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생명공학 띄우는 한 목소리, '역풍' 어찌 감당하려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생명공학 띄우는 한 목소리, '역풍' 어찌 감당하려고"

<시민과학자를찾아서2> 강릉대 전방욱 교수

지난 2월 서울대 황우석 교수팀이 세계 최초로 사람의 난자를 이용한 인간배아 복제를 통해 줄기세포를 얻어내 큰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이 연구는 <사이언스> 인터넷판에 게재되면서 국제적으로도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이언스> 게재 전 <중앙일보>가 이를 크게 보도하면서 과학보도의 '엠바고(보도제한)' 논란이 증폭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황우석 교수 노벨상 후원회에 대한 논란이 촉발되는 등 황 교수팀의 연구는 과학계를 넘어 여전히 여러 가지 얘깃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렇게 황우석 교수팀의 인간배아 복제 성공을 둘러싼 말들이 무성한 가운데, 정작 생명공학을 연구하는 과학기술자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모두 다 황 교수팀이 이뤄낸 '세계 최초'의 연구 성과를 부러워하면서, 다른 '세계 최초'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일까?

<프레시안>과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펴내는 <시민과학>은 연속 인터뷰 '시민과학자를 찾아서'의 두 번째 주인공으로 강릉대 생물학과 전방욱 교수를 선정했다. 마침 전방욱 교수가 황 교수팀의 인간배아 복제 성공이 발표되기 바로 직전에 출간한 <수상한 과학>(풀빛 펴냄)이라는 '생명공학 비판서'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국내에서는 최초로 현직 생물학자가 '현대 생명공학의 빛과 그림자'를 전체적으로 조망한 본격적인 비판서이다. 전 교수는 이 책의 '섹시한 과학자'란 한 장을 할애해 황우석 교수의 '언론 플레이'와 언론 과학보도의 문제점을 짚고 있어서 더욱더 눈길을 끌었다.

전방욱 교수는 이 책 출간 외에도 20년 가까이 강릉대에 재직하면서 지역 사회에서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여러 가지 활동을 전개해 왔다. 최근에는 현대 생명공학에 대한 성찰적 목소리를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내왔다. 전 교수는 또 <진화의 패턴>(로저 르윈, 사이언스북스 펴냄)이나 <생명의 미래>(에드워드 윌슨, 근간)와 같은 대중 과학서의 번역을 통해 과학 대중화에 대해서도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다. 등단한 시인이라는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인터뷰 내내 전방욱 교수는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에 대한 얘기를 중심으로 국내 과학기술 정책의 문제점, 언론 과학보도의 문제점, 이공계 위기,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 과학기술 대중화의 바람직한 방향 등 과학기술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의견들을 내놓았다.

특히 전방욱 교수는 생명공학을 무조건 육성해야 한다고 정부, 언론, 과학기술계가 한 목소리를 내는 데 대해서 큰 우려를 표명했다. 그것의 잠재적인 위험성이 현실화되거나 상업적인 이용 가능성에 대한 대중들의 불신이 팽배할 경우 과학기술계 전반에 대한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의 달'인 4월을 맞아 과학기술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은 도외시한 채, 분위기를 띄우는 데만 치중하고 있는 정부와 과학기술단체의 구태의연한 최근 움직임에도 많은 시사점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인터뷰는 전방욱 교수가 1년간의 일정으로 언론을 매개로 한 과학기술자의 대중의 커뮤니케이션(소통)을 연구하기 위해 캐나다로 출국을 앞둔 3월2일 서울대 앞 인문사회과학 서점 <그날이오면> 2층에서 2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인터뷰에는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김병수 간사가 함께했다. 편집자주

<전방욱 교수 인터뷰>

프레시안 : 출국 준비로 분주할 텐데 시간을 내 줘서 감사하다. <프레시안>과 <시민과학>은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비교적 독립적인 연구 활동을 수행하면서, 과학기술과 사회 또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해 고민하는 숨어있는 과학기술자를 찾아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고민을 들어보는 '시민과학자를 찾아서'라는 연속 인터뷰를 기획했다. 이번에는 전방욱 교수님을 그 대상자로 선정했다.

