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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흥은행의 '점령군적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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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조흥은행의 '점령군적 요구'

통합행장 자리 등 요구, 결제능력-전산망 마비직전

조흥은행에서 파업 이틀째인 19일에도 거액이 이탈하면서 사실상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고 조흥은행 전산센터 직원의 추가철수로 '은행전산망 다운'이 우려되는 가운데, 조흥은행측이 도리어 이같은 위기상황을 무기로 합병후 경영권 장악 등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큰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조흥 노조, 매각 기정사실로 인정**

정부는 19일 오후 6시 조흥은행 매각을 위한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이날 오후 9시20분께 조흥은행 매각을 확정지었다.

그로부터 2시간여 뒤인 이날 오후 11시30분 김진표 경제부총리, 최영휘 신한금융지주 회장 및 신상훈 신한은행장, 이용득 금융산업노조위원장, 이남순 한국노총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파업사태 해결을 위한 협상이 시작됐다. 하지만 협상 도중인 새벽 3시께 조흥은행 노조가 이용득 금융산업 노조위원장에게 협상을 중단해줄 요구해 쟁점 사항들에 대한 아무런 결론 없이 끝났다.

조흥은행 노조로부터 협상 전권을 위임받은 이용득 위원장은 "은행 매각포기 부분부터 협상을 시작했으나 이 부분은 공자위에서 결론이 내려진 것으로 보고 지주회사내 독립법인 유지, 통합은행장 문제 등을 포함한 여러 사안에 대해 협상하던중 (금융산업 노조) 조흥은행 지부에서 협상을 중단해달라는 요청이 있어 수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전산센터 다운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김진표 부총리는 "이번 협상은 '결렬'이 아니라 '중단'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면서 "구체적 협상내용은 서로의 신뢰가 중요하기 때문에 내용을 얘기하기 곤란하지만 협상을 하다보면 산도 있고 계곡이 있을 수 있고 아주 나빠지다가도 좋아질 수 있다"고 협상 재개에 대한 미련을 남겼다.

이같은 일련의 과정은 협상이 신한은행 매각이 확정된 뒤 열렸고, 협상과정에 조흥은행 노조로부터 협상 전권을 위임받은 이용득 금노위원장이 '지주회사내 독립볍인 유지, '통합은행장 문제' 등을 협의했다고 밝힌 점 등을 볼 때 조흥은행 노조가 매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뒤 매각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협상을 벌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흥 노조의 '점령군적 협상안'**

이같은 조흥은행측 속내는 협상관계자들이 전하는 협상내용을 통해 확인가능하다.

조흥 노조는 현재 합병후 고용안정, 복지후생, 경영체계, 통합방식, 브랜드 등을 놓고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용안정은 한마디로 노사간 합의가 없는 강제적 구조조정을 하지 말며, 불가피하게 감원을 할 경우라도 현재의 양 은행간 인력구조 및 구성비율에 비례해 감원을 하라는 것이다. 이같은 요구는 2002년말 현재 신한은행측 직원이 4천4백89명, 조흥은행측 직원이 6천6백58명으로 조흥측 직원숫자가 2천1백여명이나 많은 까닭에 합병시 조흥은행측 직원이 무더기 해고되지 않을 것인가라는 우려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복지후생은 현재 신한은행보다 낮은 조흥은행 임금 및 직급을 신한은행 수준으로 올려주며, 합병시 양 은행 전 직원에게 상당수준의 통합 위로금 즉 보너스를 달라는 것이다.

경영체제 및 통합방식과 관련해선, 2년간의 독립운영 기간동안 조흥은행의 행장은 조흥은행 출신이 맡고 그후 통합시 통합은행장의 CEO도 조흥은행 출신이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금융지주회사의 경영진에도 조흥은행 출신의 대등참여를 주장하고 있다.

브랜드와 관련해선, 통합금융지주회사 및 통합은행의 브랜드를 'CSHB 조흥금융지주회사' 및 'CSHB 조흥은행'으로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조흥은행의 CHB와 신한은행의 SHB를 조합한 것이다. 요컨대 '신한'이란 이름을 없애고 대신 '조흥'이란 이름을 쓰라는 요구다.

조흥 노조 요구안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점령군적 협상안'이라 할 수 있다.

