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프로그램 마감됐습니다^^
서(西)지중해의 요충지인 튀니지는 고대부터 다양한 민족과 문명이 교차된 곳이라 카르타고, 로마, 비잔티온제국, 초기그리스도교, 이슬람문명, 프랑스문화 등이 복잡하게 섞여 문명의 도가니를 이루고 있습니다. 카르타고는 고대 지중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유적이고, 3세기 때의 암피테아트룸(원형경기장)은 로마제국 말기의 건축을 볼 수 있는 명품 건물입니다. 또 초장기 바실리크 형식의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가 있는가 하면, 북부 아프리카 이슬람 국가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세워진 자이투나 모스크, 시디 압달라 모스크, 시디 사합 모스크 같은 7-8세기의 모스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인 튀니스와 스팍스의 구시가지는 <아라비안 나이트>를 연상하게 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갖고 있습니다. 이들 도시는 이슬람 중세를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또 튀니지는 국토의 40%가 사막인 나라이기도 해서 오아시스 도시 순방과 낙타 타고 사막 여행하기 등은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하기 힘든 경험입니다.
이 시대의 뛰어난 문명답사 안내자이며 세계문명사의 권위자인 유재원 교수(한국외대 그리스어과 명예교수)가 2020년 2월 <문명답사 제7탄>으로, <지중해와 사막 사이에 숨은! 역사의 보물창고-튀니지 11일> 문명답사에 나섭니다.
[유재원교수 문명답사 제1탄]은 2018년 1월 페르시아(이란) 답사 10일을, 제2탄은 8월 터키 흑해 연안의 트라브존과 코카서스의 조지아/아르메니아 2개국 여행 12일을, 제3탄은2019년 1월 이집트 고대문명 일주 11일을, 제4탄은 4월 지중해의 빛나는 섬 몰타와 시칠리아 12일을, 제5탄은 9월 터키 문명여행 11일을, 제6탄은 11월과 2020년 1월 이집트 유적답사 11일을 성황리에 다녀온 바 있습니다. 그 동안 유 교수의 문명답사는 그 깊이와 넓이에서 항상 화제였지만, 정년 후 학교강의 부담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이번 [문명답사 시리즈]는 성가(聲價)를 달리할 걸로 기대를 모읍니다.
2020년 2월 13(목)-23(일)일, <지중해와 사하라사막 사이에 숨은! 역사의 보물창고-튀니지 11일>을 준비 중인 유재원 교수로부터 방문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어봅니다(참가자에게는 출발시 상세한 여행자료집을 드립니다^^).
북부아프리카 국가들 가운데 가장 크기가 작은 튀니지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합니다. 기원전 1200년쯤에 지금 레바논 지역인 페니키아에서 온 사람들이 이곳에 정착했고, 이미 기원전 4,000년에 나일강의 농업기술이 이곳의 기름진 지중해의 평원으로 전해져 밀과 올리브 같은 작물을 풍부히 생산하여 한때 ‘로마의 빵창고’라고 불렸습니다.
기원전 3-2세기에 활동했던 그리스 역사학자 폴리비오스와 기원 전후에 활동했던 스트라보스는 튀니지의 제르바 섬이 로토스라는 열매를 먹으면 모든 것을 잊고 행복감에 빠져 떠나려 하지 않는다는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로토파고이의 현장이라고 소개하고 있고, 로마의 건국신화는 트로이아 전쟁에서 패배하고 피난 온 아이네아스가 이곳에서 디도 여왕을 만났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의 후손들이 기원전 814년 카르타고를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카르타고의 영광은 기원전 146년 로마에게 점령당하면서 끝나고 그 후 이곳은 로마의 곡창으로 번성합니다. 그 흔적은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어 콜로세움 다음으로 큰 기원후 3세기 때의 로마 암피테아트룸이 이곳에 있습니다. 또 교부(敎父) 시대에는 강력한 그리스도교의 중심지로서 도나티스테스라는 이단 종파가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5세기와 6세기에는 반달족의 침입을 받았고 이어서 534년부터는 비잔티온 제국에 편입됩니다.
