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과학기술의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커지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현대 과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른 여러 가지 부작용도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작 현대 과학기술의 발달에 직접 기여하고, 앞으로 그 나아갈 바를 고민해야 할 당사자인 과학기술자들은 점점 더 정부와 기업에 종속돼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공계 기피' 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하고 있기도 하다.
<프레시안>은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에서 발간하는 <시민과학>과 공동으로 '시민과학자를 찾아서'라는 연속 인터뷰를 싣는다.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비교적 독립적인 연구 활동을 수행하면서도, 끊임없이 과학기술과 사회 또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해 고민하는 숨어있는 과학기술자를 찾아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고민을 들어볼 예정이다.
이를 통해 현대 과학기술과 사회가 맺어야 할 바람직한 관계와 과학기술자의 역할을 모색해보고 더 나아가 예비 과학기술자나 과학기술자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대안적인 역할 모델이 제시되기를 기대해본다. 일부 '스타 과학기술자'만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현실을 개선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인터뷰 대상자로 대전대학교 김선태 교수(45·환경공학)가 선정됐다. 김선태 교수는 오랫동안 대전 주민들과 함께 지역의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함께 해왔다. 1997년부터는 (사)시민환경기술센터를 만들어 시민들이 직접 환경 문제를 감시하고, 해결하는 데 나설 수 있는 기술을 보급하는 데 앞장서 왔다.
인터뷰는 김선태 교수의 사정에 따라 1월15일 서울 정동 시민환경연구소에서 약 1시간에 걸쳐 한재각 참여연대 시민권리팀장과 함께 진행했다. 인터뷰를 정리하는 데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자원 활동가인 심용석씨(고려대 과학학협동과정 석사 과정)가 도움을 주었다. 편집자.
***'시민과학'은 시민과 과학기술자들이 만들어가야 할 지향점**
한재각 참여연대 시민권리팀장 : '시민과학자를 찾아서'의 첫 번째 과학기술자로 김선태 교수가 선정됐다.
김선태 대전대 교수 : 나는 평범한 과학기술자 중 한 사람인데, 이런 인터뷰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게 당황스럽다. 오늘 어떤 얘기를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웃음)
한재각 : 우리 역시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교수님을 찾아오지 않았다. 얘기를 나누면서 서로 고민이 깊어지기를 기대한다. 교수님을 직접 뵈니, 오늘 만남이 좋은 결과를 낳을 것 같다.
일반 대중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시민과학(citizen science)'이나 '시민과학자(citizen scientist)'에 대한 개념을 소개하는 것으로 얘기를 시작하면 좋겠다. 사실 '시민과학'이나 '시민과학자'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민들의 입장에서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과학기술을 직접 고민하고 삶 속에서 실천하는 과학기술자를 계속 만나보기로 기획한 것도,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는 '시민과학'이나 '시민과학자'의 상을 좀더 구체화시켜보기 위해서다.
대강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과학적 요구들을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는 활동을 '시민과학'으로, 그것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정부와 기업에 종속되지 않은 과학기술자를 '시민과학자'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시민과학'이란 개념에 대해서 고민해 본적이 있는가?
김선태 : 처음부터 어려운 질문으로 시작해 당황스럽다. (웃음) 내가 '시민과학자'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먼저 한국에서 과연 '시민과학'이라고 불릴 만한 영역이 있을까? 회의적이다.
지금까지 과학기술에 대한 일반적인 접근은 과학기술의 성과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과학기술의 대중화'), 그 산물을 대중들에게 어떻게 확산할지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시민들은 과학기술자나 기업, 정부로부터 계속 대상화돼왔고, 일상적으로 과학기술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정작 과학기술은 자신의 삶과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게 됐다.
대전에 시민환경기술센터를 1997년에 설립했을 때, 내 고민은 '시민과 과학기술 사이에 벌어진 이런 틈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과학기술이 시민과 유리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만들어가는 과학기술을 어떻게 만들까? 이런 것이었다. 처음에는 상당히 어려움이 많았다. 바로 그 어려움 자체가 한국에서 '시민과학'이 처한 현주소를 보여주는 일일 것이다. 나는 일단 과학기술과 관계된 정보를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서로 공유하는 일부터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런 일에 많은 신경을 쏟고 있다.