전방욱 : 나는 그렇게 주목받을 만한 과학자가 못 된다. 오늘 여러 가지 고민들을 같이 나누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

***과학기술자와 대중들의 소통, 일방통행은 안 돼**

프레시안 : '시민과학자를 찾아서'라는 인터뷰를 기획했지만 '시민과학자'나 '시민과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 '시민과학'이나 '시민과학자'란 얘기를 들었을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전방욱 : (웃음) 익숙한 질문이 아니라서 대답을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과학자 입장에서는 일단 자기의 전공 지식을 가지고 시민사회의 다양한 활동에 힘을 보태는 것이 '시민과학'으로, 그런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을 '시민과학자'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다만 '힘을 빌려준다든지', '대중에게 과학 지식을 전달해준다든지' 하는 것들은 자칫 잘못하면 과학자들이 무지한 시민들을 과학 지식을 동원해 '각성시킨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그런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통이 한 방향으로 일방적으로 흐르기보다는, 상호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인데, 내가 캐나다로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러 간다고 하니까 동료들이 잘 이해를 못 하더라. 그들이 대중과의 소통에서 '일방통행'을 은연 중에 전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시안 : 앞으로 1년 동안 캐나다에 가서 과학 커뮤니케이션 연구를 하기로 했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생소한 분야다.

전방욱 : 캐나다에 'GE3LS 프로젝트(Genomics: Ethics, Economics, Environment, Law and Society)'라는 게 있다. 우리나라의 'ELSI 프로젝트(Ethical, Legal, and Social Implications of Human Genome Research)'와 마찬가지로 인간 게놈 연구에 따른 윤리적, 법적, 사회적 영향에 관한 연구를 하는 프로젝트이다.

캘거리대 커뮤니케이션·문화학부의 에드나 아인시델(Edna Einsiedel) 교수도 이 프로젝트에 참가해 특히 생명공학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논쟁과 그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반응과 참여에 주목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아인시델 교수와 함께 연구할 예정이다.

프레시안 :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전방욱 : 국내 'ELSI 프로젝트'에도 언론학자들이 참여하는 미디어의 역할 등에 대한 연구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엑셀 표를 말로 옮겨 놓은 듯한 얘기에 그치고 있다. 물론 과학기술자들이 생명공학에 대한 얘기를 언론을 통해 몇 회나 했는지, 시민들이 언론을 통해 생명공학에 대한 정보를 얼마나 얻고 있는지를 수치로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전달 방식이다. 예를 들어 생명공학에 관한 많은 논의는 메타포(은유)로 이루어진다. '생명공학은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훔쳤다', '금단의 열매를 땄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런 메타포를 이용한 전달 방식은 일반인들에게 쉽게 와 닿는 측면도 있지만, 그 신화 자체가 원래 가지고 있는 고유한 의미 때문에 생명공학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이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왜곡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외국에서는 이런 점까지 고려해서 좀더 심층적인 분석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그 정도에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

프레시안 : 캐나다에서 1년간 연구할 주제도 대강 잡힌 것 같다.

전방욱 : 그렇다. 나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에서 시민들의 반응이 제일 흥미롭다. 황우석 교수팀이 배아복제를 통해 줄기세포를 만들어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을 때, 기사 내용도 중요하지만 독자들의 댓글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 댓글은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많지만, 대중들이 과학 활동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아주 큰 가치가 있다.

신문 독자의견도 마찬가지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 배아복제와 같은 생명공학과 관련된 사건이 보도되면 그와 관련해 상당수 능동적인 독자들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다. 그런 독자의견을 분석해보면 전문가들이 사용하고 있는 생명공학에 대한 언어와 일반 시민들이 사용하고 있는 생명공학에 대한 언어가 어떻게 다른지, 또 그런 양측의 언어는 어떤 한계와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가 드러날 수 있다. 이런 데 초점을 맞춰보고 싶다.

프레시안 : 넓게 보면 생명공학 연구 결과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반응을 연구하는 것인가?

전방욱 : 그렇다. 두 번째는 황우석 교수팀 연구와 관련한 현상에 주목하고 싶다. 과학이 신화화되는 과정을 추적해보는 것이라고나 할까. 아인시델 교수도 현지 언론을 통해 황 교수팀의 연구 결과에 대한 보도를 읽고 내 생각을 물어왔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외국의 언론이 황 교수팀 연구를 다룬 방식은 우리나라 언론과 전혀 달랐다. 외국의 언론은 그 연구의 과학적 성과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우려도 많이 표시했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그런 우려는 빼버리고 과학적 성과만 과대포장해서 부각시키고 있다. 황 교수에 대한 노벨상 후원회는 그런 왜곡의 정점에 선 해프닝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가 굉장히 심한 '과학 콤플렉스'에 빠져 있다고 느꼈다. 이런 현상을 좀 거리를 두고 종합적으로 검토해보고 싶다.

