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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로마제국이 아니다"

<데스쿠에트 프랑스대사 인터뷰> "지금은 3극시대"

프랑수아 데스쿠에트 주한 프랑스 대사(53)는 외교관답게 다른 나라와 연계되는 질문에는 매우 조심스러운 답변을 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최소한 미국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서는 예외였다.

13일 주한 프랑스 대사관저에서 데스쿠에트 대사와 인터뷰를 가진 전날,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독일 방문 중 “신구(新舊) 유럽을 구별하는 기준은 (나라의) 연륜이나 크기, 지리의 문제가 아니라 대서 양안(兩岸)관계의 비전에 대한 태도의 문제”라며 프랑스와 독일을 또다시 공격했다. 럼즈펠드는 이라크전쟁 시작 전에도 프랑스와 독일을 '구유럽'이라고 지칭하고, 유럽의 권력축이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달 13일에는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2003년 연례보고서를 통해 “미국 중심의 '단극(unipolarity)'체제가 세계평화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주장, 프랑스 등을 자극하기도 했다.

***"미국은 로마제국이 아니다"**

따라서 첫 질문은 “미국의 일방주의를 인정하고 1극 체제의 새로운 질서에 모두 편입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프랑스의 입장은 어떤가”라는 내용이 될 수밖에 없었다.

데스쿠에트 대사는 처음에는 “전쟁은 혼자서 일으킬 수 있지만 평화는 혼자서 이룰 수 없다”는 점잖은 말로 답변했으나, 거듭되는 질문에 “미국을 로마제국처럼 유일 초강대국에 비유하는 것은 매우 순진한 발상”이라고 단호한 목소리를 냈다.

대사는 “세계는 현재 미국, 유럽, 아시아 등 3극 체제로 되어 있는데 어떻게 1극체제로 갈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세계화가 진행될 수록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상호의존성이 강해지고 있다는 점임을 고려할 때 미국이 단독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며 강한 어조로 미 행정부의 사고방식을 비판했다.

***"한국언론, 유럽의 중요성 몰라줘 섭섭"**

데스쿠에트 대사는 한국- 프랑스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대사는 “한-프 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한국전쟁 때부터라고 볼 수 있다”면서 “이렇게 보면 50년 정도의 비교적 젋은 관계이지만 어린이의 성장속도가 빠르듯 한-프 관계는 급성장할 잠재가능성이 높은 관계”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언론들이 아직 유럽의 중요성을 충분히 다뤄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 섭섭하다”면서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공동체를 놓고 볼 때 유럽은 미국과 맞먹는 투자국이자 한국의 주요 수출시장”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언론의 '미국 편향성'에 대해 일침을 가한 셈이다.

특히 대사는 “내년에 프랑스의 기술을 전수받아 개통되는 한국고속철도사업이 주는 상징성에 착안해 ‘한불고속협력’(가칭) 같은 명칭으로 다양한 교류프로그램을 준비중에 있다”면서 한국과 프랑스의 진전된 관계에 진력하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데스쿠에트 대사는 인터뷰가 끝난 뒤 사진 촬영중 “프랑스는 언론에 대해 정부가 많은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 때문에 각종 매체들이 난립하는 문제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질문을 던지자 “프랑스는 나치 시절 대형언론사가 나치에 부역하는 상황을 겪고 난 뒤 법으로 언론사 최대주주의 지분이 30%가 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으며 다양한 언론이 존재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는 체제를 갖고 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한국이 특정신문사 몇개가 7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보이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대사는 “매우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러기에 앞으로 프레시안 같은 인터넷 신문같은 신선한 언론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프랑수아 데수쿠에트 대사와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전쟁은 혼자 할 수 있으나 평화는 혼자 못만든다"**

프레시안: 영국의 국제전략연구소(IISS) 등 미국을 중심으로 1극체제로 가자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고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미국을 따르지 않으면 낡은 나라라는 발언을 거듭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과 미국의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나.