여전히 '시민과학'에 대한 명확한 상은 안 잡히는 상태고, 아주 정형화된 '시민과학'의 상이 있다고도 볼 수 없지만 이런 활동들을 통해서 어떤 가능성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시민과학은 정형화된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과학기술자와 시민들이 같이 만들어야 할 일종의 '지향점'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전문가와 시민의 관계 제도화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재각 : 동의한다. 그런 측면에서 교수님의 활동은 전형적인 '시민과학자'의 모습이다. 최근에는 대전 3·4 산업단지의 환경 문제에 대해 시민들과 함께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전 3·4 산업단지 환경 문제에 교수님을 비롯한 전문가들이 어떻게 참여하고 있는가?
김선태 : 대전 3·4 산업단지 주변의 환경 문제가 본격적으로 부각된 것은 1997년 대전시가 하루 2백톤 처리 규모의 소각장을 건설하고 운영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 때 마침 소각로에서 발생하는 다이옥신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증가해서, 주민들의 불안감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주민과 전문가가 주도해 소각로 추가 건설 문제, 3·4 산업단지 주변의 악취 문제 등에 대한 운동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처음 운동이 시작될 때만 해도 주민들은 단편적인 지식에 의존해 막연한 불안감 속에서 피상적인 문제제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자문을 해주는 역할에 한정돼 있었다. 그 후 주민, 시민단체, 행정기관, 전문가가 참여하는 민관 공동대책위가 꾸려지면서 전문가들의 참여가 좀더 본격화됐다. 자문에 머물렀던 초기와 달리, 소각로 및 3·4 산업단지의 대기, 수질, 폐기물, 생태 전반에 걸친 환경영향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주민과 전문가가 공동으로 지역 현안에 대응한 것이다.
한재각 : 주민과 전문가들 사이의 갈등도 있었다고 들었다. 좀더 구체적인 얘기를 듣고 싶다.
김선태 : 대개 지역의 환경문제가 그렇듯이 3·4 산업단지의 환경문제도 시간이 흘러가면서 지역의 정치·경제·사회적 문제가 엮인 복합적인 문제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처음에 비교적 단일했던 주민들과 시민단체의 입장도 이해관계와 정체성에 따라 분화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전문가의 목소리가 주변화됐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문가의 목소리가 배제되는 결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의 환경문제와 같은 현실 문제는 한두 명의 전문가가 대변할 수 없는 복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지역의 환경문제 등에 전문가와 시민이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제도화된 틀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문가, 시민이 머리를 맞대고 지역의 현안에 대해 일상적으로 토론하고 대응하는 제도적 틀이 만들어진다면 훨씬 더 긍정적인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
***과학기술자도 한 사회의 구성원, 책임 있는 역할 자임해야**
한재각 : 전문가와 시민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그것이 제도화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 잘 들었다. 이제 좀더 근본적인 얘기를 듣고 싶다. 과학기술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관계로 나아가야 하는지, 또 그 안에서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은 무엇인지에 관해 여러 가지 고민들이 많다.
김선태 : 먼저 전제할 것이 있다. 과학기술자도 한 사회의 구성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은 내 생각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과학기술자가 자기가 속한 사회가 부여한 책임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은 그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이런 지적이 나오는 것은 그 동안 과학기술자가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탓이 클 것이다.
그 동안 과학기술자에게 입혀진 이미지 탓도 크다. 지금까지 대중들에게 과학기술자는 실험실에서 연구만 하는 사람들이라 생각돼 왔다. 또, 근대화 과정 속에서 특히 전쟁과 산업화 과정에서 과학기술이 일반 시민들의 삶보다는 국가 권력이나 상업적 이윤을 위해서 이용됐고 그것이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자의 이미지를 왜곡한 것이다. 대중들을 속인 이런 왜곡된 이미지에 과학기술자 스스로도 속아 넘어간 측면이 있었고. 과학기술자는 우선 이런 왜곡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과학기술자의 실천은 그런 면에서 큰 기여를 할 것이다.
한재각 : 방금 지적한 것처럼 현대 과학기술은 국가 권력에 의해 전쟁에 이용되거나 기업의 이윤 추구를 계기로 발전해왔다. 이런 과정 속에서 정작 과학기술이 시민, 민중의 삶과는 유리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선생은 이런 과학기술의 왜곡된 모습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이런 노력도 '시민과학'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과학기술이 시민과 유리돼선 안 돼**
김선태 : 좀더 시민의 삶과 밀착된 과학기술을 '시민과학'이라면 그 의견에 공감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시작하게 된 것도 과학기술이 사회와 또 시민과 너무 유리되고 있다는 현실 인식 탓이었다.
