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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체제, 그리고 '종속 국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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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체제, 그리고 '종속 국가' 일본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일본이 미국의 '종속 국가'로 남은 이유

지난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 이후 한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조치와 한국 정부의 맞불 조치,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ISOMIA.지소미아) 종료 선언이 이어지며 양국 관계가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 경제와 안보 갈등으로까지 확산된 한일 갈등의 바탕에 도사린 문제는 '역사'다.

한국과 일본의 갈등 국면 해소를 위한 다양한 외교적 해법이 거론된다. 그러나 그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제를 넘어서지 못하면 어떤 처방도 미봉책에 그친다. 8일 동북아평화센터가 주최하고 동북아 역사재단, 도담 문화재단, ERA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제4차 국제학술대회가 서울 중구에 위치한 코리아나 호텔에서 열렸다.

대표적인 일본 현대사 전문가이자 <종속 국가 일본>의 저자인 거반 매코맥 호주국립대학 명예교수는 이날 기조연설에서 "아직도 이 체제(샌프란시스코 조약 체제)가 남아있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란 1951년 9월 6일 맺어진 두 개의 조약으로부터 시작됐다.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과 48개 연합국 간에 맺어진 다자간 평화조약, 또 하나는 미국과 일본의 양자 안보 조약이다. 이 조약으로부터 일본은 미국에 "일본 및 인근 지역에 군사력을 보유할" 권리를 허용했고, 미국은 일본의 재무장을 지지‧촉구했다. 두 개의 조약은 1952년 4월 28일 발효됐으며 이날 일본은 주권을 회복했다.

문제는 이 조약이 체결되는 과정에 일본 식민지배의 피해국가인 한국을 비롯해 중국, 북한, 대만 등이 초대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일본의 식민 지배와 전쟁 책임을 단죄할 수 있는 길을 차단해버렸다.

이와 함께 미일 양국이 맺은 안보 조약으로 일본은 사실상 미국의 군사기지가 돼버렸다. 매코맥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오키나와는 "냉전 이후 이 전투의 최전선"에 배치됐고 이에 따라 미군이 대거 주둔하게 됐다.

일본은 왜 전후 70년이 넘은 이 시점까지 샌프란시스코 체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을까? 매코맥 교수는 일본이 이를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고 진단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등장한 일본 지도자들은 미국에 복종했다. 미국의 글로벌 지배가 계속될 것이고 일본이 여기에 함께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거반 매코맥 호주국립대학 명예교수가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이재호)

매코맥 교수는 "2차 대전 이후에 일본에서도 나름 자각하는 움직임이 싹트기 시작했다. 점령국이었던 나라에 노예적으로 복종하면서 갇혀있는 것이 옳지 않다는 움직임이었다"며 이는 세 단계의 흐름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는 냉전 이후 시기였다. 매코맥 교수는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된 후 대표적 우파였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1993년 의회에 진출한 이후 종전을 주창하며 미국이 부여한 소위 '전후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수정을 요청했다"며 "난징 대학살과 일본군 '위안부' 등을 언급하면서 일본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나라로 만들기 위한 역사 수정, 새로운 헌법 제정, 제한받지 않는 군대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아베의 이러한 시도에는 모순과 한계가 있었다. 매코맥 교수는 "아베는 그러면서도 미국과 관계에 있어서는 여전히 속국 지위를 유지하려고 했다. 그래서 역사 수정주의뿐만 아니라 여기에 국가주의적인 발상이 버무려진 새로운 기조들이 등장했다"고 전했다.

두 번째는 일본 내 좌파 정치세력들의 탈 미국 시도였다. 매코맥 교수는 "일본 내 좌파들은 미국과 관계가 평등에 기초해야 한다며 미국 중심의 일원체제에서 다극제체로 전환을 시도했는데 여기에 워싱턴은 매우 부정적이었다"며 "이렇듯 일본의 좌, 우파 모두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질서를 벗어나는 데 실패했다"고 규정했다.

이렇게 모두 실패를 거듭한 결과 아베 총리는 두 번째 총리 자리에 올랐던 2012년 속국주의자로서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 매코맥 교수의 분석이다. 그는 아베 총리가 집권한 이후가 세 번째 흐름이라면서 "아베는 총리 자리에 오르면서 서둘러 미국에 방문했고 미국에 충실한 하인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을 '클라이언트 스테이트'(Client State), 즉 '종속 국가'라고 규정하며 아베 정부가 집권한 2012년 이후부터 이러한 경향이 더 강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일본이 기존과는 다소 다른 흐름을 보이기도 했다. 매코맥 교수 역시 이 부분에 대해 "아베는 2017년부터 미국을 추종하고 표방하면서도 대안을 찾고 있다"며 중국의 일대일로, 동방경제포럼 등에 참여하고 북일 화해 프로세스를 추진하려고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은 '클라이언트' 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결국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날 학술대회에 참석한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한일 간) 진정한 문제의 근원은 일본에서 아베 총리가 1965년 청구권 협정을 계속해서 유지하자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1965년에 국한되지 않고 이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는 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면 동아시아 지역뿐만 아니라 세계의 평화도 담보하기 어렵다"며 "냉전 종식 이후 민족주의가 다시 부활하기 시작했는데 식민지에서 벗어난 국가들이 아닌, 과거 강대국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어찌보면 과거 '영광'에 대한 추억으로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고 현 상황을 우려했다.

이 전 총리는 "이는 과거 제국주의 시대로의 회귀로 생각될 수도 있다. 최근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도 이러한 관점으로 봐야 한다"며 "여기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국제관계에서의 새로운 질서를 정의하는 것이다. 과거의 체제를 극복하고 여기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한편 이번 학술대회는 오는 9일까지 이틀 일정으로 진행되며 9일 오전에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학 명예교수가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극복 방법'을 주제로 발표를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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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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