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캘리포니아 재정파탄의 숨은 이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캘리포니아 재정파탄의 숨은 이유

이코노미스트지, "혼합 민주주의의 비극"

민주주의 대의정치는 국민의 뜻을 제때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직접민주주적 요소로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도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직접 민주주의적인 제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대통령 자문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가 지난 4일 2006년까지 재정 이양, 자치경찰제 도입 등 중앙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하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주민소환제, 주민투표제 등 주민참정제를 내년까지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주민투표제에는 일본의 지자체가 도입한 비(非)구속적인 것이 있는가 하면, 캘리포니아 등 미국의 20여개 주(州)가 시행하고 있는 구속력 있는 주민 발의 및 투표제가 있다. 그러나 이론과 현실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명제가 '캘리포니아 사태'가 잘 보여주고 있다. 경제규모로 미국 제1의 주이며, 한 나라로 치면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인 캘리포니아는 지금 파산위기에 몰려있다.

***'세계5위 경제대국' 캘리포니아의 비극**

캘리포니아주는 지난 6월30일까지 2003년 7월~2004년 6월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못해 7월1일부터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와 주 상·하원 의원, 임명직 공직자 등 1천여명의의 봉급이 일제히 동결된 상황이다. 주 정부 납품·용역업체들에 대한 결제도 예산안이 통과될 때까지 모두 중단되고 병원, 대학은 물론 11만명의 초등학교 신입생 입학이 연기되는 등 각급 공립학교 운영도 타격을 받고 있다.

데이비스 주지사는 현재 결원상태의 일자리 2만개를 없애 비상운영을 해나갈 방침을 밝히며 "주 공무원들에게 제시한 5% 임금삭감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추가로 2만명을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캘리포니아 주의회는 다수당인 민주당이 세금 인상과 비용 절감을 통한 적자 보전 예산안을 마련했으나 공화당이 어떠한 세금인상에도 반대해 예산안이 부결됐고 앞으로도 예산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태다. 캘리포니아주는 지난해 예산안 처리 때도 법정 기한을 76일이나 넘기는 등 최근 25년간 17차례나 기한내 예산안 통과에 실패했다.

캘리포니아주는 3백80억달러에 이르는 재정적자때문에 당장은 1백10억달러의 단기 차입금으로 재정을 충당하고 있으나 8월 중순이면 이마저 바닥을 드러내게 돼 심각한 재정위기를 맞게 될 전망이다.

***캘리포니아를 망친 세 가지 직접민주주의**

왜 이런 사태가 초래됐는지에 대해선 다각적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7월10일자)에서 "캘리포니아 사태의 핵심 원인은 "1911년 도입된 세 가지 직접민주주의적 제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는 1911년 3가지 직접민주주의 법률을 도입했다. 유권자가 직접 법률을 제정하는 '주민발의권'과 입법부가 발의한 법률을 지지 또는 반대할 수 있는 '주민투표권', 그리고 '주지사 소환권'이 그 세 가지다.

캘리포니아는 주 예산안 통과에 상하 양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요구하는 '슈퍼 머조리티'(Super Majority) 제도다. 이 제도는 미국에서도 2개 주에서만 실시하고 있는데, 바로 이 제도가 주민발의권으로 만들어진 주민발의(Proposition) 제13호에 규정된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캘리포니아처럼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에서 어떤 사안이건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25년 전 주민발의권으로 제정된 대표적인 법안인 '주민발의 제13호'는 "재산세를 절반으로 낮추고 세금 신설을 위해서는 의회에서 3분의 2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주민발의권을 통해 제정된 주민발의 제140호는 하원의원 6년(1회 2년), 상원의원 8년(으로 임기를 제한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의회의 분과위원장 등 중요한 보직을 맡을 만하면 임기제한에 걸려 탈락되고 만다"면서 "이때문에 강력한 의회의 리더십이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직접민주주의에 의한 대의정치에 대한 제약으로 생기는 현실적 문제는 주민과 의원 모두 현안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업들의 여론조작**