좀더 내 경험을 얘기해보자. 나를 이런 과학기술 연구로 이끈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한 것은 내가 평생 은사로 모시고 있는 일본의 아마야 가쯔오 교수를 알면서부터다. 그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 분이 개발한 '패시브 샘플러(Passive Sampler)'를 우연히 접한 뒤 내 삶이 크게 바뀌었다.
아마야 가쯔오 교수는 1970년대 국가가 운영하는 화학 연구소에서 일하다가, 자신이 연구소에서 수행하는 과학기술에 회의를 느끼면서 본격적으로 시민과 함께 할 수 있는 과학기술 활동을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개발하는 것이 바로 '패시브 샘플러'이다.
'패시브 샘플러'는 간단한 원리의 대기오염 측정기이다. 1990년대 초 대전대 교수로 임용된 후,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과학기술을 고민하다 우연히 아마야 가쯔오 교수의 책을 읽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나에게는 매우 큰 충격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한국의 대기오염 측정은 오차도 많았고, 정부가 주도한 측정 결과는 거의 공개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바로 아마야 가쯔오 교수를 한국으로 모셔서 직접 '패시브 샘플러'의 제작과 사용법을 배웠다. 그때부터 '패시브 샘플러'를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하면서, 한 3년 동안 전국의 대기오염을 '패시브 샘플러'를 통해 측정하는 일을 했다. 그 과정에서 전국 곳곳의 환경단체와 주민들에게 자료들을 공개하고 가능하면 '패시브 샘플러'를 이용해 직접 측정을 하기를 권장했다.
점점 정부와 언론도 나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측정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1995년에 '패시브 샘플러'를 통해 얻은 측정 결과를 검증받을 기회가 있었고 그 이후 대기오염의 정도를 대략적으로 파악하는 데 그 측정 결과가 매우 신빙성이 있음을 인정받았다.
한재각 :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패시브 샘플러'를 반대했는지 궁금하다.
김선태 : 반대하는 사람들이 내세운 가장 큰 이유는 그렇게 간단한 원리로 제작된 '패시브 샘플러'가 과연 정확한 데이터를 보장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정확하지 않은 데이터로 시민들을 현혹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간단한 교육만으로는 전문가가 아닌 환경단체 활동가들이나 일반 시민들도 대기오염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것도 전문가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부의 대기오염 측정 결과가 큰 차이가 난 것도 문제였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나 동사무소 등에서 대기오염을 측정하는 반면 우리는 도로나 공장 주변에서 측정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차 '패시브 샘플러'의 측정 결과가 갖는 신빙성과 의미가 인정받기 시작했다. 여전히 시민단체에서 하는 대기오염 측정법이라는 인식이 강해 학술적으로 정부에서 수용되고 있지는 않지만, '패시브 샘플러'로 장기간 대기오염을 측정한 결과가 갖는 의미는 유엔환경계획(UNEP)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일반 시민의 과학기술 참여 더 확대돼야**
한재각 :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과학기술에 참여했을 때, 그 과학기술의 객관성을 보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입장 차이가 크다. '패시브 샘플러'를 둘러싼 갈등을 계기로 선생은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됐는가?
김선태 : 그런 갈등을 내가 직접 체험하고 있어서 내가 그 질문에 대답하기는 적절하지 않다. 또 거기에 대한 판단은 내 몫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나는 직접 실천을 통해 이런 식의 과학기술 활동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내 연구는 정부나 기업의 지원을 거의 받지 않고 있다. 하지만 '패시브 샘플러'의 예에서 보듯이 내 연구는 시민의 수요가 있다. 그 때문에 나는 정부나 기업에 손을 벌리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과학기술을 계속 연구해왔다.
한재각 : '패시브 샘플러'를 생산해서 필요로 하는 곳에 공급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을 구입해서 사용하는 곳은 어디인가?
김선태 : 처음에는 환경단체에서 많이 사용했는데 요즘에는 초·중·고교에서 많이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다. 학생들이 직접 현장에 나가 오염도를 측정할 수 있는 기회를 '패시브 샘플러'가 제공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교과서에도 '패시브 샘플러'가 소개돼 있다.