***신한, "경영권은 분명해야 한다"**

이같은 조흥측 요구에 대해 신한측은 '합병후 공정경쟁' 원칙에 따라 조흥측에 일방적인 감원 등을 하지 않겠다는 등 고용과 임금 부문에 대해서는 탄력적 입장을 보였으나 경영권 관련부문 등은 수용불가라는 분명한 입장을 밝혔고, 그 결과 협상은 중단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한측은 현재 합병후 2년간 조흥은행을 별도 자회사 형식으로 분리경영한 뒤 그후 통합은행으로 합병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조속한 합병 시너지를 위해 양 은행간에 '공정경쟁'을 촉발시키며 어느 한 쪽에 불리한 처우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주택-국민, 하나-서울은행의 합병 성공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공정경쟁만이 '성공 합병'의 ABC라는 인식에서다.

그러나 경영권만은 분명히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영권을 '자리 나눠갖기' 식으로 어정쩡하게 자리매김할 경우 국내의 대표 합병실패 사례로 꼽히는 서울-신탁은행 합병이나, 일본 은행들의 합병 사례처럼 만성적 분파주의와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노조, "전산망 다운될 것"**

그러나 이같은 신한측 입장에 대해 조흥 노조는 수용불가로 결론을 내리고, 20일 새벽 협상종료와 함께 중앙전산센터 잔류 인력 41명중 정규직원 25명을 철수시켰다. 이용득 금융산업노조 위원장은 20일 새벽 3시 협상결렬을 선언하면서 "전산다운 가능성이 있다"고 노골적으로 압박하기까지 했다.

금융감독원은 이에 비상 대체인력을 투입해 전산망 다운을 막겠다고 밝히고 있다. 금감원은 조흥은행과 전산망이 같은 신한은행, 농협 등 다른 은행들에 대해서도 이미 전산망 지원인력 편성을 마친 상태다.

금감원은 또 만약에 전산망을 이용한 개인 고객의 거래에 불편이 발생할 경우에는 이날 중으로 조흥은행 점포 인근의 다른 은행 영업점을 이용해 조흥은행 고객이 예금을 찾을 수 있는 예금 대지급을 실시할 방침이다.

***지급불능 위기 카운트다운**

조흥 파업으로 유동성 위기도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금융 당국은 특히 개인과 기업 고객들의 계속적인 예금 인출로 인한 조흥은행의 유동성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전날 한국은행을 통해 2조원의 긴급 자금을 지원한 데 이어 유동성 조절 대출(한도 3조원), 콜자금 등을 통한 추가 유동성 지원 대책을 고려하고 있다.

파업 첫날에 3조6천억원이 이탈한 데 이어, 파업 이틀째인 19일에는 1조억원이 빠져나갔다. 그나마 이탈액이 첫날보다 줄어든 것은 정부가 첫날 2조원을 빼내간 기관투자가들에게 '협조' 차원에서 인출 자제를 압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조흥은행 자금관련 고위관계자는 20일 "현재로서는 지급불능 상태가 아니나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오늘(20일)이후에는 지급불능 상태에 빠져들지도 모르는 최악의 상태"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은이 계속 돈을 쏟아부어봤자, 인출 파고가 수그러들지 않을 경우 '진짜 지급불능' 상태로 빠져들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제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정부 일각에서는 '공권력 투입'이 적극 검토되기 시작했다. 그 시기가 예상밖으로 빠를 수도 있다는 얘기도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정부는 전산망 다운이나 지급불능 사태같은 금융대란이 발생한다면 묵과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여론도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조흥은행과 거래하고 있다가 큰 불편을 겪고 있는 1천만 개인고객과 8천 기업고객은 물론, 대다수 국민여론도 조흥 노조가 넘지 말아야 할 '금도'를 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차제에 조흥은행을 M&A(기업 인수합병) 방식이 아니라, 고용은 승계하지 말고 자산-부채만 인수하는 P&A 방식으로 정리해야 한다는 강력한 비난여론도 터져나오고 있다.

피합병되는 조흥 노조의 불안감은 이해간다. 그러나 그들의 요구는 '공정경쟁 시스템'의 확보에 멈춰야 한다. 조흥 노조는 이미 합병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뒤 협상에 나선 상태다. 이런 마당에 '민족은행' 운운이나 '헐값 매각' 운운같은 구호는 더이상 무의미하다. 조흥노조는 그 대신 신한측에 "공정하게 경쟁하고 실력대로 대우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요구해야 한다. "우리가 숫자가 많으니 합병후 역으로 신한을 점령하자"는 식의 발상은 버려야 한다. 그리고 신한은 조흥의 '공정경쟁'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이제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싸움은 여론을 타야 이긴다. 그러나 지금 조흥을 바라보는 여론은 가히 '적대적'이다. 조흥이 더이상 '실기(失機)'를 하지 말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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