며 1999년 다시 체포돼 당시 금지돼 있던 이슬람 알-다와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종신형을 받았으나 같은해말 사면이 단행되면서 풀려났다고 설명했다.
알-슈웨이리는 "나는 후세인(전 대통령)을 너무 증오해 처음 미군이 진주했을 때 해방군이라고 생각해 지지했으나 곧바로 그들이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미군에 의해 구금된 이후로는 증오의 대상이 후세인에서 미군으로 바뀌었으며 두달전 알-마흐디 민병대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부시 보도지침' 완전무력화**
<뉴요커> <워싱턴포스트>, AP통신 등 미국언론의 잇따른 이라크포로 고문 실태 보도는 이라크전후 부시정권이 강력히 추진해온 '부시 보도지침'이 사실상 무력화됐음을 의미한다.
부시 정권은 이같은 미언론의 잇따른 폭로에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에 미군 수뇌부는 말도 안되는 강변으로 일관하고 있으나, 이는 오히려 세계의 비난여론을 촉발시킬 뿐이다.
리처드 마이어스 미 합참의장은 이번 가혹행위가 "통탄스럽고 섬뜩한" 일이라고 비난하면서도 이라크 저항세력은 훨씬 더 나쁜 행동을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ABC방송에서 "그들은 무고한 남자와 여자, 그리고 어린이를 죽일 때마다 기뻐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시 정권은 특히 이번 폭로가 오는 11월 대선에 치명적 악재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며, 더이상 이같은 보도가 나가지 않도록 언론통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나 이미 봇물은 터진 상태라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미국정부는 지난주 미군 사망자들을 담은 관이 성조지에 싸인 채 비행기에 실리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자, 이 사진을 촬영한 직원 두명을 해고한 바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