한재각 : 다른 과학 교육을 모색하는 교사들도 큰 관심을 보일 것 같다.
김선태 : 그렇다. '패시브 샘플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들이 환경오염의 정도를 직접 측정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도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
프레시안 : '패시브 샘플러'가 시민환경기술센터를 운영하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되나?
김선태 : 물론이다. 시민환경기술센터를 운영하는 데 '패시브 샘플러'를 판매한 이익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웃음)
한재각 : 시화호와 관련한 활동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활동 경험에 대해 듣고 싶다.
김선태 : '패시브 샘플러'가 알려지면서 전국 곳곳에서 나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시민들이 '패시브 샘플러'를 이용해 직접 측정한 데이터를 받아서 분석만 하고 잇다. 시화호의 경우도 그런 식으로 하도록 했다.
프레시안 : 데이터를 측정하는 일을 환경단체나 시민들이 직접 하도록 했다는 얘긴데, 그렇기 하나에서 열까지 지역 주민들이 과학기술 활동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김선태 : 그렇다. 모든 것을 직접 하도록 권하고 있다. 시화호의 경우 지역의 환경단체들이 모은 데이터가 벌써 6년이나 축적돼 있다. 대부분 환경단체들은 처음에는 데이터 측정을 열심히 하다가도 얼마 안 가서 측정을 포기하곤 한다. 환경 데이터는 오랜 시간 동안 측정하는 것이 매우 큰 의미가 있다.
그런데 시화호의 경우는 환경단체들이 계속 데이터를 측정해서, 6년이 지난 지금 그 데이터는 큰 의미와 힘을 가지게 됐다. 이제 시에서도 그 데이터를 인정하고, 앞으로 측정하는데 지원을 하겠다는 얘기도 들려오고 있다.
한재각 : 시화호에서 이렇게 측정을 하는 환경단체는 과학적으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은 아니다. 6년이 넘게 지속적으로 환경 데이터를 특정해오면서 일종의 과학적 훈련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 과정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소양도 늘어나고.
김선태 : 동감한다. 그 덕분에 나는 지역의 여러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일반 시민이 지역에서, 삶 속에서 과학기술 활동에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자들이 이런 시민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고. 그들은 단순히 과학기술자들 얘기만 받아 읽는 사람들이 아니다.
한재각 : 과학사회학을 공부하는 연구자들은 한국 사례가 없다고 투덜대곤 하는데, 이런 사례에도 과학사회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들이 관심을 보이면 좋겠다. (웃음)
***과학기술 이윤 추구 외에도 사회에 기여할 방법 많아**
프레시안 : 대부분의 과학기술자들은 과학기술이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은 기업에 의해서 산업으로 환원돼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김선태 :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 처음에는 과학기술이 다른 식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경로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활동을 해오면서 점점 과학기술이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따라서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도 이런 다양성을 고려한 것이어야 한다. 실제로 내 연구는 거의 정부의 과제와 연결되는 부분이 없다. 정부는 내가 하는 시민친화형 연구개발보다는 산업과 연결돼 돈을 만들어주는 과학기술만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의 과학기술 예산은 늘어나지만 많은 과학기술자들은 나처럼 오히려 소외받고 있다. (웃음)
한재각 : 과학기술 예산은 늘어나는 추세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대부분의 프로젝트들은 지역의 환경 문제나 시민들의 삶에 관계된 것이라기보다는 첨단산업으로만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프레시안 : 더구나 정부가 추진하는 대형 프로젝트들은 주민들의 감시와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지역적 연구개발보다는 개인이 책임질 일이 적다. 그 때문에 연구자들이 지원은 많이 받으면서도, 책임질 일이 적은 첨단산업으로 더 몰리고 있다.
김선태 : 정확한 지적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프로젝트들이 점점 대형화되고 있고, 그 연구개발 성과도 대부분 기업이 가져가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연구개발해서 기업의 돈벌이에 도움을 주는 꼴이다.
그러다보니 시민들의 삶에 꼭 필요하고, 과학기술 발전에도 큰 의미가 있는 작은 기술들이 홀대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과학기술의 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도 작은 기술이나 대안 기술에만 투자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런 부분에 관심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기업은 현실적으로 이런 데 돈을 쓰기가 힘들기 때문에 정부가 앞장서 해야 한다.
