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서울 외곽순환도로 북한산 관통도로(사패산 터널 건설)를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2일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경남 합천 해인사를 전격 방문해 불교계의 협조를 요청했다.
***노 대통령, "대통령 되고보니 공사 진척이 많이 돼 있더라"**
노무현 대통령은 22일 예정된 개편 후 처음으로 열릴 예정이었던 수석ㆍ보좌관 회의도 취소하고 경남 합천 해인사를 방문해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 총무원장 법장스님 등과 오찬을 함께 하면서 북한산 관통도로에 대한 협조를 구했다.
노 대통령은 "대선 때 터널 공사를 백지화한다고 공약했지만 대통령이 되고 보니까 공사 진척이 많이 돼 그 부분만 남아 있더라"며 "이런 어려운 사정이 있으니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사패산 터널 강행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 노 대통령은 공론조사에 대해서 "공론조사를 생각했는데 참뜻이 전달이 안돼서 그것도 이행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종정 법전스님은 "노 대통령의 국정수행이 어렵다는 것을 잘 이해하겠다"고 말한 뒤 총무원장 법장스님에게 "노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국정수행에 잘 협력해 주도록 하라"고 말했다. 법전스님의 이 같은 발언은 불교계가 사패산 터널 반대를 철회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앞으로 논란이 예상된다.
법장스님은 이와 관련, "노 대통령의 고뇌에 찬 뜻을 이해하겠다"며 "종정 스님의 말씀을 받들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계종 총무부장 성관스님은 이 발언에 대해서 "공론조사 가부 문제를 떠나서 종단의 상징이자 수장인 종정 스님께서 총무원장에게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잘 협력해 달라는 말 뜻"이라며 사실상 터널 공사를 수용하라고 총무원장 스님에게 말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시민ㆍ환경단체, "정부-불교계 야합 좌시하지 않겠다"**
한편 이런 정부와 불교계의 움직임에 대해 '북한산 국립공원ㆍ수락산ㆍ불암산 관통도로 저지 시민ㆍ사회단체연석회의' 등 환경ㆍ시민단체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환경문제를 노 대통령과 불교계가 '정치적 흥정'을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성명에서 "정부와 특정 종교가 야합해 터널 관통 공사를 강행하려 한다"면서 국립공원은 불교계만의 것이 아니며 불교계에 사과한다고 해서 북한산에 터널을 뚫을 수는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노 대통령은 대선전 '북한산 국립공원 관통노선을 백지화하고 대안노선을 검토하겠다'고 공약했으나 이를 뒤집으려 하고 있다"면서 "자연환경과 생태계 최후의 보루인 국립공원을 파괴하는 잘못된 정책을 특정 종교계와 협의해서 강행한다면 이는 개혁의 허울을 쓴 퇴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북한산 국립공원의 심장을 관통하는 고속도로를 뚫으려면 불교계가 아닌 국민과 미래세대에 사과해야 할 것"이라면서 "강행될 경우 현정부에 대한 시민불복종 운동, 국립공원 해지운동, 국립공원 입장료ㆍ문화재 관람료 무효 운동 등을 전개할 방침이다.
***청와대 민정수석-불교계 사전 교감**
한편 이번 노 대통령의 해인사 전격 방문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청와대와 불교계 사이에 사전 교감이 있었을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번 노 대통령의 해인사 방문이 성사된 데는 사패산 터널 문제를 원래 주관하던 정무수석실이 아니라 민정수석실이 적극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청와대 문재인 민정수석은 22일 "시간이 너무 지체돼서 공론조사 없이 공사를 재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점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 것"이라고 노 대통령의 해인사 방문의 의미를 밝혔다.
이런 문 수석의 발언은 환경ㆍ시민단체 주장대로 '2년 가까이 끌어온 환경문제를 '정치적 흥정'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의혹을 확인해주는 대목이어서, "문제 해결보다는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킬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환경ㆍ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일단 불교계가 노 대통령의 협조 요청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파악돼 정부의 공사 강행 방침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정부는 24일 고건 총리 주재로 국정현안 정책조정회의를 열어 기존 방침을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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