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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겡끼데스까? 우리, 지금 좀 힘들어요"

[김성민의 'J미디어'] 위기 속 일본의 '무한도전' 관전법

'오겡끼데스까, 저는 잘 지내요…'

한국의 수많은 영화팬들을 매료시켰던 영화 <러브레터>의 감독 이와이 슌지(岩井俊二)가 이번에는 프로듀서로 돌아왔다. 90년대를 배경으로 좌충우돌하는 젊은 음악밴드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밴디지(バンデイジ)>가 그것이다. 한 뉴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이와이 슌지는 90년대를 이렇게 회상했다.

"90년대를 떠올려보면, 거칠지만 뭔가 꿈이나 희망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밴드 하나를 만들어도 '비틀즈처럼 되고 싶다', 뭐 이런 당찬 도전의식이 있었죠. 그때에 비해 지금의 젊은이들은 지나치게 약하고 온순해요. 조금만 어렵다 싶으면 사회가 금방 주사를 놔주잖아요. 그러니 이겨내려고도 도전하려고도 하지 않죠. 주사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이 되어버린 거에요."

사실 일본사회에 있어 90년대는 그 시절을 향수할 만큼 달콤한 무엇인가가 있던 시기가 아니었다. 버블경제 붕괴 후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면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경험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을 일본인들이 90년대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90년대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지금'의 문제는 무엇일까.

'잃어버린 10년'이 낳은 냉소주의

도요타의 대규모 리콜사태, 쉽게 회복되지 않는 경기침체 등 최근 일어나고 있는 현상만으로도 일본의 위기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절대 빈곤율이 자민당이 집권하고 있던 2004년에 이미 14.9%에 도달한 상황에서 빈부격차는 나날이 심화되었고 한 해 자살자 수는 작년까지 무려 12년째 3만 명을 넘었다.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거대 백화점들이 극심한 매출 감소를 이기지 못하고 하나 둘 씩 문을 닫고 있다는 이야기는 거기에 비하면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일본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데 있다. 고도성장의 기적과 소비주의의 지배, 자민당의 장기집권과 저항운동의 부재 속에서 수십 년간 축적된 보수주의가 낳은 '냉소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 '일본 신화' 도요타가 고개를 숙인 지금, 일본인들이 90년대를 회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로이터=뉴시스

생각해보면 '잃어버린 10년'은 분명 일본사회에 가혹한 시련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사회구조를 전면적으로 변화시킬 기회이기도 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일본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대한 심도있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 전체에 퍼진 위기감이 변화의 동력이 되지는 못했다. 오히려 일본사회는 현실의 문제를 투명하게 드러내기보다 낡고 병든 질서로 덮어 지속시키는 쪽을 택했다.

이미 식물인간 상태나 다름없었던 자민당 정권이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소위 '고이즈미 극장'을 통해 집권기간을 연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대표적 예였다. 이는 매스미디어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젊은이들에게 중요한 건 사회변화가 아닌 당장 눈 앞에 닥친 취직문제였다. 이른바 '취직빙하기'를 겪은 그들을 사람들은 '로스트 제네레이션'이라 불렀다.

그러는 사이에 변화에 대한, 대안에 대한 냉소주의는 일상생활의 수준에까지 깊숙이 스며들었다. TV프로그램에 나온 코멘테이터들이 다른 이들의 사회비판에 대해 '그래서 현실적인 대안이 뭐냐'며 냉소를 날리는 일은 다반사였다.

이와이 슌지가 지적한 지금의 젊은이들의 문제는 바로 그러한 역사적 맥락 위에서 생겨난 것이며, 비단 젊은이들뿐만이 아닌 일본사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변화와 개혁의 '무한도전', 링 위를 관전하는 우리

그러나 이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변화나 개혁을 말하고 있다. 국기(国技)라는 보호막 속에 갇혀 우스꽝스러울 만큼 경직된 '스모협회'의 폐쇄적인 구조처럼 사회 곳곳에 오랜 시간 곪아온 것들에 대한 문제제기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과도한 내셔널리즘과 경쟁 일변도 교육에 반기를 든 대안학교가 늘어나고 있는 풍경도 그러한 징조 중 하나다.

학계에서는 역사학, 사회학을 중심으로 전후 현대사 다시읽기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상업주의와 안전제일주의가 고착되어 비판적이고 대안적인 목소리를 내는 데 인색해진 매스미디어 저널리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다.

하토야마 현 정권의 고전으로 의미가 많이 퇴색되기는 했지만, 반년 전 정권교체가 여전히 커다란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변함이 없음은 물론이다.

지금 일본은 말그대로 커다란 위기이자 기회를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 곳곳에 팽배한 냉소주의를 이겨내는 것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최근 <MBC>의 '무한도전' 복싱편을 보면서 한국의 적지 않은 시청자들이 일본의 쓰바사 선수를 응원했던 건, 그녀가 한국의 선수와 다를 것 없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경기에는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에 동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사회가 겪고 있는 지금의 위기를 '우리의 문제'로 보는 관전법 역시 가능하지 않을까. 한국사회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많은 문제들을 끌어안고 있기 때문이다.

▲ '태어나서 일본을 응원한 건 처음이에요.' <MBC> 무한도전-복싱편 방영 후 네티즌들은 이런 소감을 남겼다. 서로를 적으로만 보지 않는 것, 위기의 일본을 보는 우리에게 무한도전의 관전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사진은 경기중인 쓰바사 덴쿠 선수(왼쪽)와 최현미 선수(오른쪽)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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