내가 주로 작은 기술을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봤을 때, 이것은 매우 현실적으로 현명한 선택이었다. 예를 들어 내가 당장 산업에 대규모로 응용될 수 있는 큰 돈벌이가 되는 연구개발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기업들이 그 기술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내년에 일본에서는 엑스포가 개최될 예정이다. '패시브 샘플러'와 같은 작지만 사회에 꼭 필요한 기술들의 결과물과 그 원리를 전시하고 상호 정보를 교환하는 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일반인들의 과학기술 활동 큰 의미 있어**
프레시안 : 몇 년간 '이공계 위기'가 큰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선생은 어떻게 바라보는가?
김선태 : 나 역시 느끼는 것은 똑같다. 여기서 '이공계 위기'에 관한 사회 전반적인 문제점들을 다시 중복해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나는 여기서 과학기술자 스스로의 변화를 강조하고 싶다. 과학기술자가 실험실로 들어가면 갈수록 '이공계 위기'는 더 심해진다. 과학기술자들은 오히려 사회로 나와야 한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족적인 실험실 연구에만 함몰되면 안 된다. 나 같은 경우에는 그런 연구에는 재미를 느끼지도 못한다.
과학기술자의 연구 수요가 기업의 관심에만 함몰돼 있는 것도 문제다. 당장의 돈벌이와는 연결되지 않지만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의 필요에 부응할 수 있는 많은 아이템들이 있다. 정부도 돈, 돈, 돈만 하지 말고 이런 부분에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기업이 할 일과 정부가 할 일은 따로 있다. 이런 식의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공계 위기가 해소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프레시안 : '이공계 위기'를 말하는 지식인이나 많은 과학기술자들은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과 사회 참여에 대해서, 실제로 그렇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야는 과학기술의 특정 부분에 불과하다고 변명하곤 한다. 예를 들어 환경 분야에서 과학기술자들의 참여가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과학기술 분야에서 과학기술자가 실험실 밖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선태 : 현재 많은 학문 분야들은 서로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그것은 과학기술자들도 동의하는 바다. 그럼 과학기술과 사회와의 관계는 어떨까? 나는 그 장벽을 무너뜨리는 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많은 과학기술자들이 그것을 주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사회와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시간 투자하는 것을 아깝게 생각하고, 그런 활동을 경시한다. 하지만 앞으로 시대 분위기가 그런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과학기술자들이 더 도태되기 전에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성찰하고 더 목소리를 내야 한다.
***<침묵의 봄>이 지금의 나를 만든 계기가 돼**
프레시안 : 선생의 활동이나 목소리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특히 한국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선생은 어떤 학생이었는가? 어떤 계기를 통해서 이런 활동을 하게 되었나?
김선태 : 사실 학생 때는 그다지 적극적이지 못했다. 다만 시대 상황이 끊임없이 나에게 고민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던 중에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에코리브르)을 읽고, 농약의 폐해를 다시 생각하게 됐고 대학원에서 환경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관심을 대기오염으로 돌렸고 현재의 내가 만들어졌다.
프레시안 : 이런 사회 활동을 전개하면서 몸 담고 있는 대학과 갈등은 없는가?
김선태 : 나는 그다지 별난 과학자가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가정에서 훌륭한 가장이 되는 것과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 성실한 교수가 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매우 평범하고 갑갑한 사람이다. (웃음) 그런 탓에 대학과 갈등이 있을 수가 없다. 대학에서 요구하는 일들을 다 하니까.
프레시안 : 실례가 되는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웃음) 이공계 교수들을 포함해서 사회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교수들이 정작 자기 대학원생들한테는 인기가 없는 경우가 많다. 선생의 경우는 어떤가?
김선태 : 실험실 학생들한테는 인기가 있다. 학생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하면서 항상 최신의 연구 흐름을 학생들과 같이 공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연구를 좀 세게 시키기 때문에 불만이 있는 학생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웃음) 열악한 지방대 현실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학생들이 나를 보고 진학을 하는 것을 보면 '인기가 있다'는 것 아닌가? 물론 내 생각이지만 말이다. (웃음)
한재각 : 이공계를 다니면서 사회 운동에 대한 고민들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역할모델이 너무 없는 게 현실이다. 언론에서는 정부와 기업에 과도하게 유착된 일부 '스타 과학기술자'들만 주목하고 있고. 그런 면에서 선생이 아주 중요한 역할모델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이 기사는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에서 내는 <시민과학> 2004년 1-2월호에도 실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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