프레시안 : 자연스럽게 두 가지 주제가 얘기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배아복제 연구와 같은 생명공학, 좀 넓게 말하면 국내 과학기술계와 정부, 기업이 주력하고 있는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이다. 국내 과학기술계와 정부, 기업은 '선택과 집중'의 논리를 일종의 불문율처럼 받들고 있다.

또 다른 것은 이런 과학기술 발전 방향에 대해서 전혀 사회적 토론이 안 되고 있는 문제점이다. 거기에는 일부 과학기술계와 정부, 기업이 과학기술 정책의 의제를 독점하고 있고, 대중과 과학기술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왜곡되고 있는 점 등이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거기에는 또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크게 이런 두 가지 방향을 가지고 얘기를 해보면 좋겠다.

***과학기술 발전, '선택과 집중' 최선의 방향 아니다**

프레시안 : 현재 과학기술계와 정부, 기업은 과학기술 발전에 있어 '선택과 집중' 논리를 최선의 방향으로 상정하고 있다. 일종의 '불가피하다'는 현실 논리인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전방욱 : 현재 '창의적 연구과제', '국가실험실' 등의 이름으로 과학기술계에 연구비가 지원되고 있다. 실제로 현실은 어떤가? 지방대에서 연구비를 신청해보면 연구비를 구할 수 없다. 대형 프로젝트 중심으로 가다보니, 기초 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비를 구할 수 없다. 사실 상업적인 연구 성과와 이어지는 대형 프로젝트들은 기업에서 연구비를 조달할 수도 있고, 창업해서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수도 있지만 기초 연구는 그렇지 않다.

이런 점에서 일종의 연구비 왜곡이 일어나고 있다. 일종의 악순환이다. 대형 프로젝트를 하는 분들은 '돈 먹는 공룡'처럼 계속 돈과 인력을 요구하고, 그러다보면 돈과 인력이 그 쪽으로 더 집중돼 몸집을 키우게 되고, 그럼 또 돈과 인력을 더 요구하고. 이런 분위기를 언론이 적당히 부추겨 여론을 만들고 있고.

프레시안 : 생명공학만 놓고 봐도 '선택과 집중' 논리가 정부 과학기술 정책의 화두다. 최근에는 생명공학 분야 중에서도 우리가 경쟁력 있는 분야가 배아복제니까 그 분야에 집중하자, 그럼 자연스럽게 상업적 이익과 연결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주장'이 제시되기도 한다. 지적한 것처럼 그런 분위기를 현장의 과학기술자나 언론들이 부추기고 있고.

전방욱 : 배아복제 연구에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은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과학기술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고, 생명윤리 문제 등 고려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분야다.

***배아복제 연구, 과학기술적 시각에서 봐도 심각한 결함 많아**

프레시안 : 배아복제 연구에 집중하는 것이 순전히 과학기술적 시각에서 봐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인가?

전방욱 : 그렇다. 나는 인간발생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주변에 많은 자문을 구했다. 대부분은 회의적인 반응이다. 일단 효율성이 굉장히 낮다. 기자들은 애써 감추던데...... (웃음) 2백42개 난자 중에서 줄기세포를 얻어낸 것은 단 1개밖에 없다. 이런 효율성을 가지고 무슨 상업적으로 연결을 할 수 있겠나.

면역 거부 반응도 심각한 문제다. 이번 황 교수팀의 연구는 난구세포(난자를 둘러싼 세포층)의 핵을 동일인의 난자에 이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줄기세포를 만들면 난자를 제공한 그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에게 사용했을 때 심각한 면역 거부 반응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 기술이 갖는 또 하나의 단점은 남자에게는 적용할 수 없다. 남자는 난자가 없기 때문이다. 황 교수는 남자에게도 이용하기 위해서 '어떤 체세포를 사용해야 복제 성공률을 높일 수 있는지 궁리 중'이라는데,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문제에 덧붙여 줄기세포의 응용 가능성이 여전히 불확정적이라는 것도 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많은 과학자들은 줄기세포를 주입했을 때, 그것이 새로운 세포층으로 발달을 할지, 기존의 세포와 융합을 할지에 대해서 여전히 확답을 못 하고 있다. 종양으로 발전하면, 기형종 같은 것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

***과학적 시각에서 벗어나 생명윤리 잣대를 세워야**

프레시안 : 그런 지적을 하면 황우석 교수나 일부 생명공학자들은 과학의 발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반론을 펼 것이다.

전방욱 : 맞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윤리가 필요하다. 단순히 '그런 기술은 효율성이 낮고, 여러 가지 위험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과학지상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 '결과가 위험하거나 미심쩍기 때문에', 이런 '결과주의적 논쟁'을 피해 근본적인 생명윤리 잣대를 세워야 한다.

