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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고 평범하게 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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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고 평범하게 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구나"

대안학교의 길<2> '섞어찌개' 인생과 '튀는 못' 인생

내가 좋아하는, 아니 닮고 싶은 삶을 사는 한 학부모로부터 전화가 왔다. 글을 써달란다. 그것도 언론에 낼 글이란다. 태어나서 처음이다. 얼떨결에 약속하고 말았다. 잠시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본다.

글을 쓴다는 것이 나에겐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튀어 나온 못이 되기보다는 섞어찌개처럼 대충 살아 온 나로선 사건일 수밖에 없다. 얼떨떨한 마음을 정리하면서 제시받은 '이우 학부모의 문화'라는 화두를 꺼냈다.

모두들 서로 다른 생각, 다른 시각으로 많은 시간을 살아 왔겠지만, 얼마간 같은 시간 동안 같은 공간에서 있었던 학부모로서 아마도 많은 면에서 비슷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별로 대안적이지도, 공동체적이지도 않은 삶을 살아 온 나이기에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거절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머리 속 한 구석에서 드는 것이 신기하다. '그래, 한번 해보지 뭐….' 역시 섞어찌개처럼 살아 온 인생답다. 문득 이놈의 찌개 같은 삶이 아마도 미군부대 앞이었으면 부대찌개가 되었을 텐데, 좋은 이웃들과 섞여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첫 걸음…대안학교의 학부모가 된다는 것**

처음 어린 자식에게 대안학교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할 때만 해도 나로선 '내 욕심'이 컸다. 이 나이 되도록 별로 내세울 게 없는 인생을 살아 온지라, 자식한테만은 좋은 여건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에서, 아니 욕심에서 이우학교의 문을 두드렸던 것이다.

아이만 학교에 보내면 되는 것이겠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난관이다. 무슨 지원서에 부모의 이력도 쓰고 생각도 적어야 한단다. 솔직히 좋은 생각은 갖고 살아 왔지만 항상 생각과 같이 삶을 살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것은 항상 희망사항이었을 뿐이지….

난감하다. 어쩌다가 '좋은 부모' 노릇 좀 하려니 쉽지가 않다. 기록으로 남길 만큼 한 일이 별로 없다. '대안학교에 자식을 보내는 부모들이란 대단한 사람들일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물론 실제로도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이 시대에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는 것 자체가 그렇다. 나는 직접 뛰어들 용기는 없이 바라보면서 부러워만 했었기 때문에 그들이 대단해 보였다. 주위에서 들려 오는 소리들은 다 괜찮은 부모들 소식뿐이다. 그런데 얼떨결에 내가 거기 낀 것이다.

지원서에 그동안 한 일이 없으니 자랑이라고 쓸 게 정말 없다. 자고 먹고, 그냥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내 분수에 맞게 살아 왔다. 술 먹고 주정은 좀 했어도 담배꽁초 안 버린 걸 자랑이라고 쓸 수도 없고, 지하철 표 살 때 줄 잘 선 것을 훌륭했다고 쓸 수도 없는 일이었다. 단순하고 그저 크게 모나지 않게 평범하게 살아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후회가 될 줄은….

산 넘어 산이라고, 더군다나 부모 직업란을 보니 더더욱 난감하다. 그 당시의 나로선 정말 고민이었다. 좋게 말해 실업가이지, 현실적으로는 실업자였으니 말이다. 시쳇말로 백수다. 걱정이다.

그 동안의 내 인생이 한심스럽기만 했다. 앞길 창창한, 하나뿐인 자식 놈이 가고 싶은 학교 들어 가는 데에 도와주지는 못 할 망정, 아빠 잘못 만나 그 잘난 학교도 제대로 못 가겠구나 생각이 드니 정말 코 끝이 찡 했다. '괜히 일은 벌려가지고….' 후회된다.

자식 놈은 벌써 다 썼는데, 나 때문에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가족 모두 모여 앉아 대책회의를 했다. 그런데 짜증이 나야 할 이 일이 참으로 행복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이었다. 며칠 동안 온 식구가 한 가지 주제로 하나의 목표로 함께 고민했다. 생각도 많이 했다. 아이디어도 많이 냈다. 그리고 참 많이도 웃었다.

직업란은 그 중 가장 멋있다고 생각된 단어인 '무직'으로 쓰기로 함께 결론을 내렸다. 그 대신 창피하니까 괄호하고 '창업 준비중'이라고 쓰기로 만장일치를 보았다. 그렇게 쓰면 거짓 작성은 아닐 것이고, 계속 놀게 되더라도 '계속 준비 중이잖아 ?' 하는 자문자답도 그럴 듯 하고, '혹시 아냐? 가끔 튀는 게 걸릴 수도 있어…' 하면서, 걱정은 다 잊고 정말 즐겁게 보냈던 시간이다. 무엇보다도 나를 이해주는 가족들을 확인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일단 합격이고 아니고는 뒤로 미루기로 했다. 아니 잠시 잊어버렸다. 섞어찌개 같던 인생에 부러질지라도 처음으로 튀는 못이 된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내가 스스로 내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솔직하게 나를 돌아보고 현실을 바라본 게 몇 년 만이던가.

며칠을 함께 고민하며 보낸 가족과의 시간들 속에서, 이우학교에 가고 안가고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다. 처음 시작할 때는 조금은 원망스러웠던 지원서가 우리 가족에겐, 아니 나에겐 행복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합격이라니…. 그것 참!