데스쿠에트 대사: 전세계는 현재 3개의 축으로 돌아가고 있다. 경제규모로 보자면 북미가 30%, 서유럽이 30%, 아시아가 15~20%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의 경제는 급성장중에 있다. 세계를 남반구와 북반구로 나눠볼 때 북반구에 위치한 나라들이 세계 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식으로 보자면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세계 경제 75%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3개의 축에 속한 나라들은 남반구를 포함한 세계 문제에 대한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지난 73년 G7 정상회담을 프랑스가 주도하기 시작했을 때 세계는 석유파동 직후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G7의 근본적인 정신은 ‘전세계 협력’이었다. 세계 경제성장 문제를 비롯해 남북 경제 격차 문제, 아프리카 지역 등의 빈곤, 국제 안보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에 대해 국제적인 협력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이었다.

지난 6월초 프랑스에서 열린 G8 정상회담 역시 국제협력의 정신에 따라 경제성장, 빈곤, 대량살상무기 확산과 테러 방지 등 3가지 안건을 주요의제로 다룬 것이다.

G8은 유럽과 미국의 두 축으로 이뤄진 것으로 이번 G8 정상회담에서도 세계경제 성장을 위한 책임 분담을 논의했다. 어느 나라가 강대국이냐는 국방, 경제, 미디어의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미국은 국방비가 4천억 달러로 세계 다른 국가들의 군사비를 모두 합친 액수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군사대국이다. 경제도 세계경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경제대국이며, 미디어 측면에서도 세계 여론을 자국에 유리하도록 동원하는 능력도 미국에 집중돼 있다.

근자에 미국은 미디어와 군사력을 국익을 위해 더욱 더 많이 동원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은 미국을 위해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강대국의 힘은 합의를 통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혼자의 힘으로 전쟁하기는 쉽지만 혼자 힘으로 평화를 만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국제질서의 흐름은 평화를 이루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임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은 미국,유럽,아시아의 3극체제"**

프레시안:“혼자 힘으로 평화를 만들기는 어렵다”는 말씀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편집장을 역임한 빌 에모트가 쓴 <20:21비전>이라는 책을 보면 “21세기는 미국의 유일패권을 인정하고 미국의 일방주의를 따를 때만이 20세기같은 전쟁이 반복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며 평화에 이르는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데스쿠에트: 미국과 유럽의 질서를 장기적으로 어떻게 가져가야 하느냐는 매우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다. 그렇지만 군사력 측면에서만 강대국의 역할을 보는 것은 한 면만 보는 것이다. 경제안보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동유럽을 서방체제로 전환하는데 서유럽이 가장 많은 비용을 들였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프리카에 대해서도 서유럽이 가장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여기에 언론들의 역할이 중요한데, 반미주의나 프랑스 혐오주의식의 감정적 차원으로 논쟁을 이끌어가서는 곤란하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에 동의하는 자유와 권리가 인정되어야 하지만 위협을 가하거나 오보를 만들어내는 식이 되어서는 안된다.

현실을 제대로 보라. 60억 인구에 2백여개 국가가 존재하고 있는 지구촌은 분명히 3극 체제로 되어 있다. 어떻게 1극 체제로 갈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미국을 로마제국에 비유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세계는 점차 상호의존성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이다. 미국이 한 때 단독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이는 환상, 허상에 불과하다.

중국의 정책이 미국 워싱턴에서 결정되고 일본의 경제정책이 가령 미국 캔사스 주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이같은 발상은 세계의 현실을 직시하는 못한데서 비롯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하나의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다. 세계 경영을 위한 하나의 기구가 필요할 뿐이다. 50년전 장 모네 같은 위대한 정치가가 유럽연합을 추진한 것도 이같은 통찰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같은 발상이 세계 각 국에 필요하다. 모든 국가가 책임을 지고 자리매김을 할 수 있는 세계통합기구가 현실적으로 요구된다고 본다.

프레시안: G8 정상회담에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의 만남이 기대한 것만큼 우호적인 분위기를 보이지 못했다는 점에서 향후 양국 관계에 대해 우려하는 전망이 적지 않다.