프레시안 : 쉬운 일이 아니다. 배아복제에 대한 생명윤리는 '낙태 논쟁'과도 유사한 면을 갖고 있다. 난치병 환자의 권리와 배아의 권리가 충돌한다.

전방욱 : 그렇다. 나도 계속 고민 중이다. 일단 최약자를 배려하는 윤리를 배아에도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배아는 자기를 방어할 수도 없는 최약자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방금 지적한 것처럼 그런 권리가 충돌할 때 어느 손을 들어줘야 하는가이다. 사회적 논쟁과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프레시안 : 동감한다. 한림대에서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일반인들이 배아복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윤리의식을 과학자들의 윤리의식과 비교한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일반인들이 과학자보다 훨씬 더 배아복제에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인들과 과학자들이 윤리의식에 있어서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말인데, 과학자들은 일반인들이 '무지해서 그렇다'라는 식의 엉뚱한 반응만 내놓는다. (웃음)

말씀을 듣고 보니 일반 생명공학자들과는 생각이 상당히 다른 것 같다. 생명윤리에 대한 중요성은 어떤 계기로 인식하게 됐는가?

전방욱 : 혼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2001년에 <한국일보>에서 최재천 교수와 논쟁을 벌인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최재천 교수는 '배아의 지위'에 관한 논란과 관련해 '배아는 자의식을 갖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것의 지위에 관한 논란은 공허하다'면서 사실상 배아복제 연구 규제를 반대했다. 그에 대해서 반론을 쓰면서 논쟁이 벌어졌다.

나는 '자의식'을 기준으로 들이댈 경우, 선천적으로 무뇌아로 태어난 어린이들, 정신병 환자들, 고통을 자각하지 못하는 환자를 마음대로 취급할 수 있느냐란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그런 식으로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한국 사회의 생명윤리 기반이 참 취약하다는 것을 알았고, 좀더 근본적인 접근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번 책도 이런 필요성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프레시안 : 특별히 관점을 확립하는 데 도움을 준 사람이나 책이 있나?

전방욱 :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은 피터 싱어의 <실천윤리학>(철학과현실사 펴냄)이다. 그 책에도 배아의 지위를 둘러싼 논쟁이 나온다.

프레시안 : 피터 싱어도 최재천 교수와 마찬가지로 자의식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그래서 고통을 느낄 수 없는 배아에 대한 연구를 인정하는 편이다.

전방욱 : 그렇다. 그 역시 자의식이 있는 존재, 예를 들어 동물에 대한 윤리는 강조하면서도 배아에 대한 윤리를 말하는 데는 주저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그 자의식의 기준 자체가 굉장히 모호한데 말이다.

나는 최재천 교수나 피터 싱어 같은 사람이 생명에 대한 찬양을 하면서도, 생명의 연속성을 담보하는 생명체의 권리에 대해서 너무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근본적인 의문이 들 때가 많다.

프레시안 : 최 교수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최 교수가 들으면 불편할 수도 있겠다. (웃음)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가?

전방욱 : 그냥 서로의 작업을 알고 있는 사이다. 최근에도 내 책을 보내드렸더니, 서로 실험실로 쳐들어가야겠다는 농담을 하더라. (웃음)

***사회를 향해 발언하는 과학자가 너무 부족해**

김병수 : 개인적으로 생명공학자들을 만나보면 황 교수의 연구에 대해서 여러 가지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실제로 사회를 향해 발언하는 과학자는 없다. '동료 심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이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전방욱 : 이번에 생물학자로 생각되는 사람이 익명으로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에 대해서 인터넷의 한 게시판에 그 허구성을 논파해 놓았더라. 글쎄, '동료 심사'나 '실명 비판'이 안 되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비판 풍토가 가진 한계일 것이다. 비판이 나오면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런 것을 개인적인 명예 훼손으로 폄하하는 분위기가 있다. 대부분의 과학자나 의학자들이 그런 논쟁에 익숙하지 않은 점도 있겠고. 주변에서도 내가 <수상한 과학> 같은 책을 쓰면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 (웃음)

프레시안 : 좀더 구조적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과학기술자들이 사회로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해 소외되고 있다고 하는데, 그들이 전문직으로서 사회와 자신을 연결시키는 데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가, 전문가 윤리를 가지고 전문가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변호사나 의사들이 제 역할을 못한다고 비판받지만, 인의협이나 민변과 같은 단체가 있다. 외국만 해도 '책임있는 유전학을 위한 회의'를 비롯해 그 주장과 사회 참여의 수위는 다르지만 다양한 과학기술자 단체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과학기술자들은 밥그릇 타령만 하고 있다.