이코노미스트지 따르면 주민들은 주민발의를 하는데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상황이며 고작 정보를 얻는 경로가 30초짜리 광고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민발의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기업들은 자신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를 확보하는 차원으로 서명을 받고 메일을 보내며 광고를 하고 있다. 또한 여론조사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전문적인 브로커들을 고용하기도 하는데 여론조사 한 건당 1백만~2백만 달러가 소요된다. 결국 부자들이 의제를 조작하고, 여론 조작을 위한 허위정보를 전파하고, 이해관계자들이 주민발의를 둘러싸고 경쟁을 벌이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이런 상황에서 너무나 많은 결정을 요구받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지난 1980년에서 2000년 사이에 6백26건이 발의됐고 이 가운데 1백23건이 승인되고 52건은 입법 발효됐다.이전 70년 동안보다 더 많은 활동을 한 것이다.

또한 LA에서는 2000년 한해에만 43건이 투표에 회부되고 10여건의 선출직 선거를 치러야 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대부분의 정치정보가 30초짜리 정치광고 형태로 제공되고 TV방송사는 지역정치에 별 관심이 없는 주에서 하룻동안에 그처럼 많은 선택을 제대로 알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캘리포니아의 재정 위기는 상당부분이 주민발의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1988년에 통과된 주민발의 제 98호는 캘리포니아 일반예산의 40%는 초중등교육에 몫으로 규정하는 등 대략 총예산의 70%는 경직성 예산이 돼있다. 그 결과 개별적인 지출은 삭감조정을 피할 수 없는 반면 모호한 규정에 따라 대부분의 경직성 지출이 이뤄져 주민들은 정치인들의 결정에 대해 책임을 묻기도 어려워졌다.

이때문에 캘리포니아 교육제도는 1960년대에는 가장 좋은 제도였으나 이제는 가장 나쁜 제도로 전락했다.

***주민들은 여전히 직접민주주의 선호**

놀라운 것은 이같은 사태가 반복되고 있음에도 주민들은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70%의 유권자가 주민발의권 제도에 여전히 긍정적이다. 단지 24%만이 입법부에 의한 결정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는 반면, 유권자 56%가 주민발의를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코노미스트지는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90년대 호황을 거치면서 무리한 세금감면 등에 따른 문제에 대해 무감각하다"고 지적한다. 재정파탄의 책임을 물어 지난해 말 재선된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에 대한 주민소화권을 발동해 오는 9월 주민투표가 이뤄질 예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주민발의가 특정한 이해관계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이 점차 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이코노미스트지는 "캘리포니아가 직접민주주의의 전형적인 실패사례라거나 직접민주주의 도입이 무조건 '다수에 의한 독재'를 부추기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고 덧붙였다. 아직은 견제와 균형 장치가 존재해 주대법원이 수많은 주민발의안을 폐기시켰다는 점과 유권자들도 때로는 자신들의 결정을 수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지는 캘리포니아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가장 큰 결함으로 정치인들이 캘리포니아주의 본질적인 변화와 유리돼 있다는 점을 꼽았다.

지난 10년간 캘리포니아에는 1천1백만명이 새로 이주해 왔는데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라티노(라틴아메리카계 미국인)와 같은 다른 인종이다. 캘리포니아는 전통적으로 미국내에서 사회통합과 일자리 창출의 원동력이 되어 왔지만 라틴계, 기타 다른 이민자, 25세 이하 등 '새로운' 캘리포니아인들은 '정치 무관심층'으로 방치돼 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정치적 통합 실패 때문에 캘리포니아의 간접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만큼 오늘의 상황에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변화하는 정치.사회적 환경에서 직접민주주의와 간접민주주의의 혼합체가 이상적 결과가 아니라 파국적인 결과를 빚는 아이러니가 지금 캘리포니아를 늪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