데스쿠에트: 양국 대통령의 만남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양국 국민들의 관계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정책면에서 양국의 입장이 다른 것은 사실이다. 이라크 전쟁 전후로 두 정상의 생각이 변하지 않았다. 이라크 전쟁 명분으로 미국이 제시한 대량살상무기의 존재, 미국에 대한 즉각적 위협, 알 카에다와 이라크와의 관계 등이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프랑스는 판단하고 있다. 이같은 근본적 차이는 앞으로도 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충분한 대화를 통해 이성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프랑스 공공부문 파업, 곧 타협안 도출될 것"**

프레시안: 프랑스 국내 문제로 화제를 돌려보겠다. 프랑스에서는 요즘 연금 제도 개혁안을 둘러싸고 전국적인 시위가 계속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태 해결 전망은 어떤가.

데스쿠에트: 프랑스에서는 베이비붐 세대들로 인해 퇴직자가 급증하고 수명이 연장되는 등 인구학적인 구성비율이 크게 달라졌다. 이 때문에 현재의 연금제도로는 연금재정 고갈이 불가피하다. 그 점은 현재 파업을 벌이고 있는 공공부문 노조들도 잘 알고 있다. 프랑스의 연금제도는 세대간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프랑스 정부는 이러한 정신을 이어가려고 하고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분담액을 늘리고 분담금 납부기간을 늘리는 대책 외에는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연금개혁안에 따라 점진적으로 민간 부문과 동등하게 바뀌는 공공부문 근로자들이 파업을 벌이는 등 항의를 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항목들에 대한 조정과제가 남아 있을 뿐 근본적인 타협은 곧 도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프레시안: 한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부동산 거품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프랑스의 경우는 어떤가.

데스쿠에트: 도시화, 산업화 이후 주택을 포함한 부동산은 늘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수요공급 측면에서 주택은 늘 긴장관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가진자들이 부동산을 투자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점도 부동산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수요집중을 막기 위해 프랑스 정부는 지방 분권화 정책을 쓰거나 주택공급 확대, 금융 융자 지원 등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파리 등 주요 도시에서 부동산 거품 문제는 늘 발생하고 있다. 증시 상황과 맞물려 증시 상황이 좋지 못할 때는 부동산으로 자금이 몰리는 경향이 있다. 특히 파리는 증개축이나 신축 등이 자유롭지 못해 매우 비탄력적인 부동산 시장을 형성하고 있어 부동산 거품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의 언론들, 유럽의 중요성 간과"**

프레시안: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 방문 때 일본, 중국, 미국 등이 한국에 가장 중요한 나라라는 식으로 순서를 매겼는데, 외교관의 입장에서 프랑스와 한국의 관계는 어느 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데스쿠에트: 외교사로 볼 때 한국과 프랑스의 관계는 짧은 역사를 가진 ‘젊은 관계’라고 표현하고 싶다.
프랑스는 미국과는 2백5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으며, 일본과는 1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다. 반면 한국과 프랑스는 구한말 선교사나 외교관을 통한 교류는 있었지만 본격적인 관계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이뤄졌다고 본다. 그렇게 본다면 한국과 프랑스의 관계는 50년 정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다.

비유를 하자면 어린이가 성장이 빠르듯 한국과 프랑스의 관계는 급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 프랑스는 한국과 투자와 무역 등에서 상당한 수준의 교류를 이미 하고 있다. 최근에 프랑스의 장관 6명이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에서도 4명의 장관이 프랑스를 방문한 것도 양국의 관계가 어느 정도 활발한 지 보여준다.

물론 한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역적인 관계부터 우선시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것은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한국에게 일본, 중국, 미국이 중요하다면 거기에 덧붙여 러시아 다음은 유럽이 중요한 상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한국의 언론들은 이같은 유럽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면이 없지 않다. 유럽은 한국에 대해 미국과 맞먹는 투자국이다. 또한 한국의 4번째 수출시장이기도 하다.

이같은 점으로 볼 때 한국과 유럽, 한국과 프랑스와의 관계는 앞으로 가속화할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과 프랑스의 관계에 추진력을 주기 위해 저희들이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다. 2004년 한국의 고속철도 개통식이 있는데, 이 고속철도는 프랑스의 기술을 전수받은 한국형 고속철도라는 점에서 한-프 관계에 매우 상징성이 강한 사업이라고 생각해 ‘한-불 고속협력’(가칭)이라는 교류협력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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