전방욱 : 동의한다. 당장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에서 활동하는 과학자들의 수도 적지 않나? (웃음) 일단 과학자들이 과학활동의 범위를 매우 좁게 생각하는 데 원인이 있겠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가설을 세우고 실험이라든지 관찰을 통해서 가설의 정당성을 판정하는 것, 이런 걸로 과학자의 책임이 끝난다고 생각한다. 거기까지는 중립적이고 나머지는 사회의 몫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보면 과학활동은 과학적인 소양에만 관계되지 않는다. 배아복제 문제, 낙태 정책, 호주제 같은 것도 일종의 과학활동이다. 자기 연구가 미치는 사회적 영향, 또 다양한 사회적 이슈 안에 포함된 과학적 맥락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는 능력이 과학자들에게는 결여돼 있다.

프레시안 : 그렇게 된 우리나라의 특수한 배경이 있나?

전방욱 : 일단 교육 탓이 클 것이다. 고등학교 때 문과, 이과로 나뉘어 수학을 잘하면 이과, 못하면 문과 이런 식의 엉터리 교육 말이다. 교과서도 엉터리다. 각종 법칙과 과학적 사실은 나열돼 있지만, 그것이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태동했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지에 대한 언급은 생략돼 있다.

프레시안 : 우리나라 과학기술 집단의 태생적 한계도 지적되곤 한다. 과학기술자 집단 자체가 개발독재 시기 국가에서 동원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태생적 한계 때문에 우리나라 과학기술자들은 정부나 기업이 주도하는 것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전방욱 : 연구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니까. 프로젝트를 받을 수 있는 쪽으로 연구 방향을 설정한다. 프로젝트를 받는 것도 정상적인 경쟁이 아니라, 과학기술부, 해양수산부의 정책에 따라 결정되고. 그런데 그 정책이라는 게 결국 정부와 결탁한, 말이 좀 과하지만, 과학자들이 미리 가서 다 만들어 놓는 것이다. 또 그런 과학자들이 지원을 해서 프로젝트를 받고. 그런 사람들이 또 소형 프로젝트 심사위원으로 자기 입맛에만 맞는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결국 그런 악순환이 과학기술자들을 정부나 기업에 종속되게 만들고 결국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도 왜곡시킨다.

프레시안 : 얘기를 듣고보니 우울하다. 희망은 없나? 과학기술자들이 자기 연구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대중들과 소통해서 같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국가 과학기술 정책이나 사회 문제에 대해서 발언하는 긍정적인 모습 말이다.

전방욱 : 솔직히 말해서 우리나라는 희망이 없어 보인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연구 계획서를 낼 때는 누구나 '사회적 효과'를 쓴다. 그러나 결과물을 낼 때는 계획한 사회적 효과는 얼마나 달성했는지 묻지 않는다. 예를 들어 유전자 조작 농산물로 굶주림을 해결하겠다고 했을 때, 과연 그런 연구로 기아 문제가 얼마나 해결해야 했는지는 따져보는 경우가 없다.

***과학기술 활동에 시민 참여 꼭 필요하다**

프레시안 : 그래도 대안이 있다면 뭘 들 수 있을까?

전방욱 : 이제 과학자들도 단순히 과학 지식 뿐만 아니라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추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요새 교양 과목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대학에서도 이공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과학사나 과학철학, 과학윤리, 생명윤리 등을 필수적으로 이수하게 만들어야 한다.

프레시안 : 제도나 구조를 고칠 필요도 있다.

전방욱 : 그렇다. 아까 지적한 왜곡된 평가 관행을 쇄신할 필요도 있다. 계획은 잔뜩 공익을 위한 것처럼 써놓고, 실제 연구를 할 때는 그렇지 않은 과학자들이 많다. 공정한 평가를 전담할 독립된 기관이 필요하다.

아무리 독립된 기관이라도 시민들의 참여와 감시가 없으면 금방 기존 제도 안에 편입되기 쉽다. 시민들이 과학자들의 연구 활동에 직접 개입해야 한다.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는 연구가 과연 공동체에 바람직한 것인지를 판단하고, 그에 따라서 연구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책에서는 '합의회의'를 중요하게 언급했다.

전방욱 : 아주 큰 국가 과학기술 정책에 대해서는 '합의회의'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얘기하는 것은 일상적인 과학활동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다. 예를 들어 연구비를 배분하는 위원회에 과학기술자 외에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여러 명 참여해야 한다.