튀니지는 7세기 중반 이슬람의 침입과 뒤이은 오랜 전쟁 끝에 698년부터 이슬람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670년에 세워진 카이루안 모스크는 마그레브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모스크죠. 튀니지는 이슬람의 정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까닭에 이슬람 시대의 대부분을 거의 독립된 왕국으로서의 자치를 누렸습니다. 1574년 오스만 터키에 편입되었다가 1881부터 1956년까지 프랑스의 보호령으로 프랑스의 지배를 받아 튀니지에는 프랑스 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독립 후 쿠데타로 왕정을 뒤엎은 군인들에 의한 독재정치를 겪다가 2011년 재스민 혁명을 계기로 정권 교체가 일어났으며 재스민 혁명은 전 이슬람 국가로 퍼져나가 ‘아랍의 봄’이란 혁명의 단초를 제공했습니다. 지금 현재 이 나라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거부하고 세속적 이슬람 국가로 남아 있어 자유로운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튀니지의 화려한 보물창고 <바르도 박물관>
로마시대 아프리카의 호화로운 주택들에 장식되어 있었던 최고의 모자이크들이 소장되어 있는 튀니지 최고의 박물관입니다. 튀니지의 고대 유적지를 찾는 여행자라면, 이 박물관을 들르지 않고는 튀니지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이며, 유적지에서 가져온 수많은 예술품들을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진귀한 소장품뿐 아니라 건물 자체도 튀니지의 훌륭한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히는데, 이곳은 13세기 하프시드 왕조의 술탄이 임명한 지방 장관의 관저였던 곳입니다. 그런 이후에 1888년에 박물관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인 답사를 위해 ‘드라바’라는 문을 통과하는데, 마치 고대로 들어가는 ‘시간의 문’을 통과하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문은 14-16세기 하프시드 왕조 때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튀니지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이야기 ‘카르타고’
카르타고에 도시를 세운 최초의 민족은 페니키아인입니다. 페니키아인들은 레바논 산맥과 지중해 사이에 자신들의 고향 도시를 모방해 ‘새로운 도시’를 건설합니다.
건설되어진 지 3세기 후, 상업도시 카르타고는 지중해 서부 일대를 제패하기에 이르렀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카르타고는 훗날 숙적이 된 로마와 세력권을 정한 조약을 맺게 됩니다. 그러나 시칠리아 섬 동북쪽 끝에 있는 메시나의 내분을 계기로 기원전 264년에 제1차 포에니 전쟁을 하게 되고, 하밀카르 장군의 아들 한니발은 기원전 219년에 이 지역을 공격하면서 제2차 포에니 전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한니발 전쟁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됩니다.
로마 정복을 위해 한니발은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로마를 공격하나, 로마의 스키피오가 군대를 이끌고 북아프리카에 상륙하자 한니발은 본국을 구하기 위해 귀국해야 했고, 이 전쟁에서 한니발은 패하게 됩니다.
그 이후 제3차 포에니 전쟁이 일어났으며, 로마군은 카르타고를 철저하게 파괴하여 폐허로 만들며 소금을 뿌렸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거치며, 카르타고의 건축물들은 튀니스의 건물을 짓는데 채석장이 되었고, 이탈리아 피사의 대성당을 건설할 때에도 석재로 이용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고대 카르타고 제국의 유적은 대부분 터만 남아있고, 그나마 보존 상태가 좋은 것은 로마시대 유적들이며, 카르타고 제국 유적이 주로 남아있는 곳은 비르사 언덕 주변으로 옛 건물들의 주춧돌과 돌기둥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이곳에서 기원전 2세기경에 지어진 집들과 발달된 수로 시설을 갖춘 주거 지역이 발굴되었습니다.
시디부사이드
시디부사이드는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 그리고 그것과 어울리는 하얗고 파란 집들이 어울려져서 ‘튀니지언 블루’라고 불립니다.
시디부사이드는 둥근 지붕과 파란 창틀, 대문이 어우러져 ‘북아프리카의 산토리니’라고도 불리고, 여기에서 ‘카페 데 델리스’라는 카페는 알제리 출신 프랑스 가수인 파트리크 브뤼엘이 1993년에 부른 노래 <오 카페 데 델리스>의 배경이 된 곳으로 유명합니다.
