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테러, 자연 재해, 환경갈등 등으로 아수라장이 된 2003년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생명의 가치를 되새겨보고 새로운 생명문화의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세계생명문화포럼이 경기도 수원에서 18일부터 21일까지 열렸다. 세밑 행사에 참석한 세계 17개국의 학자, 예술가, 언론인, 과학자, 활동가들은 3박4일 동안 다양한 주제를 놓고 고민을 나눴다.
***"현 세계는 빙하 향해 돌진하는 타이타닉 닮은 자살 체제"**
세계생명문화포럼에 모인 세계의 생명사상가들은 "현 세계가 빙하 경고를 받고도 엔진 속력을 높여 나아가고 있는 타이타닉호를 닮은 '자살 체제'"라고 규정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핵물리학자에서 생명과 환경을 지키는 운동가로 변신한 인도의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는 "현재 세계 경제체제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과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고 있는 일종의 '자살 체제'"라면서 "그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예가 바로 칸쿤에서 자결한 이경해 씨"라고 지적했다.
참가자들은 '자살 체제'의 이면에 "환경 위기를 가속화하는 '인간 중심주의'가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생태여성주의자인 발 플럼우드 오스트레일리아대 교수는 "더 이상 인간은 자연에 대해 윤리적이고 쌍방향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생태적 능력을 잃어버렸다"면서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됐다.
***"서구 중심 세계관에서 탈피해 풀뿌리 삶에 주목해야"**
자연스럽게 세계생명문화포럼의 참가자들은 '자살 체제'와 '인간 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대안을 제안했다.
특히 관심을 끈 것은 "현재의 '자살 체제'와 '인간 중심주의'를 낳은 "서구 문화와 서구 중심 세계관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전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면희 서강대 생명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동아시아 풍수학의 자연 이해나 동의학의 인체 이해에서 보듯이 동아시아의 '기 사상'이 인간과 자연의 생명적 관계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새롭게 조명 받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많은 참가자들도 "새로운 생명문화가 아시아의 철학과 사상을 기반으로 성립될 수 있을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런 아시아의 철학과 사상과 함께 또 주목을 끈 것은 새만금과 부안의 주민들이 보여준 풀뿌리 삶에 기반을 둔 주민들의 자생적인 생명문화다. 세계생명문화포럼 참가자들은 부안 주민들의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운동 영상을 보면서 조경만 목포대 역사문화학부 교수가 지적한 "환경 분쟁을 통해 사람들이 자기 정체성과 자연-인간 관계를 깊이 성찰하는 과정"을 직접 목도하고 이런 '풀뿌리 삶'이 새로운 생명문화를 창조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세계생명문화포럼의 대안으로 서구 중심 세계관에 비해 홀대를 받아온 '아시아의 생명 사상'과 풀뿌리 삶에 기반을 둔 자생적인 '생명문화'가 제시된 것이다.
***"구체적인 행동이 중요해"**
세계생명문화포럼 참가자들은 대안적인 생명문화를 구현하기 위해서 "우리의 삶이 다른 생명 존재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를 결정하는 철학과 함께 구체적인 행동"이 중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 했다.
참가자들은 3박4일간의 세계생명문화포럼을 정리하면서 <수원 세계생명문화 선언문>을 내고 "세계적인 생명문화 실천과 평화적 '문화 혁명'을 통해 새롭고 심오한 윤리학, 철학, 역사과학, 예술, 미학을 창조하고 이런 원리에 부합하는 변화를 낳기 위한 정치적 행동에 착수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세계생명문화포럼 참가자들의 "네트워크를 더욱 확대해 생명문화를 향한 전지구적 생명문화를 모색한다"는 것이다.
세계생명문화포럼에 모인 8백여명의 국내외 참가자들은 2004년에 우리나라와 세계에 생명의 가치를 지향하는 삶과 문화를 보급하는 데 일조하겠다고 다짐하면서 3박4일간의 일정을 마감했다. 이들의 외침이 많은 메아리가 돼 돌아올 때, 사람과 자연을 비롯한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좀더 살 만한 2004년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선언문 전문.
***<수원 세계생명문화 선언문>**
세계생명문화포럼 2003이 경기도 수원에서 12월 18일부터 21일 까지 열렸다. 경기문화재단과 생명문화원의 주최로 세계 17개국 출신의 학자, 예술가, 저널리스트, 사회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자리였다.
8백여명의 참가자들은 개개 인간의 삶이 소중하게 여겨지며, 생명을 지속하게 하는 인간의 활동과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는 것을 최고의 목적으로 하는 생명문화의 원칙을 따랐다.
이 포럼은 생태계의 파괴와 지역사회의 소외 그리고 다양한 문화와 생태계의 파괴가 전 지구적인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것에 대한 깊은 우려와 인간의 영성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사유를 교환할 수 있으며 생명문화를 포괄하는 새로운 방향들을 제시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희망을 가지고 이 자리에 모였다.
1. 참가자들은 생명문화라는 원리와 전체마당에서 도출된 내용들에 기반하여 다음을 선언한다.
1.1 참가자들은 생명문화포럼 2003이 생명과 아울러 문화가 처한 심각한 상황에 대해서 살펴보는 계기를 마련하며, 나아가 현대 사회에서 가능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새로운 시도를 마련하고자 함이라는 것에 대해 동의한다.