프레시안 : 그렇지 않아도 과학기술자들이 정부와 기업의 눈치를 보느라 운신의 폭이 좁은데 시민들 눈치까지 봐야 하느냐, 이런 지적도 많다. 심지어 젊은 과학기술자들도 이런 불만을 쏟아낸다.

전방욱 : 과학기술 활동에 일반인들이 참여할 수 없다는 인식은 과학기술이 전문적인 활동이라는 편협한 생각에서 비롯된다. 과학기술 정책을 결정하는 데는 기본적인 과학적 지식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과 시민의 합리성만 있으면 된다. 그런 합리성을 바탕으로 시민들이 우리나라에서 진짜 중요한 게 어떤 과학기술 정책인지,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진 연구가 공익은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지, 외국 것을 따라가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이런 판단을 내리면 된다. 책임이 주어지면 일반 시민들도 잘 할 수 있다. 한번도 책임을 안 주고 그런 식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과학 대중화, '퀴즈용 대중화'는 곤란해**

프레시안 : 최근에 정부, 언론, 과학기술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과학 대중화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선생님은 <진화의 패턴>이나 <생명의 미래>와 같은 대중적인 과학서를 번역하기도 했다.

전방욱 : 지금 발간된 과학책 중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상당수는 토막상식을 연결해 놓은 것이다. '퀴즈용 대중화'라고나 할까? 오히려 더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과학관이나 과학윤리에 대한 관점을 제공할 수 있는 책과 접근들이다. 그런 것들이 대중에게 널리 보급됐을 때, 과학기술자들에게도 피드백이 올 수 있다. 사실 나도 <'과학기술과 사회' 연구회(www.freechal.com/sts)>, 이런 데서 활동하는 분들의 책을 보고 과학관이나 과학윤리에 대한 관점을 세우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이 분들의 책은 너무 어렵다. 나를 포함해서 대중들에게 더 다가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상당수 스타 과학저술가들이 쓰고, 번역한 책도 과학지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책에 머물러 있다. 그것보다는 전체 과학기술을 조망하고 안목을 기를 수 있는 책이나 접근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전방욱 : 맞다. 다행히 최근에는 그런 책도 많이 나오고 있다. 이젠 방송 등에서도 관심을 가질 때가 아닌가 싶다.

프레시안 : <수상한 과학>도 그런 책이다.

전방욱 : 많은 사람들이 그 책도 어렵다고 하더라. 논지는 더 명확하면서도 좀더 쉽게 쓸 수 있어야 한다.

***황 교수팀 연구, 장기적으로 이공계 위기 부채질할 수도**

프레시안 : 황우석 교수와 같은 스타 과학기술자과 그들의 연구를 부각시키는 게 이공계 위기를 일소하는 데는 확실히 효과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나라도 특정 분야는 세계 최고다' 이런 얘기가 청소년들과 일반인들이 과학기술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전방욱 : 이공계 위기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을 텐데, 과학기술 분야를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하면, 정부, 기업, 시민 모두 투자자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은 황우석 교수 같은 스타 과학자가 나타나 '어떤 상품이 굉장히 좋다'고 선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만약 그런 선전을 통해 기대를 잔뜩 모은 상품이 실제로 시장에 가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이런 방식은 단기적으로 주목을 끄는 데는 도움을 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역풍을 불러올 수도 있다.

김병수 : 실제로 연구자들 중에도, 배아복제 연구의 신통찮은 성과 같은, 역풍이 왔을 때 생명공학계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불신을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프레시안 : 이공계 위기는 분명히 실질적인 문제이다. 다양한 원인 분석과 해결책이 나오고 있다. 정부에서는 일종의 사기 진작 정책으로 해결하려고 하는데, 정작 현장 과학기술자는 달라진 게 없다고 푸념한다.

전방욱 : 사기 진작 정책으로는 이공계 위기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BK21, '지방대 혁신 과제' 이런 것들로 학생들 장학금 주고 인건비 해결하는 식은 전형적인 주먹구구식 접근이다. 이공계뿐만 아니라 어디나 다 위기다. 다만 이공계가 부각되고 있을 뿐이다.

많은 일자리들이 만들어질 때 그 분야에 대한 공부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생긴다. 그런데 그 많은 지원금들이 다 거대 연구 프로젝트의 단기적 재원으로 쏟아져 들어가고, 그 사람들은 그 돈을 비정규직 노동자를 뽑는데 사용한다. 사실 대학원생들도 가장 힘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일 텐데. 장기적으로 이공계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모든 문제의 핵심에 제 역할 못하는 언론이 자리잡고 있어**

프레시안 : 참 문제가 많다. 이렇게 여러 가지 문제가 계속 꼬이는 것을 언론이 부추기고 있는 모습이다. 온갖 걱정을 다하는 척하면서 정작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는 모양새다.

