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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밀정 폭로와 반일, 그리고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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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KBS의 밀정 폭로와 반일, 그리고 그 이후

[기고] 촛불의 반아베 운동, '나라다운 나라'에 대한 요구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은 지금, 한국은 어디로 가고 있나. 친일세력 척결을 포함한 적폐청산과 함께 통일 미래를 향한 준비는 제대로 하고 있는가.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하지 않은 가운데, 최근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반일(반아베)운동이 주목된다. '박근혜 퇴진'에 앞장선 촛불이 반일에 앞장서고, 각계각층의 시민사회가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은 특기할만하다.

2차 대전 당시의 전쟁범죄를 부인하거나 외면하는 일본 아베 정권에 대한 분노의 강도와 참여 폭이 나날이 폭발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이는 해방 74년 이후 최초의 본격적인 반일 및 친일청산 운동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KBS 1TV가 지난 13일 <시사기획 창> '밀정' 편에서 일제하의 밀정에 대한 특집을 방영한 것은 매우 뜻깊다.

김좌진 장군과 안중근 의사의 측근이 밀정이었지만, 해방 후 독립유공자가 된 사실과 함께 자료를 통해 확인된 밀정 800여 명의 이름을 폭로한 KBS 보도는 충격적이었다. 정부는 이런 역사적 과오가 방치된 것에 대해 즉각 국민에게 사과하고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보훈처를 중심으로 유지되는 현행 상훈 제도가 얼마나 지독하게 왜곡되고 있고, 그동안 '이게 나라냐'라는 원성이 왜 높았는지 이번 KBS 보도를 통해 다시 확인되었다. 현 정권은 시민사회 일각에서 왜 군 출신의 새 보훈처장 후보 교체 요구가 나오는지 정확히 파악해 현명하게 조치해야 할 것이다.

민족반역자들이 국가유공자로 둔갑한 것은 미군이 점령군으로 남한에 진주한 뒤 친일세력을 지배세력으로 편입시키고, 이승만이 반민특위 강제 해산 등을 통해 일제 잔재들을 옹호하면서 자행된 공공연한 범죄행위였다. 오늘날 국내 일부 지배층이 일제의 한반도 강점이 한반도 근대화에 기여했다거나 아베가 전쟁범죄를 부인하는 폭거에 대해 눈을 감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본보다도 친일파가 더 문제'라는 독립운동가 후손의 절규가 가슴 아프게 들리는 이유다.

KBS의 밀정에 대한 탐사보도는 국내 친일파의 실체를 드러내면서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이 지난 수십 년간 왜 고통을 받았는지를 구조적으로 파헤치는 계기가 될 것 같아 기대가 크다. 아베 총리가 촉발한 이번 한일 갈등은 해방 이후 미뤄져 온 친일잔재 청산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개연성이 충분하다. KBS의 밀정 폭로는 이런 상황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반일 운동이 뜨거워질수록 또한 주목되는 것이 미국이다. 미국은 한국의 친일세력과 일본의 전쟁범죄를 청산하지 못하게 하는 과오를 저질렀다. 미국의 이 같은 행태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미국, 친일세력 청산 막은 역사적 과오 커

미국은 중국이 G2로 부상하자, 이를 노골적으로 견제하면서 동북아를 냉전시대로 되돌리고 있다. 한국이 대외정책 수정을 고민해야 하는 국면이다. 수십 년간 굳어진 한미동맹에만 매달릴 경우, 중국의 경제 보복과 함께 중국 및 러시아의 군사적 압박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려워진다. 현상 유지가 가장 손쉬운 정책이라는 유혹에 빠지기 쉽지만, 구태의연해서는 변화된 국제 질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미국은 오늘날 한반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외세이다. 미국이 한국을 제치고 한반도 주요 사안의 주인공 역할을 하는 것은 불평등 조약이라는 비판을 받는 한미상호방위조약 때문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군의 한국 배치를 '권리'로 규정하면서 미국은 슈퍼갑의 위치에, 한국은 뒤치다꺼리하는 심각한 불평등 관계가 고착되었다. 이 조약 때문에 한국은 주한미군에 시설과 기지를 제공하면서 주둔비 일부까지 부담하지만, 미국은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기이한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한미 간 군사동맹의 문제점은 필리핀과 미국의 방위협정만을 비교해도 훤히 드러난다.