이렇게 이우 문화의 첫걸음은 자식보다 내게 먼저 다가온 것 같다.

***걸음을 떼고 보니…대안학교의 학부모가 되어서**

첫 걸음을 뗀 게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3년이 흘렀다. 물에 빠진 놈 건져주니 보따리 내놓으란다고…. 학부모 게시판에 학교가 이랬으면 저랬으면 하는 불만도 적고, 활동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아니 못한다!) 학부모 소모임에도 들고.

근데 나 같은 놈이 그래도 이만큼 변했으니, 그 어디란 말인가. 그래도 오랜 기간 튀지 않으려고 애써 온 생활이 하루 이틀에 고쳐질 리가 없다.

돌이켜 보면 이우 학교에선 다들 튀는 못이다. 아니 하도 튀는 못이 많다 보니 평평한 것 같기도 하다. 인도의 수행자들처럼 못 침대에 누워도 될 것 같다. 내가 안해도 누군가가 항상 그 자리를 항상 메운다. 그러니 막상 못이라 표현했지만, 사실 들어올 때의 나의 기우와 달리 너무 단순하고 평범한 사람들이다. 각자가 색깔과 맛이 다르지만 이 사람들이야말로 섞여서 무언가 다른 것을 만들어내는 섞어찌개였던 것이다.

정말 단순하다. 정말이지 평범하다. 그저 좋다고 생각하면 아무 생각없이 주저없이 행동에 옮긴다. Just Do It!
사실 내 자신이 무척 단순하고 평범하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그들과 비교하면 난 너무 많이 생각한다. 별 것도 아닌 일에…. 너무 많이 재어보다 정작 행동은 못 하거나 그저 흘려 보내기 일쑤다. 난 항상 평범한 척 하면서도 끊임없이 누군가와 비교하고, 저울질 하며 조그마한 일에도 뭔가 의미를 부여하려 한 것 같다.

이우학교에선 이런 식이다. 언젠가 몇몇 학부모들과 자리를 같이 하는 자리에서 학교에 자전거 보관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우연히 나왔다. 그런데 그 대화를 들어보니 다들 정말 간단하다.

'디자인은 숲속에 어울리게 이렇게 하지 뭐….' '난 몇 시면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재료 없으면 학교에 잘려 있는 나무라도 쓸까?' 그저 그렇게 몇 마디 하더니 며칠 뒤 멋진 자전거 보관대가 만들어졌다.

물론, 정작 제작하고 설치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임을, 그만한 고생과 노력이 따랐을 것임을 나는 그 동안 살아 온 경험으로 안다. 그런 경험들에 의해 무의식 중에 나는 '디자인은 어떻게 할까?' '재료값은 얼마나 되고, 어떻게 충당할까?' '몇 사람이나 나올 수 있을까?' '나는 그 시간에 참석할 수 있을까?' 등등 쓸 데 없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하지만, 한번도 자전거 보관대 같은 것을 만들지 않았을 부모들인 데에도, 이우학교에선 저런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결국은 들어올 때처럼 학부모가 되어서도 내 자신을 또 돌아보게 됐다. 난 단순하고 평범하게 살아온 게 아닌 것이다. 굳이 변명이라면 적당히 같은 색깔 속에 섞여 별 거 아닌 일에 쓸 데 없는 의미만 부여하며 살아 온 것인지도 모른다.

단순하게 산다는 것, 평범하게 산다는 것. 나에게 있어선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도 함께 하는 부모들 덕분에 조금은 변해가는 내 모습에 위안을 삼는다.

***아직은 뛰는 중…단순한 삶, 평범한 용기**

지금 이우에선 학부모들에게도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난 잘 참여하지는 못해도 가끔 기웃거리는 게시판이나 주위를 통해 보고 듣는다. '생태 정자(亭子)' 만드는 일, 동막천 살리기 운동, 마라톤 동아리, 백두대간 종주하기. 생활협동조합 만들기, 마을학교 만들기 등등. 드럼을 배우는 동아리가 있는가 하면 축구 모임도 있다.

아빠들끼리도 잘 놀고, 엄마들끼리는 과자도 구워먹고…. 시골처럼 동네로, 남의 집으로 마실도 잘 다닌다. 누가 챙겨주지 않아도 알아서들 재미있게 잘 논다. 아이들보다 인생을 오래 살아봐서 그런지, 옛날 우리들이 자라던 동네가 그리워서인지 아이들보다 더 잘 어울려 논다

아직은 이사를 못 가서 언저리에서 기웃거리는 나지만 보고만 있어도 재미있고 배부르다. 가끔씩 나도 섞여간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냥 살다보니 어떤 한 무리의 구성원이 되어 있던 모습이 아니라 나의 의지에 의해 내 발로 스스로 조금씩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나는 햇빛이 내리쬐는 길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다.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신호등 앞에서 빨간불에도 아무 거리낌 없이 건너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 틈이 아닌, 그냥 횡단보도 앞에 멀뚱히 혼자 서 있는 기분이다.
아직은 누군가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직은 조금 불안하기도 하다. 저 빨간불에도 건너가는 한 무리 속에서 안도감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아직도 있다. 지금 내 머릿속은 '만약 저 신호등이 고장이라면…' 하는 의구심도 있다. 지금이라도 뛰어갈까 말까 하는 생각으로 망설일 때도 있다.

파란불에 건너가는 당연하고 평범한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늦게라도 알게 해준 것이 대안학교 이우의 문화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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