전방욱 : 이번에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 결과를 둘러싼 여러 가지 해프닝도 언론이 아주 큰 역할을 했다. 언론의 황 교수에 대한 우상화 내지 신격화 작업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언론들은 비판적 코멘트도 우상화, 신격화 작업에 이용한다. (웃음) 80~90% 칭찬 일색의 기사를 써 놓고, 구색 맞추기로 들어가는 비판적 코멘트를 넣어 놓으니 비판의 목소리는 그 크기도 작고, 논리도 엉성한 것처럼 비쳐진다. 이런 점은 보수, 진보 언론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점이다.

프레시안 : 의도적인 면도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개발 지상주의나, 성장 지상주의, 과학기술 지상주의 논리를 중요한 패러다임으로 가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 때문에 그런 패러다임과 대립되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자기검열을 한다. 그 속에서 윤리적 문제나 과학기술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것은 한가한 소리거나 불가피하다는 식으로 그 가치를 낮게 보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

예를 들어 작년에 출간돼 논란이 됐던 <회의적 환경주의자>(비외른 롬보르, 에코리브르 펴냄)에 대한 보도 태도를 비판하는 글이 <녹색평론>에 실린 적이 있다. 그에 대한 <한겨레> 기자의 반론은 매우 흥미로웠다. <녹색평론>의 비판은 <한겨레>의 반환경적인 철학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정작 반론을 편 기자는 <한겨레>가 외부에 그렇게 비춰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투였다.

전방욱 : 특히 이번에는 <사이언스>에 게재된 게 언론이 이렇게 막 나가는데 큰 영향을 줬던 것 같다.

프레시안 : <사이언스>에 게재된 것 자체는 인정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을 법하다.

전방욱 : 물론 <사이언스>의 권위는 인정해줘야 한다. 하지만 <사이언스>에 실리는 것이 꼭 '과학적' 기준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김병수 : 동의한다. <사이언스>도 다른 저널과의 경쟁 때문에 '과학적' 기준 외에 대중들의 관심을 얼마나 끌 수 있을지가 게재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전방욱 : 그래도 이번 언론의 보도 행태는 너무한 감이 있다. 황우석 교수 보도는 총 7~80건을 넘고,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다. 다른 교수들이 <사이언스>나 <네이처>에 게재했을 때는 한 5건 정도 실리면 많이 실리는 거다.

김병수 : <사이언스>보다 그 인지도가 높거나 비슷한 <네이처>, <네이처 제네틱스>, <셀> 이런 데 논문을 게재하는 과학자들도 많은데, 이번에 언론이 유독 <사이언스>에 게재된 황 교수팀의 연구에 주목한 것도 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프레시안 : 전 선생님이 <수상한 과학>에서도 언급했지만, 그것은 황우석 교수의 '언론플레이'가 큰 영향을 줬던 것 같다. 황 교수는 2, 3달 전부터 기자들에게 뭔가 큰 게 있을 거라는 식의 얘기를 흘려왔다. 이번 '엠바고' 논란에서 황 교수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본다.

전방욱 : 사실 황 교수는 '엠바고' 논란의 덕을 본 셈이다. 그것 때문에 한 번 보도될 거, 두 번 보도된 측면이 있다. 또 '엠바고' 논란 덕분에 외국과 같은 그것의 윤리적 문제가 관심거리가 안 된 측면도 있다.

***말 뿐인 전문기자, 오히려 상황 악화시켜**

프레시안 : 일단 어떤 점이 단기적으로 보완되어야 하나?

전방욱 : 황 교수팀의 연구를 예를 들자면, 일단 그 연구에 대해서 동료 과학자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평가 분위기를 언론이 만들어야 한다. 또 황 교수팀 연구의 성과에 대한 여러 가지 시각들이 언론에 실려, 독자들로 하여금 균형 있는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한국 언론들에서는 이런 점들이 누락돼 있다.

프레시안 : 캐나다에서 연구할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목적 중 하나는 언론의 역할을 바로잡는 것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어떤 식의 대안이 있겠나?

전방욱 : 언론에 제대로된 전문기자가 있어야 한다. 현재는 그런 양성 프로그램 같은 것이 없다.

김병수 : 지금도 과학, 의학, 보건복지 등 각 분야의 전문기자들이 있다.