파란 대문과 하얀 벽들의 골목을 지나면, 유명한 ‘카페 데 나트’가 있는데, 계단을 올라 카페에 들어가면 각기 다른 높이의 작은 발코니가 더 매력적이어서 이 카페를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곳이 또 유명해진 이유는 앙드레 지드, 시몬 드 보부아르, 알베르 까뮈, 모파상, 생텍쥐페레 등이 이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차를 마신 사연에 연유하며, 그들의 낡은 흙백 사진들이 벽 한쪽에 걸려 있습니다.
두가
튀니지에는 로마 유적지가 많이 남아 있지만, 두가는 로마 시대의 유적지가 가장 많이 남아 있고, 특히 신전 및 원형극장 등으로 유명합니다.
기원전 3세기 동안 카르타고의 통치하에 있었지만, 제2차 포에니 전쟁 말기에는 누미디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 지역의 번성은 2-4세기였고, 인구는 많지는 않았지만 꽤 풍요롭게 번성했음을 유적지와 유물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문으로 들어서서 극장에서부터 로마로를 따라 걸으면 ‘바람의 광장’과 카피톨리노, 머큐리 신전 등을 만날 수 있으며, 여기에 있는 카피톨리노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같은 형태의 건물들 중 가장 세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신전들뿐만 아니라 공공시설인 공중목욕탕들도 있는데, 가장 규모가 크고 잘 보존된 것이 리시니안 목욕탕이며, 3세기에 만들어져 현재까지 건물의 벽면과 긴 터널이 허물어지지 않고 원래 모습대로 남아 있습니다.
두가 유적지에서 가장 중요한 기념물 중 하나로 ‘리비아-카르타고 묘’가 있는데, 21m 높이의 3층탑 모양의 석묘이며, 꼭대기 첨탑에는 앉아있는 사자상이 있습니다.
두가 유적지를 둘러보면 그 시대를 상상해 볼 수 있는데, 이 유적지는 한마디로 카르타고, 누미디아, 헬레니즘, 그리고 로마 등의 각기 다른 문화가 다채롭게 융화되어 있는 훌륭한
문화유산이며, 그것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스베이틀라
스베이틀라는 누미디아 인들이 서기 1세기 초에 세웠는데 그 지역의 여느 로마 제국 도시들처럼 눈부시게 발전하였습니다. 스베이틀라의 교외 주변은 올리브 재배에 이상적이어서 빠르게 부유해졌으며, 2세기에 매우 훌륭한 신전들이 세워졌고, 튀니지의 다른 로마 도시들처럼 번영의 절정기를 맞이하였던 것을 유적지들이 말해줍니다.
신전들은 2세기에 세워진 것이고, 신전들을 둘러싸고 있는 벽은 6세기 비잔틴 제국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나란히 서 있는 세 개의 신전(미네르바 신전, 주피터 신전, 주노 신전)은 안토니우스 게이트를 통해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유 교수와의 여행에는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길 위에서 펼쳐지는 명강의는 동서고금을 통달한 깊이 있는 내용뿐만 아니라 재미로도 정평이 나 있으며, 여행이 단지 관광으로 끝나지 않고 새롭고도 깊은 인문학을 만나는 설레임을 선사합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해가 떨어져도 강의는 끝나지 않습니다. 유 교수 특유의 저녁 세미나를 통해 도심의 거리에서, 카페에서, 선술집에서 새로운 문화와의 어울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지중해와 사막 사이에 숨은! 역사의 보물창고-튀니지 11일>의 답사 개념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답사 일정은 항공 및 현지 사정에 의해 일부 변경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답사 일정표는 이 답사를 준비 중인 여행사에 연락하시어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참가신청 안내>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인문학습원'을 검색해 홈페이지로 들어오세요. 유사 '인문학습원'들이 있으니 검색에 착오없으시기 바라며 꼭 인문학습원(huschool)을 확인하세요(기사에 전화번호, 웹주소, 참가비, 링크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이 있어 이리 하니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홈페이지에서 '학교소개'로 들어와 '유재원교수 문명답사 제7탄' 튀니지편을 찾으시면 기사 뒷부분에 상세한 참가신청 안내가 되어 있습니다.
★인문학습원 홈페이지를 방문하시면 참가하실 수 있는 여러 학교와 해외캠프들에 관한 정보가 있으니 참고하세요. 회원 가입하시고 메일 주소 남기시면 각 학교 개강과 해외캠프 프로그램 정보를 바로바로 배달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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