미국이 한반도의 군사주권을 가진 듯 행동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이를 적극 수용할 뿐 비판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미국의 일방통행식 행태가 일상화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주한미군 주둔비와 관련해 한국 정부나 국가수반을 조롱하고 무시하는 발언을 남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 사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목소리까지 흉내 내 공개적인 우스갯거리로 만든 것은 일반 상식과는 거리가 먼 삼류 정치 행각이다. 21세기에 걸맞지 않은 한미관계는 시민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기에 정상화가 시급하다. 반일에 대한 사회적 호응이 높은 것은 불평등한 한미관계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국격 회복 열망의 성격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은 남북, 북미 관계 등을 고려한 탓인지 미국의 대북 정책이나 한반도 정책에 순응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현 정권이 최근 일본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취한 것처럼 미국에 대해서도 줏대 있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한다. 이런 수치스러운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국정 능력 부족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촛불의 반일 운동은 나라다운 나라를 세우는 요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거대 여야, 구태 청산 못 하면 제3의 정치 세력 부상 가능

북한이 남한에 대해 막말 비슷한 소리를 내놓는 것에 대해 현 정부는 한미동맹 강화, 자체 군비 확충 외의 근본적 대책을 강구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틀과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남북 관계 증진은 한계가 분명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필요한 때가 아닌지 살펴야 한다. 특히 건전하고 생산적인 남북관계와 그 미래를 공개적으로 모색하기 위해 국보법이 시급히 없어져야 한다. 국보법은 북한에 대해 생각하지도, 말하지도, 듣지도, 주고받지도 못하게 하면서 상상도 하지 말라는 악법 중의 악법이다. 국보법이 존재하고 미국의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이 가능한 상황에서 남북한 경제공동체 모색과 같은 발상은 신기루를 좇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현 정권이 처한 상황은, 여러 변수가 동시다발적으로 충격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어 향후 국내정세 전망이 어려운 상태다. 그러나 그 변수들을 하나하나 분석해 보면 지향해야 할 방향이 드러나고 그에 적절히 대처할 경우 크게 위태롭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일 문제는 친일파에 대한 비판, 일부 지도층의 역사의식 결여 등을 볼 때 앞으로 상당 기간 주요 이슈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반일 운동의 동력이 소진된 이후 상황은 매우 유동적이다. 거대여야 정치권은 친일세력 청산과 반일이 일단락된 뒤를 의식해야 한다. 시민사회가 반일의 성과를 거두는데 기여할 경우, 정치권에 대한 개혁 요구가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현 집권여당이 이에 대한 대비 능력이 있을까? 지난 2년간의 상황을 보면 낙관적이지 않다. 개혁에 대한 의욕과 능력이 미흡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역사 발전이나 사회 변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지만,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는 촛불로 상징되는 '시민 파워'가 가장 강력한 방아쇠가 되고 있다. 이는 독재정치를 시민혁명으로 청산한 역사적 경험이 축적되고,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의 대중화로 전국적 조직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박근혜 퇴진'을 성공시킨 촛불이 반일에 앞장선 것은 촛불이 문재인 정권 2년 동안 긴장을 늦추지 않았음은 물론이요, 촛불의 요구가 실천되지 못한 불만이 '반일'이라는 분출구로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치권은 자력에 의한 참신한 정치가 아닌 상대의 실수와 헛발질에 기대는 비생산적인 정치를 반복하고 있다. 시민사회 역량이 증대된 상황에서 정치권이 당리당략적 시각으로 '내로남불'을 지속한다면 오히려 청산의 대상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또 우크라이나 경우처럼 부정부패 척결과 유권자를 위한 정치를 내세운 무명의 정치인이 혜성처럼 등장하는 정치적 이변이 생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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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전 한겨레 부국장, 전 한성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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