프레시안 : 오히려 그런 전문기자들이 있어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전방욱 : 사실 한 분야의 전문기자들은 그 분야의 전문가라기보다는 그 분야 전체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조망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학 전문기자라고 하면 꼭 과학지식이 월등한 사람이 아니라, 각종 과학과 관련된 이슈를 사회 전체적인 맥락과 연관해 짚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프레시안 : 많은 사람들이 보건복지, 의학, 과학 전문기자라고 하면 의사나 과학자에 준하는 전문지식을 가진 기자를 연상할 때가 많다. 정작 전문기자들도 그런 규정 속에 안주해 그 영역의 이해관계에 맞는 기사만 양산할 때가 많고.

전방욱 : (웃음) 그들이 전문가들만큼 할 수 있다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런 식의 전문기자라면 논문을 쓰지 왜 기자를 하나? 그것은 전문성에 대한 오해다. 기자들도 그런 왜곡된 전문가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보니, 과학기술 정책과 일반 대중들의 접점을 모색하기는커녕 과학기술 정책은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데 일조한다.

프레시안 : 사실 정치·사회 분야에서는 이미 기자들이나 전문가들의 독점이 깨지고 있다. 많은 시민들도 각종 영역에서 언론 비평을 포함해 다양한 비평을 시도한다. 그런데 과학활동이나 과학 보도의 경우에는 일부 시민사회단체나 과학자들을 제외하고는 비평이 아주 미약하다.

전방욱 : 과학자들과 기자들 사이에 '동업자 의식' 같은 것도 있을 테고, 비판을 했을 때 닥칠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전교조 선생님과 활동 함께한 일, 사회활동 참여 계기로 작용해**

프레시안 : 전 교수님은 등단한 시인이다. 과학자 중에는 특이한 경력을 가진 셈이다.

전방욱 : 대학 때 시를 쓰는 모임에 참여했다. 그러다 대학원에서 생물학을 전공했고, 계속 공부를 하다보니 대학에서 생물학을 가르치게 됐다.

그러다 갑자기 다시 시에 대한 욕구가 생기더라. (웃음) 1998년도에 민음사에서 주관하는 '오늘의 작가상'에 시를 내놓아 최종심까지 갔다. 그 시가 민음사에서 펴내는 <세계의 문학>에 실려 등단을 하게 됐다.

프레시안 : 전방욱 선생은 문과와 이과 양쪽의 소양을 다 가진 보기 드문 예이다.

전방욱 : 아니다. 이번에 <수상한 과학>을 쓰면서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 시는 호흡이 짧다. 또 이 책은 과학논문과도 전혀 다르고. 글쓰기 훈련을 많이 해야겠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프레시안 : 책이 너무 잘 읽혀서 시를 쓰는 게 많은 영향을 줬다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가르친 지는 얼마나 됐나?

전방욱 : 1986년도에 강릉대에 왔다. 지금은 전공인 식물생리학과 별개로 교육대학원과 치과대학에서 생명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프레시안 : 앞으로도 생명윤리 쪽에 주목할 생각인가?

전방욱 : 식물생리학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생명윤리를 하는 생물학자는 극소수다. 이 쪽에 좀더 치중할 생각이다.

프레시안 :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바로 교수로 임용됐다. 사회 참여를 고민할 계기가 적었던 셈이다.

전방욱 : (웃음) 사람이 약간 늦게 깼다. '평범한 학생'으로 있다 교수로 임용돼 강릉대로 왔다. 강릉대에 온 지 얼마 안돼 전교조 선생님과 함께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을 같이 했다. 당시는 전교조가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을 때라서, 한 2년 정도 뒤에 전교조 선생님들이 투옥되고 그랬다. 그때 전교조 선생님들과 함께 일한 경험이 큰 영향을 줬던 것 같다. 그 뒤, 이런저런 경로로 대학과 지역 사회의 민주화 운동과 사회운동에 동참하면서 조금씩 사회의식이 성장한 것 같다.

프레시안 : <수상한 과학>과 같은 책의 집필은 아주 소중한 시도이다. 책은 잘 나가나?

전방욱 : 잘 안 나간다. 생명공학에 대한 열광적인 분위기가 대세 아닌가? (웃음)

프레시안 : 이럴 때 그런 비판서도 같이 호응을 받아야 균형 있는 모습일 텐데 아쉽다. 전 선생님 같은 분이 앞으로 더 목소리를 높이고 활발히 활동해야겠다. 캐나다에서 연구도 좋은 성과 기대하겠다.

전방욱 : 그런 격려를 들으니 힘이 난다. (웃음) 앞으로도 많은 질책 바란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