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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규모 가야 토기가마 창녕서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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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규모 가야 토기가마 창녕서 발굴

가마터 발굴로 입체적인 가야사 복원 가능할 것으로 기대

경남 창녕군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재)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하고 있는 창녕 퇴천리 토기 가마터 발굴조사 현장을 6일 일반에 공개했다.

이날 공개한 토기 가마터 는 창녕군 비화가야 역사문화 복원사업으로, 비화가야의 토기 생산과 공급체계 등에 대한 학술적인 기초자료를 확보하고, 유적의 보존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7월부터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가마터. ⓒ프레시안(이철우)
출토된 유적에서는 토기 가마 1기를 비롯해 토취장 폐기장 배수로 등의 기능을 겸한 구덩이가 확인됐다.

토기가 마는 전체 길이 15.7미터, 너비 2.3미터, 깊이 2.3미터로 국내 최대규모의 가야 토기가마로 강화된 바닥의 범위를 통해 볼 때 가마를 처음 만들었을 때는 연소부까지의 길이가 14.8미터 정도였으나 지속해서 보수하면서 연소의 규모를 축소, 재사용한 것으로 알 수 있다.

특히 양호하게 남아있는 천장부가 주목되는데 10여 차례에 걸친 보수흔과 130센티미터에 이르는 두께는 최초로 확인된 사례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비화가야 토기 가마터 조사는 1991년과 1993년 여초리 토기 가마터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졌는데, 당시 여초리 토기 가마터 조사는 가야의 토기 가마 구조와 생산체계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발굴조사로 꼽히고 있다.

▲토기가마에서 출토된 유물 ⓒ 프레시안 (이철우)
출토된 유물은 호류를 주로생산하던 가마로 이 중에서도 대호를 주 생산품으로 큰 항아리와 화로 모양 그릇받침, 짧은 목 항아리 등이 주로 확인됐다. 조업 시기는 4세기 후반~5세기 초반으로 보인다.

창녕군은 비화가야 역사문화 복원사업의 하나로, 고대 생산유적에 대한 현황조사를 2018년부터 실시한 결과 비화가야 토기 가마터 6개소가 용석춘을 중심으로 집중 분포하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이는 당시 대규모 토기생산이 용석천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알려준다.

가야 문화권 중 대규모 토기 가마터기 다수 유존하는 것으로 학계에 알려져 왔으나 대형 고분군에만 이목이 쏠려 왔지만 이번 토기 가마터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보다 입체적인 가야사 복원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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