1.2 생명문화라는 개념은 작은 공동체들의 활력을 찾는 것과 아울러, 자연의 원리와 일치하는 문화와 사회를 부양시키는 것에 대한 강조를 가장 우선으로 하여 우주적 삶을 위해 요청되는 바 자연 생태계와 인간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관심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1.3 인간은 경제의 세계화가 긍정적/부정적인 면에서 인간과 생태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어떤 점에서는 혜택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국가들의 생명문화에 큰 폐해를 야기하고 있음을 인식해야한다.
1.4 인간을 넘어선 세계(다른 생명 존재)에 관해서, 우리의 삶이 다른 생명 존재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를 결정하는데 있어 우리의 철학뿐만 아니라 우리의 구체적인 행동도 중요하다. 모든 문화와 전통은 반드시 자신의 관행과 전통을 주의깊게 비판적으로 검토해서, 인간을 제외한 생명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바꾸어야 한다. 만일 이러한 영향이 어떠한 것인지를 모르고 있다면, 이제 그 영향을 우리 자신이 깨닫고, 그에 따른 책임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 곧 우리의 의무이다. 인간을 제외한 종들은 고유한 권리와 영토를 가지고 있는 “주권국가”처럼 인정되어야 한다. 우리는 인간 국가들뿐만 아니라, 이 “주권국가”들과 평화적인 공존과 상호존중을 목표로 하여야 한다.
1.5 생명문화라는 개념은 아시아의 철학과 사상을 기반으로 성립됨으로써, “새로운 아시아의 르네상스”를 이루고자 한다. 물론 이것은 이 지구상의 모든 대륙의 생명 우주 사상을 포함한다.
1.6 사람들은 개발도상국의 생명문화를 손상시키는 현재의 경제적 지구화가 인간과 환경에 심각한 결과를 야기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1.7 우리는 세계적인 생명문화 실천과 평화적 “문화 혁명”을 새로이 창조해나가야 한다.
1.8 우리는 “살림”(생명문화)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고 심오한 윤리학, 철학, 역사과학과 예술 그리고 미학을 창조해야 한다.
1.9 우리는 이러한 원리에 부합하는 변화를 낳기 위한 정치적 행동에 착수해야 한다.
2. 이 포럼은 5개의 주제마당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주제마당들은 생명문화로 포괄되는 특유한 사유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아래의 선언문들은 각각의 마당으로부터 도출된다.
2.1 주제마당 Ⅰ: 생태주의와 생명문화
현대 과학과 기술의 문제점을 토론하고, 현대 환경사상을 함께 포괄하면서 아시아에 고유한 창조적인 생명문화를 구축하기 위한 토론이 이루어졌고, “생명학”이란 학문분야를 제안했다.
2.2 주제마당Ⅱ : 생명의 문화적 통로
참석자들은 특히 비폭력 운동이나 생태적 의식 그리고 창조적인 실천들의 등장과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서구 세계에 끼친 동양 문화의 영향을 탐구하였다. 또한 예술적 실천과 개인윤리를 보다 큰 맥락의 사회운동들 안에 위치지우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2.3 주제마당 Ⅲ : 공생의 삶과 생명의 경제
모든 경제시스템들은 모든 개인과 공동체의 번영과 삶의 질을 생성시키고 지속시키고 지속시키는 생명문화를 강화한다. 또한 환경을 보존해야 하며, 에너지효율성과 재생가능한 에너지 및 물질을 촉진시키고, 자원을 보존해야 한다고 했다.
2.4 주제마당 IV : 동아시아의 역사와 상생
이 소주제 마당의 참가자들은 상생이라는 모델을 동아시아와 그 이외 지역의 역사와 실천적 전통으로부터 탐구했다. 그들은 그러한 공존의 구조가 미래와 인간과 생명이 중심이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2.5 특별 주제마당 : 생명문화와 지역발전 계획
특별 주제마당은 급격한 지역개발로 인해 야기되는 위협들에 관한 논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급격한 개발은 환경과 사회기반구조, 그리고 사회적 삶을 피폐화시키고 파편화시켰다. 이러한 위협들은 개인들뿐만 아니라 지자체나 비정부 기구, 기업체 그리고 시민단체들을 포괄하는 지역의 모든 세력들의 개입을 최대화 시키는 방식으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참가자들은 지방자치는 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적합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공동체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지역민들의 미래를 형성해나가야 한다고 선언했다.
3. 참가자들은 다음과 같이 앞으로 취해야 할 행동들을 추천하였다.
3.1 “고대의 동아시아 문예부흥”을 창조하기 위해 세계의 지식인들과 “살림”(생명문화)운동가들을 모은다.
3.2 “살림”(생명문화)의 새로운 시대를 창조하기 위하여 세계 속에서 생명문화를 단계적으로 실행해 나간다.
3.3 윤리와 철학, 신과학과 미학을 포함한 문화혁명을 위한 새로운 사상들을 창조한다.
3.4 인간을 포함한 모든 물질과 모든 생명 개체는 공동 주체성을 공유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한다.
3.5 '세계생명문화포럼’ 네트워크를 확대시킨다.
3.6 생명문화를 진전시키는 지구적 협력을 고양시킨다.
3.7 ‘세계생명문화포럼’을 정기적으로 개최한다.
2003,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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